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135화 (135/150)

135화 588의 천사

“삼촌, 우리도 재단을 하나 만들까요?”

“굿 아이디어!”

“어떤 재단으로 할까요?”

“쓰레기를 더할 필요는 없지.”

“예……?”

“재단답지 못한 재단, 설립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재단, 부를 대물림하기 위한 재단, 매년 자산이 늘어나는 재단, 빈 박스로 사진이나 찍는 재단이 쓰레기다.”

“하하하. 그렇겠네요. 우리는 달라야죠. 고민을 좀 해 주세요. 어떤 재단이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게 우리가 만들 재단의 설립 취지로 하겠습니다.”

공사홍은 지금껏 시혁의 집행권자였다. 처음 시혁의 능력을 보고 그렇게 마음먹었다. 자신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시혁이 가는 길에 뒷처리를 하고, 지시를 이행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 과정 중에 딱 하나 아쉬웠던 점.

그걸 시혁이 각성한 것이다. 두 손 벌려 환영할 일이지. 내 아이가 새로운 삶의 목표를 발견했는데.

“시혁아, 네가 전에 아마조네스닷컴의 제프 베이저스에게 그런 말을 했다. 돈에는 인격이 없다고.”

“네, 삼촌.”

“맞는 말이다, 돈에는 인격이 없다. 그걸 사용하는 사람의 인격이 돈에 투영될 뿐… 늦지 않았다. 깨달았으면 된 거지.”

“급하게 만들지 마세요. 또 이 재단을 책임질 인재, 맑고 투명한 영혼을 가진 사람도 찾아 주시고요.”

시혁과 공사홍. 영혼의 단짝.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를 너무 잘 안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엄청난 파워를 가진 존재가 될 재단의 설립이 첫 시동을 걸었다.

“삼촌, 하나 여쭤볼 게 있는데요?”

“응, 해라.”

“태식이에게 돈 보내셨죠?”

“응, 투자금이 필요하다길래.”

“뭘 믿고 그 허당에게 20만 달러나 덜렁 줬어요?”

“평생 책은 공짜로 보게 해 준다길래.”

“에게? 그게 전부?”

“너와 태식이는 좀 다르지. 너는 내가 없어도 상관없지만, 태식이에게는 필요하다, 보호자가.”

“……!”

“그래서 그놈이 원하면 뭐든 해 줄 생각이다.”

아! 공사홍의 이 절절한 사랑.

실로 불광 자비사로 가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고 시혁은 생각했다. 뒷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 대신, 90% 주식을 담보로 받았지. 태식이 몫에서. 아무래도 촉이 온단 말이다.”

“예… 에, 예?”

“아마조네스닷컴인지 뭔지 내가 인터넷 세상을 아는 것은 아닌데… 옛날부터 태식이 뒤치다꺼리를 하면 꼭 먹을 게 생겼어. 희한하더라. 그놈은 스님한테 쫓겨 부엌으로 도망을 가서도 꼭 공양주 할머니에게 누룽지를 얻어 냈거든.”

“……!”

“너처럼 스스로 만드는 복은 없다. 능력도 비교가 안 되지. 하지만 부스러기 재복은 타고 난 놈이다. 한 번은 절의 라디오를 분해하고 도망간 놈을 찾으러 간 적이 있었거든. 산 모퉁이에 주저앉아 있는 태식이를 발견했다.”

“그래서요?”

“씩씩거리면서 옆의 잡풀을 쥐어뜯고 있더구나. 그냥 사람들이 수없이 다니던 산길 소로 옆이었다.”

“…….”

“그런데 태식이가 뜯고 있던 그 잡풀, 산삼이었다.”

“헉!”

“웃기는 건, 산삼이라고 알려 주자 아무렇지 않게 말하더라. 아버지 매가 예전처럼 아프지 않다고, 더덕이라 말하고 드리자고.”

아! 태식아, 네놈은…….

“하하하, 귀신을 속일 수 있어도 스님이 그걸 모를까? 그냥 흘흘 웃더니 닭을 잡더라. 거기 넣어 푹 고은 후 너랑 태식이 먹였다. 도라지라 거짓말하고.”

“…….”

“하여튼 이상하게 그런 잔잔한 행운을 몰고 다니는 놈이 태식이였다.”

“저… 삼촌, 그렇다면 그냥 주시지. 왜 90%나 뺏었습니까?”

“시혁아, 태식이는 줄줄 흘리고 다니는 놈이다. 행운이 와도 고이지 않는다. 그냥 주위에 다 퍼 주고, 제 손에는 항상 쥐꼬리만 남을 거다.”

“그렇습니까? 삼촌의 뜻을 알겠습니다.”

삼촌, 탁월한 촉입니다. 나중에 총 시가 총액 2,200조 넘는 기업에 베팅하신 거예요.

