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4화
전쟁 시작?
“예를 들어 아군이 행군하는 경로에 있는 헝가리인 중 하나가 군부대에 이 사실을 알려 아군의 이동 경로가 적에게 노출된다거나……. 적들이 옐라치치의 눈속임에 속지 않는 것을 예로 들을 수 있겠군.”
“흠……. 그건 확실히 고려해 볼 만한 문제로군요.”
원 역사에서도 그라츠의 동계공세는 과감하고 재빨랐지만 이를 눈치챈 괴르게이의 재빠른 판단으로 인해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심지어 괴르게이는 빈을 공격하는척하며 헝가리 북부 산악지대로 후퇴하여 아군을 혼란에 빠지게 하여 시간을 버리게 했다.
그렇게 시간을 번 헝가리군은 덤빈 스키의 삽질로 상당한 전력을 날리긴 했지만, 후임으로 군권을 틀어쥔 괴르게이의 지도로 대대적인 춘계공세를 벌여 오스트리아군의 전선을 붕괴시켰고 말이다.
물론 이건 아직은 오지 않은 미래였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인데……. 차라리 부대를 셋으로 나뉘어 한쪽은 헝가리 북부도 공격 루트에 넣는 것은 어떻겠나?”
“헝가리 북부라면……. 슬로바키아의 광산지대를 말씀하시는 것이로군요.”
“바로 그걸세.”
“흠…….”
그라츠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내 의견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도 무방하네.”
“불필요한 의견이라니요? 전혀 아닙니다! 폐하의 말을 듣고 있으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 잠시 말을 하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그런가?”
“괜찮으시다면 저는 이만 참모본부로 돌아가 작전을 새로이 바꿔보고자 하는데……. 이만 물러나도 되겠습니까?”
그라츠의 두 눈에는 활력이 넘쳐흘렀다.
“그리하게.”
“감사합니다. 폐하!”
* * *
잠깐의 대화였지만 그라츠는 많은 것을 느낀 것인지 이후 열정적으로 동계공세를 준비했다.
그는 동계공세에 동원할 부대의 전체적인 규모를 줄이는 대신에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정예부대를 동원하려는 듯했다.
그리고 반군에게는 겨울이 아니라 봄에 공세가 있을 것처럼 보이기 위해 오스트리아 각지에서 끌어오는 보급품의 양을 조절하고, 병사들에게 휴가를 주는 등 적을 방심하게 했다.
“오스트리아군은 보급품을 준비하고 병력을 정비하면서 봄에 있을 공세를 준비한다고 합니다.”
“하긴……. 겨울에 병사를 움직이는 건 피곤한 일이니 말이야.”
이 보고를 받아든 헝가리 방위군의 총사령관 폴란드인 헨리크 뎀빈스키는 겨울 동안 오스트리아의 공세가 없으리라 판단하고 봄에 있을 결전을 대비하고자 전군에 정비를 명했다.
하지만 그의 휘하에 있는 젊은 헝가리인 장교 괴르게이 어르투르는 이상함을 느끼고 그에게 말했다.
“적의 공세가 봄에 있을 거라고요? 그걸 어떻게 확신하시는 겁니까?”
“허, 자네는 이젠 용병술의 기본도 모르는 건가? 적들이 추운 겨울에 병력을 동원하여 헝가리로 쳐들어오면 저들 중 태반을 동상에 제대로 전투를 치를 수조차 없을 거야.”
“폴란드에서는 그랬겠지요. 하지만 헝가리의 겨울을 생각처럼 그리 춥지 않습니다. 그리고 창고에는 가을에 수확한 곡물들이 넘쳐나지요.”
덤빈 스키는 자신의 말을 중간에 끊는 괴르게이의 모습이 불쾌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건가?? 설마 오스트리아군이 이 겨울에 빈에서부터 부다까지 공격해 올 것이니 이를 대비해야 한다는 건가?”
“가능성이 큰 이야기입니다. 장군께서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빈과 부다는 도나우강으로 연결되어 있어 보급품 수송에 능하고…….”
“그만!”
덤빈 스키는 소리를 질러 괴르게이의 입을 막았다.
“자네의 쓸데없는 걱정은 잘 들었네.”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라 예측입니다.”
“누가 이 겨울에 전쟁한다고 그러는 건가! 자네 말대로 적군이 부대를 일으켜 부다로 진군해 온다고 쳐보지……. 그럼 그들의 행동이 부다로 전해지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그거야…….”
뎀빈스키의 말에 짜증이 섞여 있었으나 틀린 말은 하지 않았다.
