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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11화 (11/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1화

친정?

“가스파르와 클럽커가 잘하고 있는 모양이야.”

괴르게이는 그들의 보고를 들으며 웃었다.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많은 것이 틀어지긴 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전쟁계획이란 것이 전투에 들어서면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가 되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그런 것이었다.

“자, 그럼 이쪽에서도 슬슬 움직여야겠지?”

“명령대로 병사들을 마을에서 후퇴시켰습니다.”

“솥은? 그대로 버려두고 왔겠지?”

“예, 각하.”

괴르게이는 클럽커와 가스파르의 최초보고가 올라오자마자 이셔셰그를 버리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들이 있던 자리에서 수많은 가마솥을 버려두고 중간중간에 식기를 비롯한 잡동사니들을 두고 와서 급하게 떠난 티를 냈다.

“이제 오스트리아군은 포위당할 거란 위기감에 그대로 물러나겠지.”

“페스트로요?”

“아니, 강을 따라서 북상할 거야.”

“예? 차라리 페스트를 통해서 부다로 후퇴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부관의 질문에 괴르게이는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이 혀를 찼다.

“쯧쯧쯧……. 자네에게 머리가 있다면 생각을 해보게나 그 많은 병력이 일시에 페스트로 몰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야……. 아!”

너무 많은 병력이 한곳으로 몰리면 명절 고속도로를 방불케 하는 병목현상이 생길 터였다.

뒤에서 적군이 쫓아오는 다급한 상황에서 그런 일을 반길 지휘관은 없었다.

“아……. 그래서 적들이 강을 따라서 북상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이로군요!”

“그래, 그리고 이미 그곳에는 우리의 친절한 이웃들이 대기 중이지.”

“친절한 이웃들이라면……?”

* * *

오스트리아의 야전 원수 그라츠는 일단 이셔셰그에서 조금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적들의 수상한 움직임을 눈치챈 이상 그곳에 그대로 있을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이셔셰그에서 물러난 그라츠의 부대는 퇴각로가 끊길 것을 우려하여 페스트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도나우강을 따라 북상하는 길을 택했다.

강을 따라서 북상하며 슐릭의 부대와도 합류하여 덩치를 불린 그라츠는 적의 추격을 신경 쓰며 최대한 빠르게 헝가리 영토에서 벗어나려 했다.

‘적의 주력부대는 남쪽에서 옐라치치를 뒤쫓고 있으니, 포위망이 완성되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

지금 자신이 데리고 있는 병력이 사실상 오스트리아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모아 만든 병력을 이런 곳에서 말아먹으면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군부의 위신 자체가 바닥을 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라츠는 이를 악물고 병력을 온존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때.

그라츠의 부대를 가로막는 병력이 있었다.

“각하, 전방에 적입니다!”

“어느 부대인가?!”

“깃발로 보면……. 폴란드 군단인 것 같습니다.”

“폴란드? 그놈들이 왜 여기 있는가!”

나라를 잃고 떠돌아다니다가 헝가리군에서 복무 중인 폴란드 군단이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분명 그의 기억상으로는 헨리크 뎀빈스키가 헝가리 총사령관직을 내려놓았을 때 같이 헝가리를 떠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왜 그들이 자신들의 앞을 막아선단 말인가?

‘설마!’

그때 그라츠의 어떤 가정이 그라츠의 복잡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저들이 사라졌던 이유가 헝가리를 떠나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부대를 재배치한 것인가!’

그렇다는 것은 적 지휘관은 아군이 페스트가 아닌 이곳으로 후퇴할 것을 예상하고 이곳에 부대를 배치해 뒀다는 말이 됐다.

그건 그거대로 놀라운 일이었다.

“제대로 당해버렸군.”

“각하, 선봉이 적과 교전에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곳에서 적과 맞서 싸우는 겁니까? 아니면 후퇴입니까?!”

부하들의 독촉에 그라츠는 저도 모르게 기억의 한쪽 속에 파묻어뒀던 어떤 일을 떠올렸다.

한창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 완전히 무너졌다고 판단했던 프랑스군이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나 자신의 앞을 가로막던 그 일을 말이다.

지금도 그랬다.

분명 헝가리는 완전히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어느샌가 다시 일어나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괴르게이 어르투르라고 했나……. 내 완패다.”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슐릭! 어디 있나!”

그라츠의 부름에 슐릭이 힘차게 대답했다.

“부르셨습니까!”

“지금부터 자네에게 명령을 내리겠다!”

“예, 각하!”

“미안하지만 자네가 미끼가 되어줘야겠어.”

말은 그렇게 했으나 그라츠의 얼굴에는 미안함이나 안타까움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슐릭은 섭섭함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가 왔다는 듯이 기뻐하며 힘차게 대답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각하!”

“자네는 이대로 우리와 찢어져서 보헤미아 쪽으로 북상하여 빈으로 후퇴하게.”

“고작 그 정도로 적이 쫓아오겠습니까? 아예 각하의 군단기도 제게 맡기시지요.”

“안 그래도 그럴 셈이었네.”

그라츠와 슐릭은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굳이 입 아프게 더 떠들지는 않았다.

* * *

“……일주일 만에 점령지를 전부 빼앗겼다고?”

“전부는 아닙니다. 아직 코마롬 요새에서 적과 대치 중이고 부다에서는 용맹한 장병들이 항전을 이어가고…….”

“그게 전부 빼앗긴 것이잖은가.”

내 말에 공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말처럼 아군은 아직 곳곳에서 적과 교전 중이었지만, 부다는 함락 직전이었고 코마롬에서는 적의 세 배나 되는 병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괴르게이는 조심해야 한다고 내가 몇 번이고 말했는데, 왜 들어먹질 않은 건가!]

