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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2화 (2/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2화

프롤로그(2)

술을 얼마나 마신 건지 반으로 쪼개지기라도 한 것처럼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침대 머리맡에 뒀던 휴대폰을 찾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보이지 않았다.

“으음…… 어디 간 거야…….”

한 손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다른 손으로 연신 침대를 더듬거리며 휴대폰을 찾고 있을 때, 돌연 누군가가 내 손을 잡는 것이 아닌가?

“요제프! 정신이 드니?”

걱정 가득한 시선으로 날 내려다보는 여인은 나이가 제법 있어 보였지만 굉장히 화려한 드레스와 그에 어울리는 장신구 덕에 눈부신 미모를 자랑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었음에도 마음이 안정되며 뭔가 따스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으음…… 누구…… 윽!”

그녀가 누군지 물어보려한 순간.

술을 진탕 마시고 일어난 다음 날처럼 지끈거리던 머리가 이내 깨질 듯이 아파왔다.

“윽…….”

“요제프? 요제프! 정신차리거라 요제프!”

“의원은 뭘 하는가!”

“폐하, 제 말씀이 들리십니까? 폐하!”

주변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머리가 너무 아픈 탓에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리에 있는 신경 다발이 전부 끊어지는 것 같은 고통에 온몸에서는 열이 났고 잠옷은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끄윽…… 끅…….”

고통에 찬 비명이라도 시원하게 내지르고 싶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내 입은 꾹 다물어진 채로 도통 열릴 기미가 없었다.

그렇게 3년 같았던 3분이 지나자 서서히 고통이 사그라들더니,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기억들이 내 머릿속을 하나둘씩 채웠다.

“이게…… 이게 뭐지?”

“요제프?”

내 머릿속으로 스며든 기억들은 한 노인의 인생이 담긴 단편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매사에 기쁜 일보다는 고난과 슬픔이 더 많았던 노인의 인생을 하나둘씩 훑어보고 있으니 돌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게 과중한 짐을 지워 주어서 미안하구나…… 하지만 이 두 가지를 명심하거라.]

“뭐, 뭐라고요?”

[Viribus Unitis, Virtutis Confido. 이 말들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네 힘이 되어줄 것이다.]

“저기요? 누구시길래 이런걸…….”

[네가 누군지 곧 기억날 거다.]

노인의 목소리는 곧 형상을 갖추더니 따스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가야 할 길은 고난과 역경의 길이다. 본래라면 내가 걸었어야 할 길이지.]

노인의 손은 갓 만들어진 식빵처럼 부드러웠으며 한겨울 난로처럼 따스했다.

그의 손이 닿을 때마다 내 고통이 줄어들더니, 이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다.]

‘아니, 댁이 누구신데요.’

[그건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주변 상황에 익숙해지는 데 집중하려무나.]

그 말과 함께 깜깜했던 세상이 빛을 되찾으며 눈이 뜨여졌다.

“이게 무슨 개꿈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밤새 내 곁을 지킨 것처럼 보이는 어머니가 침대맡에 머리를 대고 주무시고 계셨다.

잠깐…… ‘어머니’라고?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애초에 난 어머니가 없었으니 말이다.

내가 부모라고 부를 만한 존재는 고아원에서 나를 챙겨주시던 수녀님뿐이었다.

그런데도 눈앞에서 고생하시는 여인을 보니 눈물이 절로 나오며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

그리고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지쳐 쓰러진 어머니를 조심스레 깨웠다.

“으음…… 요제프? 요제프! 드디어 정신이 든 게로구나!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내 어머니…… 정확히는 ‘프란츠 요제프’의 어머니인 오스트리아 대공비 조피 프레데리케는 나를 품에 안으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나는 네가 어찌 되는 줄 알고…….”

“죄송해요 어머니.”

“아니야. 이렇게 깨어났으니 됐다.”

나는 조심스레 팔을 들어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시는 어머니를 안아드렸다.

그러자 왠지 모르게 냉랭하던 가슴이 따뜻해졌다.

* * *

그 뒤로 일주일간은 요양을 핑계로 방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며 뒤죽박죽인 머릿속 기억들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의 기억과 대한민국 9급 공무원인 황병권의 기억.

그 둘의 중간지점에 있는 ‘젊은’ 프란츠 요제프.

셋 중에 어느 쪽이 진짜 ‘나’라고 부를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느 쪽이건 전부 내가 살아온 인생인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으니 말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더라도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인식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참된 진리라고 했다.

그렇기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같은 말을 남겼고 말이다.

“어느 쪽이 진짜건 간에…… 지금 내가 숨 쉬고 느끼는 건 전부 진짜야. 그럼 나도 진짜 존재하는 건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폐하, 안에 계십니까?”

“누구인가?”

“오스트리아 제국의 총리이신 슈바르첸베르크 공작께서 뵙기를 청합니다.”

“들어오라.”

세상은 내게 이런 고민을 할 여유도 주지 않았다.

이제 막 오스트리아의 황제로 즉위했으나 현재 제국은 혼란에 빠진 상황이었다.

1848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2월 혁명을 시작으로 전 유럽이 혁명의 불꽃에 휩싸였다.

그해 3월 제국의 수도인 빈과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에서 봉기가 발발했고, 다른 독일지역의 여러 소국들에서도 봉기가 발생했다.

거기에 제국의 대들보라고 할 수 있는 헝가리 왕국이 독립전쟁을 일으키며 혼란을 가중시켰고, 이 틈을 노린 사르데냐 왕국은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전쟁을 일으켰다.

