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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1화 (1/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화

프롤로그(1)

고급스러운 물건이 규칙 있게 배열된 넓은 방.

한 노인이 죽어가고 있었다.

“끄…… 끄끄…….”

지독한 감기로 인해 생긴 폐렴 때문에 숨 쉬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던 노인은 고통스러운 삶을 조금이라도 이어가 보고자 숨을 들이쉬고 또 내쉬었다.

그런 노인의 곁에는 황실의 저명한 의사가 처방한 약이 있었지만,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누군가를 부를 힘조차 없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몸은 고통스러웠지만 정신은 지금껏 살아왔던 날 중에서 가장 맑고 또렷했다.

그렇기에 노인은 슬슬 자신의 죽임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느끼며 과거의 추억을 회상했다.

그의 가장 오래된 기억인 어머니와 함께 궁전 정원을 거닐며 놀았던 것을 시작으로, 얼떨결에 제국의 황제에 올라 혼란스러웠던 제국을 정립하고, 쓰디쓴 패배를 경험했던 일과 황홀했던 황후와의 첫 만남과 자식의 탄생, 그리고 자신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헝가리와의 대타협까지…….

이 모든 것이 노인의 기쁨이었다.

하지만 인생사에 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있듯이 그의 삶에도 고난은 있었다.

황후를 제국의 어느 누구보다 사랑했으나 황제의 자리와 부끄러움을 이유로 잘 표현하지 못했다.

그렇게 사랑했던 황후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황태자의 자살, 그리고 마음속으로 아꼈던 동생의 죽음에, 제국의 내일을 맡길 후계자의 죽음까지…….

그의 말년은 슬픔으로 얼룩져 있었다.

‘엘리자베트, 루돌프, 막시밀리안…… 페르디난트……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뿐이구나.’

노인은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뚱이를 옆으로 뉘여 화창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다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어…….’

노인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창 전쟁 중인 제국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 이 순간 노인은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엘리자베트의 남편이자 항상 미안하기만 했던 루돌프의 아버지로 돌아갔다.

“끄으윽…… 거기…… 아무도 없는가?”

“폐하? 폐하! 정신이 드셨습니까?!”

“카를……? 카를이로구나…….”

얼마나 오랜 밤을 지새운 것인지 얼굴 가득히 피로에 물들어 있는 제국의 후계자 카를이 내 부름에 응하며 다급히 달려와 내 손을 붙잡았다.

“예, 제가 여깄습니다!”

“그래…… 아무래도 난 여기까지인 것 같구나…… 아직…… 아직 전쟁이 한창인데, 네게 너무나도 무거운 짐을…… 지워주는구나…….”

“아닙니다. 폐하께서 일어나시기만 한다면 전황은 금세 뒤집힐 겁니다.”

“허허……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구나.”

그동안 감정 기복이 극히 적었던 황제가 소리내어 웃자 카를은 당혹스러워하며 그를 불렀다.

“폐하…….”

“앞으로 많이 힘들 것이다.”

요제프는 곧 자신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될 카를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리고 그의 모습에서 젊었을 적 한창 1848년의 혁명으로 정신없던 시기에 황제가 되어야 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앞으로……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약해진 제국을 노리면서…… 우리의 것을 가져가려 들것이고…… 이전에는 제국을 우러러보던 이들이 더 이상의 제국은 불필요하다 여길 것이야…….”

“그럼 제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부디 길을 알려주십시오.”

“길…… 길이라…… 그런 건 없어.”

“예?”

프란츠는 그 어느 때보다 활짝 웃었다.

“모든 것은 네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살아날 길은 있을 것이니, 너무 어려워하지 말고 두려워 말거라…….”

“폐하…….”

“크흠…… 큼큼…… 커헛!”

조금 무리한 것인지 노인의 입에서 피가 섞인 가래가 튀어나왔다.

“폐하!”

“으음…… 슬슬 하늘의 부름을 받는 모양이구나……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이것은 모두 나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안배이시니 말이다.”

“…….”

한참 동안이나 목을 가다듬던 노인은 젊은이가 건네준 물을 마시고 나서야 조금 진정할 수 있었다.

“으음…… 좋구나.”

“기운을 내셔야 합니다. 폐하께서 이렇게 가버리시면 제국은 끝입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노인은 점점 몸의 고통이 사라져가는 것과 납덩어리처럼 무겁기만 했던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끝이 다가온 것이었다.

“아무래도 슬슬 끝이 다가오는구나.”

“그런 말은…….”

“카를, 네게 이 두 가지 말을 남겨주고 싶구나.”

“경청하겠습니다.”

“Viribus Unitis(단결), Virtutis Confido(미덕).”

“단결과 미덕이요?”

프란츠는 이젠 피곤하다는 듯이 손을 휘저으며 젊은이에게 말했다.