그의 말마따나 이 춥고 황량한 겨울에 빈에서부터 부다로 길을 따라 행군해 온다면 인근의 마을이나 정찰병들로부터 보고가 들어오기 마련이었다.
즉, 기습의 이점이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
“그건 힘들 뿐이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잖습니까?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지요.”
“그래, 하고 싶으면 자네 혼자 실컷 하게!”
뎀빈스키는 그리 말하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총사령관인 그가 회의실을 박차고 나가버리자 다른 장교들은 한숨을 내쉬며 그의 뒤를 따라 나갔고, 몇몇 장교들은 슬그머니 괴르게이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또 왜 그러십니까? 지난번에 저 폴란드놈한테 총살당할 뻔했던 건 깜빡하신 겁니까?”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나?”
“장군께서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자네처럼 말하면 누가 들어주겠습니까?”
괴르게이의 가장 믿음직한 부하이자 우아하고 섬세한 외양만큼이자 합리적이고 훌륭한 전략가였던 죄르지 클럽커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괴르게이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는 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뎀빈스키 각하는 장군의 상관이잖습니까.”
“상관이고 나발이고 내 말이 틀렸나?”
“아니, 지금 누가 맞고 틀리고를 가리려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내가 틀렸냐고!”
괴르게이의 짜증 어린 말에 클럽커도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장군이 틀렸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오스트리아 놈들은 반드시 이 겨울을 자기네들의 유리함으로 이용하려 들 거야.”
이미 괴르게이는 클럽커의 말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자기 할 말만 중얼거렸다.
“곧 추운 겨울바람이 불어오면……. 오스트리아 놈들이 산을 넘어오겠지.”
“뎀빈스키 장군의 말처럼 그들이 산을 넘어온다 해도 우리가 대응할 시간은 충분합니다.”
“자네까지 그 머저리 같은 놈처럼 말하지 말게.”
“예?”
“쯧쯧……. 어디 오스트리아군이 빈에서만 몰려오나? 드라바강 너머에 있는 옐라치치의 군대는 잊은 건가?”
괴르게이의 입에서 나온 옐라치치라는 이름에 클럽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옐라치치가 다시금 움직일 거란 말씀입니까?”
“그럼? 놈들이 가만 있을 거라고 장담하는 이유는 뭔가? 한번 들어보지.”
“그야……. 지난 파코즈드 전투에서 크로아티아군이 큰 피해를 보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그 피해를 복구하느라고 정신없을 텐데…….”
클럽커의 말에 괴르게이가 코웃음을 쳤다.
“놈들이 큰 피해를 보아?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그럼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정부에서는 파코즈드를 무슨 헝가리군의 위대한 승리쯤으로 포장해뒀는데, 실상을 따져보면 이번 전쟁 이전에 있었던 수많은 국지전 중의 하나일 뿐이야!”
“예? 그래도 양측 합쳐서 십만에 가까운 병력이 동원됐는데…….”
“규모가 크다고 해서 피해 규모까지 큰 건 아냐! 양쪽 다 합쳐서 이백 명이나 죽었을지 모르겠군.”
괴르게이의 말에 클럽커는 믿을 수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체 그런 건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그의 질문에 괴르게이는 새하얗게 빛나는 치열을 보이며 씩 웃었다.
“자네는 내가 누군지 잊었나?”
정말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지는 괴르게이의 미소에 클럽커는 허탈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헝가리에서 제일가는 미치광이 괴르게이 어르투르 장군 아닙니까?”
“미치광이? 마음에 드는군. 어차피 범인들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테니, 내가 미치광이로 느껴질 수도 있어.”
“예, 그러시겠죠.”
“음…….”
괴르게이는 한참 동안 지도를 빤히 바라보다가 클럽커에 물었다.
“어차피 뎀빈스키처럼 머리가 비어 있는 녀석은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모를 테니……. 일단 아군 주력을 부다에서 뒤로 물리는 게 중요해.”
“그거야 어렵지 않지요. 어차피 뎀빈스키 장군께서도 봄에 있을 결전을 준비하신다고 부대를 재정비할 생각이신 것 같던데, 제가 한번 잘 말씀드려서 부대를 재정비하는 척 뒤로 물리겠습니다.”
“좋아, 그렇게 부다에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두고……. 적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게 내 계획의 첫 부분일세.”
“그렇군요.”
괴르게이의 머릿속에는 이미 오스트리아군의 예상진로와 헝가리군의 진군로를 그려보며 헝가리 동계전역의 대략적인 그림을 그렸다.
“오스트리아 놈들은 손가락만 쪽쪽 빨게 될 거야.”
