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82화 (82/150)

82화 먹이사슬과 셈법

“배고픈 여우가 아무리 노력해도 포도 덩굴에 닿지를 않습니다. 따 먹는 걸 포기하죠. 그리고 말합니다. 저건 덜 익어서 맛대가리 없는 신포도야. 안 따먹길 잘했어.”

“…….”

“이렇게 정신승리를 하려면 포기합시다. 이라크는 신포도일 겁니다.”

“…….”

“그런데 말입니다. 실제는 정말 잘 익은, 달콤한 포도잖습니까? 나중에 농장 주인이 수확하면 큰돈을 받고 팔겠죠. 여우는 여전히 입맛만 다시고.”

“…….”

“여우는 왜 배가 고픈 지경에 이르렀을까… 여러분! 지금 배가 부르십니까? 한 번 양보하면 두 번, 세 번을 반복하다가 종내에는 당연시됩니다. 계속 양보해야 하는 거죠. 게다가 미국은, 위대한 미합중국은… 결코 눈치 보는 여우가 아닙니다.”

“…….”

“미합중국은 폭풍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건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싸그리 쓸어버릴 폭풍. 그깟 포도밭 따위 갈아엎고, 자갈밭으로 만들 수 있는 폭풍.”

“…….”

“자연은 위대합니다. 따뜻한 햇볕을 보내서 포도를 영글게 만들 수도 있지만… 폭풍을 보내서 갈아엎을 수도 있죠. 농장 주인들은 아직 자연의 위대함을 모르고 있어요. 그게 문제입니다.”

“…….”

“안다고요? 그래서 추수감사절 같은 날이 있다고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여우로 남으세요, 신포도 타령이나 하면서. 여기 모이신 장관들은 여우입니까? 아니면 폭풍입니까?”

“…….”

“사담은 절대 쿠웨이트에서 철군하지 않습니다. 버티면 자기 것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기서 끝나면 다행이죠. 중동 석유의 40%, 전 세계 석유의 8%를 손에 쥔 사담이 어떻게 나올까… 그대로 만족하며 살까? 힘이 생겼는데, 그 힘을 더 쓰고 싶지 않을까?”

“…….”

“이번 쿠웨이트 침공으로 이라크는 전력의 2% 피해를 입었어요. 2%… 그대신 돈줄을 가졌죠. 이제 이 돈으로 200만 대군이 되면? 사우디 국경을 넘으면? 지금도 베트남에서 뼈아픈 패배를 겪은 우리를 무시하고 있는데… 어떻게 나올까요?”

“…….”

“신포도 타령하려면 여우로 사십시오. 하지만, 왜 우리 미합중국이 위대한 나라인지 증명하려면 총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포도밭 주인들도 폭풍의 무서움을 뼈에 새기게 됩니다.”

시혁의 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잔기침조차 없었다.

이윽고 부시가 먼저 박수를 투닥투닥 치기 시작하자 모든 참석자가 덩달아 박수를 쳤다. 경호원이 깜짝 놀라 문을 열고 들어올 정도로 열렬한 박수가 회의실을 울렸다.

“자네가 히틀러 시절에 태어나지 않길 정말 잘했어. 괴벨스도 자네처럼 대중을 빨아들이지 못했을 거야. 대단해, 킴!”

“과찬이십니다.”

“흠… 폭풍이라, 멋진 표현이었네. 자! 여러분,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다들 알았을 겁니다. 이제부터 자연의 위대함을 저 하찮은 농장 주인에게 보여 줍시다. 만약,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 여우라고 부르겠소. 껄껄껄.”

정말 대단한 사람이 시혁인지 부시인지 모르겠다. 시혁의 입을 빌려 단숨에 의견을 통일한 부시는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국무장관을 시켜 즉시 유엔에서 결의안이 채택되도록 했다. 소련도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 새로 소련 연방을 받치는 강국이 된 러시아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에 중동까지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쿨하게 찬성표를 던졌다.

-국제연합은 이번 이라크 공화국의 쿠웨이트 침공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이라크는 즉각적이고 완전하게 주권국인 쿠웨이트 영내에서 군사를 철수하라.

-이에 최종 철군 시한을 정하는 바이다. 만약, 이 시한을 지키지 않았을 시 야기될 모든 책임은 이라크 공화국에게 있음을 천명한다.

그리고 명시된 철군 시한. 1991년 1월 15일로 확정, 공표되었다.

* * *

“이거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갑니다.”

“다 명분 쌓기 하는 것 아니겠소?”

“명분만 쌓으면 다행인데, 행동으로 옮기면 어찌 합니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이라크는 100만 대군을 거느린 군사 대국, 미국의 피해가 엄청나다는 걸 부시가 모르겠소? 베트남의 악몽을 반복하지 않을 거요.”