“조금 배가 고프구나.”

“아, 시종에게 시켜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하겠습니다.”

“그래 주겠나?”

“물론이죠.”

젊은이가 밖으로 나가자 옷장의 그림자 뒤에 숨어 있던 노신사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프란츠 요제프.”

“자네는 누구인가?”

“아끼던 동생은 총살당하고, 아들은 자살했으며 부인은 암살당한 비운의 황제여.”

“누구냐고 묻지 않았나!”

황제의 물음에 노신사는 모자를 더욱 깊숙이 눌러 쓰며 대답했다.

“그게 중요한가?”

“뭐?”

“부인을 사랑했다고 하지만 정작 그대는 부인이 외의 다른 여인과 정분을 나눠 아이까지 두었군.”

“그런 거짓말로 나를 모욕하려는 건가?”

“뭐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노신사는 천천히 노인에게 다가와 그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잠깐 대화할 시간이 필요하겠어.”

노신사의 손이 노인의 머리에 닿자 노인은 온몸에 활력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이, 이게 무슨…….”

“자네 시간을 잠깐 멈춘 것뿐이야.”

“허…….”

노인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노신사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란 것을 눈치챘다.

“그대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방랑자일세.”

“내게 뭘 원하는 거지?”

“나는 자네에게 원하는 게 없어. 오히려 자네가 무언가를 원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무언가를 원한다고……?”

노신사는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그의 아들인 루돌프의 사진을 꺼내 노인에게 보여줬다.

평소에 보던 그런 사진이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헤매는 사진을 말이다.

“이, 이게 무슨……!”

“자네가 원하는 게 남아 있지 않나?”

“……내게 무얼 원하는 것이오.”

“아니, 나는 자네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단지 자네의 ‘소원’을 들어주려 할 뿐이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노인은 혼란을 느꼈다.

대뜸 나타난 정체불명의 존재가 아들의 사진을 꺼내 들며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니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자네가 날 믿건 아니건 상관없어. 나는 그저 자네 소원을 들어줄 뿐이니까 말이야.”

“……자네는 악마인가?”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했던 것 같은데…… 지금 그게 중요한가?”

“중요하네.”

“자네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

“…….”

노신사는 한결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

“어차피 자네가 아니더라도 소원을 빌 사람은 널려 있다는 것만 기억해 줬으면 하는군. 자네 다음으로는 전선에서 투덜거리는 병사를 찾아갈 거야.”

“……정말 아무런 조건 없이 내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건가?”

“속고만 살아왔나?”

“…….”

노인의 안색은 점점 파리해졌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이 말이다.

“자네는 대충 3분 이내로 죽겠군.”

“소원은 아무것이나 가능한 건가? 가령 제국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전 세계를 지배한다거나 하는 소원도 들어주냐는 말이네.”

“그 정도야 어렵지 않아.”

“그럼…… 내 삶을 연장시켜주는 건?”

“그건 좀 어려울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아주 불가능한 것까진 아니야.”

노인은 노신사의 정체가 몹시 궁금했지만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아들의 사진을 보고 마음이 급해졌다.

“그렇다면 내 아들을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겠나?”

“그거면 되나?”

“물론.”

“자네 소원은 이뤄질 걸세 요제프, 그럼 긴 여행 동안 질리지 않길 바라지.”

노신사는 방긋 웃으며 공손히 인사를 올리고는 조용히 원래 있었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폐하?”

시종과 함께 돌아온 카를이 노인을 불렀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는 무엇이 그리도 재밌는지 웃는 얼굴로 잠을 자듯이 눈을 감은 뒤였다.

* * *

“이 지랄 맞은 세상…… 다 망해버려!”

대학을 졸업하여 바늘구멍보다 통과하기 어렵다는 공무원시험에 3년을 쏟아부어 겨우 합격했다.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시청의 복지정책과에 첫 출근한 날, 세상의 날것들을 온몸으로 겪어온 이들과 얼굴을 붉혀야 했다.

그 이후로 거진 3년 동안 인생을 살다 만나본 이들 중에서 가장 악질적이고 날것 그대로의 적의를 가진 이들을 상대하다 보니 인간에 대한 불신까지 생겨버렸다.

“에라이 씨X…….”

보증금 삼천에 월 45만 원짜리 차가운 원룸 안에서 소주 두 병을 까고 나니 아침 댓바람부터 나를 죽여 버리겠다고 난리를 피우던 민원인의 얼굴도 살살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듯했다.

“족같은 세상…….”

빈속에 소주를 세 병쯤 까고 나니 슬슬 취기가 몰려오며 눈이 스르르 감겼다.

입으로는 세상을 욕하면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저녁 먹겠다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려놨던 것도 잊어버리고 말이다.

“진짜 개같은 새끼들…….”

