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시몬스 대령의 결심
수십 발이나 쏘아 댄 유탄 발사기의 폭음이 미처 가라앉기도 전에 아슬아슬하게 골목을 지탱하던 건물이 폭싹 무너져 내렸다.
떼 몰살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는 듯, 먼지가 자욱했다. 총성이 멎었다. 험비에서도, 호텔에서도 더 이상 총을 발사하는 이가 없었다.
호텔 앞 도로는 다시 적막에 잠겼고,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만 가득했다.
험비에서 내린 사람들도, 호텔에서 뛰쳐나온 사람들도 여전히 무너진 건물 더미를 향해 총구를 내리지 않고 있지만… 살아남은 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건물 잔해 사이에서 삐죽 보이는 RPG-7을 보며 히죽 웃는 노병이 뒤에 선 사람을 향해 물었다.
“윌슨, 킴은?”
“…무사합니다. 이렇게 오실 줄 몰랐습니다.”
“껄껄껄, 우리는 의뢰를 수행했을 뿐이야. 본부에서 연락받고 급히 왔네. 너무 큰돈을 받았거든, 은퇴를 고려할 정도로.”
“하여튼 감사합니다.”
“아냐… 그런데 자네들도 보통은 아니었네. 저 사람들 혹시?”
“네. 예상하신 그대로입니다. 전투 민족 체첸 용사들이죠.”
“이런! 우리가 안 와도 충분했겠는데? 희생자는?”
“철저히 준비를 한 덕분인지 사망자는 없습니다. 부상자만 세 명인데, 위급한 상태는 아닙니다.”
“휘휴, 옥상에 저격수를 다섯 명이나 배치할 정도의 악어 입으로 기어 들어왔으니, 몰살당해도 할 말 없지. 나도 체첸 용병을 직접 보기는 처음일세. 소문대로 대단한 전투 종족이야.”
그 말 끝에 모습을 드러 낸 시혁.
“아서 D. 시몬스 대령, 의뢰를 받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천만에요, 마이다스 킴. 나는 용병입니다. 고용만 해 준다면 어디든 가야죠. 본부에서는 오랜만의 큰 의뢰금에 춤을 추고 있을 겁니다.”
“제 방에 아직 식지 않은 커피가 있습니다. 아랍 커피는 조금 내리기 귀찮지만 향기 하나는 일품이죠. 어떻습니까?”
“전투가 끝나면 항상 목이 탑니다. 초대, 감사합니다.”
정말 삽시간에 쓸어버렸다, 백 명의 생목숨을.
“여기 뒷처리가 골치 아프지 않나요?”
“문제없습니다. 만 달러만 던져 주면 청소까지 해 줄 겁니다. 여기 모가디슈는 지옥이니까요.”
창문은 이미 다 깨져 바닥에 유리가 가득했고, 천장에는 아래에서 무작정 갈긴 총탄 자국으로 빼곡한 방.
시몬스 대령은 혀를 내둘렀다. 진짜 마이다스 킴은 이 난리통에 커피를 내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직 옅은 김을 올리고 있는 커피 잔과 그 앞의 아랍식 주전자.
“킴, 밖의 체첸인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
“전용기로 같이 왔습니다. 미국에서 이들이 제 외곽 경호를 맡은 지 꽤 됐지요.”
“……!”
“여긴 눈들이 많더군요. 그래서 한동안 승무원들과 같이 기내에서 대기하다가 눈을 피해 호텔로 숨어들었지요.”
“대단합니다. 그런데도 이들을 대동하지 않고, 윌슨과 제 부대를 방문한 겁니까?”
“예, 솔직히 그때까지 몰랐으니까… 아니, 저도 두 시간 전에야 습격 정보를 받았거든요.”
“여기 정부군에도 선이 닿아 있었습니까?”
“…저들은 여기 사람이 아닙니다.”
“……!”
“알 카에다, 들어 봤습니까?”
“예멘의 그 알 카에다? 이곳까지 그들이 왜?”
“제가 적이 조금 많습니다. 제 목이 삼십억 달러에 낙찰되었답니다. 하하하.”
“후아… 굉장해요. 알 카에다 내부에 사람을 심으셨군요.”
“…네, 다 말씀드리지는 못하지만, 오사마 빈 라덴과 저는 양립할 수 없는 사이가 된 지 오래입니다. 미리 대비를 했다고 할까요?”
그때 윌슨이 들어와 머뭇거리다 시혁에게 소근거렸다.
-보스, 몇 명이 살아남았습니다.
“윌슨, 전원 죽이세요. 한 명이라도 빠져나가면, 그쪽에 있는 우리 사람이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머릿수를 정확히 세어서 백 명 모두 확인 사살하세요.”
“알겠습니다. 명대로 하겠습니다.”
다시 둘만 남게 되자 시몬스 대령의 입이 열렸다.
