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93화 (93/150)

93화 낙타의 모가지 가격은?

보험(保險), 국어 사전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는 단어다.

1. 손해를 물어 준다거나 일이 확실하게 이루어진다는 보증.

2. 재해나 각종 사고 따위가 일어날 경우의 경제적 손해에 대비하여, 공통된 사고의 위협을 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미리 일정한 돈을 함께 적립하여 두었다가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일정 금액을 주어 손해를 보상하는 제도.

생명보험(生命保險)은?

사람의 사망 또는 생존을 보험사고로 하는 일체의 보험이라고 되어 있다.

결국 어떤 보험이건 미래에 일어날 만약의 불행에 대해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내가 혹시 잘못되더라도 남은 가족들이 최소한의 보상을 받아 고생하지 말라는 뜻으로 가입하는 것이 보험이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잘 주나?

현실은 온갖 핑계를 들이대며 조금이라도 미루거나 지급을 거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

보험금을 지급하는 곳이 사기업이기 때문이지. 안 주고, 덜 주면 그만큼 회사 이익으로 남으니까.

그렇다고 국가가 주체인 산재보험을 포함한 건강보험은 잘 주나?

이것도 잘 안 주려고 한다. 여러 가지 제약, 기준, 심사를 통해 되도록이면 덜 주는 방법을 모색한다.

왜?

이것도 재원이 뻔하니까. 국민의 세금으로 형성된 재원이 말라 버리면, 그 원성을 감당할 수 없으니까.

“놀랍습니다.”

“예, 회장님의 선견지명이 통했습니다.”

“아닙니다. 여러 어르신들의 진심이 통한 거죠.”

“아직 공고문이 나가지도 않은 상태인데, 수많은 보험모집인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네, 기승전 사람입니다. 특히 보험업은 가입자들과 직접 접촉하는 모집인들의 역할이 거의 전부라고 봐야 합니다. 이분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보다 투명하게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이야말로 핵심이죠.”

“회장님의 기본을 중시하는 그 생각이 먹히고 있습니다. 우리도 평생 기업을 해 온 입장이지만, 기본을 중시하고, 그 타깃을 보험모집인으로 꼽은 건… 놀라운 혜안이었습니다.”

신동방 생명보험이 정식으로 발족하기 위한 준비가 끝났다. 한국 생명보험업을 태동시킨 산증인, 동방보험의 발기인 5인이 시혁의 권유로 경영 전반에 나선 것이다. 대표이사는 세탁소를 하던 이정필이 맡았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보험회사의 출현에 다른 보험회사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들께 제가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예, 회장님. 경청하겠습니다.”

“우선 쉽게 만들어 주십시오. 한글만 읽을 수 있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약관, 꼭 지켜질 약관으로 말입니다.”

“아!”

“그리고 복잡하게 배배 꼬이도록 하거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게 만들어 가입자들이 필히 알아야 할 단서 조항을 모르도록 조작하는 행위… 저는 경멸합니다.”

“…인정합니다, 회장님.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았습니다.”

“구습이고 악습입니다. 다 타파하시고, 약관은 최대한 간결하고 짧게 그리고 글자 폰트를 크게 만들어 주십시오.”

“예, 명심하겠습니다.”

“약관을 그렇게 바꾸면, 이를 악용하는 보험 사기꾼도 많이 나올 겁니다. 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철저히 발본색원하는 보험 감시관을 더 뽑으시되…….”

“…….”

“설사 도둑질을 당할지언정 보험금을 못 받는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이건 다른 문제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수익을 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금 회장은 그 수익보다 보험의 참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금 수령에 불리한 조항을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써서 가입자가 알아보지 못하도록 하거나, 조건들을 배배 꼬아 함정을 만들어 놓는 것이 보험업계의 공공연한 수작질이었다. 이를 하지 말라는 당부.

다섯 명의 노인들 얼굴에 진한 감동이 어렸다.

그래… 우리가 처음 생명보험을 탄생시킨 이유가 무엇이었나?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생명. 이를 조금이나마 보상하자는, 그래서 남은 가족들이 보호받기를, 일을 하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을 가지도록 하기 위함 아니었던가?

“회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회사의 주인이 그리 말씀하시니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수익에 연연하지 않고 생명보험의 본질만 생각하겠습니다.”

서서히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험의 기본에 충실한 신동방 생명보험이 출범했다.

* * *

“중국산 무기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책임은 당신들에게 있어요.”

“이봐요.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단 말입니다. 알잖아요?”

“듣기 싫소. 모든 건 핑계에 불과한 말. 약속한 무기를 공급하지 않으면 나도 다른 생각이 있소이다.”

“협박? 지금까지 우리가 당신에게 퍼부은 자금이 얼만지나 알고 하는 소리요?”

