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84화 (84/150)

84화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작

미국을 중심으로 33개의 다국적군이 편성되었다. 대한민국도 군 수송기와 의료진 위주의 비전투병을 파견했다.

차근차근 준비할 것은 없었다. 미군은 이미 오래전부터 각 부대별로 물자를 비축하고, 전쟁에 대비한 지 오래다. 이를 적재적소에 배치만 하면 되는 만렙 상태.

그런 중 사우디 공항에는 철통 같은 보안 속에서 기괴한 모양의 비행체가 옮겨지고 있었다.

F117 나이트 호크.

가오리를 닮은 형상, 하늘의 유령이라고 불리는 스텔스(Stealth) 전투기, 레이다에 걸리지 않는 획기적인 전략무기가 조용히 사우디 군사 공항으로 모여 들었다.

거기다 하늘의 창고로 불리는 B-52폭격기도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운명의 날.

1991년 1월 17일. 유엔이 최종 시한으로 못 박은 날로부터 이틀 후.

그토록 자랑하던 이라크의 거미줄 같은 방공 감시 레이더들은 영문도 모르고 박살이 났다. 레이더에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는데 정밀 유도무기가 날아든 것이다.

이른 새벽, 비몽사몽 간에 이라크군은 선빵을 얻어맞았다.

그러나 진짜 공포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사막 곳곳에서 상상치도 못했던 폭음이 울려 퍼졌다. 아무런 징후가 없는데 들이닥친 정밀 타격. 하늘의 유령 스텔스기의 위력은 무서웠다. 단숨에 이라크가 자랑하던 방공망의 절반이 날아갔다.

뒤이어 들이닥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은 화들짝 놀라 남은 레이더를 가동하던 이라크군을 덮쳤다.

깡그리 날아갔다.

미군은 사막의 폭풍 작전을 위해 총 10대의 인공위성을 동원했다. 이른바 스타워즈의 재림. 미군은 이라크군의 움직임을 개미 뒷다리 보듯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 싸움이랄 것도 없는 일방적인 폭격이 장장 1,000시간 동안 이라크 전역을 두드렸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이라크 공군은 단 한 대도 출격하지 못했고, 마치 자기 영공처럼 미군 폭격기가 하늘을 누볐다. 끝으로 육중한 기체를 띄운 B-52폭격기가 이라크의 군 시설과 행정 시설에 무차별적으로 폭탄을 쏟아부었다. 아낌없이.

그 과정에서 누가 총을 들고 참호 밖으로 고개를 내밀겠는가? 그저 이 엄청난 폭격이 빨리 멈추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세상에, 세상에… 저거… 지금 영화가 아니지?

-무슨 비디오 게임을 보는 것 같아.

-레고 부수는 것보다 더 쉽게 하는구나.

-저게 미국인가?

-그래도 100만 대군을 거느린 세계 4대 군사 강국이… 말이 안 나온다.

-소름 끼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

-제기랄, 우리나라 같으면 얼마나 버틸까?

-시꺼! 얼마나 버티냐고? 눈만 흘기면 바로 항복해야지.

-사담, X됐다. 불쌍해.

-그런데 폭격 장면을 어떻게 저리 생생하게 방송에서 잡을 수 있었을까?

-모든 방송국은 지금 CMM 영상을 받아서 재탕하고 있어. 오직 CMM만 생중계를 해 주는 거라고.

-CMM? 그런 방송국도 있었어?

-24시간 뉴스만 틀어 주는 곳이래. 이제부터 저기만 봐야겠다. 저 종군기자들 미쳤어.

-신기해. 미리 다 준비하고 기다린 거야. 폭탄이 비처럼 쏟아지는데 죽은 기자는 한 명도 없다네.

-저기 일부 장면들, 폭격하는 걸 비행기에서 찍은 거 잖아? 그걸 왜 CMM에서만 독점하는 거지?

-미리 짰네, 짰어. 미국 정부가 마음먹고 CMM을 밀어주는 거야. 지상에서는 종군기자가 찍은 걸 내보내고, 하늘에서는 비행기가 촬영한 것을 실시간으로 넘기고.

-왜?

-등신아, 그래야 더 무서울 거잖아? 효과가 극대화되잖아. 내가 봐도 살 떨리는데.

세계가 전율했다. 10억 명의 시청자가 TV를 통해 이라크가 산산조각 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리모컨을 쥔 손이 덜덜 떨렸다.

마치 실제 현장에 있는 것처럼, 소름 끼치는 장면을 안방에서 느끼는 것이다.

전쟁이 저런 거구나. 영화는 오히려 순한 양이었어. 콩알만 한 총알을 맞아도 사람이 저렇게 넘어가는 것이었어.

폭탄에 짓이겨진 시신들.

