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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18화 (18/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8화

머저르 그로샤그(Magyar Királyság)?

그렇게 오스트리아군이 어물쩍거리는 사이에 헝가리군의 강상함대는 도나우강을 거슬러 코마롬 요새에 도착했다.

“오……. 강에서도 군함이 돌아다니는군.”

[저걸 군함이라고 부를 수만 있다면 말이지.]

영감님의 말처럼 헝가리 강상함대의 군함들은 상선을 임시로 개조한 것이라 그런지 무장이 조금 부실해 보였다.

‘그래도 빈에 포탄이 떨어지는 순간 제 지지율도 땅으로 떨어질 것 같은데요.’

[저 녀석들이 빈까지 갈 수 있다고? 그럴 리가! 강상함대는 저 녀석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네, 우리 함대가 저 녀석들이 북상하는 것을 그냥 눈뜨고 지켜보기만 하겠는가?!]

‘그, 그렇지요.’

영감님이 갑작스레 목소리를 높이시니 당혹스러웠다.

[크흠……. 잠시 흥분했군.]

‘아무튼, 적의 함대가 빈을 직접 공격할 수는 없다는 말씀이시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네만 보통은 그걸 불가능하다고 말하고들 하지.]

강상함대가 운용하는 군함들은 바다에서 운용하는 것과는 달리 크기도 작고 대포도 몇 문 실리지 않는 아담한 물건이었다.

거기다가 헝가리군이 운용하는 함선은 강을 오가는 유람선을 군함으로 개조한 것이라 기존의 함선들보다 무장이 빈약한 편이었다.

‘그럼 저들이 왜 군함을 끌고 온 겁니까?’

[그건 나도 모르지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본인은 병사를 부리는 일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네.]

‘끄응……. 이럴 때만 도움이 안 되시네요.’

[그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을 물어보게나.]

영감님은 또 기분이 상했는지 투덜거리셨다.

‘아이 또 왜 이러실까……. 제가 영감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놈인 거 잘 아시면서…….’

[에잉 쯧쯧쯧……. 자네는 웃어른을 공경하는 법을 좀 더 배워야 할 것 같군.]

‘도대체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우신 겁니까?’

[자네 머릿속에 재밌는 것이 많더군. 요즘엔 자네의 기억 말고 자네가 살았던 시대의 지식을 알아보는 재미로 산다네.]

‘끄응…….’

뭐라고 또 잔소리를 늘어놓으시는 영감님을 뒤로하며 다시금 망원경으로 요새를 둘러봤다.

튼튼하면서도 두꺼운 성벽과 이를 보조해 주는 해자에 높이 쌓여 있는 제방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요새였다.

하지만 영감님의 기억 속의 괴르게이는 요새의 튼튼함에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바깥으로 치고 나와 방심하고 있던 오스트리아군을 요격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수십 번을 말이다.

“그렇다는 말은 괴르게이가 요새 밖으로 치고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건데…….”

이건 나도 긴가민가했다.

요새가 주는 안정적인 이점을 포기하고 수적열세를 무릅쓰며 밖으로 튀어나와 아군과 정면으로 맞부딪힌다고?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으음…….”

거기에 영감님의 기억 속에서 봤던 1차 코마롬 전투 때와는 달리 괴르게이는 군함까지 끌고 왔고 아군의 지휘관은 여전히 그라츠였다.

아무리 영감님이 적들은 빈으로 들이치지 못할 것이라고는 했지만 일이 여기까지 뒤틀렸으면 모를 일이었다.

‘설마 진짜로 치고 나오겠어?’

[치고 나온다고 몇 번을 말하는가! 자네는 괴르게이가 자네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쳐서 머리가 깨져봐야 정신을 차릴 건가?!]

‘아잇, 깜짝이야…….’

영감님은 유독 괴르게이의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하시며 목소리를 높이셨다.

본인이 얼마나 화났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조용히 계시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통에 놀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 진짜! 왜 자꾸 그러시는 겁니까!’

[자네가 괴르게이를 너무 얕보고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닌가! 그 녀석은 자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녀석일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괴르게이라도 이렇게 포위당한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한다는 말입니까?’

원래는 괴르게이의 기동전에 정신을 못 차린 제국군이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코마롬에 전력을 제대로 결집하지 못하고 헝가리군에게 각개격파 당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라츠가 내 명령을 무시하고 강을 건넜다가 패배하긴 했으나 아군은 적의 몇 배에 달하는 전력을 유지했고 이 전력이 한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고로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는 상황이지요.’

