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99화 (99/150)

99화 꼬리 자르기

“이름?”

“유키오 겐지입니다.”

“소속은?”

“글쎄…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다케다 팀이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좀 더 맞을래?”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건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설 용병? 킬러 팀? 아니면 아니면 청부업자?”

“넵, 다 해당됩니다. 돈만 주면 뭐든지 하니까요.”

“너 그런 일 하는 놈치고 입이 싸다?”

“제가 생존 본능이 유달리 강합니다요.”

“오늘 여기 몇 명 왔냐?”

“20명이 왔는데요.”

“거짓말하면 고통이 시작될 거야.”

“아이고, 아닙니다. 밖에 쿠보라는 놈의 조 5명이 G 게이트 건너편 차에 있을 겁니다. 연락이 없어서 도망갔을지는 모르지만요.”

그제서야 인상을 펴는 금발 머리.

“너 오래 살겠다. 그놈들 다 먼저 잡혔어. 덕분에 우리가 급히 보스 숙소에 올라와서 기다렸거든, 병신아.”

“아! 그렇습니까? 저 유키오는 절대 거짓말 안 합니다.”

“너희들은 죽을 자리로 기어 들어온 거야. 그것도 아가리 벌리고 있는 호랑이 굴로.”

“거기까지!”

모두의 입이 다물어졌다, 한 사람의 명령에 의해서.

유키오는 이제야 상황 판단이 되었다. 밑에서 대기 중이던 쿠보 조가 먼저 잡힌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천라지망이 펼쳐졌고 우리는 그 속으로 몸을 던진 셈이다.

지금 66층 펜트하우스에는 사람이 바글거렸다. 두 명의 SS 요원, 경찰(경비) 제복을 입은 사람들, 또 저 살벌한 쿠크리를 뒷 춤에 다시 꽂고 히죽히죽 웃는 청소부들… 다시 생각해도 무섭다.

구르카 용병인 줄 몰랐어. 암흑의 암살자, 백병전의 전설, 1 대 1로는 턱도 없고, 적어도 1개 소대는 덤벼야 된다는 악귀 같은 놈들.

보아하니 야스이 조와 다케다 대장 조는 다 뒈진 모양이다. 우리 조랑 밖에서 대기 중이던 쿠보 조만 살아남은 것이다. 역시 내 생존 본능은… 역대 최고다. 암!

아이고, 더 털어놓을 건 없나? 유키오는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다.

“이봐!”

“옙, 마이다스 킴.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안타깝게도 너희 대장이 죽어 버렸어. 말해 봐.”

“제가 아는 건 다 말씀드렸는뎁쇼.”

“더 모른다?”

“넵, 의뢰인에 대해서는 다케다 그 새끼밖에 모릅니다요.”

“내 건물에서 열 명이 죽었어. 너희들 열 명. 거기에 열 명이 더 추가된들, 달라질까?”

X됐다. 다 죽인다는 소리네. 무릎을 꿇고 있는 동료들이 일제히 유키오를 바라보았다. 떠버리야, 우리 생목숨이 너에게 달렸다. 다 불어.

문제는 진짜 모른다는 것. 알아야 불지.

“저, 저, 정말 모릅니다요.”

“알았어. 여기까지만 하지.”

유키오의 마음이 정말 급해졌다. 당장이라도 쿠크리가 목을 썰어 버릴 것 같았다.

“하, 하, 한 가지 단서는 있습니다요. 저기, 다케다가 통화할 때 항상 영어로만 했기에 제가 엿들을 수 있었는데… 여기서 영어가 되는 놈이 다케다랑 저라서.”

“일 분 준다.”

“넵, 통화 중에 친구라고 자주 불렀습니다. 예, 친구라고.”

“허어… 지금 스스로도 말이 안 된다는 거, 알고 하는 소리지?”

“그런데, 딱 한 번 Butcher… 예, 맞습니다. 부쳐(도살자)라고 불렀습니다.”

“……!”

“틀림없습니다요. 의뢰인은 그놈입니다.”

시혁은 순간 멍한 기분에 빠져 버렸다. 설마설마 했거늘… 또 너냐?

시혁이 쳐다보자 김보성 팀장은 즉각 핸드폰을 손에 쥐어 주었다.

“회장님, 외람되지만 조용히 뒤를 캐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고 교활한 토끼는 도망갈 굴을 세 개씩 파 놓기 마련인디.”

“김 팀장, 오늘 공은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 덕분에 우리가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켜봐 주세요. 저는 의뢰인이 누군지… 알겠습니다.”

“네, 그렇다면 회장님 뜻대로 하셔야지요.”

그제서야 다케다의 핸드폰을 열어 단축번호 1번을 누르는 시혁.

뚜우, 뚜우–

세 번도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는다. 그리곤 말이 없는 상대.

“잘 있었어, 백정?”

“……!”

“웃기네? 이렇게 또 만나는 거 말이야.”