“아닌데… 이거 느낌이 영 좋지 않은데.”

“기다려 봅시다. 오늘 백악관 회의가 어떻게 되는지.”

“손을 썼겠죠?”

“두 말 하면 잔소리지. 그동안 열심히 퍼 날랐어요. 태반이 내 쪽 사람입니다. 돈값 하지 않겠소?”

엑슨모빌의 헨리 제리코와 BP의 리처드 레드포드는 평소에도 합이 맞는 처지였다. 둘 다 골프광으로 수시로 필드에 나가는 친구 같은 사이.

말은 그렇게 해도 둘 다 초조한 심정이긴 마찬가지였다. 사담은 공언한 대로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이틀도 걸리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모두의 바람처럼 미국이 이번 사태를 모른 척 용인하는 것. 이 결과를 얻기 위해 몇 몇 장관들에게 뿌린 돈이 수천만 달러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그리고 들어선 부회장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는 것을 본 헨리와 리처드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어서! 어서! 이리 와. 어떻게 되었나?”

“회장님, 다 끝났습니다. 느닷없이 마이다스 킴이 참석했답니다.”

“……!”

“그 한 놈 때문에 분위기가 완전 반전되어 버렸답니다. 프레지던트가 박수로 환영했다네요.”

“그, 그, 그럼…….”

“예, 벌써 국무부는 유엔 소집을 요구하고, 국방부는 전군 사령관을 호출했답니다.”

“아냐, 그럴리가 없어. 부시가 그런 결정을 할 리 없어.”

“부시는 회의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킴에게 의견을 청하더니… 박수를 쳤답니다. 장관들 역시 박수로 동의했고요.”

“아아! 이 개자식, 이 빌어먹을 새끼, 똥물에 튀겨 먹을 놈, 왜 저런 놈이… 으아악!”

“헨리, 정신차리시오. 부회장, 유가가 어떻게 반응할까?”

리처드는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했으나 그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모릅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면 이라크도 대응하겠죠. 전면전이 벌어질 겁니다. 답은 이 전쟁이 얼마나 빨리 끝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라크도 100만 대군입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누가 이기던 다 필요 없고, 올해 10월 유가의 추이, 얼마나 치솟을까?”

“…최소한 30달러는 넘을 겁니다. 그 이상이면 모를까 그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모두 미쳐 날뛰겠지? 크크크크.”

“…예, 회장님. 지금껏 보지 못했던 공포가 세계를 휩쓸 것입니다.”

또 헨리의 눈이 돌아갔다. 거의 흰자만 보인다.

“죽여야 해. 이놈이 있는 한 우리의 미래는 멸망뿐, 변하지 않아. 죽여야 한다고.”

“이봐, 헨리. 당신의 오판이 우리 세븐시스터즈 전체를 멸망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빠지려고 했었다고. 다 끝났어, 이 양반아.”

후회도 시기가 있다. 모든 것이 망가진 후에 하는 후회는 자학에 불과하다. 최소한 돌이킬 기회가 있을 때 해야 손실을 줄일 수 있거늘… 늦었다.

* * *

“유엔의 최후 통첩? 소련이 동의했단 말이야?”

“각하, 거긴 내부 단속에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가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더러운 양키, 이렇게 뒤통수를 치다니.”

“그들을 믿은 것이 잘못입니다.”

“닥쳐! 우리에게는 100만 대군이 있다. 사막을 양키의 공동묘지로 만들어 주마.”

“준비할까요?”

“응, 공화국은 사막이 전부인 평지, 숨을 곳이 없지. 거미줄 같은 우리 방공망을 뚫지 못하는 한 제깟 놈들이 들어올 방향은 정해져 있어.”

“그렇습니다. 쿠웨이트 쪽 해안과 사우디 쪽 국경만 틀어막으면 양키들도 도리없습니다.”

“그래, 같이 피를 흘리는 거다. 몇 만, 몇 십만의 생때같은 양키가 죽어 나자빠지면 뒤로 물리겠지. 베트남 때처럼.”

“각하! 공화국 100만 대군은 죽음을 불사하고 싸울 준비가 되었습니다. 명령만 내리십시오.”

“이봐, 국방장관. 스커드 미사일 포대, 야무지게 점검해.”

“그것도 문제없습니다. 언제든 명령하시면 이스라엘로 소낙비처럼 퍼붓겠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참전하면 아랍국들은 우리 편에서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바야흐로 서방과 아랍의 대결이, 3차 세계대전이 펼쳐질 것입니다, 각하.”

* * *

각 나라별 셈법이 복잡했다.

