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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141화 (141/150)

141화 모든 비밀이 드러났다

“내가 꿈을 꾸나? 여기 미국 아닌가? 네가 마피아야?”

“응.”

“……!”

“조문호, 사람에게는 누구나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어. 그 선은 일종의 역린이야. 알아? 천하무적 영물 용의 목덜미에 거꾸로 달린 하나의 비늘, 그게 역린이거든.”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박하송!”

악을 쓰는 조문호를 바라보는 박하송의 눈빛이 정말 스산하게 변했다.

“옛날 한비자가 세난(說難) 편에 그랬지. ‘용은 유순하다. 그러나 그 목 한 자 아래 거꾸로 난 비늘이 있는 바, 그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죽는다.’라고 말이야.”

“…….”

“너와 삼송은 그 선을, 역린을 건드린 거야. 결론은, 반드시 죽는다… 이거지.”

“도대체 너와 김시혁은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 거냐? 내가 뭘 잘못했길래?”

“그걸 모르는 게 더 잘못이다, 조문호. 지금부터 딱 한 번씩만 물을 거야. 대답하고 안 하고는 네 자유다. 하지만 대답을 안 하면 나는 이 방을 나간다. 그다음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봐.”

한쪽에서는 수염이 무성한 사람이 품에서 둘둘 말린 뭔가를 꺼내 테이블에 늘어 놓고 있었다.

허걱! 펜치와 파랗게 날이 선 나이프 그리고 시가 커팅기? 저걸 왜?

조문호와 시선이 마주치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는다. 그만해! 더 무섭단 말이야.

“펜치로는 생이빨을 뽑는다네? 송곳니가 제일 아프대. 그리고 저 시카 커터기는 손가락을 자를 때 쓴다나? 뼈까지 한꺼번에 철컹!”

“하, 하, 하송아, 나한테 왜 이래? 나는 그냥 시킨 대로 했을 뿐이야. 다시는 너희 앞에 나타나지 않으마. 그냥 아무도 모르는 필리핀 작은 섬에 처박혀 살게. 살려 줘, 제발.”

“입 닥쳐! 조문호, 나도 다 알고 왔어. 너무 중차대한 문제라서 확인차 왔을 뿐이다. 아까 말했지만 딱 한 번만 물을 거야.”

이미 오줌을 지리고 있던 조문호는 연신 떨면서 모든 것을 조잘거렸다. 더 말할 것이 없는 게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이런 놈이 의리나, 믿음, 신뢰가 뭔지 알까? 가련한 인생이다.

“그러니까, 네 사촌 형이 정신병원 의사고, 재미삼아 그 형의 아이디로 병원 전산망에 들어가 환자들 진료 기록을 뒤지다가 박혜선이라는 분의 진료 기록을 봤다?”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조문호. 살려만 준다면 뭔들 못 할까?

“그분이 어쩌다 한 번씩 제정신이 돌아올 때, 자신의 신세를 이야기한 것이 있었는데… 그게 김시혁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응.”

“연결이 안 되잖아? 박혜선 씨가 이효수 박사의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를 중앙정보부 요원이 공원 화장실에 버렸다. 그리고 자신은 한강에 몸을 던졌다. 단지 그 사실만으로 그 아이가 시혁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나도 백 퍼센트 확신을 하는 건 아니었어. 다만, 형이 진료 기록에 주석을 달아 놨는데…….”

“뜸들이지 마, 새끼야.”

“응, 알았어. 박혜선 씨가 신문에 난 만점 수집가 시혁의 사진을 보고 대뜸 내 아이라고 했고, 또 TV에 시혁이가 나올 때마다, 내 아이라고 했다는 거야. 한 번도 아니고 계속.”

“……!”

“아무리 갓난 아기 때 버려졌다고 해도, 피는 끌리는 법 아닌가? 또 희한하게 상황이 맞아들어 갔어. 공원 화장실에 버려진 아이, 시혁이도 그랬잖아. 그렇게 버려져서 보육원에 들어간 거고. 또…….”

“이 새끼, 정말 손가락 하나씩 끊어 주리?”

“아니아니, 제일 중요한 것은 출생연도가 똑같아. 1968년생.”

아아아… 이 어설픈 헛때기 조문호의 말이 맞다. 박사홍의 팔뚝으로 소름이 돋았다.

시혁의 아버지는 이효수 박사, 어머니는 박혜선 씨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만든 것은 옛날 중앙정보부.

내 친구 김시혁은 그렇게 세상에 남겨진 것이구나.