“지금 잠들려고?”

“엇! 씨X 깜짝이야!”

“아직 해가 다 지지도 않았는데 젊은이가 술잔이나 기울이고 있으니 나라가 잘 돌아갈 턱이 있나?”

뜬금없이 나타난 노인의 모습에 술기운이 확 사라져 버렸다.

“분명히 문은 잠가뒀는데……?”

“내가 오고자 하면 못 올 곳이 없지.”

“댁이 누구시길래요?”

“나? 알면 다쳐.”

조선시대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흰 도포에 갓끈을 동여맨 늙은 선비는 들고 있던 장죽대로 내 머리를 가볍게 툭툭 치면서 잔소리를 해댔다.

“쯧쯧…… 앞날이 창창한 젊은 녀석이 뭐가 그리도 아쉽다고 성격이 그 모양 그 꼴인지 원…….”

“아니 좀!”

대뜸 나타나서 내 신경을 박박 긁어대는 노인의 모습에 짜증이 치밀어올라 장죽대를 쳐내려 했지만 노인은 익숙하다는 듯이 손을 놀려 내 머리를 후려쳤다.

“악!”

“어린놈의 자식이 어디 어른께서 말씀하시는데!”

“아니, 나한테 왜 그래요!”

“쯧쯧…… 불쌍한 후손을 구하고자 이 몸께서 친히 강림하였는데, 듣는 태도가 참으로 오만불손하구나.”

“후손은 니미…… 악!”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노인이 바람처럼 장죽대를 휘둘러 내 머리를 후려쳤다.

끝부분이 구리로 되어 있는 장죽대는 한 대씩 맞을 때마다 ‘딱’ 소리가 원룸에 울려 퍼졌다.

“쯧쯧…… 어찌 이리도 입이 걸어졌는고?”

“남이사 입이 걸걸하든 말든…… 악!”

“오냐 내 오늘 네놈의 입에서 공손한 말이 나올 때까지 손수 교육시켜 주마!”

그렇게 수십 분을 내리 두들겨 맞아 정신이 어질어질해질 때쯤이 돼서야 내 입에서는 공손한 말이 튀어나왔다.

“그만하시죠 어르신…….”

“크흠…… 그러자꾸나.”

“그래서 어르신께서는 누구시기에 이런 곳까지 오신 겁니까?”

“아, 그게 말이지…… 내가 웬 서양 오랑캐 놈과 내기를 했는데 말이다.”

“무슨 오랑캐요?”

“양놈 말이다. 양놈.”

“…….”

조금 전까지 나를 나무라던 노인이 험한 말을 쏟아내는 것을 지켜보며 할 말을 잊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껏 열 받은 노인은 왜 그 외국인과 왜 싸웠으며 어떤 내기를 했는지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했다.

악마가 어쨌느니 영혼이 어쩌구 했는데, 솔직히 술 먹고 꾸는 개꿈이라 생각하여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어디 쓸 만한 놈이 어디 없나 하여 찾던 도중에 너를 발견한 것이다.”

“그렇군요.”

“네가 다른 이들보다 유달리 순수하면서도 강렬한 악의가 느껴지더구나!”

“제가 좀 그런 편이지요.”

“그래서 나는 너를 내 대리인으로 삼고자 했다.”

“예, 그러시겠죠.”

보통 소설 같은 데 보면 이 다음에는 어디 새로운 세상에서 뭘 해달라거나 게이트 같은 게 열려서 지구를 지켜달라느니 이런 말이 많았다.

아니면 뜬금없이 과거로 보내서 역사를 바꿔다오! 같은 것도 있었고 말이다.

뭐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꿈인데.

‘다음부터는 소설 좀 줄여야지…… 하다 하다 꿈에서까지 난리니 원…….’

역시 내 생각대로 노인은 내게 역사를 아느냐고 물었다.

“혹시 자네 역사 좀 아는가?”

“다른 공무원들이 아는 만큼은 압니다.”

“공무원……? 아, 문관들을 이야기하는 모양이로군. 그럼 충분하지!”

노인은 힐끔 고개를 돌려 환하게 부엌 쪽을 바라보더니 이내 장죽대를 움켜쥐며 내게 말했다.

“그래, 좀 아플걸세.”

“예?”

그게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보헤미아(체코)의 한 도시인 올로모츠에 위치한 성 바츨라프 대성당에 모인 이들은 제단 위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한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부여받은 권한으로 이 제관을 수여하겠습니다.”

청년이 제관을 머리에 쓰자 갑자기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몸을 벌벌떨더니 이내 전원이 꺼진 로봇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이에 새로운 황제의 탄생을 축복해야 하는 대관식은 난리가 나버렸다.

※작가의 말

삽화를 크게 보시려면 두 손가락으로 삽화를 누르신 후에 확대해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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