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3화
젊은 황제?
내 머릿속에서는 늙은 요제프와 9급 공무원 황병권이 끝없는 논쟁 중이었다.
[아니, 여기가 도대체 어디냐고 한 서른 번은 물어본 것 같은데 어째 대답이 없으십니까?]
[나도 모른다고 수십 번이나 대답했네.]
[댁이 날 데려왔는데 왜 몰라요!]
[어허, 나도 이곳으로 불려왔을 뿐이라고 몇 번을 말하는 건지 알고 있나?]
회의 내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겉모습이 흐트러진다거나 하진 않았다.
단지…….
“으음…….”
“폐하,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신지요?”
“이상하군…… 왜 헝가리 반군이 오스트리아 정규군보다 더 잘 싸우는 것처럼 들리는 거지?”
“그거야…….”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이 말해준 바는 이랬다.
헝가리 측 반군에 합류한 병사와 장교 대부분이 지난 나폴레옹전쟁을 경험한 전적이 있는 정예병들인데 비해 오스트리아군은 혁명으로 군의 인적자원이 많이 소실되어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럼 싸우기보다는 일단 한발 물러나서 저들과 협상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저들은 더 이상 제국에 남고 싶어하지 않는 족속들입니다. 저들의 독립을 인정하시면 제국의 나머지 구성원들도 독립하여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그렇겠군.”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었다.
반쯤 박살 난 군대.
통합되지 않은 국내정치.
거기에 정규군보다 몇 배는 강력한 반군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뭘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 이런 상황에서 나는 자연스레 총리인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무엇부터 하면 좋겠는가?”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폐하께서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하셨으니…… 우선 그라츠 대공을 야전원수로 임명하시어 군대를 이끌게 하시고, 옐라치치의 부대와 함께 반군의 중심지인 부다를 노리게 하소서.”
“부다? 적의 중심지를 공격하여 기세를 꺾어놓자는 뜻이로군.”
“예, 그렇습니다.”
확실히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의 말은 정석적인 방법이었다.
모름지기 협상이란 것은 양측의 세력이 팽팽할 때 하는 것보다는 아군이 우위에 있을 때 하는 것이 더 유리하니 말이다.
“현재 동원 가능한 병력은 어느 정도인가?”
“내부혼란이 가라앉지 않아 많은 병력을 동원하기는 어렵지만…… 그라츠 대공의 휘하에 6만에서 7만 정도의 병력이 있고, 옐라치치의 휘하엔 2만 명가량의 병사가 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적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대략 10만 명에서 15만 명 사이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대략 두 배 정도로군.”
싸운다고 해도 이길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저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제국이 찢겨나갈 판이었다.
“숙부님께서 제국의 마지막을 내게 맡기셨군.”
“폐하…….”
이때 원 역사의 프란츠 요제프는 단호하게 헝가리 임시정부의 요구를 거절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적들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하지만 그 결과로 헝가리인들이 괴르게이 어르투르라는 장군 아래에 단결하여 더욱 굳건히 버티게 되는 결과를 낳았으니……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금 전까지 시끄럽게 떠들던 늙은 요제프는 가만히 내 판단을 기다렸고, 대한민국의 9급 공무원인 황병권도 조용히 내 선택을 기다렸다.
“어차피 적들은 부다를 빼앗긴다고 해서 우리에게 항복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 얄팍한 정신으로 반란을 일으키진 않았을 테니까 말이야.”
“으음…… 그건 그렇습니다만…….”
“짐은 저들의 계획이 궁금하구나.”
“계획 말입니까?”
“그렇다.”
갑작스러운 말에 여러 궁정 신하들은 내 의중을 살펴보려는 듯이 조심스레 물었다.
“갑작스레 저들의 계획을 궁금해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적의 계획을 알아야 우리도 대책을 세울 것이 아닌가? 그래서 짐은 헝가리 임시정부의 재무장관이자 우리에게 이 법안을 들이민 코슈트 러요시라는 자와 만나고 싶구나.”
“?!”
대뜸 적의 수괴와 만나겠다는 내 말에 공작을 비롯한 다른 궁정신하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났다.
“폐하, 그건 너무나도 위험합니다!”
“지금은 대화를 나눌 때가 아니라 칼을 들고 서로 맞서 싸워야 할 때입니다!”
“지금 저들과 협상하시면 우리는 많은 것을 잃고 말 것입니다 폐하!”
“누가 저들과 협상하겠다고 하였는가? 그저 적들의 수괴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여 만나보고 싶다는 것일 뿐이네.”
“하지만…….”
끝도 없이 안 된다고만 하는 그들에게 물었다.
