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129화 (129/150)

129화 새롭게 움트는 음모

-EU 전격 발족, 전 세계 충격!

-12개 유럽 선진국 관세 철폐, 통행 자유, 단일 경제권 선포.

-주변 유럽 국가들, 너도나도 가입 의사 밝혀.

-군사동맹 나토에 이은 경제까지 한 몸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 경제 연합체 탄생.

-12개국 공동출자로 유럽 중앙은행 발족 준비.

여기까지는 있는 상황을 보도한 것이다. 정작 충격은 이제부터였다.

-유럽 중앙은행 창설 위원장에 28살의 젊은 여성 산드라 몽고메리 변호사 취임.

-하늘에서 떨어진 듯 등장한 산드라 몽고메리, 결국 유럽 중앙은행장으로?

-EU 가입국 분담금 배분 70%로 확정, 나머지 30%는 미합중국 특사 마이다스 킴에게 SOS.

-독일의 통일 국채 2조 달러 발행, 전액 마이다스 킴이 인수. 조건은?

-연이어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도 국채 발행, 인수자는 역시 마이다스 킴.

눈치를 깐 언론들은 심층 보도를 이어 갔다.

-유럽 중앙은행의 설립 위원장 산드라 변호사, 마이다스 킴의 비서실장으로 밝혀져.

-충격! 유로 발행권은 마이다스 킴의 손에 달렸다. 전 유럽의 구세주인가? 아니면 정복자인가?

-유럽을 한 손에, 총칼 대신 자금으로 유럽을 장악한 마이다스 킴.

하지만 프랑스도, 이탈리아도 논평을 거부했다.

오직 영국 존 메이저 총리만 자국의 BBC 기자와 약식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기서 나온 폭탄 같은 내용이 터져 나오면서 의외로 상황이 쉽게 정리되어 버렸다.

“총리님, 인터뷰를 자청하신 이유부터 들어 볼까요?”

“오해를 풀기 위해섭니다.”

“어떤 오해가 있었다고 보십니까? 세간에 보도된 내용들에 따르면 우리 영국을 포함한 EU 가입국 모두 마이다스 킴이라는 한 사람에게 경제 주권을 저당 잡힌 꼴이라 생각합니다만.”

“기자님은 일 년에 세금을 얼마나 내십니까?”

대답 대신 기자의 세금을 묻는 존 메이저 총리.

“…저는 연봉의 25% 가량을 원천 징수 하고 있죠. 저도 근로자니까요.”

“그렇군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이 세금을 50%로 올리면 찬성하겠습니까?”

“미친! 어느 국가도 그렇게 세금을 걷지는 못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그렇죠. 그런데 유럽 중앙은행 분담금을 납부하려면 세금을 그만큼 올려야 합니다. 그걸 국채로 대신하는 겁니다. 왜 말들이 많은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국채는 빚 아닙니까? 미래 세대가 30년 동안 갚아야 할 빚이라고요. 총리된 입장에서 그걸 정당화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30년 만기 국채의 최종 할인율이 3%에 불과합니다. 일 년으로 나누면 0.1%도 되지 않아요. 이런 금리 보신 적 있습니까? 영국은 지갑을 주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미래 세대는 공짜 돈을 써서 유럽 중앙은행 설립 지분을 확보했어요. 나쁜가요?”

“…….”

“물론, 세금을 두 배로 더 내겠다면, 이번 국채 발행을 즉시 중단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오! 끔찍한 말이군요. 당연히 후자를 택하죠. 총리의 탁월한 선택에 경의를 표합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래 놓고, 다시 칼침을 놓는 기자. 밥값을 하려는 몸부림이다. 이대로 총리의 칭찬 일색 기사가 나가면 웬지 쪽팔리겠지.

“그래도 은행장 후보가 된 산드라 변호사에 대해서 말들이 많습니다. 마이다스 킴의 비서실장 출신, 거기다 너무 젊은 여성을 내세운 건 잘못된 선택 아닌가요?”

“기자 양반, 그녀는 영국인입니다. 미국 국적도 가지고 있지만, 엄연히 영국에서 태어나 공부했고, 변호사 자격을 획득한 재원이예요.”

“총리님, 영국인이면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겁니까? 금융에 대한 경험이 일천한 30살도 안 된 무명의 여성을 추천한 것이 정당하다고 봅니까?”

여기서 잠시 숨을 몰아 쉰 총리, 물끄러미 기자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성을 압니까?”

“예……?”

“그녀는 산드라 몽고메리, 1차 대전의 영웅 몽고메리 장군의 후손이오. 자작 직위가 남성에게만 이어지는 지라 가문의 대가 끊겼으나, 그녀는 영국 명문가의 뼈대 있는 교육을 받은 훌륭한 여성이오. 다시는 그녀를 모욕하지 마시오.”

