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94화 (94/150)

94화 중첩된 음모의 시작

“누구요?”

“저 말입니까? 낙타 말입니까?”

“당신이 누구든 상관없소. 내가 알고 있다는 그 낙타가 심히 궁금하구려, 그것도 십억 달러짜리 낙타라면.”

“킴입니다.”

“…설마 그 킴이 내가 아는 그 킴인가?”

“네, 어떤 킴이 감히 십억 달러짜리 모가지를 달고 있겠습니까? 당연히 그 킴이죠.”

“허어! 이제 당신이 궁금해지는군. 미친놈의 정체가.”

“하하하. 칼리프, 저는 심부름꾼에 불과합니다. 제 머리가죽을 벗겨 봐야 더 나올 게 없을 텐데요. 그냥 돈만 생각하시죠. 요즘 한참 어렵다고 들었습니다만.”

“…….”

“어렵지 않습니다. 미국 대통령도 아니고, 한국 대통령도 아니죠. 그냥 특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23살의 어린 동양인 아닙니까?”

“그렇게 쉬우면 당신이 하지?”

“혹시라도 실패할 경우, 후폭풍이 두렵거든요. 알다시피 미국은 정부 고위급 청부 살인에 대해 엄청난 반응을 하는 나랍니다. 끝까지 추적당할 겁니다.”

“흐흐흐. 우리는 괜찮고?”

“오히려 자랑거리 아닌가 싶습니다만… 가치도 올라갈 테고.”

“똑같아, 양키들은. 돈만 주면 다 되는 줄 알지. CIA와 당신도 하등 다를 것이 없어. 이 건은 깨끗이 거절하겠소.”

“저런저런… 안타깝습니다. 저도 드롭 하죠. 수단에 맡겼던 보증금은 저희 선물이라 생각하고 받아 주십시오.”

“대부분 사람이 우리 무자헤딘을 볼 때 그저 산속에 숨어서 총질이나 하는 무식한 놈들로 생각해. 당신도 그렇게 보나?”

“저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만.”

“로버트 하일로라는 사람이 이탈리아로 건너갔어. 거기서 다시 릭 베니라는 여권으로 홍콩에 갔고. 이번에는 알리 칸다프로 변신해서 두바이 그리고 수단에서는 다시 로버트 하일로가 되었더군.”

“……!”

“천만 달러도 그래. 몇 바퀴 빙글빙글 돌고 돌아서 최종적으로 스위스 UBS 은행 수표로 출금했어. 그런데 말이지. 당신이 착각한 게 하나 있다는 건 몰랐을 거야.”

“…….”

“첫 번째, 너무 어설퍼. 수많은 신분으로 세탁하는 거… 좋은 방법 같지? 노노노, 절대 아냐. 그 과정 중에 관여하는 놈이 많아지거든. 비밀 유지가 더 어려워.”

“…….”

“두 번째, 그 자금 세탁 방법. 우리도 그렇게 하고 있다네. 자연스럽게 배웠어, CIA에게서. 당신은 그들에 비하면 아마추어에 불과해.”

“칼리프, 여기까지 합시다. 서로 조건이 맞지 않는다 하지 않았습니까?”

“가서 헨리 제리코 회장에게 전하시게.”

“……!”

“놀랄 것 없어. 돈의 뿌리가 헨리 제리코의 도이체 방크 계좌라는 건 조금만 파고들면 알 수 있는 일이야. 우리는 오랜 세월 게릴라전을 치뤄 왔지. 그동안 소련의 눈을 피하기 위해 안 써 본 방법이 없어. 이해되나?”

“으음…….”

“우리가 비록 누더기를 걸치고 있지만 전투 경험과 숨는 방법은 세상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네. 잔꾀 부리지 말고 전해. 배팅을 하려면 확실하게 하라고. 그러면 나도 낙타 모가지를 깔끔하게 소금에 절여 헨리 회장 책상까지 배달해 줌세.”

“칼리프, 더 이상은 무리요. 얼마를 요구하는 겁니까?”

“킴이 그렇게 값어치 없는 놈이던가? 나도 아직 미국과 맞짱을 뜰 입장은 아니거든?”

“…….”

“세 배를 달라고 해. 그러면 킴이 어디에 있건, 설사 백악관에 숨어도… 꼭 죽여 준다.”

“헉!”

“선금으로 십억 달러. 그리고 모가지가 확인되면 이십억 달러. 더 이상 협상은 없다, 가서 전해.”

꿩 먹고 알 먹고다. 삼십억 달러를 받을 수 있다면 적어도 십 년은 자금 걱정 없이 전사들을 먹일 수 있다.

새롭게 발족한 알카에다는 무자헤딘을 기반으로 탄생했지만, 태생부터 다른 조직이다. 소련보다 더 거대한 미국이라는 주적과 싸우려면 글로벌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바야흐로 범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갖춘 국제적 조직이라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돈. 자금 압박에 두통이 생길 지경이었다. 거기다 CIA가 발을 빼면서 생거지로 전락하는 참이다.

