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모가디슈의 두 사람
막 자정을 넘어가는 시간. 백 명의 불청객들은 그림자처럼 모가디슈 자하툰의 거리로 모였다.
차림새는 볼품없지만 모두 역전의 용사다. 게릴라전 같은 전투 경험은 차고 넘친다. 소련과도, 아프가니스탄 정부군과도 밀리지 않고 맞짱을 떠서 이긴 전사들.
전에는 무자헤딘(아프간의 반군 게릴라)이었지만 최근 칼리프(지도자)의 노선 변경으로 예멘의 산악지대를 차지하고 거점을 마련했다.
주적 소련이 물러나더니 이젠 연방 자체가 완전히 해체되어 버렸다. 한동안 멍했다. 밥 먹고 하는 짓이라곤 총질밖에 없던 전사들에게 적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또 모든 걸 퍼 줄 것처럼 살살 굴던 CIA도, 사우디아라비아도 쌩을 까 버린다. 북부 아프리카 일대의 무슬림 한량들을 끌어모아 훈련을 시키고, 중국제 무기를 실어다 주던 파키스탄마저 연락이 두절되었다.
이 새끼들… 목숨을 걸고 사냥을 했건만, 사냥이 끝나고 나니까 사냥개를 삶아 먹는 꼴이다. 아프간의 무자헤딘은 버려진 것이다.
돈도 없다. 무기와 탄약도 서서히 바닥나고 있었다. 제일 중요한 사기가 뚝 떨어졌다. 다들 바보가 아니다. 미국과 사우디, 파키스탄의 혈맹에게서 버림받았다는 걸 모를 수 없는 형국이었다.
그런 판국에 걸프전이 터졌다. 이라크가 기세 좋게 하루 반 만에 쿠웨이트를 점령했지만, 바로 참전한 미국 중심의 연합군에게 탈탈 털려 버렸다. 미국은 130명이 전사한 반면, 이라크는 15만 명이 죽었다.
아예 싸움이 안 되는 모가지 비틀기와 마찬가지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이를 다른 시각으로 보는 이가 있었다.
오사마 빈 라덴.
미래에는 미국에게 가장 큰 증오를 안긴 인물. 사상 최초로 미국 본토를 공격하는 데 성공하는 세기의 테러리스트.
그는 지금 새로운 주적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싸움도 대상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미국이 같은 아랍 국가인 이라크를 때려? 거기다 슬그머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걸프전을 하기 위해 들어왔던 미군이 철수를 안 하고 눌러앉아?
아무리 사우디가 아랍의 맹주에 친미국가라 해도, 이건 아니지. 사우디는 이슬람의 메카가 있는 곳 아니던가? 그런 성스러운 곳에 어디 감히 양키들을 주둔시킨단 말인가?
옳다구나. 이제부터 우리의 주적은 미국이다. 저놈들이 우리 이슬람의 가장 큰 해악이다. 저들만 해체시킬 수 있다면 위대한 알라의 뜻을 전 세계에 확산시키는 건 문제도 아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즉시 조직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아프간이라는 우물에 갇혀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글로벌화해야 한다. 미국은 소련과 또 다른 종자다.
그렇게 탄생시킨 새로운 조직의 이름이 알 카에다(Al-Qaeda). 출신이 사우디아라비아인 것답게 철저히 수니파를 중심으로 한 범세계적인 조직망이 구축되고 있었다.
그런데… 돈이 없다. 미국도, 사우디도, 파키스탄도 등을 돌리고 사우디의 본가는 아예 성을 바꾸면서 오사마 빈 라덴을 호적에서 파 냈다.
이대로 가면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지리멸렬 흩어져 버릴 터. 자신이 꿈꾸던 아랍의 세계 통일은 물 건너가고 만다.
그런 판에 받은 의뢰.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는 거다. 알라께서 힘든 알카에다 전사들을 위해 선물을 주시는 것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어쩜 이 시점에, 이런 막대한 의뢰금을 주실 수 있단 말인가?
오사마 빈 라덴은 흐뭇했다. 마침 타깃이 시야권으로 들어왔다, 그것도 지옥으로.
“칼리프, 차 한잔 준비했습니다.”
“오! 쿠잘, 자네도 같이 하지.”
“영광입니다, 칼리프.”
한동안 둘은 차만 마셨다. 예멘으로 옮긴 뒤에는 조금 여유가 생겼다. 계약 증거금으로 천만 달러를 챙겼고, 다시 9억 9천만 달러를 더 받았다. 총의뢰 금이 삼십억 달러로 증가함에 따라 계약금도 십억 달러로 늘어난 것이다.
