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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15화 (15/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5화

도강?

괴르게이의 부대는 중간중간 오스트리아의 정찰병들과 마주쳐 들킬 뻔하기도 했지만, 부대를 나눠서 움직인 덕분에 어찌어찌 오스트리아군의 시선을 피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하는 것은 수십 미터 상공위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것과 같았기에 다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굉장히 긴장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작전을 입안한 괴르게이마저도 잔뜩 긴장하고 있었으니 말은 다 한 셈이었다.

“조금 뒤면 코마롬 북쪽 요새에 도착합니다.”

“적의 동향은?”

“아직 남쪽에서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고 합니다.”

“그건 언제 보고받은 것인가?”

“어제저녁에 보고를 받았으니……. 아마도 이틀 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 새로 사람을 보내 상황을 파악하도록. 부대가 코마롬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 이후다.”

“예, 각하.”

괴르게이는 이전에 오스트리아군을 크게 무찔렀음에도 코마롬에 도착하는 그때까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주변을 경계하는 그의 유별난 모습에 휘하장교들은 혀를 찼다.

“코마롬에 도착했으니 한숨 돌린 것 아닌가?”

“각하께서 좀 유별나신 것 같군.”

“잘나신 분의 생각을 우리 같은 머저리들이 어떻게 알겠나? 그냥 시키는 대로나 하세.”

“그건 그렇지.”

병적일 정도로 오스트리아군의 움직임을 조사하던 괴르게이는 비로소 적들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명령을 내렸다.

“적들은 움직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니 슬슬 강을 건널 준비를 해야겠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도나우강 어귀에 만들어진 작은 도시인 코마롬시는 강 상류와 하류로 나뉘어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이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오스트리아군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곳이었고 또 요새를 한참이나 돌아가야 하는 길이었기에 괴르게이는 밤을 틈타 뗏목을 이용하여 도나우강을 건너려 했다.

오스트리아군도 이러한 헝가리군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라츠는 그러한 적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보시오 그라츠 경, 본인이 그대의 전략 전술을 깎아내린다거나 지휘권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얼핏 들은 바로는 적들이 강을 건널 때 공격하는 것이 좋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오?”

“적들이 알아서 사지로 걸어 들어가겠다는데 무엇이 걱정되겠습니까? 트란실바니아에서의 일이 잘 끝나면 저들도 얼마 못 버틸 겁니다.”

“으음……. 그건 그렇지만…….”

뭔가 석연찮은 부분이 있었지만, 군경력이라고는 병사로 복무하다가 제대한 나보다는 그라츠가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여 그냥 넘겼다.

[어허, 이 답답한 사람아.]

‘또 왜요.’

[이럴 때는 그라츠에게 적을 요격하라고 강하게 요구해야 할 것이 아닌가? 자네는 이대로 적을 요새 안으로 들일 셈인가?]

‘그라츠가 알아서 하겠지요.’

[자네가 지금 서 있는 땅의 주인이 누구인가? 바로 자네가 아닌가! 그런데 자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가 있는가!]

‘병은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말도 모르십니까? 괜히 잘 모르는 분야에 발 들이밀었다가 낭패라도 보면 그게 무슨 개망신입니까.’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괜히 전쟁에 끼어들어서 뭐라도 해보려고 설치다가 처참하게 패배하는 것보다는 내가 잘하는 것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은가?

[그래서 자네가 잘하는 게 뭔가?]

‘지켜보는 거죠.’

[어이구……!]

* * *

괴르게이가 안전하게 요새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트란실바니아에서 급보가 들어왔다.

“각하, 옐라치치의 부대가 트란실바니아로 진입했다는 모양입니다.”

“옐라치치의 부대?”

괴르게이는 의아함을 느꼈다.

“그쪽은 지난번에 클럽커에게 패하고 물러났을 텐데……. 다시금 공세를 할 여력이 남아 있던 건가?”

“아무래도 세르비아 군대가 그들을 보조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세르비아가 참전했다고?”

여태껏 가만히 사태를 주시하던 세르비아가 왜 움직인단 말인가? 그들이 무슨 이득을 본다고?

괴르게이는 지도를 뚫어지라 쳐다보며 그들의 생각을 읽어보려 했지만 그런다고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어렵군……. 어려워.”

