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128화 (128/150)

128화 악마와 빌런의 차이

“굿모닝! 여러분.”

“…….”

“안 반가워요?”

“어서 오세요. 마이다스 킴.”

“예, 의장님. 그리고 여러 정상 여러분. 푹 잤더니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잘들 쉬셨죠?”

“…….”

너무 뻔뻔했나?

이글거리는 눈동자에 회의실이 뜨거웠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시혁은 벌써 발갛게 구워졌을 것이다.

“…킴 특사, 우리는 고뇌의 밤을 보냈소만, 푹 주무셨다니 다행입니다.”

“아, 그러십니까? 나랏일 하시는 분들이야 어쩔 수 없죠. 저는 일개 특사라서… 하하하.”

저 입, 찟어 버리고 싶다. 비록 손발을 맞춘 처지라지만 영국 총리는 시혁의 느물거리는 말투에 욕지기를 참아야 했다.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사전에 통보된 분이 아니네요. 여기는 12개국 정상과 옵저버로 특사 한 분만 입장이 허락된 곳입니다.”

“네, 알고 있어요. 근데, 오래 끌 필요가 있나요? 제 전속 변호사 이현 씨를 소개하죠.”

“변호사?”

“네, 8조 달러를 어떻게 운용해서 유로를 발행할 유럽 중앙은행을 구성할 것인지, 지분 구조는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제가 행사할 옵션은 무엇인지… 결정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우, 우, 우리는 아직 동의한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만.”

“안 해요? 그렇다면 더 논의할 필요가 없겠군요. 모두 행운을 빕니다. 그럼…….”

여지를 안 준다.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저 인간은 우리의 속살을 너무 많이 봐 버렸다. 그렇다 해도 최소한의 명분과 체면은 세워 주는 것이 국제 외교의 기본 아닌가?

차가운 말을 확 던지고 진짜… 일어서?

어쩌라고?

가장 속이 타는 사람은 당사국,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

“특보! 마이다스 킴, 잠깐 기다려 주시오. 그렇게 벌떡 일어나 버리면 어쩌란 말입니까? 서로 심도 깊게 논의를 해 보자는 의도에서 한 말입니다. 진정하시오, 제발!”

“제 말을 왜곡해서 듣지 마십시오, 특사. 그런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당황한 존 메이저 영국 총리까지 팔을 붙들었다.

왜 이래? 당신 뜻대로 4강이 앞장서서 말을 맞췄거늘… 내 체면 좀 봐줘!

싸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기세와 선방이다. 죽는 한이 있어도 너는 가만 안 둔다는 살기를 뿜으면, 누구든 주눅들기 마련이다. 거기다 미친놈처럼 먼저 주먹을 뻗어 오면 전의를 상실한다.

미친놈이 확실하거든. 싸워서 이길 자신도 없는 판에 먼저 한 방 맞은 상대는 이미 싸울 마음이 천 리 만 리 도망간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마침표.

“그래요? 여러분도 법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수행원이 있을 겁니다. 다 부르세요. 우리 변호사가 제시하는 계약서를 검토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

“저는 일방적으로 나온 홍차 별로 안 좋아합니다. 아메리카노, 그것도 얼음 가득 채운 아이스로 좀 주세요.”

-유럽공동체(EC)를 넘어 유럽연합(EU)을 발족한다.

-EU는 출범과 동시에 모든 관세를 철폐한다.

-EU 가입국 국민은 상호 국경을 별도의 비자 없이 자유롭게 통행한다.

-EU 가입국은 6개월 내에 유로(Euro)라는 공용 화폐를 자국 화폐와 동일하게 사용하도록 한다.

-EU 가입국은 6개월 내에 유로를 발행할 유럽 중앙은행(ECB)을 창설한다.

-EU 가입국은 유럽 중앙은행에 각기 GDP에 따라 출자토록 한다. 단 총 출자 한계는 70%에 한정한다.

-유럽 중앙은행의 나머지 지분 30%는 K 미르 그룹에 할당한다.

-독일의 통일 국채 2조 달러는 전액 K 미르 그룹에서 인수토록 한다. 단, 이에 대한 원금 및 할인율에 대해 유럽연합이 공동으로 지급보증을 하도록 한다.

-본 합의서를 보충하는 구체적인 실행 계약서는 각 나라가 30년간 특급 기밀로 취급하여 비공개토록 한다.

이 발표는 하루를 묵혔다가 다음 날 전 세계로 타전 되었다. 그 하루 동안 월가는 실행 계약서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이 내용에 따라 향후 30년간 유로의 주인이 정해지고, 그가 바로 전 유럽의 황제로 등극하기 때문이다.

* * *

“30%?”