“그거 아십니까? 아무리 적이라도 저항할 힘을 상실한 포로를 죽이는 것은 범죄란 거. 명예롭지 못한 짓입니다.”
“대령, 아까 그러셨죠. 여기는 지옥이라고. 저는 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백 명 아니라 천 명, 만 명이라도 죽일 수 있습니다. 그건 악마라 손가락질을 받는다 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
“알 카에다에 총 다섯 명이 투입되었지만, 신뢰를 얻기 위한 과정에서 다 죽고 한 명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오늘 저희들이 기습 사실을 미리 알게 되었죠. 그런 동지를 위험에 빠트려서야 되겠습니까?”
“그래도 명예를 아는 사내라면 피해야 할 행동 같소만?”
“해도 됩니다. 당신의 어긋난 생각을 내게 강요하지 마시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사람을 지키는 거요, 대령.”
“…….”
“명예가 뭐요? 먹는 건가? 당신은 그 먹지도 못하는 명예를 지키시오. 나는 내 사람을 지킬 테니. 대령이 진짜 명예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라 봅니다.”
“…….”
“대령이나 대원들 입에서 이 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단속하길 바랍니다. 만약… 그로 인해 내 사람이 위험에 처할 경우, 나는 결코 좌시하지 않을 거요.”
시몬스의 노쇠한 얼굴에 주름이 잔뜩 생겼다. 화가 난 것이 아니다. 생각에 잠길 때의 버릇이다.
“참 특이한 사람이오, 마이다스 킴은.”
“아닙니다. 하나도 특이할 것이 없어요. 누구나 다 알면서 안 하는 것을 실천할 뿐이죠. 특이한 사람은 대령이요. 명예를 거론하면서 가슴속에 불명예를 안고 전장을 전전하는 당신!”
“…뭔가 알고 있다는 말이군.”
“대충, 자세한 전말과 증거를 못 찾았지만.”
그 뒤로 두 사람은 묵묵히 커피만 마셨다. 쓰고 향만 강한 아랍 커피는 난장판이 된 방 안으로 진하게 퍼져 나갔다.
* * *
윌슨은 곧이어 들이닥친 정부군 장성에게 오만 달러를 건넸다. 입이 턱밑까지 붙은 장군은 트럭에 시신들을 몽땅 싣고 떠나며 경례까지 붙여 주었다. 개판이다.
호텔 사장에게는 재신이 등장한 셈이 되었다. 가뜩이나 파리만 날리던 호텔이 벌집이 되자 죽을 상을 짓던 사장은 윌슨이 탁자에 올려놓은 백만 달러를 잽싸게 쓸어 담았다. 이 돈이면 간당간당한 모가디슈를 떠나 부자로 살 수 있을 것이다.
“미리 대비하지 않았으면 위험했습니다, 보스.”
“응. 침투 작전 중 사망한 체첸 용병들 말이야.”
“너무 죄책감 가지지 마십시오. 그들은 자원했고, 정체가 드러나 고문을 당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빈 라덴에게 신임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전투 중 전사한 것입니다.”
“가족들은?”
“그들의 희생은 아쉽지만, 가족들은 평생 걱정없이 살고 있습니다. 산드라가 일일이 챙겨서 미국으로 입국시켰습니다. 최고의 예우를 갖춰 모두 안락한 삶을 살고 있고요.”
“구체적으로, 자세히 알고 싶다.”
“네, 문화의 연속성과 생활의 편의성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모든 가족의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이슬람 거주 지역으로 이주를 시켰고, 넓은 아파트, 충분한 생활비, 영어를 습득하기 위한 가정교사까지 붙였습니다.”
“아이들이 장성해서 원한다면 하버드건 예일이건 입학시켜. 기부금이 얼마가 들던 상관없어. 그들은 아버지를 잃었지만 한 점의 그늘도 없도록 해 줘.”
“네… 보스, 명심하겠습니다.”
윌슨과 시혁의 대화를 김보성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내용인지 감을 잡고 있었다. 먹먹하다.
보스는 블랙홀 같은 분. 한번 그의 휘하에 들면 빠져나갈 수 없게 된다. 보스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목숨을 던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이가 보스의 주위로 모이고 있다. 정책 분야건, 경제 분야건, 법률 분야건… 회사 경영자, 투자 전문가, 정치 분석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보스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
그중에 경호 팀들.
조금씩 숨겨져 있던 외곽 조직이 드러나고 있었다. 김보성도 미처 몰랐던 실체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김보성은 K 타워에서 벌어졌던 일본 용병의 침투 사건을 되새겨 보았다. 저녁에 빌딩 청소 용역으로 매일 근무하는 네팔인들의 정체가 실로 놀라웠던 것이다. 윌슨에게 미리 통보를 받지 않았다면 못 믿었을 지도…….