태식의 90% 지분이면… 아마조네스닷컴의 9%. 지금 20만 달러를 던지셨지만, 나중에 그 돈이 200조가 됩니다, 200조!

아마 역대 최고의 잭팟이 될 것 같습니다.

“태식이는 물에 빠져도 사금을 쥐고 일어나는 놈이다. 하지만, 손바닥 사이로 다 빠져나가. 요상하게 자기 손에 남는 게 없어. 그래서 뺏어 둔 거야.”

태식이는… 그냥 운 좋은 놈이 아니라 멋진 삼촌까지 뒀구나.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으흐흥, 나는 아마조네스의 전체 지분 중 30%를 먹었거든. 단순 계산해도 600조네? 아이고, 배가 터질 것 같다.

* * *

청량리의 작은 어린이집. 특이할 게 없는 그저 그런 어린이집이다. 청량리 구름다리를 넘어 전농동의 한 모퉁이에 있었다. 아주 예전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이었던 것이 그나마 육교처럼 지어져서 다행인 곳이다. 그 구름다리 아래로 수많은 기차가 지나갔다.

그러나 이곳은 정말 특이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우선 새벽 일찍 문을 열고, 저녁에도 문을 닫지 않는다. 아이들이 다 돌아가야 문을 닫는 것이다. 거의 24시간 문을 연다고 봐야 한다.

이곳에는 청량리의 홍등가인 소위 588에서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가 대부분이다.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전농동 588번지 일대는 청량리역을 끼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사창가.

200개가 넘는 집창촌은 음지의 가장 밑바닥 생태계를 형성하기 마련이다. 깡패와 포주와 몸을 내던지는 여인들, 술에 절은 취객과 욕망을 풀려는 사내들까지 뒤엉켜 항상 범죄율 만땅인 곳이 여기였다.

그러나 여기 기생하고 있는 모든 이가 감히 범접치 못하는 장소가 하나 있었다.

‘희망 어린이집’

여기서는 깡패도, 포주도, 기둥서방과 윤락 여성도 온순해졌다. 하다못해 그들에게 기생하며 돈을 뜯는 비리 경찰조차 슬슬 기었다.

그들이 아이들을 시간에 관계없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여기였으니까.

여기는 천사가 운영하는 곳이니까.

“정식 엄마, 또 술 취했네?”

“헤헤헤, 미안… 그것보다 오늘도 늦었어. 쏘리!”

“안 돼! 저기 육아방 비었으니까 술 깰 때까지 눈 좀 붙여, 애 앞에서 술 냄새 폴폴 풍기면, 돼? 안 돼?”

“천사야,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는걸? 나이 더 먹기 전에 벌어야 저 새끼 학교라도 보낼 거 아니겠냐? 헤헤헤.”

“그래도 애한테는 최대한 표 안 내야지, 엄마잖아.”

“빌어먹을, 그 엄마라는 굴레만 아니었다면 벌써 튀었을 거야.”

“쉿! 애 깰라. 맘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정식 엄마도 잠시 눈 붙여. 물도 좀 마시고.”

“우리 새끼는 자?”

“응, 엄마만 눈이 빠져라 기다리길래 내가 업어서 겨우 재웠어.”

“…고마워, 여기 아니었으면. 아니, 우리 새끼… 벌써 포기했을지 몰라.”

매번 이런 식이다. 벌써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이다.

“뭐야? 이 아줌마는 또 이제야 온 거냐?”

“미친놈, 너는?”

“나야 항상 이 시간에 오잖아? 가게들 다 문 닫는 걸 보고 오려면 어쩔 수 없지.”

“이 깡패 새끼야, 너야말로 양심도 없냐? 나는 그래도 간간이 빨리 올 때가 있거든?”

“에이… 씨, 뒤질라고? 시끄러우니까 얼른 눈 붙여. 그래야 우리 천사님도 좀 쉬지.”

“흥이다.”

“천사님, 176번 가게에서 오늘 견과류랑 빵을 보내서 가져왔습니다. 내일 애들 간식으로 주세요.”

지금 희망 어린이집에는 아직도 다섯 명의 아이들이 잠들어 있었다. 모두 청량리 588에서 일하는 사람의 아이들이다. 이런저런 슬픈 사연으로 여기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 어린이집은 진짜 희망의 마지막 끈이다.

이 끈마저 끊어져 버리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이 모두 천사라고 부르는 한 여인.

슬리퍼를 신고 있는데도 키가 거의 180센티에 육박한다. 그렇다고 살집이 있는 것도 아닌, 개미허리에 늘씬한 8등신의 타고난 미인.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듯 아름답기 그지없다. 도저히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다.

권혜림이다. 언젠가 안기부에 근무하는 권덕용 과장의 옷을 챙겨 주던 그 여인… 권혜림이 청량리 588의 천사로 불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근처를 지나던 순찰차가 창문을 내리며 말을 건네왔다.

