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부하를 대하는 보스의 자세
알 카에다가 발족한 지 벌써 일 년이 흘렀다. 아프가니스탄에 있던 무자헤딘 조직 중 태반이 오사마 빈 라덴을 따라 예멘의 북부 산악 지대로 거점을 옮겼다.
지금의 알 카에다는 무자헤딘 때와는 다른 조직이 되었다. 시골 촌놈에서 국제적인 테러 집단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비록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도 끊겼고, 독자 생존을 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오사마 빈 라덴의 이슬람 근본주의는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소련과 맞짱을 떠서 물리치고, 아프간 정부를 뒤집어엎었으며, 이제는 사우디의 메카에 눌러앉은 미국을 상대로 한판 뜨자는 빈 라덴… 명분이 너무 정확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멘의 알 카에다 차다르(본부).
전과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왠지 모르게 진득한 긴장감이 차다르를 감싸고 있었다.
삼만 명에 달하는 알 카에다 대원을 총지휘하는 차다르는 항상 오백 명의 친위대가 상주하고 있는 곳이다. 어설프지만 전자 장비와 통신 장비를 비롯해 참모들의 동굴도 구석구석에 즐비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여느 때처럼 빈 라덴이 마실 커피를 준비하는 쿠잘에게 부관이 다가왔다.
“어이! 쿠잘.”
“네, 부관님.”
“칼리프 모시느라 고생이 많아.”
“아닙니다. 오히려 영광이죠.”
“그래, 자네… 체첸에 있는 가족들이 그립진 않나?”
“다른 가족이 없습니다. 한 분 남으신 노모는 삼촌이 모시고 있고요.”
“그래? 자네와 같이 왔었던 동료들은 모두 전사했다고?”
“예, 안타깝게도 아프간 정부군의 대공세 때 4명 모두…….”
빈 라덴의 부관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덕분에 칼리프가 목숨을 건졌지 않나? 자네들은 알라의 사자들이야. 자부심을 가지게.”
“감사합니다, 부관님.”
“그런데 말이야. 전사한 자네 동료들 가족도 모두 체첸에 있지 않나?”
“…아마 그럴 겁니다.”
“아마……?”
“……!”
“체첸인들이 체첸 땅에 사는 건 너무 당연한 일, 칼리프를 지키고 장렬하게 전사한 동료의 가족 소식이 궁금하지 않나?”
이야기 흐름이 정상적이지 않다. 은근 쿠잘을 비롯해 전사한 동료 가족을 걱정하는 것 같지만, 우회적으로 유도심문 하는 느낌.
싸하다. 가슴이 따끔거렸다.
“참! 자네, 칼리프의 위성 전화기 관리도 맡고 있지?”
“…네.”
“총 몇 대나 되지?”
“7대입니다. 원래 9대를 쓰셨는데, 2대는 고장이 나는 바람에.”
“고장 난 전화기는 어떻게 처리했나?”
“예, 폐기를 했습니다. 혹시라도 추적당할까 봐 차다르 아래 절벽으로 던졌습니다.”
“저런저런… 실수를 했구먼. 그중 한 대를 누가 주워서 사용하는 모양이야.”
“……!”
“얼마 전 모로코 지부에서 연락이 왔더군. 모두 거기서 전화 요금을 내고 있는데, 8대가 아직도 사용한 흔적이 보인단 말이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돌로 내려쳐서 부순 다음 버렸습니다만.”
“흠. 말 나온 김에 자네 숙소를 좀 봤으면 하네. 앞장서게.”
걸렸다. 알고 온 것이다, 이 새끼.
벌써 쿠잘의 뒤로 두 명의 대원이 서 있었다. 쿠잘은 부관을 위시해서 두 명의 감시자와 함께 숙소로 쓰는 동굴로 향했다. 온몸에 식은땀이 가득 고였다. 등줄기가 서늘했다.
동굴은 한번 꺾여 있는 구조였다.
“여깁니다, 부관님.”
“응, 위성 전화기 모두 가져와 보게.”
쿠잘은 말없이 한쪽에 나란히 발전기로 충전 중인 7대의 전화기를 가리켰다.
“저게 전부입니다.”
“미안하지만, 자네 숙소를 잠시 살펴보겠네.”
이대로 수색을 당하면 빼박이다. 쿠잘은 안간힘을 써서 부관에게 항변했다.
“부관님,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체첸 형제들은 칼리프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의심받는 것 같아 불쾌합니다.”
“그래. 알고 있어. 그 공로로 자네가 칼리프를 수행하는 것도 알고. 그런데 말이야. 지금 막 체첸에서 연락을 받았지.”
“……!”
“쿠잘, 전사한 자네 동료 가족들, 어디 갔을까?”
“…….”
“왜 한날한시에 다 사라졌을까? 애들까지 데리고 말이야.”
“…….”
“그리고 저기 전화기는 7대, 왜 요금은 8대 값이 청구됐을까?”
