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105화 (105/150)

105화 뒤집힌 여론

마샬 페트릭 웨인. 전형적인 남부 텍사스 남자다.

웨인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 같이 살았다. 매일 맞았다. 이런 알코올 중독 때문에 어머니가 떠났건만,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웨인을 때렸다.

하지만 웨인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행히 고등학생이 되자 2미터 가까운 키와 우람한 신체를 가지게 되었다. 그 뒤로 아버지의 매질이 멈췄다. 전처럼 때리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웨인은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학비 마련을 위해 재학 중 군에 지원했고, 7년을 데브그루에서 복무한 후 제대했다. 그리고 다시 복학, 학업을 마치자마자 그 어렵다는 SS에 덜컥 합격했다.

어릴 때 영화에서 본 후 줄곧 동경해 왔던 보디가드의 꿈을 이룬 것이다. 그것도 무려 대통령을 경호하는 보디가드로.

레이건 대통령과 8년의 시간을 보낸 웨인이 다시 맞이한 대통령은 조지 부시. 부통령 시절을 같이 했기에 알고는 있었으나, 직접 모시게 되자 감회가 남달랐다.

그도 텍사스 상남자였고, 부시 대통령도 그랬으니까.

윌슨은 이제 대통령을 경호하는 SS의 1국 3팀장으로 진급했다. 경호 1국은 근접 경호를 하는 4개의 팀으로 운용된다. 한 개의 팀이 자그마치 오십 명. 각 팀이 8시간씩 3교대로 대통령을 지킨다. 그동안 한 팀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 교대 근무조로 비상 대기하고.

부시 대통령은 자신에게 각별한 정을 주었다. 같은 기질을 가진 남부 텍사스 출신이라는 동질감과 동병상련의 아픔을 공유하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오늘 근무도 별 탈 없이 끝났다. 교대하는 1팀과 또 2팀이 이어받아 8시간씩 근무하는 16시간 동안은 자유롭게 쉴 수 있는 것이다. 거기다 다음 주부터 비상 대기 팀으로 로테이션 되면 한결 더 여유가 생긴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사이 목적지에 도착한 웨인. 지하 주차장의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 길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평생 해 온 일이다. 주변을 탐색하고, 의심하고, 관찰하는 건 경호원의 기본.

그러나 아무리 봐도 다른 징후가 보이지 않았다. 느낌은 분명 있는데 아무리 살펴도 별다른 게 없다.

아직까지 근무의 여파가 남아서 그렇겠지 생각하고 엘리베이터를 탄 후 9층 버튼을 눌렀다. 그때, 급히 달려오는 한 사람. 순간 망설였으나 웨인은 열림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여자였던 것이다.

“헉, 헉, 고마워요.”

“별말씀을, 누구나 뛰어오는 여성을 보면 응당 할 일입니다. 몇 층 가시죠?”

“어? 저도 9층인데?”

“그래요? 다행이군요. 더 안 눌러도 되고.”

웨인은 손수건을 꺼내는 척하면서 조용히 권총 홀더의 버튼을 풀었다.

우연? 웨인이 제일 싫어하는 게 우연이라는 단어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 어떤 미친놈이 불쑥 권총을 들이댈 줄 모르는 곳이 미국. 그런 상황을 너무 많이 겪었다.

실제 레이건 대통령 시절, 1팀이 통째로 날라간 사건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이 저격을 당한 뼈아픈 사건.

25살의 정신이상자 톰 힝클리가 워싱턴 힐튼 호텔 앞에서 레이건 대통령을 향해 6발의 총격을 가한 것이다. 이로 인해 대통령은 가슴에 한 발을 맞았지만 병원으로 급히 후송되어 회복했고, 브래디 백악관 대변인은 하반신 불구가 되고 말았다.

톰 힝클리라는 저격범은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를 짝사랑하다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고, 법원은 정신이상 판정을 받은 힝클리를 무죄라 판결했다. 2016년까지 정신병원에서 치료받는 조건으로.

그때 웨인은 SS에 막 입사한 신출내기 경호원이었다. 지금과 같은 1국 3팀 소속이었고, 당시 3팀은 근무를 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현장에 없었던 것이다.

그 사건으로 각 팀 요원 숫자도 대폭 증원되었고, 경각심이 한층 더 깊어졌다. ‘코드 원 대신 목숨을 버린다’였던 SS의 구호가 ‘누구든 의심하라’로 바뀐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런 직업을 가진 웨인에게 지금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이 여자… 이상하다. 공교롭게 같은 9층? 우연이란 우연하게 생기지 않는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만 있을 뿐.