사우디의 라덴 가문은 자신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완전 절연을 선언했다. 심지어 라덴이라는 성을 버렸다, 나 하나 때문에. 사우디에서 건설과 유통 재벌로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이해하고 있다. 덕분에 더 이상 가문의 지원을 받을 수도 없었다.

이 판국에 삼십억 달러? 후와… 꿀이지.

마이다스 킴이 아니라 부시의 목이라도 떼어 줄 수 있다. 오랜 원한 관계도 청산하고… 잘됐네. 자신에게 약간 반항적인 조직들을 보내면 딱이다. 이놈들은 몇 백만 달러만 줘도 미친개처럼 설칠 것이다.

다 몰살당해도 손해 볼 건덕지가 없다. 혹시 모르니 후미를 정예들이 받쳐 준다면, 실패할 확률… 제로.

음모가 뭉클뭉클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시혁과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여겼던 곳에서.

* * *

“또 왜에?”

“덩어리, 어디 갔어요?”

“뭔 덩어리?”

“뇌까지 근육으로 뒤덮힌 윌슨 말이에요.”

“크크크. 직접 들으면 난리칠 텐데?”

“흥! 면전에서 그렇게 부른 지 꽤 됐거든요?”

“그런데 윌슨은 왜 찾아?”

“…그냥, 통 안 보여서.”

이것봐라. 싸우다 정든다고.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원래 윌슨이야 산드라에게 맛이 간 상태라는 걸 안다. 그렇게 표나게 헬레레 하는데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아마 정문의 경비도 알 것이다.

그런데 윌슨에게 유독 얼음처럼 대하던 산드라가?

“지금 윌슨, 미국에 있어. 다른 임무가 있어서.”

“회장님, 한국도 대충 정리가 되지 않았나요?”

“그래. 대충.”

“그럼, 우리도 가요. 미국.”

“그냥 산드라 혼자 가면 안 될까? 아직 마무리가 좀 남았는데.”

“그럴까요? 이럴 때 우리도 전용기가 있으면 좋은데… 하나 사죠?”

“뭐 하게? 산드라 편하자고?”

“뭐래? 회장님은 도대체 취미가 뭐예요? 그 많은 자산을 가진 분이 도무지 즐기는 법을 몰라.”

“취미라… 독서?”

“재수 없어. 이래서 세상에 잘난 것들은 다 죽어야 해.”

“아… 씨, 나보고 어쩌라고?”

“좀 즐겨요. 누가 쫒아 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항상 긴장하면서 사는 거예요? 회장님은 충분히 자격 있어요.”

듣고 보니 그렇다. 지금껏 나 자신을 위해 뭘 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66층 펜트하우스를 꾸민 게 전부. 거기도 자주 올라가지 못했다. 몇 번이나 잤지?

거의 회장실에 별도로 마련된 침실에서 기거했다. 봐야 할 서류가 산더미였다. 하나하나가 다 엄청난 기업들에 대한 보고서, 대충 보고 넘길 사항이 아닌 탓이다.

산드라에게 워커홀릭이라 했는데, 실상 내가 더 했구나. 취미가 뭐냐는 말에 선뜻 대답을 못했다.

가슴 한가운데 뚫린 구멍으로 찬 바람이 지나갔다.

“산드라, 우리 쇼핑하러 갈까?”

“좋죠! 여자에게 쇼핑은 삶의 활력소라는 걸 모르세요?”

“…미안한데, 벌써 며칠째 똑같은 옷만 입고 출근하는 산드라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아니거든요? 얼룩이 묻지 않으니까 블랙을 좋아해서 여러 벌 갖춘 거예요.”

“산드라, 그 치마 끝단에 묻은 작은 얼룩, 그저께 같이 밥 먹을 때 묻은 거… 잖아?”

“씨… 보여요?”

“내가 눈이 밝아, 다른 사람보다.”

삼성동 현도 백화점이 바로 옆이다. K 타워에서 걸어도 겨우 몇 분 거리. 그런데, 정조영 회장이 악을 썼지만 오픈할 때도 가지 않았다. 바빠 죽겠는데.

시혁은 산드라만 데리고 현도 백화점으로 들어섰다. 산드라의 눈이 초롱거렸다. 역시 여자에게 백화점은 새로운 세상이자 꿈의 궁전.

“회장님, 영국에서 제일 유명한 백화점 알아요?”

“응, 헤롯이잖아.”

“빙고! 거기와 비교할 순 없지만요. 헤롯은 세상의 유명한 것은 다 있는 반면에 길 찾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여긴 한눈에 다 들어와. 너무 멋지다. 내가 꿈꾸던 곳이에요.”

아… 이거 잘못 걸렸다. 싸하다.

저 산드라의 눈빛에 번뜩이는 광기.

윌슨 대신 따라붙은 수행원도 흠칫 몸을 떨었다. 직감적으로 위기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뭐 됐다. 튀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미 맹수를 정글에 풀어놔 버렸다.

유전학적인 연구 결과가 있다. 인류가 생존을 위해 택한 방법… 남자는 사냥을 하고, 여자는 채집에 특화되었다 한다. 사냥은 사냥감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지만, 채집은 야채와 곡물을 찾아 다니면서 잘 익은 걸로 선별해야 한다.