사홍의 눈에 습막이 가득 찼다. 내 친구 시혁은 한국 정부에 의해 고아 아닌 고아가 되었구나.

아마, 지금쯤 시혁은 생모와 조우하고 있겠지. 불쌍한 내 친구, 시혁아.

사홍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중에 한쪽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헤이, 팍. 여기 이상한 게 있는데? 한국 말이라 못 알아듣겠어.”

차명진의 몸을 뒤지던 체첸 경호원의 말에 박사홍은 고개를 돌렸다. 체첸 경호원이 들고 있는 것은 한 자루 글록 권총과… 소형 녹음기?

꼼짝없이 소지품을 털려 버린 차명진의 얼굴이 똥색으로 변했다. 이럴 줄 알았나? 그토록 백정태가 절대 몸에서 떼 놓지 말라고 당부한 것인데, 이리 허무하게 뺏길 줄이야. 차라리 은행 대여 금고에 보관할걸… 후회는 항상 늦게 하는 법이다.

“얼랄라? 이거… 누구야? 이건호 아저씨 목소리네?”

차명진은 눈을 찔끔 감아 버렸다. 바로 듣자마자 누구와의 대화인지 알아? 이건호 회장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너는 또 누구냐?

“여기 이건호 아저씨랑 대화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 당신은 아닌 듯한데?”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으흥, 그러셔? 저 도구들은 당신 차지네? 에구에구, 흉측하다. 나는 피만 보면 가슴이 벌렁거려, 방에 가서 하라고 해야겠다.”

“…….”

“당신도 선을 넘었네? 삼송에 충성하면서 죽고 싶다면 그렇게 해. 나도 지금 피가 끓거든. 왜 시혁이가 그토록 삼송에 증오심을 가지는지 비로소 이해가 돼.”

처음의 느물거리는 표정이 아니다. 순둥이 같은 얼굴에서 저승사자처럼 바뀌어 버렸다. 저 얼굴은, 진짜 죽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나는 삼송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오. 정작 이 일을 주도한 사람은 삼송 회장과 백정태 부장입니다.”

“이 목소리가, 백정태?”

“그렇습니다.”

박사홍은 몇 번을 더 재생해서 들었다.

“뭐야? 핵심적인 이야기가 없어. 이 정도라면 당신의 구명줄이 안 될 것 같은데?”

“나를 놓아 준다면 더 있소, 구명줄.”

“그래? 그거 필요 없어. 똥개도 자신에게 밥을 주는 주인은 물지 않아. 에구, 더럽다. 당신… 진짜 X새끼네.”

* * *

현도 병원의 최고 의료진이 K 미르 그룹 전용기에 탑승했다. 그들은 첨단 의료 장비와 함께 박혜선 씨를 정성껏 보살폈다.

그동안 시혁은 단 한순간도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다. 어떻게 만났는데…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다는 듯.

어머니를 한국에 둘 수 없다고 판단했다. 물론, 이미 잊힌 사건이고, 박장희 정권과 지금 문민정부는 다르다. 오히려 사건의 진상을 요구하면 흔쾌히 나서 줄 것이다.

그러나 시혁은 단호했다. 모두 그 결정을 존중했다. 현도 정조영 회장조차도 두 손을 걷어붙이고 현도 병원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치료 현장을 떠났던 원장이 직접 다시 청진기를 잡았다.

‘돌아가자. 미련 없다. 그리고 알고 싶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전용기는 다시 미국으로 향했다.

“각하.”

“예.”

“제가 한동안 미망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늙은 놈이 잠시 꿈을 꾸었지요.”

“알고 있어요, 창당을 고민했다는 사실.”

“그 환상을 깨도록 끊임없이 채찍질했던 놈이 시혁이였습니다.”

“…그것까지는 몰랐구려.”

“예, 그래서 접었습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건 진리였습니다. 괜히 각하와도 척을 지고, 현도그룹을 위험에 빠트리고, 나라를 어수선하게 할 뻔했습니다.”

“정 회장.”

“이라크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는 사실도 시혁이 덕분에 미리 알았습니다. 그대로 진행했다면 현도건설은 무너졌을 겁니다. 중동에서 수주하는 거의 모든 공사가 이라크에 집중되고 있었거든요.”

“…그것도 몰랐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기 훨씬 전에 시혁은 이를 예견했습니다. 각하께서 불시에 시행할 거라고. 제 알토란 같은 돈은 거의 다 지켰습니다.”

“……!”

“저에게 시혁이는 그런 아입니다. 저도 보고 싶습니다, 그 봉인된 비밀.”

