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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7화 (7/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7화

괴르게이 어르투르?

황제의 집무실을 나선 슈바르첸베르크의 공작 펠릭스는 마음이 뒤숭숭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고수하던 황제가 자신의 건강을 신경 써주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질 않아서였다.

‘내게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건가?’

그런 생각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현재 열여덟 먹은 젊은 황제는 어머니인 조피 대공비의 치마폭에 쌓여 있는 상황이었다.

겉으로는 그가 주도적으로 정무를 처리하는 듯이 보이지만 정작 국정운영의 주요한 문제들은 황제의 집무실이 아니라 대공비의 사저에서 해결되는 경우가 더 많았으니 말이다.

‘한 나라에 두 개의 정부가 있는 셈이지.’

공작은 언제나 자신의 업무에 간섭하려는 대공비의 모습을 고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이야 황제를 앞장세워 그녀의 요구를 거절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였다.

그녀 역시 황제를 앞장세워 자신의 권위를 깔아뭉개려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후우……. 힘들군.”

슈바르첸베르크의 공작 펠릭스는 바쁘게 움직이는 복도에서 기지개를 켜면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웅크려 있던 그의 몸이 다시금 자유를 되찾으며 생긴 반동이 그의 몸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으으……. 으그극!”

아픈 듯하면서도 기분 좋은 시원함에 공작은 미소를 지었다.

“후우……. 이제야 좀 살겠군.”

공작은 목덜미가 좀 시큰거리는 것을 느끼고는 욱신거리는 곳을 쭈물거렸다.

그러자 좀 시원해지면서 혼탁했던 정신이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으음……. 피곤하군.”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자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열심히 업무를 처리했던 여파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규칙적인 식사와 적절한 운동이라…….”

공작은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쩌릿한 오른손을 쥐었다 펴면서 황제의 말을 떠올렸다.

봉기가 일어난 이후부터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를 오가면서 바쁜 일상을 보내느라 식사는 거르기 일쑤였고, 요즈음에는 운동은커녕 밖에 나가본 것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할 정도였다.

“나도 늙었군.”

올해로 마흔일곱이었으나 액면가는 거기에 십 년 정도는 더 늙어 보였으니 말이다.

매끈했던 피부는 푸석푸석해지고 두 볼은 힘을 잃고 축 늘어진 지 오래였다.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은 거울 앞에서 속절없이 지나간 세월의 무심함을 둘러보며 한숨 쉬었다.

그동안 제대로 된 휴식 없이 무식하게 앞만 보고 달렸던 자신의 행보를 돌아봤다.

“……일주일 정도 쉬면 되겠지.”

황제의 명령도 있었으니 따르는 척이라도 해야 앞으로의 행보에 걸리적거리는 일이 없을 터였다.

공작은 그리 생각하면서도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 * *

벌을 핑계 삼아 공작에게 휴가를 보내주니 내 어머니 되시는 조피 대 공비께서 업무에 바쁜 나를 부르셔서는 칭찬을 하셨다.

“그동안 공작이 제멋대로 설치고 다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아주 완벽히 잘하셨습니다.”

“그러셨군요.”

어머니께서는 지난번에 그렇게나 단단히 일러뒀음에도 정치에 관한 관심을 끊지 않으셨다.

헝가리의 일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이따금 찾아오셔서 하신다는 말이 내 정책에 대한 피드백이었으니 짜증이 치밀었다.

그동안에는 영감님이 잘 어르고 달래서 꾹 참았는데, 자꾸만 나를 자극하는 어머니의 태도에 내 분노가 임계점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놓고 어머니께 말했다.

“전하, 아니 어머니! 제발 제 일에는 관심 좀 끊어 주시겠습니까? 매번 이렇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것도 한두 번이지!”

[자네 미쳤나!]

가만있던 영감님이 다급히 고함을 지르며 나를 나무랐으나 이미 한번 내지른 후였다.

“할 말은 그게 끝이니?”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럼 나도 하던 말을 마저 하마. 이번에 네가 공작을 쳐낸 것은…….”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내가 뭐라고 하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하던 말을 계속하셨다.

“어머니……!”

“이게 전부 나를 위한 일 같니? 이건 전부 네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란다.”

“그러니까 그 조언이 필요 없다는 거잖습니까.”

