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122화 (122/150)

122화 김양삼의 깡다구

김포공항은 한국의 관문이다. 거의 모든 국제선 항공기가 여기로 들어온다.

연 이틀, 김포공항의 관제탑은 죽을 맛이었다. 예상을 했었고 미리 통보가 된 상태라서 충분히 대비를 했건만, 공항이 너무 좁아서 다 수용하기 힘들 정도로 밀려드는 항공기.

하나하나가 다 각국 정상 아니면 최소 총리의 전용기다. 모두 대한민국 김양삼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는 것이다.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덕분에 이날 국제선 편수를 확 줄였다. 민간 항공사도 울며 겨자 먹기로 운항 스케줄을 조정해야 했다.

그런데.

-관제탑, 미합중국 에어포스 투.

-에어포스 투,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A10 활주로를 비워 두었습니다.

-관제탑, 우리는 조금 더 선회하도록 하겠습니다.

-…에어포스 투,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관제탑, 우리보다 미합중국 공군 1호기가 먼저 착륙할 수 있도록 조치 바랍니다.

미국 공군 1호기?

관제사들은 급히 항공기들의 고유 호출 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지금 김포공항 상공에는 총 5대의 항공기가 착륙을 위해 접근 중이다.

그중에 미국 대통령 전용기가 있다고?

편명만 통보받았을 뿐 이를 모르고 있던 관제탑이 발칵 뒤집혔다.

“관제관님, 이거 보고해야 합니다.”

“젠장, 갑자기 웬 날벼락이냐? 지금 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투가 공군 1호기를 위해 늦게 내리겠다는 말이네?”

“누가 탔는지 정확한 통보가 없습니다. 6명의 승객이라고만 밝혀 왔습니다.”

“에어포스 원이라고 하지 않는 걸 보면 대통령은 안 탄 게 확실한데…….”

“어떻게 할까요?”

“뭘 물어, 당연한 거지. 미국 부통령 일행이 스스로 순번을 양보한다는데. 서둘러!”

“그런데, 도대체 누굴까요?”

“알 것 같다. 그분이 오신 거다.”

“예?”

“슈퍼 코리안, 골든 보이, 그분이 아니면 누가 미국 대통령 전용기를 타겠냐? 부통령이 삼십 분을 더 기다리겠다고 양보할 사람이 달리 있을까?”

“…아!”

“야, 관제사 20년을 하면서 이토록 가슴이 웅장해지기는 처음이다. 먹먹하다.”

관제관의 눈에 습막이 서렸다. 둘로 쪼개진 조국, 졸지에 섬나라가 되어 버렸다. 당장 먹고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맸던가.

대한민국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가 태반이었다. 겨우 보릿고개라는 말이 없어지고, 88 올림픽을 통해 세계에 고개를 내밀었지만, 여전히 개발도상국에 불과한 대한민국.

지금은 세계의 어떤 나라도 무시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은근히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저분 하나로 인해서.

가장 먼저 착륙한 것은 K 미르 컴퍼니라는 영문 이니셜이 선명한 시혁의 전용기. 일사불란하게 내리는 인물들이 실로 범상치 않다.

동남아인 같은데… 또 다시 보면 약간 다르다.

중동인들? 러시아인? 다른 부류도 역시 헷갈리기는 마찬가지.

각기 30명씩, 총 60명이 내리더니 내미는 미합중국 여권. 입국 심사관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입국 스탬프를 찍었다. 그분의 일행이라는데 뭘 따져?

다음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 미합중국 공군 1호기, 미국 대통령의 전용기가 내리고 일행이 내리기 시작했다.

시혁을 필두로, 공사홍 부회장, 산드라 비서실장, 박하송 대표, 윌슨 경호실장, 김보성 수행팀장까지 6명이 입국장으로 향했다.

부통령 일행을 맞이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외무장관은 갈피를 못 잡고 허둥거렸다.

도대체 누굴 영접해야 하는 것인지? 공식 사절로 방문하는 부통령? 아니면 공군 1호기를 타고 온 김시혁?

외무장관이 망설이는 사이, 시혁 일행은 어느새 입국 심사관 앞에 섰다.

“수고하십니다. 여기 여권.”

“…저, 귀빈실은 저쪽인데요?”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귀국하는 데 여기로 와야죠. 입국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격했나 보다. 유리 칸막이 너머에 앉아 있던 여성 입국 심사관은 급히 스탬프를 찍은 여권을 공손히 일어나 건네줬다.

“고맙습니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영광이예요, 김시혁 회장님. 고국에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제서야 헐레벌떡 달려온 외무장관이 땀을 닦으며 말했다.