“……!”

또 한 번 난리가 나 버렸다. BBC의 보도가 나간 후 산드라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는 삽시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1차 대전 당시 롬멜과 맞짱을 떴고, 종전이후에도 나토의 부사령관을 역임한 몽고메리 장군의 후손이라는데, 누가 시비를 거나?

“왜요? 삼촌.”

“너, 영국에서 산드라를 주울 때, 다 알고 있었니?”

“당연하죠.”

“그냥 길가다가 간판이 보이니 들어가서 고용한 게 아니구나?”

“삼촌, 세상에 우연이란 없어요. 그리고 그런 우연은 다 스쳐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우연이 진짜 인연이 되려면 서로에게 가치를 증명해야 합니다.”

“흐음… 혹시 윌슨도?”

“그럼요. 청와대의 이상호 형님과 친한 CIA 한국 지부장에게 윌슨의 당시 처지를 전해 들었죠. 마침 최악으로 몰리고 있다길래 옳다구나 싶어서 낼름 주워 담은 겁니다.”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대단하다.”

“삼촌,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무슨 뜻이냐?”

“아무리 계획하에 줍줍했다 해도 제가 먼저 마음을 열지 않았다면 다 등을 돌렸을 겁니다. 진정한 우정은 서로 속살을 보는 거예요. 어떤 허물도 다 감쌀 수 있는 관계, 이렇게 마음으로 한번 맺어지면 절대 변하지 않거든요.”

“하긴 그렇다. 지금 누군들… 너를 대신해 불구덩이로 들어가지 않을까?”

이때, 급히 시혁과 공사홍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방으로 뛰어 들어온 박하송.

“헉, 헉… 시혁아, 지갑 내놔 봐.”

“이 새끼가 이젠 뻑하면 지갑을 달라네? 맡겨 놨냐?”

“잔소리하지 말고 내놔. 빨라앙!”

다급한 목소리에 시혁은 입맛을 다시면서도 지갑을 내줬다. 친구 좋다는 게 뭔가?

“씨… 현금이 이것밖에 없어?”

“미친놈아, 삼천 달러가 적어? 누가 현금을 다발로 들고 다닌다던?”

“아, 알았어. 장부에 적어 둬라. 나 간다!”

그렇게 벼락처럼 들이닥친 박하송이 다시 뛰쳐나가고. 삼촌의 표정은 어느새 야릇해졌다.

“삼촌, 저 새끼. 요즘 이상하지 않아요?”

“글쎄… 밖에서 낭패당하지 말라고 안에서 좀 야무지게 손을 봤는데, 그게 심했나?”

“엥? 무슨 손을 봐요?”

“흠, 흠, 그런 게 있어. 너는 모른 척해라. 거참… 이젠 이현한테도 개털리는 구나. 차라리 잘됐다. 쓴맛을 미리 봐야 해, 저놈은.”

하아… 알겠다. 내일 출국하면 산드라와 당분간 만날 수 없다. 그래서 뽕을 뽑겠다고 덤볐는데, 삼촌 후계자에게 탈탈 영혼까지 털리고 있구나.

저 멍청한 놈, 좋은 패만 잡으면 눈동자가 하늘보다 더 크게 열리고 숨을 몰아 쉰다. 반면에 나쁜 패로 뺑끼(거짓말)를 칠 때면 상대방 얼굴을 못 본다. 손톱도 계속 물어뜯고.

중삐리랑 붙어도 안 되는 실력. 윌슨과 산드라가 모를까? 둘은 이미 한통속이다. 눈빛만 봐도 무슨 패를 들고 있는지 서로 아는 경지. 거기다 삼촌에게 기술을 전수받은 이현까지 손장난을 치면?

돈이 문제가 아니지. 영혼이 탈곡기처럼 털릴 수밖에.

“지금까지 몇 장이나 받으셨어요?”

“음, 제법 된다. 십 년 간 연봉 포기 각서, 할머니 상속 재산 포기 각서, 노예 각서 그리고 신체 포기 각서는 세 장인가?”

아… 불쌍한 내 친구, 사홍이.

시혁은 차마 물어보지 못했던 민망한 질문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삼… 촌, 그 화투 기술 누구에게 배우신 거예요? 혹시 돌아가신 어르신께서 타짜?”

“아니, 아버님은 평생 화투를 만져 본 적도 없는 분이셨다.”

“그래도 스승님이 있었을 것 아닙니까? 혼자 득도 수련한 건 아닐 텐데.”

“너… 전혀 몰랐구나?”

“예……?”

“이거, 다 스님에게 배운 거야. 나는 쨉도 안 돼. 스님은 진짜 고수 중에서도 최고수거든.”

“…….”

“몰랐어?”

* * *

“허허허, 기가 막힌다. 말이 안 나와.”

“죄송합니다, 회장님.”