박살 난 탱크에서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뛰쳐나오는 전차병.

뒤집어진 보급 차량에 깔린 운전병.

모래를 뒤집어쓴 채 몸을 말고 울부짖는 늙은 병사의 절규가 그대로 카메라에 잡혔다.

하지만 이것도 약과였다.

이라크가 마지막까지 믿고 있던 최정예 공화국 수비대는 야간에 AH-64(아파치 헬기)의 방문을 받아야 했다.

야간 탐지 능력이 탁월한 밤의 지배자 아파치 헬기는 탱크 킬러라는 명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아파치에서 발사된 헬파이어 미사일에 그나마 버티던 공화국 수비대는 궤멸하고 말았다. 짹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리고.

드디어 43만 명의 미군을 포함 68만 명의 다국적 지상군이 이라크 국경을 넘었다.

지금껏 사담은 쿠웨이트만에서 대기 중인 미국 해병대 병력이 상륙할 것으로 생각하고 대비를 했건만, 실제 다국적군은 사우디를 통해 이라크의 넓은 사막을 귀신처럼 가로질러 직접 이라크 국경을 짓밟은 것이다.

해병대 병력은 수송선에서 내리지도 않았다. 쿠웨이트만에 떠 있던 미국의 전함들은 겨우 떠 있는 정도의 낡은 퇴역함. 보기 좋게 속은 것이다.

이라크는 남은 전차 300대를 몽땅 방어 전선에 투입했고, 다국적군은 800대. 이쯤되면 다구리도 견디기 힘든 상황인데, 전차 간의 성능은 하늘과 땅이었으니…….

미국의 M1A1 에이브람스 탱크는 열화우라늄탄을 장착해 맞으면 바로 골로 가는 판이었는데 반해 이라크의 T-72에서 쏘는 날탄은 미군 탱크를 잡을 수 없었다.

이라크는 최후의 발악을 했다. 계획대로 이스라엘을 향해 스커드 미사일 수십 발을 동시에 날린 것이다. 위치가 발각되면 미군의 공습으로 미사일 기지가 박살 날 것이 뻔하니, 한번에 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배치된 패트리어트가 스커드 미사일 태반을 막아 냈다. 일부가 떨어졌으나 미리 준비한 덕분에 큰 피해는 없었다.

이 정도는 감수할 만했다. 패트리어트도 얻었고, 설계도까지 받았으니 괜찮은 거래였다. 이스라엘군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라크의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사담의 야망은 일장 춘몽으로 돌아갔다.

[프레지던트.]

“장군, 수고했어요. 피해는 어느 정도입니까?”

[네. 아군은 전투 중에 130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기타 희생자가 100명 정도로, 총 230명입니다.]

“이라크 측은?”

[정확한 통계는 내기 어렵습니다만… 15만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수고했어요. 장군을 위시해서 참전한 모든 장병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럼, 내가 종전을 발표해도 되겠군요.”

[예, 프레지던트. 더 이상의 저항은 없습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전쟁이었다.

명색이 중동의 패자, 100만 대군을 보유한 세계 4위의 군사 대국 이라크가 개전한 지 겨우 6주 만에 이토록 완벽하게 괴멸되다니.

“그나저나 화재는 진화되고 있소?”

[쉽지 않습니다. 전문적으로 유정 화재를 다루는 기업이 붙어 있지만 상당 기간 정상화되기 힘들다고 합니다.]

이라크는 전쟁 막바지 쿠웨이트의 모든 유전 지대에 불을 질렀다. 시꺼먼 연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다국적군 공군력을 가리려는 시도였지만, 이마저도 허사였었다.

괜히 스타워즈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10대의 인공위성은 이를 꿰뚫고 있었으니까. 세상에 GPS라는 신기술이 등장한 것도 이 전쟁이 시초였었다.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멋진 포즈를 취한 후 전쟁의 종식을 알렸다. 그는 턱선을 평소보다 더 높이 치켜 올렸다.

다 봤지?

우리가 이래. 일방적으로 두들겨 팼다고. 우리 미국한테 개기면… 이라크처럼 된다. 알아서 기어라.

페르시아만에서 벌어졌기에 ‘걸프전’이라고 명명된 전쟁은 이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라는 신조어를 만들고서…….

* * *

뉴욕 증권 거래소가 발칵 뒤집어졌다.

세븐시스터즈 중 미국 소재 3개사 엑슨모빌과 쉐브론, 코노코필립스가 동시에 공시를 띄웠기 때문이었다.

‘걸프전의 여파로 석유 비축분이 바닥났고, 모든 공급을 무기한 중단한다’라는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석유상이 석유가 없어서 장사를 쉰다는 공시를 할 수 있는 거야?