“그렇소. 30%.”

“이상하지 않아?”

“많이 이상하죠.”

“다 이긴 싸움판에서 왜 양보했을까?”

“킴의 속셈을 누가 알겠소, 그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 아니오?”

“돌겠네. 이거 어느 쪽에 배팅 해야 하는 거야?”

“우리도 오리무중이오. 섣불리 덤볐다가 한 방에 털릴 수 있거든요.”

“그때, 받아 보기 시작한 찌라시… 여기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단했던데?”

“글쎄… 찌라시가 상당히 내밀한 정보를 알려 주는 건 맞지만, 이걸 그대로 믿고 배팅한다는 게 또 쉽지 않죠.”

금융계의 수많은 별 중 단연 최고봉을 꼽는다면?

이구동성으로 한 투자은행을 가리킨다. 그 외에는 누구도 그런 찬사를 받을 존재는 없으니까.

JP 모건.

금융계의 황제로까지 불리는 찬란한 이름. 아직 상업은행인 체이스와 합병하기 전이었고 투자은행의 역할만 하지만, 그 자체로 대적할 상대가 없는 부동의 1위 은행.

최근 급격히 스타로 떠오른 메리웨더의 독일 국채 펀드 절반인 5천억 달러를 소화해 준 곳이기도 하다.

JP 모건의 현재 수장 로버트 모건은 강력한 경쟁 상대인 시티그룹 페니 하일로 회장과 머릴 맞대고 있었다.

“너무 찝찝해. 같은 유태인으로 지금 껏 입속의 사탕조차 나눠 먹던 FRB 의장과 위원들이 한결같이 침묵하고 있네. 그럴 사이가 아닌데 말이야.”

“로버트 모건 회장님에게조차 그러는데, 저에게 정보를 주겠습니까? 이번 FRB의 조치는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그 큰돈의 용처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한다? 10조 달러면 지금 월가의 전 자금과 맞먹는 금액이야. 그걸 승인하고 입을 다물어?”

“글쎄 말입니다.”

“미치겠군. 뭘 알아야 배팅을 하든지 말든지 결정할 텐데, 금융계에 들어온 이래로 이렇게 참담한 적이 없었어.”

“어쩌실 겁니까?”

“낸들 도리가 있나?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마이다스 킴과 친분을 유지하던가 아니면 그쪽에 사람을 심어야 했어. 답답하군.”

일개 펀드 매니저도 클릭 한 번에 수천만, 수억 달러를 배팅하기도 한다. 그러나 항상 하는 일에 특화된 선수들의 배팅과 회장의 결심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회장이 결심하면 전사적으로, 사운을 건 배팅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 판단을 못하겠다. 오죽하면 찌라시라는 음성 정보지를 거론할까?

고민은 깊어지지만 뚜렷한 해법이 없다.

* * *

다시, 다우닝가 10번지.

외관으로는 도저히 영국의 총리 관저라고 보기 힘든 건물이다. 그냥 인도와 접해 있는 이곳이 영국의 중심부라는 사실.

너무 협소해서 별도의 총리 집무실이나 책상도 따로 없다. 영국은 의회정치를 하는 나라, 총리는 거의 의회에서 살다시피 하는 게 일상화되어 있다.

급히 별도의 결재를 해야 할 때는 아무 사무실이나 들어가 사인을 한다. 그러면 그곳이 총리 집무실이 되는 식이다.

실로 초라하기 짝이 없는 다우닝가 10번지.

오늘 이곳에 특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모두 자리를 조금 비워 줬으면 합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총리의 경호원에 의해 총리 관저에서 일을 보던 직원들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순간부터 여기가 총리 집무실이 되는 것이다.

어수선하게 재정부 일을 보던 사무실이 잠시 잠깐 사이에 텅 비고, 영국 총리 존 메이저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입장했다.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 프랑스의 사디 카르노 대통령,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라구엘 총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시혁.

“우선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장소가 조금 협소하지만 여기가 가장 외부의 눈으로부터 안전한 곳입니다.”

“아늑하군요, 좋네요.”

영국 총리의 말끝에 시혁이 화답하자, 다들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총리실 재무 직원들이 일을 보던 책상이었다.

그 흔한 파티션 하나 없이, 마치 스타트업의 어수선한 사무실 같다. 시혁은 영국의 이런 부분은 본받고 싶었다.

이게 전통이다. 대영제국 시절에도 영국 총리는 이곳에서 집무를 봤다. 화려하지도, 공간이 쾌적하지도 않지만 이들은 여기서 세계 경영을 했던 것이다. 사람이 중요하지, 장소는 상관없다는 자신감.