“…….”

“내가 전에 한 말 기억하고 있나? 다시 만나면 너, 죽는다고 했는데… 닭대가리도 아니고, 까먹었어?”

“…….”

“조금 의외였어. 신선하기도 했고, 일본 용병이라… 꽤 재미있었다.”

“…….”

“벙어리냐? 큭큭큭. 더 해 봐, 얼마든지. 그 대신 다음에는 직접 와라. 그럴 배짱이 없다면 깊숙이 숨어. 북한에 있어도 찾아내 갈기갈기 찢어 주마. 아니, 생으로 파묻어 주지.”

뚝–

전화가 끊어졌다. 시혁은 비릿하게 웃으며 전화기를 김보성에게 건넸다.

“김 팀장님, 우리 손 더럽히지 말고… 그쪽 CIA 클리너(청소부)들 부를 수 있죠?”

“넵, 특보님. 제가 알아서 정리하겠습니다.”

“그래요. 프레지던트에게는 내가 따로 말씀드리죠. 그래도 CIA에서 먼저 보고를 하겠지만.”

“특보님, 이건 미합중국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일본국에 강력히 항의해서 관련된 자들을 싸그리 쓸어버려야 합니다.”

“하하하. 이미 꼬리 자른 도마뱀, 누군지 압니다. 여기 용병 놈들은 꼬리 축에도 못 들어요. 내 복수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여기서 덮으세요.”

여기 있던 모든 이들은 하나같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놈인지 엿 됐다. 웃으며 하는 말이지만… 보스는 마음을 정한 것이다. 이미 죽은 목숨이다. 그것도 곱게 죽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 * *

[보스, 괜찮습니까? 제가 옆을 비운 틈에… 죄송합니다.]

“아냐. 윌슨. 미국 일이나 신경 써. 오히려 진짜 큰 전쟁은 그쪽에서 벌어질 거야.”

[누군지 말씀이라도 해 주십시오. 제가 살을 바르고 뼈를 조각조각 내겠습니다.]

“윌슨, 때가 있어. 일이란 것이 그래. 멀지 않았으니까 진정해. 하하하.”

[하여튼 제가 지금 당장 날아가겠습니다. 보스 옆을 더 이상 비울 수 없습니다.]

“괜찮다니깐. 덕분에 보석을 또 하나 찾았어. 윌슨의 빈 자리를 든든하게 지켜 주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SS 애들로는 안 됩니다.]

“아냐. 옛날에 윌슨이 눈탱이 밤탱이 만든 사람 기억나?”

[아! 미스터 킴, 한국의 마린보이 말씀이라면… 믿을 수 있습니다. 저도 상당히 고전했던 실력자였습니다.]

“그래, 여기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최대한 빨리 건너갈 테니, 산드라와 재미있는 시간 보내고 있어.”

전화를 끊자마자 울리는 핸드폰. 아… 역시 CIA 놈들은 믿을 수 없다.

“네, 프레지던트.”

[당장 그 위험한 나라를 벗어나게, 당장!]

“괜찮습니다. 상황이 통제되었습니다. 조금 더 조심하겠습니다.”

[배후를 밝혀 내지 못했다고? 근데 자네는 알고 있다며? 말하게. 내 이 빌어먹을 일본 수상, 그 비열한 놈 앞니를 몽땅 뽑아 버릴 작정이야.]

“프레지던트, 진정하십시오. 그 마음, 평생 가슴에 담고 살겠습니다. 고마워요.”

[이봐, 킴. 우리 텍사스 사나이는 한번 친구가 되면 결코 변하지 않아. 자네의 친구면 내 친구, 자네 적이면 나에게도 적이야. 죽을 때까지 쫓아가서 목덜미를 물어뜯을 거야.]

진짜 뭉클해진다. 이 양반… 정략적으로 만났건만, 시간이 갈수록 더 진하게 와닿는다.

나는 알고 있다, 부시가 재선에 실패한다는 것을. 내가 개입해서 역사를 바꿀 수 없을까? 이렇게 온 마음으로 다가와 주는 사람인데.

진짜 고민이다.

겨우겨우 부시를 진정시켜서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또 울리는 핸드폰. 이 밤에 벌써 동네방네 소문이 다 퍼졌네.

[자네, 왠 통화를 그리 오래 하나?]

“네, 각하. 방금 부시 대통령 전화가 와서요.”

[무슨 소리? 조금 전에 부시 대통령이 내게 먼저 전화를 했었네. 자네 핸드폰이 계속 통화 중이라면서.]

“예, 미국에 있는 직원 전화를 받던 중이었나 봅니다.”

[아이고, 살 떨려. 미국 대통령이 그렇게 노골적으로 화를 내는 건 처음 겪어 보네. 한국 치안이 왜 그따위냐고, 온갖 욕을 다 섞어 막 던지는데, 진땀을 흘렸어. 그나저나 괜찮나?]