그 돈 덕분에 아프간에서 예멘으로 수월하게 거점을 옮길 수 있었다. 배를 주려 잡고 있던 전사들도 먹이고, 탄약과 무기도 더 사들였다.
지금 마시는 커피도 그 돈이 없었다면 턱도 없는 일이다.
“칼리프, 밤이 깊었습니다. 건강을 생각하셔서 취침에 드소서.”
“아닐세, 쿠잘. 오늘은 잠을 잘 수가 없어. 우리 알 카에다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날이거든. 허허허.”
“무슨 작전이 있는 모양입니다.”
“…거기까지 하세.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낙타가 듣는다 하지 않던가?”
“네… 저야 칼리프의 건강이 걱정될 뿐, 작전의 깊은 내막까지 알 필요가 없사옵니다.”
“저런저런, 서운한 표정이 역력하구먼. 그래, 자네도 이제 완전히 동화되었으니 알아도 상관없겠지. 내가 자네 덕분에 목숨을 건진 신세도 있고 말이야.”
“송구합니다, 칼리프.”
“천만에, 같이 왔던 체첸 동지들을 다 잃었잖는가? 너무 아쉬워하지 말게. 모두 알라의 품에 편히 있을 터이니.”
“네. 동지들도 그리 생각할 것입니다.”
“음, 지금 백 명의 전사가 모가디슈로 출동한 것은 알고 있을 것이야. 정말 중요한 작전일세. 타깃은 단 한 명이지만, 실로 큰 인물이거든.”
“거기야 우리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일진대 백 명씩이나 보낸 건 과한 게 아닐지요?”
“아냐, 나도 급히 연락을 받았을 때, 꿈인가 생시인가 했었네. 미국에 타깃이 박혀 있을 때는 도저히 방법이 없었거든. 또 대한민국은 총기도 소지할 수 없고, 아랍 사람이 활개칠 수 없는 나라야. 그런데 새장으로 새가 날아왔지 뭔가?”
“그래도, 북한과 대치 중인 조그만 나라의 사람 하나 잡는 병력으론 많이 과합니다, 칼리프.”
“허허허. 자네 고향, 체첸 공화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고 들었네. 사자의 배를 갈라 심장을 꺼내기 전까지 이빨을 조심하라… 맞는가?”
“그렇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타깃만 완벽하게 죽이면 우린 다시 부흥할 수 있을 것이야. 삼십억 달러, 우리 알 카에다 십 년 운영비 아닌가? 허허허.”
오사마 빈 라덴과 커피 잔을 들어 올리는 쿠잘이라는 사내. 오사마는 하늘 가운데 박힌 달을 바라보고, 쿠잘은 다 마신 커피 잔에 가라앉은 찌꺼기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표정이 묘하다. 체첸 공화국 출신이 왜 오사마의 옆을 지키고 있는 것인지.
소련 연방에 속해 있지만 자치 공화국인 체첸. 국민 대다수가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는다. 당연히 독립의 열망이 거센 곳이다.
그러나 아무리 같은 종파라 해도 코카서스 산맥 일대에 살던 체첸인이 아프간을 거쳐 예멘까지 따라와 알 카에다의 핵심 측근이 되었다?
신기한 일이다.
* * *
“하지크, 벌써 한 시가 넘었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조금만… 더 살펴보고.”
“저 조그만 호텔 다 해 봐야 객실이 50개가 안 됩니다. 단숨에 몰아치면 삽시간에 전멸시킬 수 있는 일을, 왜 주저하십니까?”
“이봐, 지금 호텔에 불 켜진 방이 있나?”
“예?”
“이제 겨우 한 시야. 정보에 의하면 타깃과 경호원 2명 그리고 비행기 승무원 12명, 총 15명이 투숙했어. 그들이 한꺼번에 다 잠들었다고?”
“내일 출국할 예정이잖습니까? 일찍 잠이 들었겠죠.”
“그렇게 생각해? 영 찝찝하단 말이야, 이 적막이.”
“칼리프께서 신신당부한 작전입니다.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들이칩시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껴안고 자폭하더라도 죽여야지. 그게 우리가 할 일. 성전의 초석을 다지는 임무다.”
“예.”
“RPG-7부터 갈긴다. 준비시켜라. 그리고 쑥대밭이 된 호텔을 일거에 들이친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죽여라. 확인 사살도 꼭 하도록!”
백 명을 이끌고 온 놈은 호텔을 감고 있는 적막이 정말 이상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다. 모두가 여기에 뼈를 묻더라도 반드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세 곳으로 나눠 호텔 앞 골목에 집결한 타격대의 움직임이 부산해졌다. RPG-7을 소지한 다섯 명의 대원들이 호텔과 마주 보고 있는 사 층 건물로 뛰어올라 갔다. 밑에서 쏴 봐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섯 명의 RPG-7 사수들이 사 층 옥상에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이대로 당기면 저런 작은 호텔은 불바다가 될 것이다.