“세상에 공짜가 있나? 결국 당신들은 우리 전사들이 생명을 담보로 싸우는 동안 팔짱 낀 채 구경만 하고 있었던 거 아닌가? 지금 소련 연방이 몰락하는 낌새를 눈치채고 한발 빼려고 하는 걸 모를 줄 아시오?”

“이봐, 빈 라덴. 말을 삼가하는 게 좋을 거요. 산을 올라갈 때는 내려갈 걱정도 해야지. 세력이 늘었다고 감히 미합중국을 협박하다간 뒤끝이 좋지 않을 거야.”

“흐흐흐, 그럴까?”

“당신이 요즘 새로운 조직을 만들려고 무진 애를 쓰는 걸 다 알아. 이제 더 싸울 대상도 없는데, 위험한 불장난하지 마.”

“엔드류 국장, 원래 불장난이 대형 산불로 번지는 거야. 오히려 폭탄이 난무하는 전쟁터에는 산불이 안 나거든. 다 한꺼번에 타 버리니까. 하지만 작은 불씨는 아무도 모르게 온 산으로 번지기 마련이지.”

“흥! 왜 마이다스 킴이 당신에 대해 그토록 경고를 했는지, 이제 알겠군.”

“그 꼬맹이 동양인… 그놈 이야기는 내 앞에서 하지 마시오. 미국이 없었다면 벌써 갈기갈기 찢어 개밥을 만들었을 거요.”

“개밥을 주든, 돼지 먹이를 주든, 나는 모르겠고… 하여튼 더 이상 무기를 줄 순 없으니 알아서 하구려.”

“사막에서 낙타는 없으면 안 되지. 그런데 다 왔다고 생각하고 오아시스에서 낙타를 잡아먹는 장사꾼이 있었어. 그 뒤로 더 멀고 먼 사막이 있는 줄 모르고 말이야. 흐흐흐.”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이제 서로 갈 길 갑시다.”

“그게 부시의 뜻인가?”

“내 뜻이 프레지던트의 뜻인 셈이오. 미안하지만 CIA는 자선단체가 아니오. 당신의 가치를 증명할 때까지 연락하지 마시오.”

“내 약속하지. 지금 이후로 미국은 내 적이다. 꼭 후회하도록 만들어 주마.”

“하하하. 행운을 빌겠소, 오사마 빈 라덴.”

두 사람은 등을 돌렸다. 그리고 서로 반대편 길로 걸어 어둠 속에 묻혔다.

무자헤딘(Mujahideen)은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자발적으로 결성된 의병들이었다. 한마디로 돈도, 조직도, 무기도 변변찮은 떨거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들을 조직적으로 육성하고 키운 것은 미국의 CIA.

미국이 배후에서 지휘하여 사우디와 같이 자금을 동원, 그 돈으로 중국산 무기를 구매해서 ISI(파키스탄 정보국)을 통해 무자헤딘에게 지원하는 구조였다.

처음에는 무기와 군수품을, 다음에는 아랍 국가에 득시글한 실업자들을, 사우디 정부가 막대한 오일 머니로 고용해 파키스탄에서 훈련시켜 무자헤딘 전사로 보내는 일까지 도맡았던 건 역사의 아이러니였었다.

결국 불행의 씨앗을 태동시킨 건,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 그리고 파키스탄 삼국이었다.

이들로 인해 결국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손을 들고 나가고 말았다. 대단한 저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사냥감이 없어진 뒤, 미국도 서서히 손을 떼고 싶어 했다. 소련의 해체는 거의 기정사실화되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철수한 지 꽤 되었다. 미국에게 아프가니스탄은 계륵이다. 아무것도 먹을 게 없는 험한 땅. 줘도 안 갖는다.

무자헤딘 역시 마찬가지로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온갖 아랍국에서 모여든 조직원들에게 주적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무자헤딘의 조직원들은 주로 이집트, 알제리,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출신들.

웃기게도 이들 국가에서는 무자헤딘 전사를 탄압하고 있었다. 돌아갈 곳도 잃었던 참에 싸움의 상대도 없어져 버렸다. 혼란에 빠진 것이다.

오사마 빈 라덴은 서서히 투쟁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지금까지 소련에 대항하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주창했는데… 마침, 때맞춰 이라크 전쟁이 터져 주었다.

없어진 주적이 나타나 준 셈이다.

미국이다.

저들이야말로 우리 이슬람을 탄압하고 알라의 뜻을 거부하는 악의 축이다. 미국만 혼란에 빠트리고, 무너뜨리면 무슬림의 세상이 도래한다.

그 전에 최대한 받아내자.

엔드류 국장과 빈 라덴의 머릿속에는 서로 다른 독사과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CIA의 엔드류 국장도 이런 조직, 가뜩이나 호전적인 오사마 빈 라덴은 더 이상 쓸모 없어진 사냥개에 불과했던 것이다.

