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97화 (97/150)

97화 습격

일본은 정식 군대를 가지지 못하는 전범국이다. 평화헌법에 규정된 덕분에 자위군이 아니라 자위대라는 명칭의 어정쩡한 조직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자위대는 군대가 아닌가? 군대 맞다. 전 세계적으로 순위를 따져도 몇 위 안에 꼽히는 막강한 조직이 자위대.

그 속에도 특수부대에 해당하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철저히 보안에 붙여 공개를 안 하지만.

처음에는 101 공정대란 이름으로 발족시켰지만, 존재 자체를 숨겼었다. 이들이 차후에는 특수작전군과 특수급습군으로 분화, 미국 델타포스에게 위탁 교육을 받게 되면서 비로소 진정한 특수부대가 되었다.

그러나 초기에 만들어진 101 공정대는 오합지졸. 훈련은 보고 들은 게 있어서 빡세게 시켰지만, 실전 경험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군 내부에서도 이들에 대한 대우가 시원치 않았다. 써먹을 데가 없으니까.

안팎으로 천대받던 101 공정대 출신들은 옷을 벗고 사회에 나왔으나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오랜 평화에 길들여진 사회가 이들을 포용하지 못한 탓이다.

이 쓰레기를 뭉치도록 만든 입지전적 인물이 다케다였다. 그는 이들을 끌어모아 전문 용병단을 만들었고, 야쿠자나 기업들의 살인 청부로 쏠쏠한 재미를 보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미국 델타포스에서 같이 위탁 교육을 받았던 친구가 쫄깃쫄깃한 의뢰를 해 왔다.

꿀이지.

총의뢰금이 자그마치 한화로 20억 원. 지금껏 받아 보지 못한 대형 의뢰였다. 그것도 단 한 명. 귀때기 새파란 어린 놈을 죽여 달라는 의뢰. 식은 죽 먹기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조건이 조금 알쏭달쏭했다.

최소한 20명 이상으로 팀을 꾸릴 것, 반드시 총을 사용할 것, 확인 사살 후 왼쪽 엄지손가락을 잘라 올 것, 실패 시 흔적을 남기지 말고 자진할 것, 어떤 경우에도 의뢰인을 발설하지 말 것.

그럴 수 있다. 통상적인 조건일 수 있는 말이다. 어느 의뢰인이 노출되기를 바란단 말인가.

하지만, 겨우 어린놈 하나 제거하는 조건이 왜 이렇게 복잡할까? 선을 넘었다.

-솔직히 털어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나 혼자 들어가서 쏴 죽이고, 그 돈 다 먹으면 안 되나?

-…….

-뭐냐? 속에 감춘 내막.

-다케다, 타깃… 보통이 아냐. SS가 붙어 있어.

-X발, 등급은?

-1급 호위 대상이다.

-그럼, SS랑 총질을 하란 말이네?

-근접 경호는 기사 1명밖에 없다. 한국은 총을 소지할 수 없는 나라야. SS도 2명이 3교대로 외곽만 지킨다 그 빈틈을 파고들면 어려울 것 없어.

-까 봐, 뭐 하는 놈이냐?

-김시혁… 당 23세, K 미르 그룹의 총수, 현직 미국 대통령 정책 특보. 그게 전부야.

-헐! 고슴도치네. 잘못 건드렸다간 내 몸에 가시가 온통 박히겠어.

-다케다, 20억이야. 공짜로 먹으려 들면 안 되지.

-그래, 20억이면 이자나기(일본 건국신, 가야왕 이진아시)의 대가리도 따고 말고. 해 보자, 까짓것.

그렇게 시작한 청부 살인.

한국으로 대거 인원을 몰고 들어와 빈틈을 노렸지만, 도통 빌딩 밖으로 나서질 않는다. 잠깐 외출을 했으나 동선이 너무 짧았다. 걸어서 5분 거리의 백화점조차 차로 이동하는 판이다. 또 다음 날은 슈퍼 카가 즐비한 전시장을 방문했지만… 여전히 SS 차가 바짝 붙어 있었다.

죽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도 몰살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강남은 너무 복잡하다. 퇴로 확보가 쉽지 않은 곳이다. SS와 총질이라도 발생하면 5분 거리의 한국 경찰이 벌 떼처럼 들이닥칠 것이다.

결국 포기했다. 무언가 다른 획기적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다 죽더라도 나는 살아야 하니까.

그때,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 일단 내부로 침투하면 거의 성공하는 거 아닌가? 밤에는 SS도 입구에 차를 대놓고 대기 상태에 빠진다.

또 41층부터 철저히 통제하지만… 유일하게 외부인을 받아들이는 공간이 있었다. 빈틈이 보인다.

60층 관람대.

