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12화 (12/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2화

코마롬?

전선에서 승전보가 올라올 때마다 헝가리 임시정부 청사에는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괴르게이가 활약하며 불리한 전선을 단번에 뒤집어놓은 것에 다들 흥분하며 괴르게이에게 훈장을 수여해야 한다는 의견과 당장에라도 독립을 선언하자는 의견이 오갔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쯧……. 여기에 가도 괴르게이, 저기로 가도 괴르게이……. 아주 다들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이지.”

헝가리 임시정부의 실권자인 러요시 코슈트는 방에 틀어박혀 쓰레기통에 대충 던져놓은 찌그러진 캔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놈이 군사적인 성공을 거뒀다고 해서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모를 일인데 말이야.”

코슈트는 괴르게이를 무척 싫어했다.

자신의 명령을 대놓고 씹는 것은 물론.

다른 이들 앞에서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을 서슴지 않던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권력에 위협을 주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짜증 나는군.”

빈에 있는 황제에게 보낼 헝가리 독립선언문을 작성하던 코슈트는 부아가 치밀어올라 펜을 집어 던지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자신의 집무실을 두세 바퀴 정도 배회하고는 다시금 자리에 앉았으나 좀처럼 분노를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으음…….”

코슈트는 검지로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사람들이 자신이 여태까지 해왔던 것보다 괴르게이가 짧은 시간에 이룬 것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디 독립운동을 괴르게이 혼자서 하는 일이었던가? 자신 역시 칭송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독립을 위해 발 벗고 나서면서 외국에서 지원을 얻어온 것이 누구인가?

코슈트였다.

다들 뜻은 높으나 조직화하지 못하고 구심점이 없어 중구 난방하던 이들을 끌어모아 체계적인 조직으로 만든 것이 누구인가?

코슈트였다.

비록 황제에게 거절당하기는 했으나 헝가리를 위한 개혁안을 만들어 황제에게 당당하게 요구하였던 것은 누구인가?

자신이었다.

그런데도 거리의 사람들은 괴르게이 만세를 외치면서 그를 기렸다.

그건……. 그건 무척이나 부아가 치밀어오르는 모습이었다.

“누가 보면 괴르게이가 왕이라도 되는 줄 알겠어! 다들 전투 몇 번 이겼다고 좋아하고 있으니……. 쯧.”

아무리 괴르게이를 욕해봐도 좀처럼 속이 풀리지를 않고 오히려 밧줄이 몸을 옥죄는 것처럼 답답해질 뿐이었다.

결국, 그를 욕하는 것이 자신의 얼굴에 침 뱉는 것임을 깨달은 코슈트는 그저 끙끙 속으로 앓으며 한숨만 푹푹 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후우……. 그래, 이기면 좋은 거지.”

그리 생각하며 다시금 빈에 있는 황제에게 보낼 헝가리 독립선언서 전문을 써 내려가던 코슈트의 눈에 책상 서랍에 삐죽 튀어나온 희끄무레한 것이 관심을 끌었다.

“이건?”

코슈트는 책상 서랍에서 지난날 태우지 않고 남겨뒀던 황제의 편지를 발견했다.

“으음……. 이게 아직도 남아 있었군.”

코슈트는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게 편지를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집어넣고는 다시금 독립선언문 작성에 집중했다.

* * *

괴르게이에게 철저히 농락당한 그라츠는 도나우강 동부의 병력을 뒤로 물려 요새가 있는 코마롬과 인근의 소도시인 죄로까지 물러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헝가리군의 진군을 막아서기 위해 방어선을 만들려고 했는데…….

“코마롬 요새 주둔군이 저쪽에 붙었다고?”

“예, 아무래도 내부에 있던 헝가리 출신 병사들이 들고일어났던 모양입니다.”

“……내부의 숙군작업은 끝난 것이 아니었던가?”

“불순한 녀석들은 전부 골라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지난 헝가리의 반란과 빈에서 터진 혁명, 거기에 사르데냐 왕국의 도발까지 이어졌던지라 오스트리아군 내부의 헝가리인들을 골라내는 작업은 제대로 진행되질 않았다.

그렇다 보니 이전까지는 오스트리아의 눈치를 보던 이들이 헝가리가 치고 나오자 이에 호응하여 들고일어났던 것이다!

“후우……. 이걸 예상해야 했는데 말이야.”

“그래도 하인리히 헨치 경처럼 제국에 충성하는 이들도 있잖습니까.”