시혁은 부시의 요청에 의해 CMM에 지시해 국방부와 협의를 마쳤다. 부시는 이번 전쟁으로 미국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는 것이다. 그러려면 세계 모든 나라가 미국의 힘을, 공포를 알아야 한다.

자연은 햇볕만 아니라 폭풍도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세상은.

베트남에서 비참하게 사이공을 탈출하던 미국의 초라한 모습만 기억에 담아 두고 있을 뿐… 나치 독일과 일본을 동시에 상대하고도 까딱없었던 그 저력을.

“특보님.”

“아! 사령관님, 뉴욕까지 오시게 해서 미안합니다. 지금 정신이 없을 텐데.”

“아닙니다. 뵙자고 청을 한 것은 접니다. 당연히 제가 와야죠.”

미 중부군 사령관 슈워츠코프. 역전의 용사다.

중부 사령부는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담당하는 통합 전투 사령부다. 여기 사령관, 육군 대장이 만만할 리 없다.

“프레지던트의 전화는 받았습니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네, 개전하기 전에 제 불안을 좀 잠재울 요량으로 왔습니다. 특보님의 의견을 경청할까 합니다.”

“저는 군사작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릅니다만.”

“그래서 온 겁니다. 전문적인 작전은 완벽하게 수립했습니다. 다만, 그 과정 중에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할 아이디어가 있을 거라는 코드 원 말씀이 있어서요.”

이 양반, 야무지게 써먹는구나. 또 신기 있는 척해야 하는 건가.

“우선 작전명은 어떻게 정하셨습니까?”

“예, 코드 원이 직접 이름 붙였습니다. ‘사막의 폭풍 작전’입니다.”

똑같다. 역시 변하지 않았네. 그럼 상황도 똑같이 흘러간다는 말이다. 대충 알고 있는 썰을 풀어도 된다는 거네?

“아끼면 똥 됩니다. 가지고 계신 모든 전략 자산을 퍼붓는 게 좋겠지요. 가오리를 보내 방공 레이다와 미사일 포대를 박살 내고, 탱크 킬러 인디안의 도끼를 밤에 띄워 나머지도 뽀개고…….”

“네. 거기까지는 우리 전술과 똑같습니다.”

“사령관께서 뭘 걱정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의 참전이죠. 그렇게 되면 다 흐트러지니까. 지금은 침략국을 단죄한다는 명분이 있지만, 이스라엘이 끼어드는 순간 아랍과 서방의 진영 싸움이 될 테니까. 그때부터는 진흙탕 싸움이 될 것이고, 자칫 세계대전으로 번질 것을 두려워하는 거죠. 맞나요?”

“…휴우! 그렇습니다. 그게 이번 작전의 핵심입니다. 또 풀지 못한 숙제이기도 합니다.”

“선물을 보내세요.”

“예?”

“미군이 꽁꽁 감추려고 하지만 말고, 써먹으라고요.”

“뭘… 말하는 겁니까?”

시혁은 슈워츠코프 사령관과 눈을 맞추고 피식 웃었다. 이 양반이 사람을 띄엄띄엄 보는구나.

“패트리어트, 아끼면 똥됩니다.”

“헉! 그건 정말 독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군내에 이스라엘의 우호적인 세력이 많아서 1급 정보들이 줄줄 새고 있습니다. 패트리어트까지 통째로 공급하면… 나중에 이스라엘이 궁극의 아이언 돔을 완성할 단초를 제공하는 것과 같습니다.”

“훗! 사령관님, 그렇다고 감춰지나요? 걔들도 다 압니다. 핵심 기술을 모를 뿐이지. 그런 판에 몸으로 때우라면 반감만 깊어져요. 주려면 홀랑 벗고, 아예 설계도도 주세요.”

“으으음.”

“솔직히 미국의 핵심 세력에 유태인 없는 곳이 있나요? 조만간 그들은 비슷한 유형의 공중 방어용 미사일을 만듭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미국의 보호 아래 가둬 두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이건 사실이었다. 어차피 미국은 이스라엘의 참전을 막기 위해 패트리어트 대공 미사일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쓰고 남은 포대를 일일이 분해해서 그보다 더 뛰어난 대공 방어망을 만든다.

시혁은 아예 설계도를 줘 버리고, 빚을 지워 놓으라 말하는 것이다.

“아끼지 마세요. 백 시간을 퍼부으면, 아군 천 명이 죽겠지만 천 시간을 퍼 부으면 백 명도 안 죽습니다.”

“백 대 천, 천 대 백?”

“예, 이번 응징은 사령관님의 생각보다 더 복잡한 정치적 요소가 깔려 있으니까요. 돈? 물자? 다 필요 없습니다. 압도적인 승리. 그리고 이를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보는 것.”

“…….”

“사령관님은 오직 이것만 생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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