문제는 항상 북적이는 관람대에 한꺼번에 침투할 방법……. 돈으로 해결하자. 일본 관광객을 상대하는 여행사, 돈만 많이 주면 만사 오케바리. 호텔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끼어 타고, 미리 알바가 맡아 둔 자리로 스며드는 거다.

60층 마지막 관람객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바로 모든 건물이 봉쇄된다. 쉽게 외부에서 지원 병력이 들어오기 쉽지 않을뿐더러, 내부를 장악한 뒤에는 맘대로 할 수 있다.

타깃에게 수십 발의 총알을 쏟아붓고 유유히 퇴각하는 거다. 물론 왼쪽 엄지손가락을 잘라 주머니에 넣고.

입구의 SS?

흐흐흐, 미끼를 던져 줘야지. 저 말 많은 유키오 조를 그리 보내는 거야. 살아남으면 다행, 뒈져도 난 모른다. 어차피 20억에서 60억으로 넘치도록 약속받았다.

두 당 5천씩만 주고 나머지는 모두 내 꺼. 이왕지사 절반 정도 알아서 죽어 주면, 또 내 꺼. 이번 건만 끝내고 멋지게 은퇴하는 거다. 이 더러운 청부 살인업 따위 싹 벗어던지고, 건물 하나 사서 임대 사업가로 변신하는 게 꿈.

다케다에게 동료 의식 따위는 없었다. 죽어 나자빠진 놈들은 쓰다가 버리는 쓰레기에 소모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만 살면 그만이지. 다 뒈져도 상관없어.

그렇게 나름 준비된 계획에 따라 무사히 침투했고, 여기까지는… 좋았다.

팽팽히 당겨진 실처럼 긴장이 차오른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99%란 아무 소용없는 법, 나머지 1%를 채우지 못하면 작전은 실패한다.

“가자!”

다케다의 마지막 명령에 세 개로 나누어진 팀은 일사불란하게 비상계단을 치달렸다. 구두 밑창을 천연 고무로 덧댄 15명이 두세 계단씩 발을 박차고 사라졌다. 비상계단은 다시 적막에 감싸였고,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

* * *

“유키오 조장, 너무 많아.”

“흐음. 예상 밖이다.”

“이 시간에 근무하는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다 제압할 수 있을까? 또 타깃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뭐… 총이 있으니까 한쪽으로 몰아 놓고 찾으면 가능은 하겠지. 그런데…….”

“그런데?”

“계속 심장을 간지럽히는 이 기분, 꼭 야마구치 구미 오야붕을 죽이러 갔을 때도 이랬어. 다 죽을 뻔했거든.”

유키오의 조원 5명은 비상계단을 통해 55층의 기획경영실 복도로 나왔다. 그리곤 빼꼼 문을 열고 안쪽을 살폈건만… 너무 많다. 최소한 이백 명은 바글거리며 일에 몰두하는 모습. 상상 이상이었다.

“조장, 어떡할래? 빨리 결정해.”

“시스마, 지금껏 내가 찝찝하다고 했을 때 틀린 적 있었냐?”

“…아니, 거의 맞았지. 덕분에 나도 몇 번 살았고.”

“여기, 이 빌딩 그리고 분위기, 딱 야마구치가 함정을 파고 기다리던 그때 상황보다 더 위험하다.”

“그럼?”

“돈도 살아 있어야 쓸 수 있는 거야. 조용히 후퇴한다.”

“다케다 대장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너 혼자 들어가던가. 나는 빠지련다. 심장이 점점 더 따끔거려. 공기가 달라. 여긴 정상이 아니다.”

“튈까?”

조원들 모두 유키오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처지. 다른 조들이 다 죽어 나자빠질 때도 유키오의 촉 덕분에 한 명도 죽지 않았었다.

더 말해 무엇하리. 이제 다들 소름이 오싹 돋는지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용히 비상계단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대로 66층으로 올라갈 생각인 것이다. 야스이 조가 41층에서 타깃을 제거했다면 공짜로 먹고, 타깃이 다케오 대장이 향한 66층 팬트하우스에 있다면 그것도 공짜지.

다케다의 실력은 확실히 발군. 살려 둘 리가 없을 것이다. 살짝 숟가락만 얹자.

만약, 방금 살펴본 55층에 타깃이 있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는 없었다고 잡아떼는 수밖에.

나중에 다케다가 악을 쓰겠지만, 그건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다. 욕이 배 따고 들어오나?

미련없이 뒷걸음질로 비상계단에 들어선 유키오. 또 심장이 섬찟한 이 느낌!

최고의 위기를 감지했을 때 발동되던 그 촉!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총구를 뒤로 돌리며 바닥을 굴렀다. 다른 놈 생각할 필요 따위 없다. 내가 먼저다.