“그걸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이건 부당합니다. 칼리프께 아뢰도록 하겠습니다.”
“흣! 칼리프께서도 알고 계시는 일이야. 자네가 떳떳하다면 막을 일이 없을 텐데? 뭔가 감춘 거라도 있나 보지?”
“왜 이러는 겁니까?”
“병신, 너희 체첸인들이 자발적으로 합류할 때부터 이상했어. 아무리 같은 알라의 자식이라고 해도 말이 안 되잖아? 너희 나라도 독립을 위해 싸우는 마당에, 왜 여기까지 왔지? 그리고 소련이 물러간 후에도 남아서 칼리프 옆을 지키는 이유가 뭐야?”
“…….”
“더 이상 버티면 먼저 쏴 죽이고 뒤지겠다. 결정해!”
부관은 말을 마치는 순간 몸을 날렸다. 쿠잘이 불쑥 총을 빼들었던 것이다.
드륵, 드르륵-
콩 볶듯 요란한 소리와 함께 쿠잘이 메고 있던 AK가 불을 토했다.
실수다.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하느라 총을 미처 빼앗지 못했다. 설마 이처럼 갑자기 방아쇠를 당길 줄은 몰랐던 부관은 데굴데굴 몸을 굴려 동굴의 휘어진 틈에 몸을 숨겼다.
덕분에 감시자 두 명만 벌집이 되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순식간에 작은 동굴은 화약과 피 냄새로 자욱했다.
쿠잘은 침착하게 탄창을 갈고 구석의 천을 걷어 낸 뒤 숨겨 두었던 1대의 위성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윌슨 대장.”
[쿠잘, 무슨 일인가? 약속 시간도 아닌데.]
“흐흐흐, 이게 마지막 통화가 될 것 같소.”
[……!]
“괜찮소. 내 어머니와 삼촌을 부탁하오.”
[쿠잘, 고맙다. 너를 잊지 않으마.]
“아냐, 대장. 먼저 간 형제들 모두 웃으며 죽었어. 나도 마찬가지야.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보스에게 꼭 전해 줘. 사람답게 대해 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가족들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줘서 너무…….”
쿠잘의 마지막 말은 윌슨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RPG-7이 터지는 굉음과 함께 쿠잘의 몸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끝내 방아쇠를 당겨 보지 못했다.
* * *
“사람답게 살 게 해 줘서 고맙다… 가족들을 부탁한다… 모두 웃으며 죽을 수 있었다.”
“예, 보스 그게 마지막 통화였습니다.”
“쿠잘과 거기서 전사한 대원들 시신은 찾아올 수 없겠지?”
“네,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아니, 찾아와야지.”
“보스!”
시혁은 창밖으로 고갤 돌렸다. 눈물이 또르르 굴러 탁자를 적셨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목소리도 들은 적 없는 대원이었다. 그런 이가 자신을 위해 웃으며 죽었다. 오히려 고맙다는 유언을 남겼다.
이 개자식들, 갈아 마셔 주마.
* * *
다음 날.
예멘의 차다르(본부)가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수십 개의 동굴에 나눠져 있던 오백 명 인원 전부가 짐을 싸느라 바빴다. 다른 곳이야 몸과 총기만 챙기면 그만이지만, 여기는 다르다.
통신 장비와 여러 전자 장비 그리고 비축 물자를 옮겨야 한다. 하루 이틀 사이에 이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래도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 언제 공격 받을지 모른다.
다만, 믿는 것은 여기까지 공격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사실. 예멘의 산악 지역은 아프간에 버금가는 곳이다. 온통 암석 덩어리에 산은 험준하기 짝이 없다. 비행기로 폭격을 해도 동굴로 은신해 버리면 답이 없다.
하지만 노출이 되었다고 판단한 이상, 모든 것을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구축해야 한다.
퇴각 작전을 총지휘하는 부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살살 구슬려 눈치채지 못하도록 물증을 확보하려던 부관은 오히려 쿠잘의 선공에 죽을 뻔했다. 오랜 전투에서 얻은 본능적인 행동 탓에, 겨우 살았다.
가장 아픈 것은 5대의 위성 전화가 파괴되고 말았다. 이런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 유일하게 세계 지부와 소통하는 방법은 위성 전화뿐이었는데, 쿠잘을 죽이기 위해 퍼부은 두 발의 RPG-7의 폭발 여파에 휩쓸려 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나마 2대는 겨우 건져 자신이 지니고 있었다.
띠리릭, 띠리릭-
급히 뽑아 들고 보니 모르는 번호다. 미국에도 여러 무슬림 형제가 있지만… 모르겠다. 쿠잘 외에는 번호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받든가, 끊든가 결정을 해야 한다.
동굴 밖 둔턱에서 스스로 커피를 내리던 오사마 빈 라덴이 부관을 보고 말했다.
“받아 보게.”
