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지옥과 악마
아프리카에서 가장 번성한 민족… 소말리족
원래 평화를 사랑하고, 목축업과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민족이었다. 이들에게 나라라는 보호막은 필요 없었다. 그저 작은 부족끼리 모여 잘 먹고 잘살면 됐으니까. 소말리족은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 광범위하게 포진하며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이 시작한 대항해시대. 전 세계 구석구석에 식민지를 건설한 영국과 호시탐탐 내려오려는 소련의 땅 따먹기는 소말리족이 행복하게 살던 아프리카를 조각조각 내고 말았다.
강대국들이 가장 먼저 탐을 내는 지형은 해안선을 가진 곳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소말리아는 아라비아해를 가진 길고 긴 땅이었고, 영국에 뒤이어 프랑스도 한입 베어 먹었으며, 이탈리아도 슬쩍 숟가락을 얹었다.
이때부터 이들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힘이 없는 민족에게 미래가 보장될 수 있을까?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인 소말리아와 오래전부터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있었고, 유엔 가입을 앞두고 한 표가 아쉬웠던 대한민국도 1987년 소말리아와 정식으로 수교한 후 공을 들였다.
참… 역사의 아이러니다. 대한민국이 유엔에 가입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91년, 작년에야 비로소 남북이 동시에 가입했다. 80년대 초반의 대한민국은 소말리아보다 못 사는 후진국에 불과했었다. 놀랍지만 소말리아는 우리보다 부자 나라였다. 정부는 개판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한 무정부 상태.
힘과 돈만 있으면 무지렁이에게 총을 쥐어 주고 군벌 행세를 하는 곳. 저마다 소년병을 앞세워 지역의 맹주랍시고 총질하는 곳.
나름 시아드 바레라는 인물이 22년간 독재를 이어 가면서 정부의 형태를 갖추는 듯했지만 한 방의 뻘짓에 골로 가고 말았다. 희한한 국경선, 움푹 파인 지역에 살고 있는 같은 소말리 민족을 통합한답시고 옆 나라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것이다.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모두 소련의 영향에 놓여 있었고 소련은 에티오피아의 손을 들어 주었다.
소위 오가덴 지역을 회복할 생각으로 기세등등하게 침공했던 소말리아의 독재자 시아드 바레는 에티오피아에게 완벽하게 처발리고 자국으로 도망쳐야 했다.
그리곤 이를 악물고 소련에게 등을 돌렸다. 미국과 손을 잡고 친미 국가로 변신했다.
그러나 1990년부터 대규모 시위가 빈발하다가 반군 지도자 아이다드 장군이 수도인 모가디슈로 진군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유엔과 미국은 파병을 결정했고, 한국도 사상 처음으로 상록수 부대를 유엔군 일원으로 파병한 곳…….
여기는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
아덴 아디 국제공항에 거대한 동체의 747 비행기가 착륙했다. 주위를 무장한 정부군이 지키고 있었다.
747의 표면에는 K 미르 그룹이라는 영문 글자가 선명했고, 비행기 트랩을 내린 사람은 달랑 둘… 김시혁과 김보성.
윌슨이 활주로 앞까지 차를 몰고 나와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 다섯 대의 무장 험비에 가득한 병력과 함께.
“먼 길에 고생하셨습니다, 보스.”
“윌슨, 분위기 한번 살벌하다.”
“지옥에 오신 겁니다. 여기는 그런 곳이거든요.”
“상관없어. 원래 악마가 사는 곳이 지옥 아닌가? 가자!”
“옙, 보스.”
윌슨은 시혁을 수행하고 온 김보성에게 대뜸 AK-47을 던졌고, 김보성도 당연하다는 듯 노리쇠를 당겨 장전 상태를 확인했다. 이 남자들의 인사법인 모양이다.
“다뤄 봤나?”
“윌슨 대장, 한국말이 많이 늘었습니다. 북괴 놈들이 쓰던 총이라 저에겐 낯설지 않습니다. 훈련 때 많이 쏴 봤죠. 익숙한 소총입니다.”
“굿! 여기선 아무도 믿지 마. 오직 보스와 나 그리고 자네만 아군이다. 정부군도, 반군도 모두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강도 떼라고 생각하게.”
“넵, 절대 보스를 먼저 보내진 않겠습니다.”
“그래, 그 마음 잊지 마라. 우린 보스보다 먼저 죽는다.”
무사히 살아서 보스를 지키라는 허망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만큼 위험한 곳이란 뜻이다.
다섯 대의 군용 험비가 공항을 벗어났다. 조종사와 승무원들은 내릴 생각조차 못했다.