“김시혁 특보님, 공식 환영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잠시 헷갈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장관님, 저는 귀빈으로 초청받은 사람이 아니예요. 그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님 취임식을 보고 싶어 개인적으로 온 겁니다. 바쁘실 텐데 일 보십시오. 괜찮습니다.”

“저, 저 나중에 대통령 각하께서 아시면 경을 칠 겁니다. 부디 제 사정을 헤아려 주십시오. 곧 부통령의 에어포스 투가 기착합니다. 같이 귀빈실로 가시는게…….”

“장관님, 대한민국의 입국 심사관께서 적법한 절차에 의해 입국을 허가했습니다. 저는 조용히 들어가겠습니다. 부디 특별 대우 할 생각 마시고, 우리 일행들 입국도 조속히 심사 바랍니다.”

아! 이런 분이었구나. 그래서 세계가 이분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하는 것이었어. 여성 심사관의 눈에서 하트가 연심 뿜어져 나왔다.

드디어 돌아왔다, 내 나라 대한민국으로.

* * *

하지만 시혁은 취임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박하송의 할머니, 한국 주식시장을 주름잡았던 백 할머니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접한 시혁은 일행들과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다.

평양 대지주의 딸로 태어나 유학을 갔다 왔던 분. 객장에서 항상 타임지를 정독하던 최고의 인텔리 여성, 백 할머니.

한국 최초의 슈퍼 개미.

1960년대 한국 증시의 시가 총액이라고 해 봐야 1,000억 원 내외였다. 당시 백 할머니가 운용한 금액이 300억 원이었으니, 그야말로 한국 증시의 30%가 백 할머니 손에 좌지우지되었다.

그런 분이 영등포의 작은 병원 6인실 병상에 누워 있었다. 평소 가진 재산의 90%를 사회로 환원시킨 후 유일한 혈손 박하송에게 정확히 10%만 남긴다고 공언하셨다.

10%라 하지만 작은 돈이 아니다. 그래도 누가? 어느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래 놓고 정작 본인은 대학병원의 특실도 아닌 이런 곳에서 삶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을까?

“할머니!”

“…왔구나, 내 새끼들.”

“네, 할머니 시혁이도 왔습니다. 얼른 일어나서 수구레 국밥 잡수러 가셔야죠.”

“흘흘흘, 한번 맛봤으면 됐지. 영감도 맛있게 먹었을 게야. 네 덕분에 행복했다.”

“쓰으, 씨이… 할머니, 지금이라도 한국대 병원으로 갈까?”

“아서라, 하송아. 다 부질없다. 거기 호화로운 병상에 눕는다고 내가 살아난다더냐? 갈 때는 어차피 빈 몸인 것을.”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미안해, 할머니. 나 혼자 잘난 체하느라 너무 늦게 왔어.”

“아니다, 내 새끼. 여기서도 너희들의 소식은 다 듣고 있었어. 장하다, 큰일 하느라 바빴겠구나.”

“…….”

“시혁아, 하송이랑 할미 손 좀 잡아 주련?”

시혁과 하송은 목이 메여 말을 할 수 없었다. 원장에게 들었다.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걸. 할머니가 워낙 완강히 연락을 못 하게 했다는 말도. 애들 바쁜데 방해하지 말라 하셨단다.

150센티미터의 단구, 오랜 병원 생활로 더 작아졌다. 그래도 깔끔하게 머리를 빗어 넘겨 쪽을 지으신 모습. 눈빛이 영롱하다.

희광반조다. 누구나 운명하기 전에 한번 몸의 생기가 살아나는 그 시간.

“하송아, 할미가 다시 말하지만 너는 절대 독자적인 사업할 생각 말거라. 주식도 하지 마라. 너하고는 상극이다. 알겠니?”

“끅끅! 알았어, 할머니.”

“그리고 시혁아, 너는 하송이를 형제처럼 생각하고 평생 보살펴 주렴. 할미의 마지막 부탁이다.”

“네. 할머니, 하송이는 저와 한 몸입니다. 같은 날 죽지는 못해도 끝까지 같이 하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래그래. 처음에는 네 관상과 사주를 보고 놀랐다. 몸은 하나인데 영혼이 둘이니 말이다. 어찌 보면 귀신 같고, 또 어찌 보면 비로자나불이 보이기도 하고… 결국 운명인 것을… 고맙다, 시혁아.”

아아아… 할머니는 보셨구나, 내가 다시 살고 있다는 것을.

“여기, 받거라.”

“……?”

“내 변호사 녀석 전화번호다. 할미 가거든 만나 보거라. 그리고 네 옆에 두거라. 최소한 도둑질은 안 당할 거다.”