“아니, 넌 내 조언이 필요하단다.”

어머니께서는 그리 말씀하시며 내 두 손을 붙잡으시더니 여느 때보다도 더 진지한 눈빛으로 내게 말씀하셨다.

“지금 제국이 혼란스러운 틈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네 자리를 노리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가 없어.”

내 말에 어머니께서는 조금 속이 상하셨는지 말투에 가시가 돋쳐 있었다.

“지금 내가 하려는 것들이 전부 나를 위해서 그러는 줄 아느냐? 전부 네가 다스릴 이 제국과 가문을 위해 그런 것이 아니더냐.”

물론 어머니께서는 바이에른 왕국의 공주로 태어나 후계를 생산할 수 없는 숙부의 후계였던 아버지와 결혼한 뒤로 가문과 제국을 틀어쥐신 분이었다.

맨손으로 제국의 실권을 장악하신 분이 권력을 휘두르고자 하셨다면 진즉에 그러셨겠지.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그러지 않으셨다.

든든한 후계자를 여럿 낳으시어 황후를 제치고 오스트리아 궁정을 이끌어가시던 분이 어머니셨다.

그런 어머니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저 위태로운 제국을 다시금 바로잡아서 혼란스러운 합스부르크 가문을 바로잡고 내 통치가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원하시는 것뿐이었다.

영감님도 그런 어머니의 심정을 잘 이해했기에 고분고분하게 잘 따른 것이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어머니께서 관여하셨던 일이 전부 영감님과 제국에 도움이 되었냐고 하냐면 그건 또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는 철저히 <제국>과 <가문>에 이득이 되는 방향을 택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감히 제국에 반란을 일으킨 헝가리인들은 철저히 반동으로 몰려 탄압받았고, 자치권을 요구하거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깡그리 무시당했다.

그러니.

“불행히도 제가 생각하는 것과 어머니께서 생각하시는 제국의 모습이 많이 다른 것 같군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조금 흥미가 동한다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말했다.

“하긴……. 너도 이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그동안 내가 너무 내 생각만 강요했던 모양이로구나.”

“궁정의 일은 어머니께서 알아서 하세요. 다만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심 긴장했다.

여기서 어머니인 조피 대공비가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나오면 나로서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미 궁정에는 어머니의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정계에서는 절반이 메테르니히 쪽이었고 나머지 절반이 슈바르첸베르크의 공작 펠릭스의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흔쾌히 동의하셨다.

“좋아, 그럼 한 가지만 약속해다오.”

……조건이 하나 붙었지만 말이다.

“말씀하시지요.”

“네가 급작스레 황위를 잇게 되어 미처 준비하지 못했지만……. 언제까지고 네 옆을 비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더냐.”

“……그렇지요.”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프로이센과 작센의 공주 중에서 한 명과 맺어지는 것이 어떻겠니?”

어머니께서는 필살기를 꺼내 드셨다.

황제쯤 되는 위치면 결혼을 하는 것도 중차대한 외교업무였다.

즉, 내가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독일 지역 내 주도권을 두고 프로이센과 대립 중인데……. 저들이 그걸 허락하겠습니까?”

“그렇기에 네가 그쪽과 맺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결혼동맹을 원하시는 것이라면 저보다는 막시밀리안과 맺어주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단순히 프로이센과의 관계증진을 위해서라면 내가 아니라 동생인 막시밀리안을 던져주는 게 맞았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단순히 관계증진만을 노린 것인지 내 아픈 곳을 찔러오셨다.

“어차피 이번 반란을 진압한 이후에 프로이센과의 대결은 피할 수 없지 않냐.”

“으음……. 그건 그렇지요…….”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 투키디데스가 말했다.

기존의 국제질서를 주도하던 국가가 약화하고 신흥국가가 치고 올라올 때, 두 국가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

투키디데스는 당시에 그리스 패권을 쥐고 있던 스파르타와 이에 도전하는 아테네에 빗대어 이를 설명한 것이지만, 지금의 상황에 이보다 잘 어울리는 말이 없었다.

이미 혁명의 물결에 잠식당한 헝가리인들과의 내전으로 오스트리아의 국력이 실시간으로 깎여 나가고 있었다.

반면에 프로이센은 어느 정도 혼란을 겪고는 있지만, 우리처럼 내전이 벌어진 수준은 아니었던지라 시간이 지나면 격차가 벌어질 터였다.

