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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13화 (13/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3화

사과꽃?

빈에 집결한 부대가 전선으로 떠날 준비를 끝내놓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 기억 속의 디지털 군복과는 다른 군복을 꺼내입고는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으니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이 방문을 두드렸다.

“폐하, 총리대신 펠릭스입니다.”

“공작이 무슨 일인가?”

“용무가 있어 찾아왔다고 하십니다.”

“들어오게.”

문이 열리자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은 며칠 전보다 수척해진 얼굴로 내게 인사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어……. 본인은 잘 지낸 것 같은데……. 자네는 영 못 지낸 것 같군.”

“폐하께서 전선으로 가신다는데 제가 어찌 편하게 지낼 수 있겠습니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네, 자네가 쓰러지면 오스트리아도 쓰러진다고 생각하고 건강관리에 힘써주게, 이건 명령일세.”

내 말에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은 허허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예, 유념하겠습니다.”

“그래, 자네 건강 상황이나 보고하려고 온 것은 아닌 것 같고……. 무슨 일인가?”

“폐하께서 친히 전선에 가신다는데 제가 가만히 있을 수야 없어서……. 이런 걸 준비했습니다.”

“이게 뭔가?”

“보면 아실 겁니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공작은 내게 몇 가지 서류를 넘기고는 가버렸다.

“도대체 이게 뭐길래…….”

그리고 서류를 펼쳐보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안에는 현재 동부에서 내가 운용 가능한 병력의 위치와 구성표, 보급품이 잠들어 있는 보급기지의 위치가 그려진 지도가 첨부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이야……. 이거 만든다고 밤을 새운 건가?”

성의는 기특했으나 아쉽게도 이런 건 잘못했다가 적에게 노획되면 큰일이었기에 전장으로 가져갈 수는 없었다.

대신 머릿속에 기억해뒀다.

‘영감님, 다 외우셨죠?’

[내가 왜 이런 것까지 해야 하는고.]

‘이게 바로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게 다 제국을 위함이니 좀 해주시죠.’

[자네가 날 이용하려는 게 아니고?]

‘기왕이면 상부상조라고 해주시죠.’

[으음……. 상부상조는 또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어째 자네가 하는 말은 이해가 되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구먼.]

영감님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내 기억을 뒤져보러 간 것인지 아무 말이 없으셨다.

“또 삐지셨나 보네.”

[헛소리 그만하게.]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이 전해준 서류를 개인금고에 던져놓고는 밖으로 나오니 근위대가 복도에 늘어선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준비됐으면 슬슬 출발하지.”

* * *

빈에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국경지대까지는 열차를 타고 그 이후부터는 대로를 따라 행군하니 코마롬까지 이틀이면 충분했다.

“병사들이 조금만 더 부지런했다면 하루면 충분했을 텐데 말입니다.”

“이틀도 충분하잖나.”

“그렇습니다만…….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군요.”

하이나우 남작이 괜히 주절거리면서 분위기를 망치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코마롬에 무사히 도착하니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폐하!”

“오랜만이군. 그라츠 경.”

“먼 길 오시는 데 불편함은 없으셨는지요.”

“불편은 무슨 아주 편했다네.”

다만 말을 오랫동안 타다 보니 허벅지가 저리다 못해 감각이 없는 것만 빼면 다 괜찮았다.

[자네가 단련을 게을리해서 그런 것이야.]

‘제가 말 타고 다닐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루빨리 자동차라도 만들어야지 원…….’

[쯧쯧쯧……. 자네는 두 다리가 멀쩡한데 어째 편한 것만을 쫓는고? 예로부터 그렇게 편한 것만을 쫓는 이들은…….]

‘큰일을 못 한다고요? 예, 알겠습니다.’

영감님이 뭐라 하는 것을 뒤로하며 코마롬 인근의 주둔지로 향하니 병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몰려들어 황제 만세를 외쳤다.

“황제 폐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어이쿠! 깜짝이야.”

병사들은 군부대를 방문한 아이돌은 접견한 듯이 흥분해서는 너 나 할 것 없이 만세를 불러댔다.

물론 난 아이돌도 아니었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나를 환영해 주는 것도 처음이었던지라 어색할 따름이었다.

