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123화 (123/150)

123화 하늘회 척결

하늘회.

전도환이 육사 생도 시절 만든 사조직의 이름이다. 우수하고 똑똑한 생도들을 끌어모아 만든 조직? 턱도 없는 미화 작업으로 그리 인식이 되었을 뿐.

진짜 찌질하고 못난 열등생들이 모인 친목 단체였다. 전도환도, 노태후도, 내신 성적으로 입학한 실업계 출신들. 역대 육군 사관학교 졸업생 중 최악의 자질들을 가진 못난이들.

실상 육사의 모범생과 수재들, 즉 학구파들은 청백회라는 별도의 모임이 있었다. 거기다 전도환의 11기 이전 선배들은 북한군과 처절하게 싸웠던 백전의 노장들.

결국 중간에 끼인 찌질이 육사 운동부가 자기들끼리 정신 승리 하려고 모인 게 하늘회였다.

그러다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뒤집어 엎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난세가 영웅을 낳는다고?

아니, 난세는 간신을 낳기 더 쉽다.

박장희의 5.16 군사정변이 발발하자, 전도환은 다음 날 육사에 나타나 생도들을 선동했다. 지지 성명을 발표하자고.

당시 학구파였던 청백회 멤버들이 거의 육사 교수를 하던 시절, 청백회 출신 교수들은 일제히 반대했다. 그러자 바로 한 명씩 끌려 나가고… 육사 18기, 19기, 20기, 21기 재학생들의 지지 시가 행진이 있었다.

별것 아닌 것 같았지만, 결정적으로 5.16 쿠데타를 완성시킨 사건이었다. 정복을 차려 입은 사관생도들이 찬성한다고 시가지를 행진했으니.

이 공로로 전도환은 박장희의 비서관으로 보임되었다. 출세욕이 넘치던 전도환에게 날개가 달린 것이다.

나중에 박장희가 전도환에게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하자, ‘각하, 군대에도 각하를 지킬 충성스러운 사람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개드립을 쳐 박장희를 감동시켰다.

이때부터 박장희의 비호 아래 군의 요직은 하늘회가 아니면 진급할 수 없는 시절이 되었다.

하늘회 모든 이들의 특징이 야전군 지휘 경험이 극히 적었다는 것. 참군인들은 최전선을 전전하는 동안 이들은 후방에서, 서울 근방을 빙빙 돌며 알짜배기 요직을 다 먹어 치운 것이다.

이게 군인이냐? 정치인이지.

실로 80년대는 하늘회의 세상이었다. 거칠 것이 없었다. 박장희가 부하의 총에 사살당한 후, 두 명의 대통령이 하늘회에서 나왔다. 전도환, 노태후… 더 말해 뭐 하리.

그랬던 하늘회가 날벼락을 얻어맞기 시작했다.

“예? 장관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렇게 되었어요. 이 시간부로 육참 총장에서 물러나세요. 국군 최고 통수권자의 명령입니다.”

“……!”

“그리고 후임 총장은 ‘오늘’ 취임할 것이니, 바로 방을 빼시오.”

허를 찔렸다.

해임 통보를 한 지 4시간 만에 새 총장을 임명해 버렸다.

쿠데타가 말처럼 쉽더냐?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하고, 작전을 세워야 하며, 병력 동원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졸지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총장은 어이가 없었다.

그만큼 원성이 많았다는 반증이다. 지금 총장이 ‘돌격, 앞으로!’ 한다고 명령을 들을 군대가 있을까?

“부관, 뭐 하는 짓이야? 전국 기무 부대장들 다 모인 자리에서?”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즉시 바꾸라는 장관의 전화가 와 있습니다.”

기무 사령관은 전국 기무 부대장을 모아 놓고 정세 변화에 대한 대책 회의 중에 장관의 전화를 받으러 나가야 했다. 청와대 직통 전화기는 자신의 방에 있으니까.

잠시 후 돌아온 기무 사령관.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40명의 각 군 기무 부대장들은 정색하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뭔가 불똥이 떨어질까 봐 조심하는 것이다.

“음, 크흠, 커험. 민망하지만, 오늘 회의는 참모장이 주재하도록.”

“…….”

“본관은 이 시간부로 기무 사령관직을 그만둔다. 아니, 대통령 각하께서 보직 대기를 명하셨다. 후임은… 참모장, 당신이다. 아! 죄송합니다. 이제 신임 기무 사령관이 되셨네. 회의를 계속 주재하기 바랍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참모장은 멍한 얼굴로 사령관을 바라보았지만, 변한 건 없었다. 대통령이 명령한 이상 이제 자기가 기무사령관이다. 그동안 하늘화 멤버라고 기고만장하던 사령관은 퇴임식도 없이 처량하게 회의실을 나섰다.

총장이 별 4개, 기무 사령관이 별 3개, 단숨에 별 7개를 떨어뜨렸다. 포도도 아닌데.