“…….”

“어쩌면 너에게 주는 것이 맞겠다 싶어 정리해 두었으니 그 아이와 상의하거라. 그리고 할미는 화장해서 임진강에 뿌려다오. 대동강이면 좋겠다만, 지금은 갈 수 없으니…….”

뒤에 시립한 원장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라는 뜻이다.

“할머니, 죄송하지만 마지막 말씀은 이행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가 꼭 할아버지 옆에 같이 누우실 수 있도록 해 드릴 게요.”

“흘흘흘, 그래. 너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영감이 불러, 어서 오라고. 이 모진 목숨 너희들 보려고 버텼나 보다. 이제 되었다, 하송아, 시혁아.”

할머니의 손이 툭 떨어졌다. 눈물을 닦느라 할머니 손을 잠시 놨던 하송은 다시 붙잡고 엉엉 울었다. 시혁도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전설 한 자락이 별똥별처럼 지고 말았다.

* * *

“아버지, 이 얼마나 건방진 짓입니까?”

“고마 시끄럽다, 친구 할머니 상주를 같이 했다자나.”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감히 아버지 취임식에 불참한다는 말입니까? 건방진 새끼.”

“이놈이… 고마하라니까. 사정이 있었겠지. 그만큼 친한 친구잖냐? 백 할매, 니나 내도 뻔히 아는 사인데.”

“아버지, 아닙니다. 자기가 아무리 국제적인 거물이 되었다 해도 여기는 한국입니다. 아버지는 대통령이시라고요. 한번 무시를 당하면, 다음에는 깔보게 되어 있습니다. 혼쭐을 내 줘야 정신을 차릴 겁니다.”

“너… 갱고(경고)하는데, 함부레 김시혁이 건드리지 말그레이. 그러다 한 방에 훅 가는 기다. 글마는 진짜 용이다. 이무기가 아이라꼬. 알것나?”

“…….”

“싸움도 체급이 맞아야 해 보는 기지. 무제한급한테 우리 같은 모스키토급(45kg이하)이 뎀비 봐야 코피 난다. 개털리는 건 우리다.”

차남 김형철에게 유달리 각별한 애정을 과시하는 김양삼도 시혁과는 반목하지 말기를 당부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시혁이 숫사자라는 것을.

김형철이 씩씩거리며 나가자, 김양삼은 인터폰을 눌렀다.

“들어오라 캐라.”

“네, 대통령 각하.”

미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들어서는 한 사람, 국방부 장관이다. 겨우 취임한지 며칠 됐다고 국방장관을 호출했을까?

“어서 오소, 장관.”

“부르셨습니까? 각하.”

“불렀으이 당신이 왔지.”

“…….”

“여기 자료를 보니까, 1980년부터 1993년 지금까지 희한한 일이 있었네.”

“무슨……?”

“육군 참모총장 6명 중에 5명, 보안 사령관은 10명 전원, 수방 사령관 10명 중에 8명, 청와대 경호실장 5명도 전원, 육본 인사참모부장 15명 중에 13명.”

“아직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각하.”

김양삼은 정신 못 차리는 장관을 향해 대답해 줄 생각이 없다는 듯, 잠시 턱을 만지다가 다시 물었다.

“군인들은 그만둘 때 사표를 내는교?”

“아닙니다. 군대에서는 사표 내는 일이 없습니다. 인사 명령에 따라 복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껏 늘 그래 왔습니다.”

“아, 그래요? 그라모 됐구마는.”

“제가 아직 각하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응, 별거 엄고, 내가 육참 총장하고 기무 사령관을 오늘 바꿀라 캅니다.”

“……!”

“여서 고마 전화하소, 그만두라꼬.”

“각하! 그리 극단적으로 해임시키면 군부의 반발을 부를 수 있습니다.”

“반발? 해 보라 카이소.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릴 수밖에 없는 기라요.”

“혹시, 며칠 전에 처음으로 참석하신 사관학교 임관식에서 ‘국군의 명예와 영광을 되찾아 주는 일에 앞장서겠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맞아요. 상명하복을 지켜야 할 군인들이 서로 작당해서 패거리 만들고, 즈그끼리 자리 나눠 먹고 하는 기 정상이교? 아까 말한 요직이 모두 그짝 아니냐 이 말인 기라, 아인교?”

“맞긴 합니다만, 워낙 급작스러워서.”

“씰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바로 육참 총장하고 기무 사령관한테 지금 이 시간부로 모가지 날아갔으니, 고만두라 전화하이소.”

깡다구는 진짜 짱이다.

취임 11일 만에 김양삼이 칼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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