“병사들이 폐하의 방문을 환영하는 것입니다. 손을 들어서 저들에게 인사를 건네주시지요.”

“그, 그럴까?”

갑자기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러웠지만 일단 손을 들어서 그들에게 두어 번 흔들어주니 병사들은 아주 좋아 죽으려 했다.

“폐하께서 내게 손을 흔들어주셨어!”

“멍청아 태양 빛이 따가워서 손을 드신 거야!”

“아냐! 고개를 돌리셔서 나랑 눈을 마주쳤어!”

“코마롬 요새를 보신 거겠지.”

“에라이 멍청이들아! 폐하께서는 나를 축복해 주신 거야! 나는 살았다!”

……그 정도가 조금 심했지만, 어찌 되었건 다들 내 방문을 크게 환영해 줬다.

정신없이 병사들에게 인사하며 회의실로 들어오니 이미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장교들이 동시에 일어나며 경례를 올렸다.

‘이야……. 제가 군 생활을 할 때는 사단장이 왜 이렇게 부대를 자주 오나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로군요.’

[자네 위치를 좀 자각해 줬으면 좋겠군. 그러면 고작 사단장 따위와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야.]

‘영감님, 제가 군 복무 중일 때는 대대장만 떠도 매일같이 지랄하던 선임들이 벌벌 떨었어요.’

[자네 군 생활은 이미 다 봤다네.]

‘…….’

영감님의 폭탄 발언에 내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이 일을 알 리가 없는 장교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싱글벙글하던 내가 얼굴을 굳히니 다들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으음…….”

거기다가 경례도 받아주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앉아버리니 다들 어찌할 줄을 몰라서 내 눈치를 살피며 숨소리까지 신경 써가며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내가 입을 열지 않으니 회의장에 감도는 어색한 침묵은 도통 깨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뭐가 또 마음에 안 드시는 거지?’

‘아무래도 지난번에 이셔셰그에서 패배한 것 때문에 그러신 게 분명해!’

‘X됐네…….’

다들 공황에 빠져 있었지만 나는 그런 이들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자네 삐졌나?]

‘안 삐졌습니다.’

[허허, 자네 기억을 되짚어보다 그런 것이니 자네가 이해해 주게.]

‘안 삐졌다니까요.’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지.]

‘거참 사람 말을 왜 이리 못 믿어요!!’

영감님을 제대로 쏘아붙이려는 그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흠흠……. 폐하, 그럼 전황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음? 아, 그렇게 하게.”

결국,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한 그라츠가 먼저 입을 열면서 침묵을 깨트렸다.

“현재 아군 병력은 각 지역에 파편화되어 주둔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세력이 바로 이곳……. 코마롬입니다. 이곳엔 4개 군단 총 68,000명가량의 병력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고립되어 있는 병력이라고?”

“아, 네.”

그라츠는 숨을 고르면서 천천히 지도위에 오른손 검지를 갖다 댔다.

“일단 페슈트와 부다에 주둔 중인 부대는 하인리히 헨치라는 장교가 이끄는 부대로 병력은 대략 1만 명 내외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꽤 많은데……. 이들은 어쩌다가 이리된 건가?”

“……얼마 전에 후퇴명령을 내렸으나 아군의 전령보다 적들의 기동이 더 빨랐던 탓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 지원군을 보내 구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방법도 시도해 봤지만……. 얼마 전에 있었던 전투 때문에 지원을 보낼 만한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라츠는 부끄럽다는 듯이 말했지만 나는 그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여기 있는 병력을 조금 떼서 포위된 아군을 구해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건 안 됩니다. 지금 적이 어디로 공격해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병력을 나눴다가는 적에게 각개격파 잘할 우려가 있습니다.”

“골치 아프군.”

“예, 실로 그러합니다.”

그라츠는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대책은 있는가?”

“대책…… 말입니까?”

“그래, 일이 꼬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대책 같은 것은 마련해놓았을 것 아닌가?”

“아, 그렇죠. 대책…… 을 마련했지요.”

그라츠는 눈에 띄게 당황하더니 주변을 둘러보며 무언가를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도대체 뭘 하는 건가 싶어 그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내 옆에 있던 안대를 찬 장교가 멋쩍게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코마롬 요새를 함락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새 외곽에 공성포 진지와 공격용 참호를 건설 중이지요.”