“제국의 주인이 짐인가 그대들인가?”
“……당연히 폐하이십니다.”
“그럼 당장에 부다에 편지를 보내게, 외스터라이히의 주인이 헝가리의 시민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말이야.”
* * *
“헝가리의 시민이라…….”
무능했던 황제 페르디난트의 뒤를 이은 젊은 황제의 패기가 담긴 편지를 받은 코슈트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 모습을 본 그의 비서가 물었다.
“무엇이 그리도 좋으십니까?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드디어 우리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한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네.”
“그런데 왜 그리도 좋아하시는 겁니까?”
“젊은 황제가 내게 한번 만나자는군.”
“?!?!”
코슈트의 말에 그의 비서는 크게 놀라며 말했다.
“황제가 장관님을 뵙자고 한 겁니까?”
“그래, 자신의 명예를 걸고 안전을 책임질 테니 빈으로 와서 자신을 설득시켜 보라는군.”
“서, 설마 가실 겁니까?”
당황하여 말까지 더듬는 그의 모습에 코슈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가 오스트리아 놈들을 어찌 믿고 그러겠나.”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알겠군.”
코슈트는 황제의 친필 서한을 자신의 개인금고에 조심스레 넣어두며 말했다.
“현 황제는 우리가 강하게 나오면 겁을 집어먹고 수그리던 페르디난트와는 다른 사람이야.”
“그렇다는 말씀은……?”
“헝가리의 독립이 조금 힘들어졌다는 뜻이지.”
* * *
코슈트 러요시는 정중하게 내 초대를 거절했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헝가리의 시민이 내 제의를 거부했군.”
편지를 읽는 척하며 영감님의 기억을 쭉 훑었다.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알려면 그의 기억을 뒤져보는 것이 맞다고 판단해서였다.
그리고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영감님의 기억에 따르면 이 시기 오스트리아의 군대는 나폴레옹 전쟁기 때 소모된 전력을 전부 복구하지 못하고 인력 부족과 군비 부족에 허덕였다.
그러던 중에 전 유럽을 휩쓴 혁명의 물결에 내부가 혼란해지고 제국군의 주춧돌인 헝가리인들이 빠져나가고 이때를 틈탄 이탈리아군까지 침공해 왔다.
이쯤 되면 군대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것이 용하다고 봐야 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는 편지를 대충 휙 던져놓으며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에게 물었다.
“우리 무능한 군대는 무얼 하고 있는가?”
“폐하, 그들이 요 근래에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고는 해도 그렇게 말씀하시면…….”
“뭐 어떤가?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
슈바르첸베르크는 주변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젊은 황제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했기에 조곤조곤하게 보고를 이어갔다.
“……그라츠 장군이 지난 빈에서의 봉기를 진압하신 이후에 이탈리아 전선의 여유 병력을 끌어와서 동계공세를 준비하는 중입니다.”
“그라츠 경이?”
“예.”
국가적인 위기상황 속에서 오스트리아군을 이끄는 그라츠 원수는 전 유럽을 휩쓴 혁명의 물결 속에서 일어난 봉기를 진압하고, 혼란에 빠진 제국을 노리던 사르데냐 왕국의 도전을 물리치며 제국을 지탱하는 인물이었다.
당장만 하더라도 얼마 전에 빈에서 일어난 봉기를 진압하고 헝가리 반군의 도발을 맞받아치며 오스트리아군을 수습하지 않았던가?
“동계공세라…… 흠…….”
원 역사에서 그라츠가 준비한 동계공세는 제법 성과를 보이긴 했다.
한창 기세가 올랐던 반군의 기세를 꺾어놓으며 적의 주요거점인 부다와 페스트를 점령하는 것엔 성공했으나 그 뒤에 이어진 헝가리 반군의 춘계대공세에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그래서 결국 러시아군을 불러들여야 했지.”
“러시아군을 부르자고요?”
“아니, 그냥 혼잣말이었네.”
그랬기에 원 역사에서는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유럽의 헌병을 자처하는 러시아 제국을 끌어들여 헝가리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그 이후로 제국은 유럽의 질서를 주도하던 열강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러시아의 도움을 받는 순간부터 우리 제국이 유럽의 패권에서 멀어졌음을 인정하는 거야.’
그럴 수는 없었다.
지난번에도…… 아니, 나 이전의 ‘요제프’가 벌였던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
그럼 러시아의 도움은 최대한 배제하고 순수하게 오스트리아만의 힘으로 헝가리의 반란을 진압해야만 했다.
‘좀 힘들겠군.’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나폴레옹 전쟁 때도 프랑스에게 탈탈 털렸으나 이를 악물고 내부를 개혁하여 복수에 성공했다.