[끄응……. 그렇긴 하네만…….]

영감님은 영 껄끄럽다는 반응이었다.

[괴르게이라면 뭔가 해낼 것이야……. 그놈이라면 분명히 그러고도 남겠지…….]

‘도대체 괴르게이를 왜 그리도 고평가하시는 겁니까? 그 정도면 거의 병이라고 해도 무방한데요.’

[내가 여태껏 살아오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물이 셋 있는데, 그중 한 명이 괴르게이고 나머지 한 명이 비스마르크라네.]

‘나머지는 누군데요?’

영감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영감님? 나머지 한 명이 누구냐니까요?’

[지금 그게 중요한가!]

‘왜 또 소리는 지르시고 그러세요!’

[괴르게이 그놈은 어떻게든 치고 나올걸세, 그러니 단단히 방비하게!]

* * *

“우리는 요새를 치고 나가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말입니까?”

“함대를 이용한다.”

괴르게이는 테이블 위에 펼쳐진 누리끼리한 전투 지도에서 배 모양의 말을 집더니 강을 따라서 서쪽으로 옮겼다.

“클럽커가 지휘하는 3군단이 강을 거슬러 올라 죄를 인근에 상륙할 것이다.”

“잠깐……. 3군단은 제 병사들입니다. 그런데 왜 제가 아니라 클럽커가 지휘를 하는 겁니까?”

가스파르는 자신과는 상의도 없이 지휘체계를 바꿔버리는 괴르게이의 모습에 분노하여 따졌으나 정작 당사자는 그게 무슨 대수냐며 역으로 물었다.

“지난번 전투에서 자네가 대규모 부대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 같아서 좀 더 경험이 많은 이로 바꿨을 뿐이네, 그게 무슨 문제인가?”

“…….”

“그럼 알아들은 것으로 생각하겠네.”

애초에 혁명 이전까지 군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괴르게이는 이것이 별다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온 가스파르에게는 크나큰 모욕이었다.

다른 이들도 그 사실을 잘 알았기에 그의 편을 들면서 괴르게이를 설득하려 했다.

“각하, 지난 전투에서 가스파르 경이 조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나 고작 그런 이유로 지휘관을 경질하는 것은 군의 사기에도 좋지 않…….”

“고작 그런 이유라니? 가스파르는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지 못했네, 그렇기에 그를 대신하여 더 경험 많고 능력이 입증된 인물로 바꾼 것이 아닌가.”

“허나 각하…….”

“나를 설득할 자신이 없다면 다들 그쯤 하게, 이게 무슨 일이라고 다들 이렇게 나서는지 모르겠으나 내 인선에 개인적인 감정은 없네.”

다들 그 사실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기분 나쁜 것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쓸모없는 놈 취급을 받게 되는데 그걸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가스파르는 조용히 주먹을 말아쥐었다.

괴르게이는 그런 그의 기분을 알지 못한다는 듯이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겨줬다.

“너무 서운해하지 말게, 자네에게는 이번 작전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맡길 테니 말이야.”

“……그게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코마롬 요새를 지키는 것일세.”

기병대장에게 요새를 지키라는 그의 인선에 주변에 있던 장교들은 탄식을 내뱉었고 가스파르는 허탈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 이번에는 그 누구보다 완벽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겠군요.”

“허허, 자네가 그리 말해주니 든든하군.”

괴르게이는 반쯤 해탈한 가스파르를 뒤로하고는 다시금 작전 회의를 속개했다.

“흠흠……. 클럽커의 부대가 죄르에 상륙한 뒤에 코마롬으로 돌아오는 데는 세 시간쯤 걸릴 것이네, 우리는 그 틈에 요새를 치고 나가 적을 공격할 생각이라네.”

“각하, 그렇게 되면 적의 화력이 집중되어 아군이 큰 피해를 보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클럽커 장군이 오실 때까지 버티지 못하고 전열이 무너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휘하 장교들의 걱정에 괴르게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 우리는 적들을 마을 밖으로 몰아내는 데만 집중할 테니 말이야.”

“마을 밖으로 몰아낸다고요?”

괴르게이의 작전은 이랬다.