삼십 분을 달려 도착한 도심 외곽의 삼 층 건물. 이걸 건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망가져 있다. 창문은 남아나질 않았고, 한쪽이 포격으로 무너져 있었다.
다 부숴진 정문에도 기관단총이 거치된 전투용 험비가 세워져 있었다. 옥상에는 저격수가 보이고.
“상당히 프로페셔널 한데?”
“네. PMC(민간 군사 기업) 블랙워터는 최고죠. 모두 전직 특수부대 출신들입니다.”
“어디 있나?”
“가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시혁은 왜 이 험악한 나라,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소말리아를 찾은 것일까?
“오! 선거로 바쁜 위중한 상황에 여기까지 오신 용기, 인정합니다. 제랄드라고 불러 주십시오.”
“마이다스 킴입니다. 그냥 킴이라고 부르세요.”
한쪽이 뻥 뚫린 건물 이 층 소파에 앉아 있다가 시혁을 반기는 사람. 흡사 고릴라가 더 가까운 친척이 아닐까 싶은 모습을 하고 있다.
“미스터 제랄드, 그는 어디 있습니까?”
“곧 돌아올 겁니다. 또 모르죠. 못 돌아올 수도 있고. 여긴 내일이 없는 곳이니까요. 하하하.”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험한 작전 지휘를 하는 모양입니다.”
사내는 머릴 긁적였다. 자신도 난감하다는 표정이다.
“세상에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딱 둘이 있더군요. 딸하고 우리 대장, 이건 내 힘으로 말릴 수 없습니다.”
“제랄드는 어디 출신입니까?”
“햇살이 아름다운 LA 산타 모니카에서 자랐습니다. 좋은 부모와 좋은 교육, 좋은 환경이었죠. 그런데 하필이면 그린베레에 자원 입대하면서 인생이 꼬이고 말았어요. 전장을 떠나선 살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린베레?”
“네. 만약 네가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인다면, 넌 용병이다. 만약 네가 재미를 위해 사람을 죽인다면, 넌 사디스트다. 만약 둘 다라면, 너는 그린베레다(If you kill for money, you’re a mercenary. If you kill for fun, you’re a sadist. If you kill for both you’r in greenberet). 하하하. 이런 구호, 들어 보셨습니까?”
“처음 듣습니다. 의미심장한 말이군요. 미국의 티어 2급 특수부대를 너무 부정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사실이니까요.”
“……!”
“영화 때문에 사람들은 미국 특수부대를 저기 윌슨이 복무한 데브그루(UDT 씰 6팀)나 델타포스만 생각하지만, 그들은 소수 정예죠. 일반 특수작전에 가장 빈번하게 투입되는 부대는 숫자가 월등히 많은 그린베레였습니다.”
“네.”
“결국 환경이 열악한 전장에서 복무한 그린베레의 대부분은 피 맛을 잊지 못하게 됩니다. 일종의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다들 겪죠. 아무리 심리 치료를 해도 잘 안 됩니다. 결국 다시 돌아옵니다, 전장으로.”
“꼭 돈 때문이 아니다?”
“…돈도 필요하죠.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데다 우리 같은 사람들을 써 주는 곳도 별로 없으니, 도리가 있나요? 민간 군사 기업이 딱 어울리는 겁니다.”
“그럼… 대령도?”
“비슷합니다, 다른 사연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사연이라… 궁금하군요.”
“마침 저기 오네요. 직접 물어보시죠.”
제랄드라고 자신을 밝힌 사내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서 흙먼지를 날리며 다가오는 험비 한 대가 보였다. 온통 총탄 자국 범벅에 한쪽 휀다 쪽은 통째로 속살을 보이고 있다. 바퀴가 굴러 가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망가진 험비.
차가 멈추고, 성큼 내리는 수염이 무성한 인물. 그 와중에 시가를 잘근잘근 씹으며 연기를 내뿜는다. 범상한 사람이 아니다.
저 사람을 만나려고 이 먼 길, 위험을 마다 않고 날아온 시혁……. 과연 저 사람이 스모킹 건을 가지고 있을지.
“드디어 만났군요, 대령.”
“음… 윌슨에게 말했지만 제가 도울 수 없습니다, 마이다스 킴.”
“아직 저는 상황을 자세히 모릅니다. 말해 주세요,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뭘 줄 수 있소?”
“대령, 이건 대가를 줘야 할 사안이 아닙니다. 돈을 건네주는 순간 대령의 진술은 거짓이 되고 맙니다. 뇌물로 포섭되었다고 할 것이고, 증거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킴, 나는 정치인을 믿지 않소. 바꿔 쓸 가면을 몇 개씩 감춘 족속들. 당신도 다를 바 없지.”