주가는 바로 반응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당분간 점방 문 닫겠다는 거잖아?

한 주라도 가지고 있던 주주들은 더 쓰레기로 변하기 전에 미친 듯이 매도 주문을 넣었다.

정작 문제는 뭉태기로 쥐고 있던 투자 은행들, 누가 이 막대한 물량을 소화해 준단 말이냐. 연신 라인을 가동해 이 상황이 언제까지 갈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제발 더 떨어지기 전에 대책이 나오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미국발 총이 한 방 발사되더니, 이번엔 영국발 대포가 ‘꽝’ 하고 지축을 흔들었다.

로열 더치 쉘과 BP가 글자 한 자 틀리지 않은 똑같은 내용의 공시를 띄운 것이다.

그걸로 끝이면 억지로 틀어막고 버티련만.

프랑스의 토탈에너지가,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의 에니가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뒤를 이었다.

-우리 석유 없어. 우리도 점방 문 닫으련다. 언제 다시 열지 몰라. 비축분이 바닥났어.

블랙 먼데이처럼 양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왜 저 세븐시스터즈 새끼들이 저 지랄을 하는지 모르지만 던져, 다 던져!

좁은 출구를 향해서 질주하는 양들로 인해 동료의 시체가 발에 밟히고, 내장이 터져 나갔다.

그래도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전 세계 석유의 절반을 쥐고 흔들던 세븐시스터즈의 노골적인 태업에 증권회사 전광판의 모든 불들이 빨갛게 물들었고(미국과 한국은 반대 색깔), 아무 상관없는 종목들도 낙엽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이러다 다시 공황에 빠질지 모른다는 광기에 찬 하루가 끝날 때까지, 세븐시스터즈의 주식은 단 한 주도 매수되지 않았다.

장이 끝날 무렵, 월가의 모든 투자은행 앞으로 한 장의 팩스가 도착했다. 힘없이 처진 어깨로 퇴근을 준비하던 직원이 무시하려다 힐끗 쳐다본 내용을 보고 펄쩍 뛰었다.

“어? 이거 뭐야?”

“야, 야, 진이 다 빠졌다. 그냥 독한 술이나 한잔하고 내일 닥칠 피바다에 대비하자. 빨리 와!”

“야! 팀장, 아니 이사님, 아냐 아냐, 사장님 어디 있어?”

“미친 새끼, 우리가 언제 이사랑 사장을 상대할 일이 있다고 호들갑이야?”

“까는 소리는 나중에 하고, 급해! 비상 연락망… 빨리!”

모든 투자은행의 책임자가 회사로 복귀하더니 팩스를 받아들고 거품을 물었다.

“이거 진짜야?”

“저야 모르죠.”

“K 미르 컴퍼니? 뭐 하는 새끼들인지 알아?”

“그것도… 첨 듣습니다.”

“가 보자! 만약에 가짜면 너 뒈진다. 그런데 진짜라면… 너는 바로 팀장이다.”

* * *

“자! 자! 진정들 하십시오. 여기는 시장판이 아닙니다.”

“매수하겠다는 수량이 얼마인지 말씀해 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다짜고짜 월가의 모든 증권사를 모았으면 대책을 말씀하셔야죠?”

자그마치 이백여 증권사와 투자은행의 결정권자들이 모인 자리. 증권 거래소가 파장한 저녁 시간이었다.

“이번 거래 책임자 산드라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여러분께 서류를 나눠 드릴 것입니다. 그 서류에 보유 중인 주식의 수량과 매도 희망 금액을 적어서 제출 바랍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일종의 경매라고 할까요? 모든 주식을 다 살 수는 없는 법 아닙니까? 조금이라도 더 싸게 내놓는 분들 위주로 매입할 겁니다.”

“장난하는 거요? 무슨 부동산 거래도 아니고… 이런 경우는 처음 봅니다.”

계속해서 거칠게 대꾸하는 시티은행 리스크 관리 담당 사장을 향해 산드라는 싱긋 웃었다.

“시티은행은 그런 걱정하지 안 해도 됩니다. 1센트를 기입해도 그쪽 물량은 사지 않을 테니까요. 참고로 오늘 거래할 우리 가용 자금은 150억 달러입니다.”

그 시끄럽던 회의실이 순간 침묵에 잠겼다. 진짜였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달려왔는데 150억 달러?

“참고로 현재 주가 그래프를 보고 머뭇거리는 분이 있다면 깨끗이 돌아가시길 권고합니다. 아실 텐데요? 내일 다시 장이 열리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

“제가 간댕이가 작아서 밑에서부터 볼 거니까요. 무조건 한 푼이라도 더 싸게 제시해야 그나마 제 눈에 띄일 거예요.”

“…….”

“어! 시티은행, 아직 안 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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