모른 척, 자세히 살펴본 결과… 역시 이상하다. 일반인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몸에 다른 무기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여전히 고슴도치처럼 경계한 웨인과 여자는 9층에 당도했다.

웨인은 일부러 정지 버튼을 누르고 내리지 않았다. 어찌 보면 레이디 퍼스트를 실천하는 신사다운 행동이지만, 실상 여자를 떠보는 것이다.

진짜 9층을 목표로 왔다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자연스럽게 방향을 잡고 나설 것이다. 그렇지 않고, 눈치를 보거나 버벅거린다면 의도적인 접근이라 판단, 제압할 생각이었던 웨인.

여자는 냉큼 망설임도 없이 오른쪽으로 나섰다. 고개만 까닥, 고맙다는 인사를 한 채.

요즘 너무 신경이 예민했나 보구나. 수면 부족 때문이다. 웨인이 눕기에는 너무 작은 보조 침대, 밤에 고통으로 칭얼대는 아이 목소리에 몇 번을 깨야 하는 불규칙한 생활.

어쩔 수 없다. 버티고 또 버텨야 내 사랑하는 아들에게 삶의 희망을 줄 수 있다.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이겨 내는 게 힘들었다. 하지만 아들이 태어나면서 모든 고통을 다 씻어 냈다. 아들은 자신의 모든 것이 되었다.

웨인은 여자의 등을 보며 다시 걸었다. 아들이 있는 6인 입원실도 오른쪽에 있다.

여자는 웨인의 아들이 입원해 있는 908호실을 지나쳤고, 웨인은 역시 오해였다 생각하며 병실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다 뭐냐?

가뜩이나 좁은 6인용 병실 안에 들어 찬 사람들. 그래도 웨인은 총을 뽑을 수 없었다. 너무 유명한 회사의 로고가 박힌 방송 카메라를 발견한 것이다.

CMM?

“마샬 패트릭 웨인 요원?”

바로 턱밑에 들이대는 마이크에도 큼지막한 로고가 선명했다.

“무슨 일이죠? 저는 촬영을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만.”

“예, 저는 CMM 수석 기자 러셀 홀스타인입니다. 조금 전에 아이와 보호자인 어머니 그리고 같은 병실의 모든 분께 허락을 받았으니 걱정 마세요. 지금 생방송 중입니다. 잠시 인터뷰 부탁합니다.”

“안 됩니다. 이건 제 동의를 받지 않은 불법 촬영에 해당됩니다. 즉시 치우세요. 저는 특별한 임무를 맡는 사람이란 거 몰라요?”

웨인은 진짜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차올랐다. 아무리 아이와 와이프의 허락을 받았다지만… 이건 아니다. 선을 넘는 짓이다 싶었다.

그때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근거림.

귀에 익은 목소리.

그 여자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왔던 그 여자.

-웨인 요원, 조금 놀라셨겠지만 서로에게 나쁘지 않은 일입니다. 어쩌면 이번 방송으로 아이의 조혈 모세포 이식자를 빨리 찾을 수 있어요. 우리도 나쁜 의도가 아니랍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사랑하는 아들의 백혈병을 치료할 조혈 모세포 이식자는 귀하고 귀하다. 언제 아들의 차례가 될지 알 수 없는 일.

그런데 방송을 통해 길이 열린다면… 해야지, 비록 규정 위반으로 짤리는 한이 있어도.

* * *

“어이, 프레드. 빨리 와 봐.”

“왜? 한참 재미가 붙었는데?”

“지금 당구가 문제냐? 빌어먹을 자식아. 저기 CMM 방송 좀 보란 말이다.”

“또 전쟁이라도 났나? 웬 호들갑?”

“지랄 맞을 자식, 너 같은 민주당 놈들은 다 죽어야 해. 저런 대통령을 쥐 잡듯 몰고 말이야.”

“뭔데 그렇게 흥분하고 난리야?”

비로소 심상찮은 낌새에 다가온 프레드는 바의 한구석에 놓인 TV 화면을 쳐다보았다. 친구는 벌써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

“X발, 그랬구나. 그랬어.”

“후와… 저거 정말이지?”

“더러운 민주당 새끼, 너 아직도 해군 놈들이 벌인 미친 짓이 대통령 탓이라 생각하냐? 저런 분을?”

“…그거하고 이건 다르지. 그래도… 멋있네, 부시.”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고 살자. 자신의 경호원 아들이 혈액암에 걸려서… 흐흑, 그걸 위로하려고 머릴 밀었던 거야. 우리 대통령이 말이다.”