괴르게이의 입에서 어렵다는 말이 나오자 휘하의 장교들은 아연실색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세르비아군이 참전한 것이라면 큰일이 아닙니까? 지금 트란실바니아 쪽을 지키던 방위군에서 병력을 많이 빼 왔는데, 그쪽이 뚫리면 후방이 위험합니다!”

“아무래도 본국인 오스만의 눈치도 봐야 하니 공식적으로 참전한 것은 아닐 겁니다.”

“그걸 자네가 어찌 장담하는가! 지금 트란실바니아로 들어오는 적들의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이 안 되고 있는데!”

괴르게이는 목소리를 높이며 자기 생각을 방해하는 가스파르에 조용히 말했다.

“지금 생각 중이니 조금만 목소리를 낮춰주게.”

“각하, 지금이라도 병력을 뒤로 돌려야 합니다. 코마롬 요새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후방이 뚫리면…….”

“내가 지금 생각 중이라고 하지 않았나!”

괴르게이의 일갈에 가스파르는 입을 다물었다.

‘세르비아가 군대를 보냈다고는 해도 아직은 오스만의 눈치를 봐야 하니 생각보다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트란실바니아에 주둔 중인 부대가 이를 막아낼 수 있냐가 문제인데…….’

이미 코마롬 요새 인근에 주둔 중인 오스트리아군의 주력을 박살 내고 부다와 페스트를 되찾기 위해 무리하게 전력을 끌어온 참이었다.

‘그라츠가 내 수를 읽은 건가?’

괴르게이는 자신의 전략이 노출된 것인가 의심해 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다. 내 계획을 눈치챘다면 트란실바니아를 찔러보는 게 아니라 부다에 전 병력을 집중하는 것이 맞지.’

그렇다면 뭘까.

지금 적들이 트란실바니아를 공격하여 얻는 이득을 떠올려봤지만 그다지 인상적인 것은 없었다.

‘트란실바니아 내에 있는 작센인과 연계를 노릴 생각인가?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고 도대체 뭐가 달라지는 것이지?’

고작 해봐야 인구 20만 명도 안 되는 소수민족의 도움이 얼마나 되겠는가.

오스트리아가 그런 곳에 힘을 쏟을 만큼 한계에 몰려 있는 건가 하면 그것 역시 아니었다.

여러모로 적장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다.

“각하.”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조금 전에 꾸지람을 들은 가스파르는 질리지도 않고 자신에게 부대를 되돌리자고 요구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부대를 되돌려서 부다와 페스트를 확실하게 점령하고 후방의 안정을 도모해야 합니다.”

“가스파르 경, 그만하시지요.”

“그만하긴 뭘 그만하라는 말인가? 이대로 전쟁에서 지게 생겼는데 자네들은 왜 가만있는가!”

괴르게이는 그런 가스파르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한마디를 날렸다.

“후퇴는 없다. 우리는 작전을 속행한다.”

“각하!”

“자네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적들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작전을 변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야.”

저쪽도 승부수를 던졌다면 이쪽도 승부를 건다.

이게 괴르게이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아무런 대책 없이 일을 벌인 것은 아니었다.

“클럽커, 자네는 코슈트한테 사람을 보내 후방의 위협을 알리고 예비군을 소집시키라고 이르게.”

“지금 예비군을 소집한다고 해도 동원이 완료되기 전에 트란실바니아가 적의 손에 넘어갈 겁니다.”

“아니, 적들은 후퇴할 것이다.”

괴르게이의 확신에 찬 대답에 가스파르가 물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옐라치치는 우리의 승리 소식을 듣고 병력을 뒤로 물릴 것이니까 말이야.”

그리고 괴르게이는 클럽커에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함대를 코마롬으로 불러오게.”

* * *

“조용하네요.”

[조용하군.]

코마롬 요새를 포위한 아군과 요새 안에서 뭘 하는 것인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헝가리군 사이에는 적막만이 감동뿐이었다.

요새를 공략하기 위해 공성 참호를 파던 병사들은 점심시간을 맞아 거지꼴을 한 채로 하나둘씩 군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적진 코앞에서 작업하려면 참 힘들겠네요.”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전시에는 복장을 단정하게 하여 기강이 살아 있음을 적들에게 보여…….]

“예, 그러시겠죠.”

[크흠……. 내가 살아 있을 적에는 내 말을 중간에 끊는 이가 없었는데, 자네는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군.]