이 습성은 그 오랜 시절 DNA에 깊이 박혀 현대사회 백화점에서도 여실히 발휘된다. 남자들이 옷을 고르는 평균 시간은 7분, 여자는? 통계를 낼 수 없다. 몇 바퀴를 돌고 또다시 오니까.

쇼핑의 좌우명도 다르다. 남자는 짧고 굵게, 여자는 길고 가늘게.

시혁과 수행원은… 여기가 지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금이 저리고, 손발이 떨렸다. 일없이 화장실을 몇 번 들락거렸는지 셀 수 없었다.

시혁의 각성한 신체로도 감당할 수 없는 쇼핑백, 수행원은 벌써 게걸음을 하고 있었다. 양손 가득 들고 있는 쇼핑백 때문에 통로가 막히니까.

“사, 산드라. 여기 네 번째 오는 것 같은데?”

“시끄러워요, 회장님. 아까 봐 둔 게 남았단 말예요.”

“그건 다음에 사면 안 돼?”

“예, 안 돼요. 언제 품절될지 모르고, 또 내가 언제 다시 올지도 장담 못해요. 이왕 온 김에 뿌릴 뽑아야 해요.”

진짜 잘못 걸렸다. 내가 가자고 했으니… 누굴 원망하리. 내 입을 찢어야지.

“시간이 원망스럽네. 그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오호호호!”

마녀의 빗자루 비행은 다섯 시간 만에 끝났다. 백화점 폐점 시간에 맞춰서.

시혁과 수행원은 무게 때문에 터져 버린 몇 개의 쇼핑백 처리 문제로 낑낑대고 있었다. 손이 더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쩔 수 없이 매장의 보안 요원이 달라붙어 주차장까지 올 수 있었다. 저 측은하게 쳐다보는 눈길.

그래, 남자라면 응당 동정할 일이다. 다 겪어 본 사람들이니까.

-고맙습니다.

-웬걸요? 살아서 돌아가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세요.

-아시는군요.

-매일 보니까… 근데 두 분은 특별합니다. 제가 나설 수밖에 없었어요. 다시는 여기 오면 안 됩니다. 생명 줄이 십 년 이상 단축됩니다.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무서운 곳입니다, 백화점.

겨우 살았다. 그랜저 트렁크와 뒷좌석까지 쇼핑백을 욱여넣어도 자리가 모자랐다. 시혁은 차창에 얼굴을 붙인 채 생각했다. 왜 5분 거리에 있는 현도 백화점을 차로 가자고 했는지.

산드라는 다 계산이 서 있었던 것이다.

* * *

[움직였어.]

“참 질긴 놈이네. 얼마만의 외출이냐?”

[그런데, 동선이 너무 짧다.]

“기다려. 이제 모습을 드러냈으니 곧 기회가 온다.”

[돈을 더 줘야겠어. 마냥 대기타는 것도 우리에겐 스트레스거든.]

“다케다, 부탁하는데… 선을 넘지 마. 나는 말이야. 너희들을 죽이고 싶지 않아.”

[워, 워, 워… 내 친구, 그런 잔인한 말을 너무 쉽게 하잖아? 어차피 용병은 돈으로 말하는 거 아닌가?]

“경고했다, 다케다!”

[한국에서 총을 사용하면 어떻게 되는지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 봤지. 우리 팀 중 절반 이상은 잡힌다. 오죽 복잡해야 말이지. 특히 이 삼성동이라는 동네가 더해. 또 SS도 만만찮고.]

“그래서?”

[용병이 잡히거나 죽으면 어찌되는지 잘 알지 않나? 비석에 이름도 새기지 못해. 지문도 다 지운 상태라 그냥 화석처럼 사라지는 거야.]

“결론만 말해라, 다케다.”

[돈을 달란 말이야, 더 많이. 아무리 의리라곤 찾아볼 수 없는 용병 조직이지만, 인생을 버릴 절반이 누가 될지 아무도 몰라.]

“약 팔지 마라, 다케다. 그렇다고 잡히거나 희생될 절반에게 돈을 나눠 줄 네가 아니란 걸 다 알아.”

[정답! 그러니까 더 달라는 거야. 누가 희생되고 누가 살아남을지 모르니까……. 남은 놈들은 횡재하는 거고, 잡힌 놈들은 평생 한국 감옥에서 썩을 거고, 또 뒈지는 놈은 그나마 행복한 거고. 뭐 그런 거지.]

“얼마냐? 횡재할 돈이.”

[우리, 알다시피 스무 명이야. 인당 일억씩 받기로 했었지? 거기다 이억씩 얹으면 삼억인가? 총 60억이네. 그렇게 하자, 친구.]

“개자식, 올린 돈의 절반은 네 뱃속으로 들어가고?”

[큭큭큭, 그건 네가 참견할 문제가 아니고.]

“…그래, 사냥개 다케다. 주마. 대신 말끔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네 목은 내가 꼭 꺽어 주마.”

[굿 초이스!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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