“칼리프, 아직 누군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허허허. 그렇다고 안 받으면? 달리 방법이 있던가? 받아 봐야 누군지 알 것 아닌가?”
그제서야 버튼을 누르는 부관. 다만 먼저 입을 열지 않고 상대방의 말을 기다렸다.
[나, 마이다스 킴이다. 오사마 바꿔라.]
“…….”
[너 같은 놈 상대할 시간 없으니까, 물어봐. 받을 건지, 말 건지.]
“말해라, 내가 오사마 빈 라덴이다.”
[그래, 네 목소리도 잘 기억해 두마. 너를 아는 모든 사람들, 너와 인사라도 나눈 적이 있는 사람들은 다 죽여 줄 테니 나대지 마. 지금은 너 따위를 신경 쓰고 싶지 않다. 빨리 바꿔라.]
잔잔한 말인데, 그것도 정확한 사우디아라비아 파슈툰족의 말인데, 높낮이도 없는 이 말… 한 단어, 한 단어가 머리속에 쿡쿡 박히는 이유가 뭘까? 부관은 전화 받은 것을 바로 후회했다.
“누군가?”
“칼리프…….”
“이리 주게.”
부관은 전화를 넘겨주는 손의 잔떨림이 쪽팔렸다. 칼리프는 이미 짐작하고 있는 것이다.
“오랜만이오, 마이다스 킴.”
[그래, 오사마 빈 라덴.]
“무슨 일이오? 우리가 안부 인사 나눌 사이는 아니오만.”
[간단히 말하지. 어제 너희가 죽인 쿠잘 하비브 시신과 오래전 죽은 그의 동료들의 시신을 넘겨라.]
“…왜? 내가 그 건방진 말에 따라야 하는 거지?”
[살려면… 따라야 할 거다.]
“……!”
[지금 너와 통화를 하기 위해서 미국의 위성 3대를 움직였어. 고개를 동남쪽으로 돌려 하늘을 봐.]
“…….”
[그게 새 같아? 마음 같아서는 당장 헬파이어를 네 입에 쑤셔 박고 싶지만… 참는 거야, 개자식아.]
“아직 어린 게 맞군, 여긴 천혜의 동굴 천지일세. 헬파이어를 쏘려면 말없이 쐈어야지. 나를 죽이기에는 늦었지 않나?”
[내가 할 줄 몰라서 그랬을까? 너 같은 양아치 테러 분자 수백의 모가지와 바꿀 수 없는 내 식구의 시신을 찾고자 하는 거다. 동굴로 피한다고? 그 동굴들이 서로 뚫려 있다던? 입구가 무너지면 살아날 재간은 있고? 병신아.]
“…….”
[헬파이어 4발씩 장착한 글로벌 호크 3기면 그 일대의 지형을 바꿀 수도 있어. 거기 개미 떼처럼 이사를 준비하는 너희들은 한 명도 살아날 수 없다.]
“미국이 숨겨 놓고 공개하지 않았던 글로벌 호크 무인기(RQ-4)까지 동원한 이유가 고작?”
[오사마, 다시는… 내 식구를 모욕하지 마라. 내 마음이 언제 변해서 폭격 지시를 할지 모르니까, 개자식아.]
오사마 빈 라덴은 침착하게 대답을 하는 것 같지만 심장이 쫄깃거렸다. 진짜 잘못 건드렸구나. 이놈은 미국 그 자체다. 저런 전략 병기를 마음대로 동원할 정도였어.
[모가디슈에서 보내 준 선물도 잊지 않고 있지. 그래도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았어. 내 식구 중 죽은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도저히 참기 힘들다. 결정해. 시신을 즉시 넘기든가, 거기서 떼 몰살당하든가.]
“쿠잘의 시신은 넘겨줄 수 있다. 하지만, 앞서 간 체첸 동료들 시신은 우리에게도 없다.”
[…알았다. 쿠잘의 시신이라도 넘겨라.]
“킴, 내가 너를 어떻게 믿을 수 있지?”
[안 믿으면? 다른 방법은 있고?]
“맹세해 다오, 네 이름을 걸고.”
[간이 밴댕이보다 작은 새끼.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쿠잘의 시신을 넘겨주면, 적어도 일 년 간은 너를 건드리지 않으마.]
“시신을 넘겨주는 방법은?”
[너희들 영역 입구에 예멘 정부군 차가 도착해 있을 거다. 최대한 예를 다 갖춰서 정중히 보내다오. 이건 진심으로 하는 부탁이다, 오사마.]
잠시 후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하얀 천으로 뒤덮인 시신을 지고 산을 내려 가자 하늘에 떠 있던 세 기의 글로벌 호크가 사라졌다.
그러나 본부에 있던 인원들은 메뚜기처럼 흩어져 산지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오사마 빈 라덴도 그 무리 속에 섞여 모습을 감췄다.
‘다시는 저 새끼와 관련된 청부는 받지 않아야겠다. 진짜 살 떨리는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