그리고 며칠 뒤, 장관이 소집한 중장급 회의.

운명을 짐작한 듯, 특전 사령관과 수방 사령관이 불참하자, 이를 빌미로 당일 해임시켰다. 전처럼 당일 후임자를 임명했다. 악 소리도 못 하게 계획한 것이다.

1차, 2차 숙청에서 13개의 별이 떨어졌다. 육참 총장, 기무 사령관, 특전 사령관, 수방 사령관을 먼저 날린 것은 이들이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주요 보직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기세를 타 버린 상황이다. 여기서 더 버텨 봐야 호응해 줄 군 내 세력이 없는 것이다. 만약, 혼자 병력을 움직인다면, 저 부관부터 머리통에 총을 당길 것이다.

김양삼은 대통령이 되자 그 어떤 것보다, 국정의 최우선 과제를 하늘회 척결로 잡았다.

절친한 친구 사이인 변호사 한 명과 모 군단 기무 부대장 출신의 예비역 중령 한 명. 이들이 모든 계획을 수립한 비선의 실체였었다. 딸랑 두 명.

장관도, 차관도, 비서실장과 국방 비서관도 일절 배제한 비밀 작전인 셈이다.

군인들이 쓰던 속전속결 작전처럼 칼을 휘둘러 버린 김양삼 대통령. 설마 취임한 지 11일 만에 칼춤을 출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 * *

“좀 쉬거라, 너희들 쓰러지겠다.”

“아닙니다, 할아버지. 저흰 젊잖아요.”

“그래, 이제 사십구재를 다 마쳤다. 돌아가야지?”

“예, 미뤄 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국내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김양삼 대통령 한번 안 보고 갈 테냐?”

“그냥 가겠습니다. 듣자 하니 하늘회를 쓸어버렸다면서요?”

“응, 그야말로 폭풍처럼 밀어붙이더구나. 대단한 배짱이다.”

“그 양반, 깡다구는 최고죠. 정책도 거침없이 할 겁니다.”

“그게 장점일 수도 있다만, 자신의 발등을 찍을 수도 있다. 그게 걱정이다.”

백 할머니의 사십구재를 올리는 절까지 찾아온 정조영 회장과 시혁은 산길을 걸으며 도란도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누가 보면 친조손 사이로 볼 것이다.

“정희 씨에게 당부한 거, 다 처리하셨어요?”

“그래, 조금도 없다 그러면 더 이상할 것 같아서 쬐끔 남겨 뒀다. 그 정도야 신고하고 세금 내면 되겠지.”

“잘하셨습니다.”

“우리 나라 실정에서 그렇게 급작스럽게 금융 실명제를 도입하면, 반발이 만만치 않을 텐데… 또 기업 생리상 비자금은 필요악 아니더냐? 혼란스러울 거다.”

“아뇨, 그건 할아버지가 잘못 판단하신 겁니다. 제도란 누가 혜택을 받는가, 누구에게 손해인가, 즉 대상에 따라 유불리가 나뉘기 마련이거든요. 모두 만족하는 제도는 세상에 없습니다.”

“네 말은, 일부 계층 빼고는 전혀 상관없다?”

“그렇기도 하지만, 사회가 건강해집니다. 조금씩 금융 비리나 기업들의 검은 돈이 줄어들겠지요. 대다수 국민은 어차피 실명으로 거래합니다.”

“그런데 할애비에게 알려 준 이유는 뭐냐? 나야말로 대한민국의 대표 재벌인데.”

“제 할아버지니까요. 모순적인 말이지만, 저는 때에 따라 변하는 제 정의감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모른다면 몰라도 뻔히 알면서 알량한 정의감 때문에 망설이는 게 더 부끄러운 일이죠.”

“그래, 그래. 그런 거다. 네 사람을 철저히 보호하는 것. 그런 게 너를 향한 사람들의 충성심을 이끌어 내는 거야. 사회정의니, 도덕이니 하는 겉치레보다 내 사람만은 무조건 지키는 것… 네 말대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

몇 발자국 뒤에서 따라오던 김보성이 전화를 받더니 옆으로 붙어 선다. 또 시작됐구나.

“누굽니까?”

“비서실장이었습니다.”

“용건은?”

“한번 뵙고 싶답니다.”

“실장이요? 아니면 대통령이요?”

“그걸 명확하게 특정 짓지 않네요. 제가 재차 물었습니다만.”

“어디서 보잡니까?”

“그게… 청와대가 아니라 소공동 호텔로 와 달라 합니다.”

옆에서 듣던 정조영이 끼어들었다.

“대통령은 아니고, 그렇다고 실장이 너를 보자고 할 등급은 아니라는 걸 알면서 요청할 리도 만무하고… 이상한걸?”

“할아버지, 배웅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실장을 만나려고? 득 될 게 없는 일이다.”

“저를 청한 게 누군지 알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제 스탠스를 확실히 정하려면 한번 보기는 해야겠습니다.”