“킴 특사, 우리 모두 계약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별도의 이면 합의서를 요구하신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당연하죠. 제가 진짜 얻고 싶은 것을 아직 못 받았으니까요.”

“설마……?”

“아마 짐작하시는 것이 맞을 겁니다.”

“불가, 절대 불가하오. 주권을 넘기는 국가 지도자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맞습니다. 아무리 독일의 사정이 화급하고, 유럽 전체의 위기라 할지라도 이건 영토를 통째 넘기는 것과 같아요. 우리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영국 총리에 뒤이어 프랑스 대통령도 격노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여전히 무표정한 시혁. 팔짱을 풀더니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시원하게 내뱉었다.

“에이… 또 선을 넘으시네. 계약서 꼼꼼히 안 보셨나요? ‘각 나라들은 지분 구조에 대하여 각기 상의 후 정할 수 있다.’ 그 조항에 따라 지금 여기 마주 앉은 거 아닙니까?”

“그래도… 지분을 넘길 수는 없는 일입니다.”

“누가 넘기라고 했습니까? 잠시 맡기라는 거죠.”

“특사! 말 장난하지 마시오.”

“어허… 돈은 있습니까?”

“……!”

“물론, 영국 같은 경우는 어찌어찌 맞출 수 있겠네요. 그런데 그다음은? 거의 1조 달러에서 1조 5천억 달러를 빼내야 합니다. 결국 또 국채를 발행하시겠네?”

“…….”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유로를 찍는 유럽 중앙은행 출자금 명목으로 국채를 발행하면? 누가 사기는 한답니까? 설사 산다 해도 그 할인율이 얼마나 될까나? 의회 승인은 받을 자신 있고요?”

“…….”

요즘 부쩍 담배가 늘었다. 거의 하루에 한 갑 가까이 피우는 것 같다. 시혁은 다시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어쩌자는 말이오?”

“빙고! 그렇게 묻는 게 정상입니다. 지금부터 제 말을 잘 듣고 곱씹어 보시기 바랍니다.”

“…….”

“독일은 2조 달러의 국채를 예정대로 발행하세요. 전액 K미르 그룹에서 인수하죠. 단, 1년짜리로. 15% 할인율을 적용한 시장 가격으로요.”

“1년 물? 아무리 목이 말라도 그건 무립니다. 1년 내에 상환할 수 없다는 걸 알지 않습니까? 이건 최소한 10년 물이라야 합니다.”

“매년 연장할 수 있도록 옵션을 걸어 드리겠습니다. 너무 겁이 많으시네.”

“……!”

X발, 매년 15%를 받아먹겠다는 말이잖아? 이 도둑놈아!

독일 총리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욕을 삼켰다. 사채도 이렇게 높은 고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너무 하잖아… 진짜 너무 한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에게 각 1조 5천억 달러씩 드리겠습니다. 이건 아주 저렴하게 해 드리죠. 3%만 받겠습니다.”

“역시 1년 물입니까?”

이제 시혁에게 조금 단련이 된 듯 프랑스 대통령이 되물었다. 나쁘지 않은 것이다.

“아뇨, 그건 30년 물입니다. 거의 거저 드리는 거죠.”

“…왜?”

이 사람, 나를 빨리 캐치하는구나. 제법 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국채를 발행하세요. 일명 ‘유럽 중앙은행 투자 국채’를 말이죠. 그걸 제가 인수하겠다는 겁니다.”

“크크크, 당연히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보유하게 될 유럽 중앙은행의 지분에 대한 의결권은 당신이 가지게 되는 거고?”

“오! 역시, 유럽의 강국 프랑스 대통령이십니다. 맞아요. 제가 가집니다, 의결권 전체를.”

이제 모두 저 가증스런 마이다스 킴의 의중을 알았다. 저놈이 뭘 노리고 그 막대한 자본을 형성했는지도. 애초부터 저놈은 유럽을 통째로 먹을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겨우 3%에 30년 물을 인수하겠다고 선심 쓰는 척한 거야. 바꿔 말하면 30년 동안 유로의 주인이 되겠다는 거지.

완벽한 외통수,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에 갇히고 말았다.

그때, 슬며시 끼어드는 영국 총리 존 메이저.

“우리 영국은 거론하지 않았소이다만.”

응, 알아. 당신들은 그냥 놔 둘래. 어차피 당신들은 브랙시트(Britain+Exit, 유럽연합 탈퇴)를 할 거니까.

내가 왜 힘 빼면서 영국을 끌어안겠니? 너희는 섬나라 근성 그대로 갈라파고스처럼 살아라. 이 상황에 끼어 들어서 그냥 꿀 빨았다고 생각해.

시혁의 얼굴에 비로소 환한 웃음이 감돌았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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