“……그럼 어머니께서는 프로이센과의 결혼동맹을 통해서 결전을 조금 미뤄보자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이제 좀 흥미가 생기니?”

“흠…….”

어머니의 제안은 좋았다.

어찌 되었건 지금의 합스부르크를 만들고 위기 때마다 가문을 구해준 것이 결혼동맹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영감님이 신경 쓰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원래 몸 주인은 영감님이었고, 영감님이 이 몸에 들러붙은 것도 가족들에 대한 복잡미묘한 무언가 때문에 그런 것이었으니 말이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나?]

‘영감님이 제 기억을 뒤져볼 때, 저는 영감님 기억을 뒤져봤지요.’

[크흠…….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게.]

영감님은 무안했는지 잠시 말이 없더니, 이전보다 한층 진지해진 어투로 무게를 잡으셨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솔직히 이젠 뭐가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드는군……. 인생의 종막에 내가 느낀 감정의 일면들이…….]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잠깐, 내 말을 좀 더 들어주게!]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듣겠습니다.’

영감님이 호통을 치시며 내게 무어라 했지만 일단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기에 가볍게 무시했다.

“일단 선을 넣어보긴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게 잘될 거라는 확신은 없다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그러렴.”

* * *

내가 궁정의 내부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때, 전황은 점차 우리 쪽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기습적으로 부다를 점거하여 적의 주력을 포위하려던 그라츠의 작전은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갔지만, 공세 자체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라츠의 작전은 실패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전으로 인해 헝가리 방위군의 수뇌부 명령이 갈렸다.

총사령관인 뎀빈스키는 도나우강 너머로 후퇴를 명했으나 정작 현장의 총책임자인 괴르게이는 항전을 선택했다.

이처럼 지도부의 명령이 갈리니 일선의 장교들과 병사들은 혼란에 빠져 오스트리아군의 공세에 적절히 대응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헝가리군은 밀리고 밀려 수도인 부다 코앞까지 밀려나게 되었다.

당장에 수도가 함락될 위기의 상황에서 괴르게이는 현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그동안 자신을 눈엣가시 취급하던 뎀빈스키를 몰아내려 했다.

“이번 겨울 작전에서 우리 군은 본래 가진 전력의 십 분의 일도 발휘하지 못했다. 이는 총사령관의 판단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전선에서 오스트리아군의 공세를 받아내던 괴르게이의 성명에 헝가리 방위군 내의 수많은 장교가 호응하며 군부 내에 반(反) 뎀빈스키 여론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따지고 보면 이번 일은 괴르게이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었으나 군부의 인사들은 외국인인 뎀빈스키와 그 일당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머저리 같은 마자르 놈들 같으니……. 그래, 나도 더는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불만만 늘어놓는 너희들에게 단단히 질렸다!”

결국, 뎀빈스키는 겨울 작전의 실패 책임을 지고 총사령관직에서 물러났다.

그의 후임으로 같은 폴란드인 출신 장군이 추천되었지만 이미 뎀빈스키에 크게 된 군부는 외부의 인물이 아니라 내부의 인물을 원했다.

“으음……. 괴르게이 어르투르를 올리자고?”

“군부의 인원들이 의견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이제 서른쯤 되었는데, 너무 젊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한 나이에 능력이 넘치는 젊은이지요.”

사실상 헝가리 혁명정부를 이끄는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코슈트 러요시는 이러한 군부의 움직임에 크게 당황했다.

뎀빈스키를 데려온 것이 자신이었는데, 그를 내치고 자신과 대립 중인 괴르게이를 올린다는 것은 더는 군부를 자신의 손안에서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으음…….”

“각하께서도 괴르게이가 이번 일의 적임자임을 잘 알고 계시잖습니까.”

“…….”

은근히 자신을 압박하는 군부의 행태에 화가 났으나 이미 뎀빈스키가 총사령관직을 사임하고 나간 상황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전쟁 중에 총사령관직을 오래 비워두면 두고두고 문제가 생길 터였으니 말이다.

결국, 코슈트는 울며 겨자 먹기로 괴르게이 어르투르를 헝가리 방위군 총사령관직에 임명하는 것을 수용했고 괴르게이는 31세의 나이로 헝가리군을 통솔하는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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