“혜림 선생님, 혹시 그 자식이 고름 죽이는 거 아니죠?”

“송 경장님, 걱정 붙들어 매시죠. 내가 여기 애를 맡겨 놓고 있는데 무슨 고름을 죽인다고 하십니까? 다른 놈이 얼씬도 못하게 할 테니, 일이나 보셔.”

“크크크, 하긴 그렇다. 여기 아니면 누가 싸질러 놓은 애들 봐주랴. 하여튼 잘해라. 괜히 혜림 선생님 미모에 눈 돌아가서 딴짓하면, 그땐 잡아 처넣기 전에 패 죽일 테니까.”

“내가 아무리 깡패지만, 천사님한테 그러겠수? 나도 똘마니들한테 매일 강조하오. 눈길만 돌려도 먹물을 파내 버릴 거라고. 괜한 걱정 말고 그만 가 보쇼.”

순찰차의 송 경장은 피식 웃으며 창문을 올렸다. 청량리 588의 독종이라고 소문난 놈의 아이가 저기 있으니, 그럴 만하다.

그런 송 경장의 순찰차 운전을 하던 순경이 눈치를 보더니 슬며시 말을 건넸다.

“송 경장님, 우리 혜림 씨는 진짜 천사 맞나 봅니다. 세상에 저런 여자가 이런 곳에서 애들 돌보며 있는 게 너무 비현실적입니다.”

“허! 우리 혜림 씨? 너도 마음이 있냐?”

“아이고, 제 키가 170밖에 안 됩니다. 언감생심, 오르지 못할 나무죠.”

“크크크, 그래. 일찍 꿈 깨라. 저런 천사는 숭배하는 거지, 소유하려면 안 돼.”

“한두 해 하다가 접을 줄 알았다고 다들 놀라더라고요.”

“그러네… 벌써 6년이나 됐구나. 혜림 씨가 우리 관내에 어린이집을 차린 게… 나이도 겨우 26밖에 안 됐는데 참 대단하다. 내가 정년퇴직할 때까지는 잘 지켜 줘야지.”

“그런데 말입니다. 저기 저쪽 코너에 차 한 대 보이십니까?”

“어디?”

“좀 이상한데요? 제가 몇 번째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 차가 항상 똑같은 자리에 서 있지 말입니다.”

“어라? 그러네……? 저 차 앞에 붙여 봐. 검문이나 해 두자.”

그렇게 송 경장의 차가 코너 변에 정차하고, 송 경장과 순경이 내렸다.

통통통-

송 경장이 운전석 문을 두드리자 창문이 스르륵 내려갔다. 송 경장은 평생 타 볼 일이 없는 현도의 그렌저 V6 최고급 모델이다.

“안녕하십니까? 청량리 전농동 파출소 송인호 경장입니다. 잠시 검문에 협조해 주십시오.”

“무슨 일이시죠?”

“아, 네. 별건 아니고요. 이 근방이 워낙 우범지대라서요. 서울 52 번호판이면… 아이고, 서초동 차네요. 부자 동네 사십니다. 두 분, 신분증 제시 바랍니다.”

“…….”

그러나 운전석의 사내는 신분증 대신 명함을 쑥 내밀었다. 뒷좌석에 앉은 이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송 경감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마치 너 따위 파출소 경장은 내 신분을 알 자격이 없다는 듯한 태도다.

“허어, 삼송그룹 비서실에 계시는 모양입니다. 명함은 됐고, 이제 신분증을 주셔야겠는데요?”

“경장님, 더 시끄럽게 만들지 말고 이만 가시죠. 그 명함으로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오늘 일진이 나빴다. 어쩌면 상대가 나빴을지도 모른다. 송 경장이 희망 어린이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송 경장은 권덕용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삼송 계열사도 아니고, 그룹 비서실에 있는 분들이 왜 여기 매번 주차를 하고 있는 겁니까? 신분증 제시하지 않으면 하차하셔야 합니다. 주세요!”

“…….”

“지금 정당한 공무 집행 중입니다. 삼송비서실 명함으로 두 분 신원, 확인 안 되거든요. 미안하지만, 신분증을 내지 않으면 파출소까지 동행해서 지문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걸 바라는 건 아니죠?”

그 말을 들었는지 뒷자리에 앉아 있던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비로소 얼굴을 마주한 송 경장은 순간 차고 있던 총을 뽑을 뻔했다. 온몸으로 소름이 확 끼쳐 올랐다.

“김 대리, 신분증 드려라. 공무 집행 중이라는 데 협조해야지. 여기, 내 주민등록증도 드리고.”

“……!”

퇴직을 앞둔 송 경장은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백마부대 출신이다. 피아 식별이 어려운 전장터에서 숱한 죽음을 보아 왔다. 이 사람에게서 그 냄새가 난다. 진한 피 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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