“그렇군. 뭐 이런 쪽은 자네들 전문분야이니까 다들 알아서 잘하겠지.”

나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환대도 충분히 받았고, 대충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파악했으니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내 일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나는 현장지휘관들의 판단을 믿네, 그러니 자네들은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부담가지지 말고 내게 말하면 들어주지.”

“예, 폐하!”

다들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에 우렁찬 목소리로 경례를 울렸고 이제 긴장감이 풀어졌다.

“아, 그라츠 경 내 자네에게 긴히 할 말이 있네.”

“예, 폐하 말씀하시지요.”

“자네는 해임일세, 며칠 뒤에 벨덴이 올 것이니 그 친구에게 인수인계하고 자네는 그만 쉬어도 좋네.”

“……해임 말입니까?”

“그래그래, 슈바르첸베르크 공작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자네에게 오스트리아군 총사령관 직책은 좀 무거웠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에게 말하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생각해 보니 주변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아이고 머리야…….]

영감님도 내 행동을 보고는 머리를 쥐어 싸면서 한숨을 내쉬었고, 말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던 것인데, 폐하의 기대에는 못 미쳤던 모양이로군요.”

“음? 그런 것은 아닐세, 이건 어디까지나 지금 한껏 기세가 오른 반군을 물리칠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는 것일 뿐이야.”

이번에도 말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네 미쳤나! 왜 애먼 사람 가슴에 대못을 쾅쾅 박아넣고 있는 건가!]

‘어, 음……. 이렇게까지 말하려던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어버렸군요.’

[사과는 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명예에 크게 흠집이 난 저 친구에게 해야 하지 않겠나?]

영감님의 말에 그라츠의 얼굴을 슬쩍 훑어보니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주전자 같은 모습이었다.

살짝만 건드려도 제대로 폭발할 것 같은 그의 모습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안 잡혔다.

[일단 칭찬부터 하게!]

‘갑자기 칭찬하라고 하면 대뜸 칭찬할 거리가 제 머릿속에서 튀어나오는 줄 아십니까?’

[그럼 내 조언도 여기까지로군.]

‘씨이…….’

그에게 무슨 말로 위로를 해줘야 할지 몰라 고민이 길어지자 이를 지켜보던 이들은 다시금 바짝 긴장해서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제국의 최고 권력자가 군부의 원로 중 한 명이자 실권자에게 지난 패전의 책임을 물어 그의 권력을 다시 회수해 가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으니 말이다.

‘폐하께서 정말 단단히 칼을 뽑아 드셨구나……!’

‘그동안 느슨해진 군부에 긴장감을 불어넣으시려는 건가?’

‘아무리 군부의 실세인 그라츠 대공이라도 잘못하면 그냥 내치시겠다는 건가……!’

‘그라츠 각하만 잘리는 건가? 그럼 내 목은 안전하겠지?’

한참이나 가만히 서 있던 그라츠는 허탈하게 몇 번 웃더니 다시금 자세를 바로 하여 내게 경례를 올렸다.

“폐하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그래, 너무 아쉬워하진 말게 기다리다 보면 다시금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지 않나?”

“기회라……. 이미 세월은 흘러갔고 저는 늙어버렸는데, 다시금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겠군요.”

한눈에 봐도 감정이 팍 상해 버렸다고 광고하는 그의 모습에 괜스레 양심이 찔렸다.

그래서 뭔가 위로가 될 만한 말을 고민하다가 예전에 과장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이 떠올랐다.

“자네 사과꽃을 본 적이 있나?”

“사과꽃 말입니까? 본 적은 없습니다.”

“사과는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자라난다네, 그래서 사과나무에 꽃이 얼마나 피었느냐에 따라 그 해의 농사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것이지.”

내 말에 그라츠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러니 제가 물러난 자리에는 어떤 과실이 맺힐지 기대된다는 말씀이로군요.”

“뭐 그런 셈이지.”

유종의 미를 거두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그라츠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폐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이 늙은이가 염치없이 그냥 물러날 수는 없지요.”

그라츠의 가슴속에서 불길이 확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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