“국장님, 전에 마이다스 킴 특보가 저 친구에 대해 경고를 했잖습니까?”

“신경 쓰지 마.”

“코드 원에게 보고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다못해 특보에게라도.”

“이봐, 내가 기껏해야 차관급인 외국인에게 그런 보고를 하는 게 격이 맞다고 보나?”

“……!”

“코드 원에게도 따로 보고서 올릴 필요 없어.”

“…저, 국장님. 최소한 백악관 안보 보좌관에게라도 보고서 한 장쯤은 올려 놔야 나중에 면피를 하지 않겠습니까?”

“미친 소리, 끝났어. 저놈의 뿌리, 사우디 빈 라덴 가문에서도 저놈을 버린 걸 몰라? 저대로 놔두면 말라비틀어질 거야.”

“…….”

“빈 라덴과 관련된 모든 공작 서류는 파기한다. 이 순간부로 저런 잡스러운 조직을 우리가 지원했다는 사실 자체가 없는 거야. 알았나?”

“예, 알겠습니다. 모조리 소각하겠습니다.”

“그래, 특히 킴에게 절대 함구하도록.”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이 한순간의 판단 때문에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 * *

같잖은 양키 놈들.

지금까지 실컷 전사들의 목숨을 요구하더니, 이제 와서 안면을 바꿔?

진정한 전쟁의 방식을 알아 버린 오사마 빈 라덴은 이를 갈았다. 소련과도 싸워서 승리한 우리다. 소련이 아무리 강력한 군사력과 첨단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최후의 승자는 우리였다.

세상에 미친놈만큼 위험한 존재는 없다. 그런데 미친놈이 삐뚤어진 신념까지 겸비했다면… 진짜 위험하다.

이라크 침공이 기폭제가 되긴 했었지만, 실제 빈라덴의 알카에다 조직이 만들어진 직접적인 동기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군이 주둔한 것이 절대적인 원인이었다. 이라크 전쟁을 속전속결로 승리한 미군이 사우디에서 철수하지 않은 채 그대로 눌러앉아 버렸다. 사우디 왕가와 미국이 야합을 한 것이다.

빈 라덴의 투쟁 노선은 이로 인해 완전히 확립되었다.

소련과 투쟁한 이후 갈 곳을 잃은 무자헤딘 전사들을 이끌고 빈 라덴이 국제적인 테러망을 구축하기 시작한 시점이 이때였었다.

문제는 자금. 가문과도 절연을 당했고 새로운 자금원이 필요한데, 쉽지 않았다. 지금껏 그 역할을 미국과 사우디가 해 왔건만 한 방에 팽을 당해 버렸다.

“칼리프(지도자)시여!”

“무슨 일인가?”

“양키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일 없네, 그놈들은 원수야.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아.”

“CIA가 아닙니다.”

“……?”

“수단의 형제를 통해 은밀하게 연통이 왔습니다. 정체를 밝히지 않고 말입니다.”

“내가 봐야 하는 이유는?”

“신의 열매를 들고 왔다 합니다.”

“얼마나?”

“먼저 천만 달러를 수단의 형제에게 맡기고 칼리프의 면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보시겠습니까?”

돈이라… 그것도 정체를 밝히지 않은 양키가. 천만 달러면 적지 않은 돈이다. 그런 큰돈을 보증금으로 맡겼다? 단순히 미친놈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많다.

뭔지 몰라도 돈 냄새가 펄펄 난다, 쓰레기 썩는 냄새와 더불어.

“안녕하십니까? 칼리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

“아무리 익숙해지려 해도 아랍식 커피는 쉽지 않군요.”

“급해서 그렇소. 가루가 가라앉을 때까지 천천히 음미하면 또 이만큼 맛있는 커피도 없어요.”

“이제부터라도 미국식 인스턴트 커피를 좀 마셨으면 합니다.”

“그래, 그 정도로 급한 일이 뭘까요?”

“한 잔 값은 이미 치렀으니, 열 잔 정도 더 마시면 어떻겠습니까?”

“돈이야 있다가도 없는 것, 일억 달러를 그냥 주지는 않을 테고… 뭘 원하시오?”

“오아시스에서 구워 먹으려다 실패한 낙타 한 마리의 모가지가 필요합니다.”

“꽤 비싼 낙타군요. 그런데 그 낙타가 황금 알을 낳는 놈이라면 몇 배가 더 들 수도 있소만.”

“…칼리프와도 인연이 있는 낙탑니다. 돈이 문제가 아닐 겁니다.”

“……!”

“인스턴트 커피는 박스 채로 하나 드리죠. 확실하게 낙타 모가지를 제 앞에 놓아 주신다면 말입니다.”

후와! 십억 달러? 겨우 한 놈 잡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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