그야말로 제국 최악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본래 황제이자 내 숙부 되시는 페르디난트 1세께서는 이런 상황을 수습하지 못하고 결국 황제 직위에서 물러나 아버지께 황위를 넘기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의 강권으로 다시금 황위를 내게 건네셨으니…… 그렇게 나 ‘프란츠 요제프’는 열여덟의 나이로 혼란에 빠진 제국의 황제가 됐다.

“슈바르첸베르크의 공작 펠릭스 루트비히 요한 프리드리히가 제국의 새운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반갑네 슈바르첸베르크 공, 본래라면 빈의 황궁에서 그대를 맞이해야겠으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런 추레한 곳에서 자네를 맞이하는 걸 이해하게.”

“추레하다니요? 폐하께서 아무리 비루한 곳에 머무신다 해도 그곳이 제국에서 제일가는 곳일 겁니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늙은 프란츠 요제프의 머릿속을 뒤져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에 대한 기억을 찾아냈다.

그는 무능한 페르디난트 1세를 끌어내리고 나를 황제로 옹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그는 제국의 혼란기를 헤쳐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인물이었다.

“폐하, 몸이 편찮으신 것은 알고 있으나 이젠 슬슬 국정을 돌보셔야 합니다.”

“알고 있네, 안 그래도 몸 상태가 어느 정도 괜찮아졌으니 국정에 복귀하려 했네.”

“실로 다행입니다.”

“일단 국정에 복귀하기 전에 어떤 현안이 있는지부터 알아봐야겠지…… 그래, 지금 상황이 어떤가?”

“음…….”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은 쉽사리 답하지 못했다.

“부디 편하게 말해주게.”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헝가리에서 일어난 대대적인 반란입니다.”

“반란? 어떤 종류의 반란인가?”

“그들은 독립을 원하며 제국의 품 안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제국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오스트리아 제국 내에서 헝가리의 지위는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그들은 제국 내에서 독일인 다음으로 많은 인구수를 가졌고 제국 내의 여느 지역보다 부유했으며 땅도 풍요로워 많은 곡물을 생산했다.

그런 곳이 독립하여 떨어져 나간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헝가리인들은 제국을 적대하며 전대 황제이신 페르난디트 폐하께 새로운 헌법에 서명할 것을 강권하였습니다.”

“새로운 헌법?”

“예, 지난 3월에 헝가리 반란군 중요인사 중 하나인 코슈트 러요시라는 자가 주장한 것인데…… 그 내용이 조금…… 과격합니다.”

“과격? 어느 정도이기에 그런 건가.”

“얼마 전에 폐하께 올린 보고서로 올렸는데…… 아! 여기 있군요.”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은 내 테이블에서 한 장의 서류를 꺼내 들더니 내게 건네줬다.

그 서류 안에는 조금 전에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이 말한 코슈트 러요시란 인물이 제정한 새로운 헌법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내용은 대략 이러했는데…….

언론의 자유(문책 및 검열관 사무의 폐지).

부다와 페스트의 핵심 부처들에 대한 권한(단순히 왕실에서 임명하는 장관 대신, 모든 장관과 정부 요인은 헝가리의회에서 선출되고 해임될 것).

부다와 페스트에서 매년 의회를 열 것(국왕이 드물게 소집하는 임시회의나 구식 봉건 의회를 철폐하고 민주적 선거로 의원을 선출할 것).

법 앞에 모든 시민은 종교의 평등을 보장(시민과 귀족을 분리하기 위한 법률의 폐지, 귀족의 법적특권 폐지).

조세의 공동부담(귀족비과세철폐 및 관세면제).

…….

뒤로도 헝가리 국립은행 설치와 사법권의 독립, 정치범 석방과 트란실바니아 의회와의 통합 등등…….

시대상을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과격한 제안이 담겨 있었다.

“흠…….”

“참으로 반동적이며 끔찍한 내용이 아닙니까? 특히나 그 세금과 정부요인에 관한 건은 언급하기도 싫을 정도입니다.”

찬찬히 내용을 읽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그 정도로 반대할 만한 내용인가?’

물론 내 안에 있는 늙은 요제프는 코슈트 러요시를 맹렬히 비난했으나 9급 공무원 황병권과 젊은 요제프에게는 고작 이 정도로 전쟁을 벌여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음…….”

“역시 폐하께서도 저들의 참담한 요구조건에 분노하고 계신 것이로군요.”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이탈리아 전선부터 헝가리 전선까지 신경 써야 할 곳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서쪽은 프랑스와 협력하고 동쪽은 러시아와 협력하고자 합니다.”

“그 협력이란 게 무엇인가?”

“그들의 힘을 빌리는 것입니다. 러시아군은 지난 나폴레옹 전쟁기에 용맹한 프랑스군을 상대로 위용을 보인 강군이니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반군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겁니다.”

외국군을 끌어들이자는 말에 이번엔 9급 공무원 황병권이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의 기억 속에는 외국군을 끌어들이다가 나라를 말아먹은 망국의 왕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러시아군을 끌어들이는 데 반대했다.

“아직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는데 벌써부터 외부에 도움을 청하자는 건가?”

“폐하, 그건 이미 저와 여러 신하들이 합의를 거쳐서 얻은…….”

“본인은 아직 결정을 내지 못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시종이 건네주는 코트를 걸치고 그에게 말했다.

“슈바르첸베르크 공.”

“예, 폐하.”

“이 제국은 나의 것인가 그대와 신하들의 것인가?”

“당연히 폐하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정은 조금 뒤로 미루겠다.”

잠시 늙은 요제프의 위엄을 빌려 그에게 말하니, 그는 고개를 숙이며 감히 들지 못했다.

“모든 것은 폐하의 뜻대로 이뤄질 것입니다.”

“좋아, 안내하도록.”

“예?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

“내가 있어야 할 곳이지.”

어디든 간에 이 답답한 방보다는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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