지금도 그때와 다를 게 없었다.
“동계공세에 대해서는 보고받은 바가 없어서 이에 대해서 따로 보고를 듣고 싶은데…….”
“그럼 그라츠 경을 불러올까요?”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알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역사를 바꿀 시간이었다.
* * *
“반갑네 그라츠 경.”
“부르셨습니까 폐하!”
처음 만나는 그라츠는 내 기억 같지 않은 기억 속의 모습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멋들어진 콧수염과 깊이감 있는 두 눈과 우뚝하게 솟은 콧대가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중후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이번에 동계공세를 준비한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인 작전계획이나 내용에 대해 구상한 것이 있다면 내게 말해주겠나?”
그라츠는 이전의 황제와는 다르게 자신의 작전에 관심을 가지는 젊은 황제의 모습에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또 젊은 혈기로 전쟁에 관심을 보이는군.’
으레 저 또래의 청년들은 전쟁을 무슨 연극이나 공연쯤으로 여기고는 했다.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그들의 허풍이 담긴 영웅적인 일대기를 들으며 자신도 영웅이 될 것이라 생각하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청년들은 전쟁터에 들어서는 순간 그 생각이 깨지곤 했다.
특히 귀족 장교들은 자신의 생각처럼 굴러가지 않는 작전과 추악하고 끔찍한 전쟁터의 민낯을 겪고 나면 마음이 부서지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라츠는 지난 나폴레옹 전쟁기에 그런 이들을 많이 보고 경험했다.
그가 알고 있는 한 젊은 장교만 하더라도 첫 전투에서부터 끔찍한 전쟁을 경험하고는 마음이 바스라지지 않았던가?
자신의 잘못된 명령 때문에 강물의 색이 피처럼 붉어지고 다리를 건너려던 병사들이 고기 파편이 되어 바닥을 굴러다니는 모습을 보던 젊은 장교는 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천막에서 목을 맸다.
아직도 그때 생각만 하면 목에 있는 흉터가 저릿해 오고는 했다.
“폐하께서 궁금하시다면야…….”
그라츠는 속으로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래도 황제의 명령을 거절할 수는 없었기에 무덤덤하게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젊은 황제는 그가 말하는 내내 말을 자른다거나 중간에 끼어드는 일 없이 묵묵히 경청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났을 때쯤에 진중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물었다.
“빈에서 부다까지 진군한다고 하면 대략 5일에서 6일 정도 걸릴 것인데 그 사이에 적에게 이 사실을 들킨다면 반군이 부다를 버리고 도망칠 수도 있지 않겠나?”
“?!”
젊은 황제가 자신의 고민거리를 단번에 간파해 내자 그라츠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그, 그건 그렇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은 있나?”
“예? 아, 그것이…….”
정곡을 찔린 그라츠는 허둥지둥하며 부관이 들고 온 서류 더미를 뒤졌다.
‘으음…… 새로운 황제께서 군사적인 식견이 있으시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하긴 했지만 그리 기분 나쁜 감각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동안 잊고 있던 긴장감이 되살아나며 그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으니 말이다.
“그에 대한 것은 크로아티아 의용군을 지휘하는 옐라치치 중장과 협력하여 적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작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옐라치치의 크로아티아 의용군?”
“예, 그들은…….”
조금 전까지 딱딱하기만 했던 그라츠의 표정이 한결 풀리며 이전과는 달리 활기 넘치게 말했다.
* * *
‘옐라치치라…….’
이 역시 아는 이름이었다.
크로아티아의 자치권 확대를 위해 혁명의 물결 속에서도 제국에 충성했던 인물로 군사적인 능력에 한해서는 헝가리의 괴르게이 어르투르에 버금가는 인물이었다.
‘좀 잔혹한 것이 흠이지만……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는 힘이 되어주는 인물이지.’
그라츠가 구상한 오스트리아의 동계공세는 전형적인 양동작전으로 옐라치치의 부대가 미끼가 되어 반군의 시선을 끄는 사이에 그라츠의 부대가 재빠르게 기동하여 적의 주력을 포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자네 말대로면 오스트리아군이 하루에 50km씩 행군하여 사흘에서 나흘 만에 부다에 도착해야 한다는 건데…… 좀 무모한 것 같군.”
“폐하께서 걱정하시는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병사들은 이런 강행군을 견뎌낼 정도로 튼튼하고 심지가 굳건한 이들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너무 계획이 딱딱하고 변수통제가 덜 되는 것 같군.”
“변수통제요?”
그라츠는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폐하께서 말씀하시는 변수란 건 어떤 변수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그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