시혁의 눈빛이 스산하게 변했다.

* * *

“어이구, 귀한 분을 여기서 뵙습니다. 그려.”

어쭈? 일어나지도 않고 앉아서 인사를?

“안녕하십니까? 취임식에 못 가서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부친께 전해 주십시오.”

“부친?”

“네, 부친.”

“김시혁 씨, 이미 개인 김양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그리 불러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는 당신은?”

“뭐? 당신?”

“대통령 본인이라면 몰라도, 그 아드님이 무슨 자격으로 나를 부른 건가? 당신이 9급 공무원이라도 된다면 또 이해하겠다. 최소한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당신은 이도 저도 아닌 민간인 아닌가?”

“……!”

“보자고 청한 비서실장은 보이지도 않고, 이런 큰 호텔 룸을 차지하고 앉아서 손만 들어 인사를? 나는 적어도 여러 회사를 가진 그룹의 주인에, 미국 대통령의 특보라는 공식 직함도 있어.”

“…….”

“너는?”

“말 조심하는 게 좋아, 김시혁. 여기는 대한민국이다, 미국이 아니라고.”

“그래서? 충분히 무서우니까, 말조심은 당신이나 해. 내가 심장이 약해서 누가 큰소리만 쳐도 떨리거든.”

“이익! 당장 너를 잡아 처넣을 수도 있어.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있나? 경찰과 검찰, 안기부, 국세청을 몽땅 붙여 탈탈 털어 볼까?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병신, 여기서 전화를 하면 미국 대사가 내 미국 여권과 시민권 증서를 가져올까, 안 올까? 내기할래?”

“……!”

참 한심한 일이다. 저런 모지리가 개입하고, 대통령 옆의 간신들이 뭉그적거리고, 그 모두가 쓰레기 같은 기업에게 이용당한다.

그 덕분에 아무 죄도 없이 묵묵히 일만 하던 국민들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또 일을 저지른 놈들은 돈을 숨기기 바쁘지만, 국민들은 손가락의 반지와 장롱 깊숙이 모셔 놨던 금붙이를 바친다. 이걸로 국가의 빚을 갚는 데 보태라며.

“김시혁 씨, 나는 당신과 싸우려고 보자고 한 게 아닙니다. 제 행동이 기분 나빴다면 사과드리죠.”

그제서야 슬그머니 소파에서 일어나 손을 내미는 이 작자… 김양삼 대통령의 차남 김형철이었다. 장남은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가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일체 아버지의 정치 일정에 개입한 적도, 관여한 적도 없었다. 권력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이 작자.

시혁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나름 아버지를 보필하며 정책과 여론조사 분야에서 꽤 뛰어난 능력을 보인 사람. 당시의 주먹구구식 여론조사 형태를 뛰어넘는 첨단 기법을 도입한 사람이기도 했다. 어쩌면 김양삼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정치적 동지일 수도 있다.

“그래요. 그 사과 받아들이죠. 하지만 악수는 됐고, 시간 아낍시다. 아시다시피 나는 공식적으로 할 일이 많은 처지라서요.”

끝까지 엿을 먹이는 시혁.

너는 백수에 야인이지만, 나는 공적인 자리에 있는 몸이다. 빨리 용건이나 털어라… 이 소리다.

“내가 김시혁 씨에게 관심이 많아요. 안기부의 파일도 받아 보았소. 대단한 일을 했더군. 인정합니다.”

“사설은 뺍시다. 제가 타고 온 미 공군 일호기가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거든요.”

“…….”

“김형철 씨, 한 가지 충고를 하죠.”

충고? 나 소통령 김형철에게? 더 참으면 병신으로 보겠구나.

“보자 보자 하니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보군. 당신, 미국에서 평생 살 게 아니라면 기고만장하지 마시오. 그나마 아버지께서 당부한 게 있어 지금 참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라오.”

시혁은 다리를 꼬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잘 피우지 않지만, 이럴 때 안 피면 언제 피랴. 가슴속에서 들끓는 이 분노를 잠재우는 데 담배만 한 것도 없다.

“권력이라는 게 마약과 같아요. 휘두를 때의 쾌감, 또 그게 통하는 것을 보면서 점점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죠. 그런데 권력은 유한합니다. 그 유효기간이 지나면 약 기운이 떨어진 마약쟁이처럼 무기력해져요.”

“…….”

“산을 오를 때, 길을 잘 봐 둬야 합니다. 그래야 내려갈 때 실족사를 피할 수 있는 법. 지금 당신은 오로지 정상만 보고 가는 형국입니다. 장담하는데, 당신의 말로는 결코 좋지 못합니다. 지금 같은 행동을 계속한다면 말이에요.”

“…….”

“다음에 또 보려면, 더 겸손하고, 더 조심하고, 더 자중하시오. 혹시 철창 사이로 마주 보는 일이 없도록. 물론 철창 밖에 있는 사람은 내가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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