“그 친구는 코마롬에 없었잖나.”

“그건 그렇습니다.”

거기에 헝가리군도 이상한 움직임을 보였다.

“반군이 부대를 둘로 나눴다고?”

“예, 한쪽은 도나우강을 따라서 북상 중이고, 나머지는 페스트 방향으로 진군하여 부다로 몰려들고 있다는군요.”

“그럼 적의 주공은 어느 쪽인가?”

그라츠의 관심사는 반군의 주공이었다.

지난 전투에서는 적의 주공과 조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적에게 휘둘리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그라츠는 신중히 처리했다.

“아무래도 부다로 향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군을 멀리 밀어냈으니 안심하고 부다를 공격하겠다는 속셈 같습니다.”

“그렇다면 부대를 왜 나눈 것인가?”

“그거야 당연히 우리 전력이 부다로 집중되는 것을 방해하려는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저들이 기세를 탔다고는 하지만 전력상으로는 아직도 아군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겠지요.”

“으음…….”

부하 장교들의 말을 들은 그라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반군이 부대를 둘로 나눴다. 이번에도 나를 속여서 주요목표를 이루고자 함이겠지……. 그렇다면 적의 목표는 부다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괴르게이가 무리하게 코마롬 요새를 도울 이유는 없어 보였다.

이미 코마롬은 오스트리아군에게 포위당하여 겨우겨우 버티는 상황이었고 그들에게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땅이었으니 말이다.

무리하게 코마롬을 돕는 것보다는 대대로 헝가리의 중심지였던 부다와 페스트를 되찾는 것이 더 합리이었다.

‘하지만……. 굳이 부다를 노릴 것이라면 왜 부대를 둘로 나눈 것이지?’

반군의 본대에서 떨어져나온 병력은 고작 이만 명 정도의 애매한 숫자였지만 오히려 그 애매함 때문에 더 신경 쓰였다.

‘저 병력으로 전선에 구멍을 내려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아군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라츠는 적들이 부다로 몰려온다고 판단하고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적의 주공은 부다임이 틀림없다. 그러니 부원수 옐라치치에게 부다에 있는 아군의 구원을 명하고, 나머지는 지원군이 오기 전까지 코마롬 요새를 포위한 채로 대기한다.”

부다에는 헝가리 태생이나 반군에 합류하길 거부하고 오스트리아에 남은 하인리히 헨치라는 장교가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가 기억하기로는 부다에 남은 병력은 오천 명가량으로 이 병력으로는 반군을 막아내는 것은 물론 버티는 것도 힘들었으니 그라츠는 헝가리로의 교두보를 지키기 위해 병력을 증강한 것이다.

‘옐라치치의 부대가 부다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있으면 안 되는데 말이야…….’

* * *

옐라치치의 부대는 이미 도나우강을 건너 부다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벌라톤 호수 인근에서 재정비 중이었다.

“우리보고 부다를 구원하라고? 거기서 죽다 살아났는데, 다시 사지로 기어들어 가라는 건가?!”

예상치 못한 헝가리군의 습격에 죽다 살아난 옐라치치는 다시금 사지로 기어들어 가라는 그라츠의 명령에 크게 화를 냈다.

“가서 그라츠 경에게 전하시게, 내 부대는 오랜 행군으로 지치고 장비도 많이 손실하여 도저히 부다를 구원하러 갈 수 없다고 말이야!”

“장군께서 그렇게 하시면 부다에 남은 헨치 장군과 아군병력이 위험합니다.”

“그 헝가리 놈을 살리자고 내 부하들을 다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잖나.”

“하지만 장군…….”

전령은 간절하게 옐라치치에게 애원했으나 그 역시 도저히 도울 만한 방법이 없었다.

“이보게, 지난 전투 이후에 내 부대가 입은 손실이 어느 정도인지 아셨으면 각하께서 그런 명령을 안 내리셨을 거라네.”

“…….”

“더는 할 말이 없네, 돌아가게.”

옐라치치는 지친 얼굴로 바위에 걸터앉았다.

움직이지 않겠다는 그의 행동을 본 전령은 말없이 경례를 올리고는 왔던 길을 돌아갔다.

그 모습에 옐라치치의 부관이 그에게 물었다.

“장군,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안 될 건 뭔가.”

“하지만 상부에서 이 사실을 가지고 장군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우리 애들을 전부 죽이자는 건가? 난 그렇게는 못 하겠네, 차라리 혼 좀 나고 말지.”