“내가 15층 중간 방, 너는 15층 끝 방, 나머지 세 명은 14층과 13층, 12층에 각기 한 발씩 때려 박는다. 그다음 저격총으로 바꿔 움직이는 것들을 무조건 쏴 죽인다.”
“인샬라!”
옆의 사수들이 일시에 대답하자 말을 마친 사람도 RPG-7을 어깨에 견착했다. 당기면 바로 시작이다.
푸확-
“……!”
그러나 바로 옆에서 똑같이 자세를 잡고 쏘려던 놈이… 갑자기 머리가 터져 나갔다. 한 놈이 아니다. 동시에 네 명 모두의 머리가 정확하게 뚫렸다. 비명조차 없었다.
한 발이라도 쏘려고 손에 힘을 주려던 그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힘이 들어 가지 않는다. 몸도 주체가 되지 않아 다시금 자세를 잡으려고 하는 순간, 그의 머리가 화려한 불꽃처럼 터져 나갔다.
첫 번째 탄을 빗겨 맞은 것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이건 고도로 단련된 저격수의 솜씨. 튕겨 나간 그의 몸이 옥상에서 추락했다.
그와 동시에 호텔 창에서 동시에 터지는 총성. 콩 볶듯 요란한 소리가 매캐한 화약 냄새와 함께 적막한 거리에 울려 펴졌다. 한두 정이 아니었다. 최소한 스무 곳 이상에서 쏴 제끼고 있었던 것이다.
세 곳으로 나누어 RPG-7가 작렬하기만 기다리던 무리들은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미리 방어할 틈도 없이 나자빠진 인원이 삼십여 명. 몰려 있었기에 자동으로 난사하는 총알을 피할 공간이 없었다.
그제서야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흩어진 무리들도 마주 응사하기 시작했다. 호텔 창이 깨져 나가고, 벽에도 사정없이 총알이 박혀 들었다. 어떤 놈이 갈겼는지 1층 현관 유리창도 와장창 내려앉는 것이 보였다.
호텔 앞 거리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적아의 구분도 없었다. 그저 움직이는 물체라면 무조건 갈겨 댔고, 섬광이 보이는 호텔 창을 향해 집중적으로 쏴 대니 귀가 먹먹할 정도로 요란했다.
“하지크! 하지크!”
선발대를 이끌고 왔던 대장이 보이지 않자 악을 쓰는 대원도 풀썩 머릴 처 박았다. 터져 나간 뇌수가 뒤 벽에 날려 피 칠갑이 되고 말았다.
명령을 내릴 사람이 없어진 무리들은 미친 듯 호텔을 향해 AK-47을 갈기고 있었다. 다들 이 호텔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는 것이 목표라는 건 알고 있었으나, 정확한 내막을 아는 이는 없었다.
아무리 기습을 당했다지만, 아직 사십 명 가까이 생존한 상태다. 화력에서 크게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전황은 기울었다. 상대는 호텔에 은신한 채 기다리고 있었고, 자기들은 도로에 노출된 상태다. 무너진 잔해와 골목을 엄폐 삼아 버티지만, 계속 한 명씩 피를 쏟으며 죽어 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호텔 옥상에서 몇 명인지 모를 저격수가 살짝만 고개를 내밀면 어김없이 머리를 터트린다.
이미 작전이 실패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병력을 지휘할 두 명 모두 말이 없다. 죽은 거다. 그렇다고 무작정 후퇴할 수도 없는 일. 적이 보이지도 않는 호텔을 향해 손만 내밀고 방아쇠를 당기고 있으나 이런 눈먼 총알에 맞을 이가 있을까? 딱히 대책이 없는 순간.
호텔을 기점으로 양쪽 도로에서 살벌한 기관단총 소리가 울리더니, 골목 벽이 파이기 시작했다.
특유의 엔진음을 내며 다가오는 험비 네 대. 상부에 장착된 터릿(Turret) 중기관총의 위력은 일개 전투병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 골목 모서리의 콘크리트가 퍽퍽 터져 나갔다. 이젠 머리는 고사하고 소총도 내밀 수 없게 되었다. 꼼짝없이 골목에 갇혀 버렸다. 뒤는 막힌 곳, 도주도 불가능하다.
두 대의 험비는 거의 골목 부근까지 접근하더니 연이어 유탄 발사기를 쏘아 대기 시작했다. 항복하라는 둥의 대화 한 번 없었다. 그런다고 손들고 나올 이들이 아닌 것을 아는 까닭이다.
쿵- 콰앙-
엉청난 굉음이 골목을 휩쓸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