* * *
“헝가리 놈들은 손가락만 쪽쪽 빨게 될 겁니다.”
오스트리아 육군 야전 원수인 그라츠가 자신의 작전계획을 설명한 뒤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어떻게 그리도 확신하는가?”
라는 내 질문에 그라츠는 이렇게 대답했다.
“얼마 전에 들어온 첩보에 따르면, 현재 헝가리 반군은 다가올 봄에 대대적인 공세를 준비하고자 대부분의 부대를 부다 외곽으로 이동시켰습니다.”
“그래서?”
“적은 옐라치치가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지요.”
“흠…….”
가만히 들어보니 이전보다 괜찮아 보였다.
그의 말대로만 된다면 이번 공세로 반군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내 머릿속에서 한참을 떠들어대는 두 악마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그라츠는 믿을 만한 장군이지, 혼란의 시기에 얼떨결에 황제가 되어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승리의 기쁨을 가져다준 유능한 장군이었으니 말이야.]
‘영감님 또 혼잣말하시는 겁니까? 방해되니까 지방방송은 적당히 해주십시오.’
[쯧쯧……. 자네는 제발 그 경박스러운 주둥아리 좀 다물고 있어 주면 안 되겠나? 계속 듣고 있으려니 고역이로군.]
‘제가 어디 할 일이 없어서 놀고먹는 줄 아시는 겁니까? 저도 다 할 일 하고 있는데, 영감님이 할 말 있다고 헛기침하면 여기 불려 나오는 거예요! 무슨 악성 민원인도 아니고 진짜…….’
안 그래도 대부분 업무를 컴퓨터로 처리하다가 이제는 전부 수기로 처리하려니 골치 아픈데, 자꾸 할 말 있다고 불러내는 영감님 때문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어차피 영감님이 조언 안 해도 기억 훑어보면 되니까 이젠 그만 좀 부르십시오!’
[어허, 남의 몸을 차지해놓고 이렇게 어물쩍 넘어가려는 건가? 내 비록 말년에 악마에게 홀려 그릇된 판단을 내리기는 하였으나…….]
‘으아아악!’
분명 내가 기억하는 프란츠 요제프는 근면·성실하면서도 엄격했고 가족의 비극으로 내면에 슬픔을 간직한 인물이었을 텐데……. 어째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노인은 정반대였다.
종일 쉬지도 않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내 서명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야.]
[쯧쯧쯧……. 그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네는 어째 그 간단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나?]
[조금 전에는 카를 대공을 엄히 꾸짖었어야…….]
차라리 악성 민원인처럼 악을 써가면서 난리를 피워댔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무시했겠지만, 상대는 수십 년간 제국을 운영해 온 황제였다.
비록 그가 죽고 나서 몇 년 뒤에 제국이 멸망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그의 잔소리를 전부 귓등으로 흘려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으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아닐세……. 전체적으로 깔끔하군.”
“과찬이십니다. 폐하.”
게임을 할 때도 옆에서 누가 훈수 두는 것만 해도 짜증이 치미는데, 매일같이 누군가가 옆에 달라붙어서 잔소리해대면 어떻겠는가?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반군이 아군의 존재를 눈치채고 부대를 전개할 때쯤이면 우리는 진즉에 부다를 포위했을 겁니다.”
“그렇군…….”
“그렇게 되면 헝가리 반군의 주력은 부다를 구원하러 달려오다가 아군의 방어선에 걸려서 끝없는 소모전을 치러야겠지요.”
그라츠는 자신만만하게 승리를 장담했다.
하지만 이미 늙은 요제프의 잔소리에 진이 빠져 버린 내게 그라츠의 말을 전혀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리되면 우리 군은 최소한의 피해로 반군을 일소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그럼 자네 뜻대로 하게.”
“감사합니다. 폐하!”
정말 순수하게 대충 알아서 하라는 말이었건만 그라츠는 정말로 자기가 알아서 해도 된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황제의 집무실을 빠져나온 그라츠는 곧장 자신의 참모들을 소환했다.
“폐하의 승인이 떨어졌다.”
“다뉴브강의 상선을 이용하자는 그 작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국의 신용에 큰 누를 끼칠 것이라 생각하여 폐하께서 반대하실 줄 알았는데…….”
“그만큼 폐하께서 우리를 믿는다는 뜻이지.”
이후 그라츠는 불도저처럼 작전을 밀어붙였다.
“각하, 아직 공세를 위한 물자 준비가…….”
“일단 되는대로 움직여!”
“병력 동원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럼 동원되는 대로 움직여!”
그라츠는 무언가에 쫓기듯이 공세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