결과는 한 명의 피해도 없이 완벽하게 제압했다. 그 당시를 떠올리면 김보성도 으스스하다. 권총을 가진 일본 놈들을 쿠크리 한 자루만으로 썰어 댄 구르카 용병. 만들어진 전투 민족이 아니라 타고난 전사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보다 더 억센 체첸인들? 막상막하다. 총기를 다루는 능력은 체첸인들이 앞설 것이고, 백병전에 들어가면 쿠크리를 지닌 구르카 용병을 당할 수 없다.
물론 윌슨이 포섭했겠지만 언제 이 무시무시한 전투 종족들을… 이번에도 여실히 증명되었다. 처음 전용기에 20명의 수염 무성한 이들이 같이 탑승하는 것을 알았지만, 이들의 정체가 설마 체첸인들일 줄 몰랐다.
“돌아간다.”
“섭섭하지 않으십니까?”
“아니, 시몬스 대령도 선뜻 나서기 쉽지 않은 일이었어. 저런 사람은 돈이나 협박에 굴복하지 않아. 최선을 다했으니,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공항 활주로까지 따라와 준 시몬스 대령, 전용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는데도 미동이 없었다. 70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전장을 활보하는 노장의 모습. 실로 장엄하다.
그때, 시혁의 핸드폰이 울렸다.
“…네, 대령.”
“거기 한 명 더 탈 수 있습니까?”
“그럼요. 원래 400인승입니다.”
“하늘이 제 은퇴를 위해 킴을 보낸 모양입니다. 이제 조금 쉬고 싶군요. 켄터키의 손녀도 보고 싶고 말입니다.”
“환영합니다, 대령.”
그렇게 한 사람을 더 태운 전용기가 지옥, 모가디슈를 출발했다.
“역시 우리 입맛에는 커피 머신으로 내린 에스프레소가 최곱니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커피는 사실 귀찮죠. 커피 향은 더 진하지만 가루가 남고 맛도 그래요. 이게 현실과 이상의 차이 같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킴, 커피 머신으로 추출하면 간편합니다. 마시는 사람도 깔끔해요. 아랍이나 아프라카 사람들은 그걸 몰라서 주전자로 세 번씩 거품과 가루를 가라앉히면서 커피를 내리겠습니까? 바꾸지 못하는 겁니다. 그렇게 입에 익어 버렸으니까.”
“…….”
“중동과 아프리카는 엄청난 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석유, 다이아몬드, 희귀 광물. 그냥 파내기만 하면 됩니다. 별다른 노력이 필요 없어요. 커피 머신이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있는 것을 그냥 쓰는 게 익숙한 거죠.”
“그런가요?”
“비극입니다.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서 항상 침략당하고, 내전을 치르고, 싸웁니다. 이 현상은 인류가 살아가는 동안 변하지 않을 거예요.”
“네. 일견 공감 가는 말입니다.”
여기까지 말을 던진 대령의 표정이 야릇했다.
“킴은 지금까지 내가 만나 왔던 어떤 사람들 보다… 멋진 사람이오.”
“아닙니다. 저는 그저 내 식구들밖에 못 챙기는, 어쩌면 천사의 탈을 쓴 악마일지 모릅니다.”
“그런 악마라면 누군들 충성하지 않겠습니까? 권속들에게는 대제사장 가브리엘보다 더 든든한 존재가 아닐까요?”
시혁은 대령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이 노병은 지금도 갈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서 D. 시몬스 대령, 안 해도 됩니다.”
“……!”
“나는 당신이 살아온 명예로운 삶을 존경합니다. 진짜 은퇴를 결심한 마당에 마지막을 불명예로 범벅시킬 필요 없어요.”
“…….”
“이제 그 손에서 화약 냄새를 털어 내세요. 켄터키에서 기다리고 있을 손녀의 따뜻한 살 냄새와 함께 편안한 노후를 보내면 됩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킴, 어디까지 알고 있습니까?”
“전부.”
“……!”
“당신에게 오기 전, 수많은 이를 만났습니다. 이란 미국 대사관 점거 당시 델타포스의 첫 임무 ‘독수리 발톱 작전’이 왜 그리 처참하게 실패했는지, 또 당신이 지휘한 테헤란의 ‘핫풋 작전’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냥 은퇴하고 명예를 지키라는 말은?”
“커피죠. 커피 머신으로 뽑은 우리식 커피도 좋지만, 나는 아랍식 커피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훨씬 정성이 들어가야 합니다. 시간도 많이 걸려요.”
“…….”
“그럼에도 나는 아랍식 커피가 가진 전통과 명예를 존중하는 겁니다. 대령은 사실 아랍식 커피 같은 사람이예요. 그걸 부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사내… 자신과 비교하면 거의 오십 년 가까이 어린 친구다. 그런 이가 전통과 명예를 이야기하고 있다. 오히려 입을 다물라 한다.
“다 말씀드리죠. 필요하다면 증언도 하겠습니다, 킴.”
째각째각-
대령이 봉인했던 시한폭탄의 초침이 다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