‘나름대로 준비한다고 해뒀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날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나도 억울했다.

영감님의 말을 듣고 부다와 페스트를 기점으로 도나우강을 끼고 튼튼한 방어선을 만들려 했는데, 그라츠가 제멋대로 공세에 나선 것이다.

[전장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현장의 상황까지 통제하려 드니 그라츠가 반발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보지도 않은 건가?!]

하지만 영감님은 그것이 내 잘못이라고 하셨다.

‘에이……. 저는 황제잖습니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무리 자네가 황제라고 해도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할 수는 없단 말이야!]

‘하지만 영감님은 혼자서도 잘하셨잖아요.’

[……모든 것이 잘 풀렸던 것은 아니네, 오히려 내 아집으로 낭패를 본 일이 더 많았어.]

내가 또 말을 잘못한 것인지 그 이후로 영감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후우……. 정말 고약한 영감탱이 같으니…….”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아무것도 아닐세, 그래서 앞으로의 대책은 세워두었겠지?”

“예, 우선 예비대를 소집하여 하이나우 남작에게 이를 맡기고자 합니다.”

“하이나우?”

평소라면 이쯤에서 영감님이 하이나우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줬겠지만, 아쉽게도 영감님은 감감무소식이었기에 내가 직접 기억을 뒤져야 했다.

‘하이나우의 남작 율리우스 야콥……. 성격이 거칠고 포악한 데다가 폭력적인데 충성심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이라고?’

성격만 보면 참으로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업적을 보니 할 말을 잊었다.

‘와우……. 미친놈인데?’

혁명에 가담한 이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하고 진압한 이야기는 글로 읽을 뿐인데도 충격적이었다.

오죽했으면 영감님마저도 그를 변호하지 않았으니 말을 다 한 셈이다.

“그……. 친구는 좀 거칠지 않은가?”

“그만큼 용맹하니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으음…….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나도 더는 이의를 제기하진 않겠네.”

공작은 이어서 그라츠의 해임을 건의했다.

“그라츠 원수는 폐하의 명령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움직여 제국에 큰 피해를 줬습니다. 그러니 그를 해임하고 이전 군정장관이신 루트비히 폰 벨덴 경을 그 자리에 앉혔으면 합니다.”

“벨덴?”

그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았다.

전선의 불리함을 알리는 편지를 여러 번 붙인 것과 총사령관에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임되었다는 것 정도?

이 정도로는 이 사람을 판단할 수가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맞는다면 벨덴은 지금 이탈리아 전선에 있는데, 이 친구가 빈으로 오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거야. 지휘관을 바꾸는 것은 좋으나 그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군의 사기나 조직력에 좋지 않다네.”

하지만 공작은 내 지적을 예상했다는 듯이 곧바로 맞받아쳤다.

“그래서 부사령관으로는 옐라치치를 임명할 예정입니다. 벨덴 경께서 지휘권을 잡기 전까지는 옐라치치 경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겁니다.”

“으음……. 옐라치치라…….”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의 계획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으나 뭔가 꺼림칙했다.

‘내가 못 보고 지나친 게 있나?’

보통 이런 기분이 들 때면 다음 날 어김없이 머리끝까지 화가 난 민원인이 찾아와서 내 머리를 쥐어뜯고는 했다.

그래서 버릇처럼 서류를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내가 놓친 것을 찾았다.

“폐하?”

“아, 잠시만 기다려주게.”

갑작스러운 행동에 공작은 잠시 움찔했으나 이내 가만히 나를 지켜보았다.

“이게 여기쯤 있었던 것 같은데…….”

공작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난잡한 집무실 책상 위에서 작전계획을 찾느라 바빴다.

그렇게 한 십 분쯤 서류 더미를 뒤적이자 작전지도가 첨부된 그라츠의 작전계획서가 튀어나왔다.

“여기 있군.”

“그건 왜 찾으시는 겁니까?”

“그라츠가 기획한 작전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찾아본 것일세.”

“어차피 그라츠 경은 경질될 텐데요.”

“그렇지, 그러니 찾아보려는 거야.”

공작은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의아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폐하께서 그걸 왜 찾아보시는 겁니까?”

“내가 직접 가볼 생각이네.”

“어, 어딜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디긴 전장이지.”

“…….”

공작은 할 말을 잃었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애써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표정 관리를 했다.

“내가 전장에 가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그 위험한 곳에 가셔서 어찌 실생 각입니까?”

“뭐 전쟁으로 지친 병사들도 위로하고 여차하면 저들과 협상해 볼 여지도 있지 않겠나.”

“……그런 것은 굳이 위험한 전장으로 가지 않아도 이곳에서도 할 수 있잖습니까.”

공작의 말이 맞았다.

혁명 초기의 혼란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제국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고는 하지만 이건 모래성 위에 올라탄 것과 같았다.

혁명으로 인해 발발한 전쟁으로 인해 이미 경제는 파탄 난 지 오래인지라 시민들은 고통받았고 수많은 중산층이 극빈층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황제를 정신적 버팀목으로 삼고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전장에 나갔다가 눈먼 총알에 맞아 소리 소문도 없이 죽어버린다면?

내 상상력이 빈약하여 전부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큰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확실했다.

“걱정하지 말게나 슈바르첸베르크 공, 본인은 그저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구경이나 하다 올 생각이니까 말이야.”

이건 진심이었다.

아무리 지금 쓰고 있는 몸뚱어리가 원래 내 것이 아니었다고는 해도 내 목숨은 중요했으니 말이다.

내가 전장으로 가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적 지휘관의 얼굴이 궁금해서 그런 것이네.”

“예?”

물론 덤으로 코슈트와의 끈을 연결해 줄 연락책을 구하기 위함이기도 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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