“총 버려, 쥐새끼.”

“……!”

이럴 수가.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유키오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열렸다.

뒷걸음으로 비상계단에 먼저 들어선 다른 조원들 목에 들이댄 칼들. 다 숨도 멈추고 있었다. 그냥 당기면 바로 목이 잘릴 정도로 잘 벼린 저 이상한 모양의 칼.

쿠크리… 지겹도록 들었던 그 지옥의 전사, 저 쿠크리 한 자루면 일개 소대를 상대하고도 남는다는 놈들이 가지고 다니는… 너희들이 여길 왜?

네 명의 목에 쿠크리를 대고 목을 감싸고 있는 놈들은 분명 네팔의 구르카 용병들이 분명하다. 특히 비릿한 웃음까지 머금고 쿠크리를 흔드는 저놈.

“한국말, 몰라? 외쿡놈? 중쿡이냐? 아니면 일폰?”

“…….”

“캐새키야, 총 내려. 끝났어.”

이 정도는 알아듣는다. 한국말을 모르지만, 유키오는 바보가 아니다.

순간, 오만 가지 상황이 스쳤다.

다 죽일 수 있을까? 이미 네 명의 조원은 움직이지 못한다. 저놈들은 조원의 몸을 고기 방패로 삼고 뒤에서 살기 띤 눈깔만 희번덕거리고 있다. 유일하게 쏠 수 있는 놈은 저 쿠크리를 흔들고 있는 저놈인데…….

또다시 한쪽 입꼬리만 올려서 히죽 웃는다. 그리곤 친절하게 손짓으로 설명을……?

“한 방에 머리를 맞추지 못하면 캐새키 모가지 내가 가진다. 목구멍으로 찔러서 양쪽으로 다 짜른다. 흐흐흐.”

이미 부하들의 얼굴은 사색으로 질려 버렸다. 살짝 파고든 칼날 주위로 벌써 피가 번지고 있었다. 언제 그 짧은 순간 비상계단에 잠복하고 있었다는 말인지. 만약에 55층 사무실로 들어가려 했으면 바로 뒤를 쳤을 것이다.

X발, 내가 그랬잖아? 이 빌딩 이상하다고.

바닥에 등을 붙이고 위로 총구를 겨누고 있던 유키오. 그의 손에서 글록이 미끄러져 계단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놈은 계단을 타고 계속 구르는 권총에 눈길도 주지 않고 유키오만 쳐다보고 있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냥 한 발 쐈다간 목구멍에 저 이상하게 휜 쿠크리가 틀어박혔을 게 틀림없다.

일단 살고 봐야지. 삼수갑산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 살아야지.

* * *

“흐읍, 흐읍!”

“끄으윽! 살려 줘.”

41층까지 달려 내려온 야스이와 조원들은 계단을 나가 보지도 못했다. 하필 그곳은 청소원들의 휴게 공간이었다. 다섯 명의 동남아계 청소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던 것이다.

뭔가… 묘한 이질감.

청소부들의 표정이… 놀라야 정상 아닌가? 한 치의 변화도 없이 계단을 내려오는 야스이 일행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전원이 총을 들고 있는데…….

그렇다고 겨우 청소부들에게 총질하면서 지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한 야스이는 무시하기로 작정했다. 뒤따라 내려오던 막내에게 눈빛으로 지시한 야스이는 그대로 내달렸다. 막내 한 명만 남겨도 정리하겠지.

지금 급한 일은 곧장 비상계단 문을 열고 뛰쳐나가 사무실을 장악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타깃만 제거하면 끝나는 일이니까.

일견 타당한 판단이었고, 올바른 진행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야스이가 상상도 못하는 변수가 있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항상 열려 있어야 정상인 비상계단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건 뭐냐?

당황하는 야스이. 뒤이어…… 뭔가 철퍼덕 넘어가는 소리.

야스이도 전장을 구른 전사였다. 그게 뭔 소린지 짐작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바로 몸을 돌리는 찰나, 야스이는 마치 와사비를 한 주먹 먹은 것처럼 목이 콱 막혔다.

“컥, 컥, 커억!”

“코렇게 시끄럽게 뛰면… 다 들려, 캐새키들.”

야스이의 눈에 비친 풍경은 삽시간에 피바다가 되어 버린 계단. 벌써 두 명은 즉사한 듯 목이 덜렁덜렁 갈라져 있고, 나머지 두 명도 바닥을 기고 있었다. 살려 달라며.

그런데, 나는 왜 말이 안 나오지?

목에 박힌 쿠크리를 아직 인식조차 못한 야스이의 몸이 공기 빠진 풍선처럼 무너져 내렸다.

‘유키오의 예감이 이번에도 맞았구나. 딱 들어맞았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