그 모습에 병사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부관은 여전히 걱정된다는 듯이 그에게 말했다.

“부다에 남은 아군은 고립무원의 상황이겠군요.”

“……어쩌겠나 전쟁이란 거 원래 그런 것이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들의 도움을 거절한 순간부터 옐라치치의 가슴속에는 무거운 돌이 얹혀 있었다.

그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지만 어찌 되었건 그들의 요구를 거절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으음……. 일단 이곳에서 하루 이틀 정도 휴식을 취한 뒤에 천천히 북상하는 것이 좋겠군.”

“예, 장군.”

옐라치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걸터앉아 있던 바위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그러자 딱딱한 바위가 그 어떤 침대보다도 부드럽게 느껴졌다.

“후우……. 고단하구나.”

* * *

하이나우 남작은 영감님의 기억 속으로 봤던 것보다 더 미친놈이었다.

“지금 뭐 하는 건가?”

“예 폐하! 지금 상관에게 경례도 하지 않은 병사들을 혼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왜 자네가 직접 채찍을 잡고 휘두르고 있는 거지?”

“부하들의 잘못은 상관의 잘못이기도 하니, 제가 손수 이들의 썩어빠진 정신상태를 바로잡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출병에 앞서 그가 어떤 자인지 한번 만나보러 왔더니, 그는 웃통을 까고서는 병사들의 등에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걸 말로 하니 뭔가 이상하게 들렸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군율을 어긴 병사들을 체벌하는 자리였다.

실제로 그가 휘두른 채찍에 맞은 병사들은 등가죽이 찢어져서 피가 철철 흐르는 상태였다.

“후우……. 그쯤 하면 알아들었을 것 같으니 그만하고 병사들은 의무대로 보내주게.”

“안 됩니다. 요즘처럼 나라가 뒤숭숭한 할 때 병사들의 군기를 확실하게 잡아야 합니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하이나우 남작은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그럼 자네에게 직접 명령하지. 그만두게.”

“예, 폐하!”

“후…….”

하이나우 남작이 미친놈이지만 통제할 수 없는 미친놈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병사들은 하이나우의 눈치를 살피면서 다친 병사를 의무대로 데려갔는데, 하이나우 남작은 아쉬웠는지 입맛을 다시면서 그들의 뒷모습을 뚫어지라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도 아쉬운가?”

“조금 그렇습니다.”

“후……. 병사들을 너무 가혹하게 밀어붙이지는 말게나 저들은 조만간에 전쟁터로 갈 것이 아닌가.”

“그러니 병사들을 더욱 몰아붙여야 합니다. 병사들이 스스로 전쟁터로 뛰어들기를 원할 정도로 몰아붙여야지요!”

“명령이네, 그러지 말게.”

“폐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씁…….”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앞날이 깜깜했다.

차기 오스트리아군 총사령관이 될 벨덴을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그가 그리워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후……. 그래, 병력 동원은 다 되어가는가?”

“예, 빈과 그 인근에서 예비대 4만 명을 동원하여 현재 전선으로 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래, 수고가 많았군.”

“아닙니다!”

공작에게 보고를 받은 게 일주일 전이었고 하이나우 남작의 보직이 변경된 것이 나흘 전이었으니 그는 나흘 만에 병력 동원을 끝낸 것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이곳까지 오는 시간까지 따져보면 이틀 만에 동원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럭저럭 능력이 있는 것 같은데……. 저 빌어먹을 성격이 문제로군.’

내가 심리치료사도 아니고 하이나우 남작의 포악한 성격까지 고칠 필요는 없었지만, 신경이 쓰였다.

[하이나우는 원래 그런 인간이니 내버려 두게.]

‘아잇 깜짝이야! 영감님, 제발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시면 안 될까요?’

[깜빡이? 아, 자네가 타고 다니던 수레에 달린 발광기구를 말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런 것이 달리지 않은 순수한 인간인지라…….]

‘농담한 겁니다……. 그래서 이번엔 무슨 일이세요?’

[자네가 전쟁터에 직접 나선다기에 알려줄 것이 있어서 찾아왔다네.]

‘그게 뭔데요?’

[적은 코마롬으로 올걸세, 그게 끝이야.]

‘예? 그게 무슨 말이래요. 영감님? 영감님!’

영감님은 또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셨다.

“코마롬? 그건 또 어디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