“김시혁과 정 회장의 관계는 익히 알고 있어요. 하지만, 늦었습니다. 이미 열린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오.”

“제 마음이 너무 답답합니다. 제 친손자보다 더 아끼는 아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고자 하는 게 잘못입니까?”

“그게 아니오. 김시혁이 미국에 가면 다 알게 될 거라요.”

“각하, 당분간 한국 경제가 혼란스러울 겁니다. 현도는 삼송과 일전을 치룰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한쪽이 죽기 전에는 이 싸움, 끝나지 않습니다.”

“어허, 정 회장. 너무 과하오. 내 말하지 않았소? 삼송 이 회장을 너무 비난하지 마시오. 그는 오히려 이 비밀을 해제하고 세상에 내보낸 사람이오. 김시혁 입장에서 보자면 은인이라요.”

“그렇게 보십니까?”

“하모! 이 회장이 아니었으면 그 비밀은 김시혁이 죽을 때까지 묻혀 있었을 것 아니오? 의도와 과정이 어찌 되었건 이 회장은 자신이 받을 빚을 까면서 사실을 파헤친 거요. 좀 기다려 줍시다.”

“각하, 이 회장은 되고 저는 안 됩니까?”

“아이고, 머리야. 내가 부탁하리다. 그 애끓는 마음, 모르는 건 아닌데… 이번 일은 당사자끼리 해결해야 맞는 깁니다.”

“저는 걱정됩니다. 만약, 이번 일로 시혁이가 대한민국에 적대감을 갖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내도 화가 납니다. 과거 군사정부가 저지른 짓들을 생각하믄 뿔따구 나요. 그래도 우짭니까? 그것도 다 우리 민족의 역사인 것을.”

“전 정부 민공당은 각하께 승계되었습니다.”

“거… 말이 심하지 않소? 내는 문민 대통령이라요. 군사 독재 정부가 아니라니까.”

시혁을 배웅하고 곧장 청와대로 들어간 정조영 회장은 막무가내로 김양삼 대통령을 압박했지만, 완곡하게 거절을 당했다.

어쩌면 정치 9단 김양삼의 판단이 맞을 것이다. 이건 가족사의 문제, 그 비밀을 세상에 꺼내 놓은 사람은 이건호. 둘이 풀어야 할 문제다.

정조영은 너무 가슴이 아팠다.

국가가 뭔가? 왜 존재하는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녕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나라가 나서서 한 가족을 풍비박산 내 버린 꼴 아닌가?

이게 나라냐?

* * *

드디어 만났다.

의외인 것은 그 자리에 아들을 데리고 왔다는 것.

시혁은 담담했다. 많이 발전한 것이다. 막 회귀했을 때 느꼈던 그 암담함, 분노와 증오, 죽이고 싶은 감정이 희석된 것일까?

아니면, 지금은 비교하는 게 무색할 정도로 덜 떨어진 모습을 보자니 한심했을까?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김시혁 회장님. 허락도 안 받고, 제 미욱한 자식 놈을 같이 데려왔습니다.”

“오랜만이네, 이자룡.”

“…네, 안녕하십니까? 김시혁 회장님.”

“편하게 하자, 부친과는 비즈니스 관계지만, 너 하고는 그래도 동창 아니냐?”

“…….”

지금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지만, 가슴속에 들끓는 분노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듣기로 하루 한 갑 정도 담배를 피운다고 들었다. 그래도 이 자리에서 담배를 피지 않는 건, 동창 이자룡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이건호는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김시혁 회장님, 모친 일은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늦었지만 상봉을 축하드립니다.”

“네, 이 회장님 덕분입니다. 그 과정 중에 허락을 득하지 않고 제가 일을 벌렸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별말씀을요. 그냥 요청만 하셔도 제가 그리했을 겁니다. 하여튼 결과가 좋으니 저도 됐습니다.”

용과 용의 만남이다.

전에 한국 대학교에서 만났을 때는 이건호가 용이었고 시혁이 이무기였다면, 지금의 시혁은 수백 배는 더 커다란 황금 용.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했던가. 정말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저 위엄, 저 기상, 과연 영웅답다. 얄팍한 수를 쓰다간 한 방에 훅 간다. 저 분노를 감당할 수 없다.

“제가 먼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조금 혼란스럽군요.

“그러실 겁니다. 저도 퍼즐들을 다 맞추기 전까지는 믿기 힘들었으니까요. 한국과 미국에서 파악한 사실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조문호를 통해서 얻은 정보를 취합하며 대충 감을 잡으셨겠죠. 하지만 보다 디테일한 부분을 제가 다행히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 주시면 경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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