“병사들도 슬슬 돌아오는 모양이니 주변이나 돌아다니면서 뭐 불편한 것은 없는지 살펴봐야겠군요.”

[지금 내 말을 무시하는 것인가?!]

영감님의 잔소리를 뒤로한 채 근위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군영을 어슬렁거리고 있으니 세상 힘든 표정으로 힘겹게 수저를 뜨던 병사들이 나를 알아보고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폐, 폐하……!”

“굳이 격식 차릴 필요는 없으니 다들 그대로 앉아서 식사나 마저 하게.”

다들 엉거주춤하며 자리에 앉긴 했지만 아무리 괜찮다고는 해도 황제의 앞인지라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서 다들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물론 온갖 어중이떠중이가 전부 모이는 군대라는 특성상 눈치 따위는 개나 줘버린 사람도 있었다.

“식사 전이면 같이 드시지요. 이번에는 아돌프가 스튜에 고기도 넉넉히 넣어줬습니다.”

“제발 한스……. 이 미친 새끼야…….”

동료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도 한스는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스튜를 한 그릇 뜨더니 내게 건넸다.

“그래?”

마침 식사 전이었고 배도 출출하였기에 병사들의 옆에 앉아 한스가 건네주는 스튜를 받아들었다.

“폐하……!”

“음……. 좀 짜군.”

“헤헤, 그래서 맛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궁정에서 먹던 음식은 너무 기름지거나 지나치게 담백한 것이 많아서 입맛이 영 안 살았는데, 병사들이 먹는 스튜는 솥에서 오랫동안 끓인 탓인지 짭조름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그 맛은 예전에 상놈 짓을 하던 민원인이게 시달린 날 퇴근길에 먹었던 어묵탕을 떠올리게 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말없이 퍼먹고 있으니 부대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다급히 뛰어와서는 말했다.

“폐, 폐하 왜 이런 누추한 곳에 계시는 겁니까……. 제가 따로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난 괜찮으니 호들갑 떨지 말게.”

“하, 하지만…….”

장교는 어찌할 줄 몰라고 하며 나와 근위대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후우…….”

그러자 조금 전에 그 눈치 없던 병사가 묻길.

“소위님도 한 접시 드릴까요?”

“……지금 그게 할 말…….”

짜증이 폭발하여 목소리를 높이려던 장교는 무언갈 떠올렸는지 멈칫하더니 이내 나를 힐끔 돌아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하나 주게.”

“옙!”

그 뒤로 연대장과 사단장도 찾아왔으나 결국에는 내 옆에서 식사하는 처지가 되었다.

“아니, 폐하 이런 곳에서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이번엔 하이나우인가?”

“허허……. 부관에게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는 이게 무슨 말인지 싶었는데…….”

하이나우는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곳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옆에서 식사하던 병사들과 장교들을 나무랐다.

“자네들은 지금 폐하께서 이 흙먼지를 뒤집어쓰시며 식사하시는 것을 그냥 지켜만 봤단 말인가!”

“어허, 하이나우 경.”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오늘에야말로 이 녀석들의 썩어빠진 군기를……!”

뭐가 또 마음에 안 드는지 길길이 날뛰려는 그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그를 불렀다.

“쓸데없이 힘 빼지 말고 자네도 식전이면 앉게.”

“예? 제가 왜…….”

“명령이네.”

“그럼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날뛰려던 하이나우를 진정시키고 돌아보니 어느덧 내 주변에는 그라츠를 제외한 고위장교들이 전부 모여 있는 것이 아닌가?

“다들 무슨 일로 이렇게 모인 건가?”

“폐하께서 병사들과 같이 식사를 하고 계시다기에 다들 모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그런가?”

하긴 까마득한 상급자가 현장 인부들과 식사를 하고 있다 하면 다들 놀라서 뛰쳐나올 만했다.

“폐하, 아무리 이곳이 후방이라지만 반군의 저격수가 심심치 않게 돌아다니는 곳이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장교들도 전장에서는 몸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법인데, 하물며 폐하께서…….”

장교들은 왜 위험하게 나다니냐는 말을 에둘러서 간곡한 어조로 내게 설명했다.

“허허, 군영 내에 있는 병사들이 전부 내 호위병들인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그리 말하며 병사들을 돌아봤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내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니 다들 할 말을 잃고는 말없이 수저만 바쁘게 움직였다.

물론 다들 자기 밑에 있는 부하들의 뒤통수만 노려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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