“맞습니다. 정치인이란 그런 족속이죠. 나도 마찬가지고.”
“허어… 곧바로 인정을?”
“당신은 평생을 군인으로 살았어요. 예편한 뒤에도 신화적인 작전을 성공시켰습니다. 지금 보니 알겠습니다. 대령, 당신은 천생 군인… 그런 분에게 얄팍한 거짓말이 통하겠습니까?”
“…….”
“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매수도 합니다. 협박도 하죠. 때론 무자비한 보복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상대가 그런 놈이었어요. 쓰레기에 똥물을 퍼붓는다고 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름다운 꽃에 똥물을 부은 적이 없소, 대령.”
“…….”
“명예를 지키겠다는 사람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요. 돌아가겠습니다. 만나 주셔서 영광이었습니다, 아서 D. 시몬스 대령.”
시혁의 입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아서 D. 시몬스 대령이라는 이름. 전설이었다. 미국 특수부대의 초석을 만든 사람. 70세가 된 지금까지 현장을 지휘하는 백전노장.
젊고 팔팔한 대원들이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존경으로 가득하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면 불지옥이라도 돌격 앞으로 할 것이다.
“대령, 나는 내일 아침까지 이곳 모가디슈에 머물 겁니다. 혹시라도 맘이 바뀌면 연락 주세요.”
“아닙니다. 그럴 일은 없을 거고… 숙소는 어디요? 우리 대원들을 보내 호위해 주리까?”
“아시다시피 윌슨과 제 한국 경호원도 그리 녹록한 인물이 아니라서요. 제 안전은 걱정 마십시오.”
시혁은 씨익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남자답게 바로 등을 돌렸다. 이번 설득도 실패했다. 스모킹 건을 확보하지 못했다.
* * *
그 시각, 정말 부산하게 움직이는 무리들이 있었다.
“알라께서 주신 철호의 기회다. 모두가 희생된다고 해도 죽여라. 끌어안고 자폭이라도 해야 한다.”
“다녀오겠습니다, 칼리프(지도자)시여!”
“너희에게 우리 조직의 미래가 걸렸다, 인 샬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이 모가디슈로 출발했다. 이들은 반군 지역도, 정부군 지역도 거침이 없었다. 다 통한다는 말이다. 자그마치 백 명의 거친 인원이 저마다 군용 트럭과 민간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모가디슈로 스며들었다.
그들의 목표는 딱 하나.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분명하다. 지시를 내린 자도 받은 자도 그랬다. 꼭 죽이라고, 반드시 죽이겠다고.
* * *
그나마 멀쩡한 호텔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3성급 정도되는 오마르 호텔은 웬일로 15명의 단체 손님을 받아 불이 환했다. 전용기에서 대기 중이던 기장과 부기장 그리고 10명의 승무원까지 호텔에서 숙박했던 것이다. 비록 하루지만 호텔을 통째로 빌린 단체 손님들. 직원들은 의아했지만… 돈 많은 졸부의 돈지랄로 생각했다. 계약한 대로 직원들은 키를 통째로 넘기고 기분 좋게 퇴근했다.
시혁은 가장 꼭대기 층의 스위트룸에 자리를 잡았다. 맞은편 방과 옆 방에는 윌슨과 김보성이 들어갔다. 문을 열어 두는 것은 경호의 기본이다.
비록 설득에 실패했지만 시혁은 낙담하지 않았다. 저런 멋진 남자를 알게 된 것도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더 좋은 방법을 찾게 되겠지.
까무룩 잠에 들려고 하는 찰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윌슨. 저토록 당황한 모습… 오랜만이다.
“보스! 일어나셔야겠습니다.”
“무슨 일인가?”
“그쪽에 심어 둔 아군에게 급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쪽……?”
“일전에 보스 지시로 침투시킨 요원 말입니다.”
“……!”
“백 명에 알라의 요술봉(RPG-7) 다섯 발, 전원 AK-47 돌격소총으로 무장하고 출발했다 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있지?”
“대충 한 시간이면 들이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곳 정부군의 협조는?”
“예멘에서 여기까지 오는 놈들입니다. 다 한통속으로 봐야죠. 협조를 요청해도 오지 않을 겁니다.”
“달리 피할 곳이 있나? 바로 비행기를 띄울 수도 없겠지? 정부군이 한편이라면 공항이라고 안전한 건 아니니까.”
“보스, 준비한 다른 수로 막기는 하겠으나,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 병력과 무장에서 너무 차이가 납니다. 보스는 보성 김과 같이 피하십시오.”
시혁은 말이 없었다. 참 부쩍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터진다. 미래를 억지로 바꾸는 것이 이만큼 어렵구나.
시혁은 조용히 위성 전화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