“네, 각하. 정리되었습니다.”

[빌어먹을… 더 이상 못 참겠어. 한국의 치안이 이 모양 이 꼴이라니. 얼마 전에는 서진 룸싸롱에서 깡패들이 집단 패싸움 끝에 몇 명이 죽었는지 모르네. 그런 판에 일본 킬러?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

“모두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흐음. 너무 잘나서 그래. 시기 질투를 하는 놈들이 더 많아질 거야. 항상 몸 조심하고, 시간 내서 청와대로 좀 들어와 주게. 내가 프라이팬 위 계란 신세야.]

“네?”

[젠장, 부시랑 통화할 때 예지가 옆에 있었지 뭔가? 잠시 정신을 잃었다네. 자네 잘못되면 같이 죽겠다고 울고 불고, 당장 군대를 보내서 삼성동을 지키라고… 아이고, 내가 시달려서 못 살겠어.]

씁쓸하다, 그놈의 군대. 마음은 고맙지만 그건 선을 넘는 소리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트라우마였기 때문이다.

일간 청와대 나들이를 하긴 해야 할 모양이다. 저 떼쟁이를 달래지 않으면 매일 여기와서 죽칠 게 뻔하다.

참, 힘든 하루였다.

* * *

“형님.”

“아무 소리 하지 마라.”

“증거는 남기지 않았죠?”

“흐흐흐, 그런다고 모를까?”

“형님은 대답도 안 했지 않습니까?”

“목소리 안 들었다고 나라는 것을 모를까? 아예 대놓고 백정이라 부르는 판인데.”

“어쩔 생각이십니까? 저놈이 당장 여기로 들이닥칠지 모릅니다.”

“천만에. 김시혁을 이제 알겠다. 저놈은 오지 않는다.”

“……?”

“너무 커 버렸다. 이제 감히 맞상대할 수준이 아니다. 명실상부 거물이 되어 버렸어.”

“그거야 다 아는 사실이고요. 왜 안 온다고 단정하십니까? 몸을 숨겨야 한다니까요.”

“안 온다. 김시혁은 지금 내 숨통을 서서히 조이고 있는 것이다. 즐기는 거지, 망가지는 것을.”

“……!”

“죽이려고 들면, 혹은 잡아넣으려고 들면, 피할 방법이 있을까? 그럼에도 재차 경고를 날렸어. 더 해 보라고, 그 대신 다음에는 직접 나서라고.”

“…….”

“명진아, 그 말은 두고두고 피를 말리겠다는 뜻이다. 쉽게, 고이 죽이지 않겠다는 뜻이야. 흐흐흐. 백정 신세 비참하게 되었네. 도망갈 곳이 어디 있더냐?”

“위에 보고는 안 할 작정입니까?”

“한들… 바뀔 건 없다. 그냥 우리 둘이 묻어 두자. 그리고 기다리자. 언젠가 저놈이 칼을 들이대겠지.”

“그게 말이요, 막걸리요? 고이 목을 내주자는 말입니까?”

군에서도, 안기부 블랙으로 일할 때도 늘 함께한 후배 차명진. 미국에서 윌슨에게 처발릴 때도 함께했었다.

“명진아, 우린 어차피 죽는다. 이길 수 없어.”

“형님! 그냥 튑시다. 회장님이 자금 한도를 풀었다며? 백억 정도는 형님이 마음만 먹으면 꺼낼 수 있잖소? 등잔 밑이 어둡다고 미국이나… 아니지. 남태평양 섬나라 같은 곳에 숨어들면 어찌 찾겠습니까? 그냥 이렇게 목을 늘어뜨리고 기다리는 것보다 낫죠. 안 그래요?”

“새끼야, 내가 부쳐다. 한국말로 백정이라 불리던 놈이란 말이다. 도망을 가라고?”

“니미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 어쩌란 말입니까?”

“죽더라도 곱게 죽지 않아. 놈의 팔 한쪽은 물어뜯고 죽어야지. 흐흐흐.”

차명진은 오랜 세월 백정태와 호흡을 맞춰 왔었다. 그동안 둘이 함께 뛰었던 작전, 모가지를 잘랐던 사람이 한둘인가? 또 숱한 생사의 고비도 다 넘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쎄하다. 특히 지금 백정태의 상태가 정상처럼 보이지 않았다.

눈이 돌아갔어. 광기에 정신을 뺏겨 버린 것이야. 죽음도 같이 해야 하나?

군에서 사수와 부사수로 만나 팀워크를 이뤘지만… 인간적으로 좋아해서? 천만에, 실력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살았고, 그 덕분에 진급했고, 그 덕분에 안기부 블랙으로 발탁되고, 그 덕분에 삼송 비서실 명함도 가지게 되었으니까.

그런데, 같이 죽어야 한다고?

백정태의 흰자위 가득한 눈을 흘겨보는 차명진의 가슴은 차갑게 내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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