전 미국이 침묵에 잠겼다. 실시간으로 나오는 CMM 여자 아나운서의 말이 더해지고, 웨인과 그의 아내, 특히 온갖 호스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어떤 사람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웨인 요원, 이번 방송이 나감으로써 공개 인터뷰를 할 수 없다는 비밀 경호국 규정을 위반한 셈이 되었습니다. 후회는 없으신가요?”

“예, 규정 위반에 대한 처분은 달게 받겠습니다. 다만… 저와 아이를 위로하느라 스스로 삭발까지 감행하신 프레지던트께 누를 끼쳐 송구합니다.”

“만약, 이 일로 해임이 된다 해도 말인가요?”

“예, 허리 숙여 인사드리고 나오겠습니다. 그동안 위대한 미합중국 대통령을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미리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제 왜 우리 대통령의 머리가 하루 아침에 없어졌는지, 그 이유가 밝혀졌습니다. 대통령의 딸은 3살이 되던 해, 이 아이와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별이 되어 있겠죠. 그 아픔을 겪은 대통령께서 조금이나마 윌슨 요원과 그의 아들을 위로 하기 위해 선택한 삭발… 시청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저희는 있는 사실을 추적 보도할 뿐, 판단은 시청자 여러분의 몫입니다. 부디 하루빨리 이 아이에게 조혈 모세포 기증자가 나서길 간절히 바라면서… 지금까지 CMM의 마리아 리사였습니다.”

진짜 감동은 이런 것이다.

왜 부시 대통령이 별안간 머릴 빡빡 밀었는지 명백하게 알려졌다. 왜 미리 밝히지 않았냐고 타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공화당원과 민주당원, 가릴 것 없었다. 특히 아이를 둔 여성들은 눈물로 범벅이 되고 말았다.

온 나라가 슬픔과 동시에 감동으로 젖어 들었다.

* * *

다음 날, 기자들은 여전히 대통령이 로즈가든으로 나오길 기다렸다.

세기의 사건 아닌가? 자신의 경호원 아들을 위해 삭발을 감행한 대통령. 미담도 이쯤 되면 끝판왕이다. 힘든 경제 상황에 지친 국민들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는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하필 또 CMM이 터트렸다. 가뜩이나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한마디라도 들어야 데스크에 할 말이 서는 판이다.

웅성거리던 기자들은 아직 민머리 상태인 부시 대통령이 로즈 가든으로 나오자 전원 손을 들었다. 마치 초등학생이 ‘저요, 저요.’ 하는 것처럼.

“굿모닝! 기자 여러분, 오늘 일정이 조금 많습니다. 딱 한 분만 질문받도록 할 게요. 양해 바랍니다. 거기 NYP(뉴욕포스트) 멕클레인 기자.”

“네, 감사드립니다. 프레지던트, 어제 CMM의 단독 생방송, 감동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혹시 의도된 연출이 아닌가라는 일간의 소문이 있습니다. 또 규정을 위반한 웨인 요원의 사표를 받으실 건지, 대통령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이 새끼, 배가 아팠겠지. 그래서 조금이라도 흠집을 내기 위해 삐딱선을 타고 있는 것이다.

“멕클레인 기자, 상당히 실망스럽습니다. 당신은 아이를 잃어 본 적이 없겠지만… 나는 있습니다. 매일 아침 기도를 했어요. 이 천사를 살릴 수만 있다면 대신 죽어도 좋다고 말이죠. 나와 바바라 그리고 부시 주니어는 그때 골수 기증에 대한 서약을 했습니다. 불행히 아직 제대로 맞는 환자를 만나지 못했지만요. 혹시 멕클레인 기자는 골수 기증 서약, 하셨나요?”

끝장이다. 한마디 잘못 뱉았다가 두고두고 냉혈한으로 낙인 찍히게 생겼다.

거기에 대고 부시의 카운터 펀치가 날아와 박혔다.

“참! 웨인 요원을 왜 징계하나요? 그와 나는 지난 4년 동안 수많은 카메라에 얼굴이 노출되었습니다. 아! 웨인은 레이건 대통령도 모셨으니 더 오래됐군요. 얼굴을 알아보고 식당에서 할인도 해 줄 정도랍니다. 내 경호원 중 일선에서 저를 보호하는 요원들의 얼굴, 모르는 국민도 있나요? 그런데 왜 그를 벌해야 하죠? 웨인이 어떤 범법 행위를 했죠?”

“…….”

“지금도 웨인은 힘듭니다. 막대한 병원비를 대느라 제대로 외식 한번 못 하고, 매일 퇴근하면 아들의 간호를 위해 쪽잠을 자고 있어요. 나는 그런 친구를 내칠 만큼 냉혈한이 아닙니다.”

너… X됐다, 거지 같은 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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