“아냐, 자네가 왜 미안해하는가?”

“이렇게 단기간에 거물이 되 버릴 줄 몰랐습니다. 손쓸 재간이 없습니다.”

“거물? 그 정도로 보나? 저건 괴물이야.”

“…….”

“내가 궁금한 것은 딱 하나일세.”

“…….”

“왜 가만두는 것이지? 저놈 힘이면 우리 삼송은 풍전등화 신세야. 마음먹는 순간 초토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야. 그런데 왜?”

“회장님, 그래도 우리는 천하의 삼송입니다. 제깐 놈이 아무리 국제적인 거물이 되었다지만, 우리도 그냥 당하지 않습니다. 그걸 모르겠습니까?”

“허허허, 농담치고는 별로 재미없군. 차라리 공룡은 개미를 먹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어. 10조 달러? 유로 발행권? 아예 차원이 다른 세계에 사는 존재 아닌가? 비교하는 것이 비참할 지경이야.”

“…….”

“우리 삼송그룹을 다 합해 봐야 93년 현재, 500억 달러 남짓일세. 그런데 저 놈은 10조 달러를 흔들고 있지. 200배… 야. 만약, 저놈이 정면에서 덤빈다면, 막을 방법은 있나?”

같이 자리한 이학소 사장과 백정태 과장. 이학소는 간간이 장단을 맞췄지만 백정태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왜 이 자리에 불렀는지 감도 못 잡았다.

지금 삼송은 제2의 변신을 시도 중이었다. 이건호 회장이 프랑크프루트 비상 경영 회의를 개최한 이래 전사적으로 혁신을 외치고 있었다.

그 유명한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라는 외침이 삼송의 체질을 통째로 바꾸는 변혁을 가져왔다.

지금껏 관례적으로 자행되어 왔던 생산 라인의 불량율이 삽시간에 줄어들었고, 특히 디자인 측면에서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었다. 거기다 R&D에 목숨을 걸고 투자를 집중시켰다.

이건호의 승부수가 던져진 것이다. 역시 이건호.

그때, 회장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보아하니 비서실에서 막으려고 했던 모양이다. 들어오려는 사람의 한쪽 손을 비서실 직원이 붙잡고 있었다.

회장과 경영전략실 사장이 밀담 중인데 누가?

“뭔가? 법무실장. 뭔지 몰라도 경천동지할 일이 생긴 모양인데, 들어오게나.”

“회, 회,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호흡부터 가다듬고 천천히. 그래서야 제대로 된 보고를 들을 수 있겠나?”

거물은 거물이다.

법무 실장이 큰일이라고 할 경우는 회장 자신의 법적인 문제, 아니면 그룹에 치명적인 소송이라도 들어왔을 경우뿐이다. 그런데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라 말한다.

“회장님,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백화엽 씨가 얼마 전 돌아가셨답니다.”

“뭐? 백화엽?”

“네, 벌써 사십구재까지 마쳤답니다.”

“하아… 우린 전혀 몰랐단 말인가? 사십구재가 끝날 때까지 전혀?”

“몇 년 전부터 완전히 세상과 연락을 끊으셔서… 그동안 부단히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만, 핸드폰도 안 쓰는 분이라.”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 이건호 회장의 고함이 방안을 울렸다.

“옛날 동방보험의 BW(신주 인수권부 전환사채)는 누구에게 상속되었나?”

“……!”

“그리고 용인 자연 공원 지분은?”

여전히 파랗게 질린 표정의 법무 실장이 부들부들 떨면서 몇 장의 서류를 이건호 앞으로 내밀었다.

“동명이인인지 모르겠으나, 요즘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김시혁이라는 사람에게 일체의 권한을 상속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아악!”

이건호 회장은 서류를 발기발기 찢고 또 찢었다. 더 이상 작은 조각으로 찢을 수 없을 때까지.

“이 개자식, 전생에 우리 삼송과 무슨 철천지 원한을 맺었길래, 이토록 앞길을 막는 거냐? 왜? 도대체 왜?”

“…….”

“다 나가! 이런 것조차 파악을 못한다면 비서실과 법무실이 무슨 필요가 있다고… 버러지들 같으니! 당장 나가!”

입이 열 개 아니라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평소 안기부를 능가하는 정보력을 갖췄다는 삼송 비서실과 법무실이 개똥으로 추락하는 순간이다.

모를 것이다. 시혁이 미리 역공작으로 삼송의 시야를 가리고, 엉뚱한 곳만 뒤지도록 했다는 사실을.

이학소도, 법무실장도, 엉거주춤 엉덩이를 들었다. 지금 저 노여움을 풀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일단 튀어야 한다.

그러나 백정태 과장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뭔가? 지금 다른 이야기 듣고 싶지 않아.”

“회장님, 독대를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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