일단 요새를 벗어난 헝가리군은 요새 포대의 엄호사격을 받으며 코마롬 시내에 주둔 중인 오스트리아군을 마을 밖으로 몰아내고 마을과 제국군이 만들어놓은 공성 진지를 방어거점으로 삼아 시간을 끌겠다는 것이었다.

얼핏 듣기에는 그럴듯한 계획이었지만 헝가리 장교들은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적이 전력을 집중한다면 수적으로나 화력 면으로나 열세인 아군이 밀려날 겁니다.”

“그래서 본인은 후사르를 이용하고자 하네.”

“후사르요?”

후사르.

헝가리 고유의 경기병 군사전통으로 만들어진 병과였지만 그 효용성을 알아본 유럽 각 국가에서도 너 나 할 것 없이 운용 중인 병과였다.

이들은 경기병 특유의 빠른 속도와 다양한 범용성으로 전장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필요로 하는 곳에 투입되는 이들이었다.

“후사르 연대는 적의 지휘부를 노릴 것처럼 전장을 크게 우회하여 오스트리아군의 시선을 끌 것이네.”

“예? 적들이 고작 그런 얄팍한 술수에 넘어가리라 생각하십니까?”

“그럼. 적들은 이게 내 노림수임을 알아도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을걸세.”

그의 호언장담에 장교들은 땀을 삐질 때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호, 혹시 그렇게 자신하는 이유를 저희에게도 알려주시겠습니까?”

“허허, 이런 시야가 좁은 사람들 같으니.”

괴르게이는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껄껄 웃으며 장교들에게 말했다.

“얼마 전에 오스트리아의 젊은 황제가 친히 전장에 왕림하였다는 소식을 접하지 않았는가?”

“그게 왜……. 아!”

“이제 알겠지? 적들은 자신들의 황제가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네, 만에 하나라도 황제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가만히 있던 가스파르가 그의 말을 받아쳤다.

“제국이 사분오열되겠지요.”

“바로 그거지.”

평소라면 자신의 말을 잘라먹은 것에 얼굴을 굳히며 기분 나빠했을 괴르게이는 허허 웃으며 맞장구를 쳐줬다.

“그럼……. 그렇다는 것은 적들은 한 줌도 안 되는 후사들에게 시선이 쏠려서 적극적으로 공세에 임할 수는 없다는 말씀이로군요.”

“못해도 적의 기병대 정도는 붙잡아놓을걸세.”

“그렇다면 병사들을 이끄는 것은 누가 합니까?”

이미 기병대장인 가스파르에는 요새 방어 임무가 주어졌고 클럽커에게는 따로 부대를 주었다.

그렇게 되면 남아 있는 이들 중에서 기병대를 이끌자는 것을 뽑아야 했는데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이런 미친 작전을 지휘할 만한 사람이 떠오르질 않았다.

“바로 내가 할걸세.”

“!?”

괴르게이가 직접 지휘하겠다는 말에 회의장은 말 그대로 발칵 뒤집혔다.

“각하!!!”

“그런 위험한 곳을 왜 각하께서 직접 가시겠다는 겁니까?”

“만에 하나라도 각하께서 눈먼 유탄에 맞기라도 하신다면 아군은 끝입니다!”

“차라리 가스파르 장군에게 일을 맡기시지요. 기병에 관해서는 그분이 헝가리 제일이잖습니까!”

당연하게도 장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하지만 괴르게이는 자기 뜻을 관철했다.

“아니, 가스파르는 이곳에 남아 본대를 지휘하며 코마롬을 굳게 지킬 것이네.”

“하지만…….”

“그만! 이번 일은 적의 대군 사이를 오가는 위험한 일이네 그 무엇보다도 병사들의 사기 유지와 냉철한 상황판단이 필요한 일이란 말이네.”

괴르게이는 자신이 나서야 할 이유를 설명했지만, 장교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린 지 오래였다.

반대로 말하자면 괴르게이는 지금 이곳에 모인 장교 중에서 아무도 믿지 못한다는 말과 같았으니 말이다.

“다들 알아들었으면 작전은 이대로 진행하는 것으로 하겠네, 결행 일은…….”

괴르게이는 테이블 위의 달력과 탁상시계를 보며 잠시 무언가를 계산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정확히 사흘 뒤 오전 9시에 진행할 것이네, 이번 전투의 목표는 오스트리아군을 죄르까지 밀어내는 것과 동시에 가능하면 제국의 황제를 사로잡아 머저르 그로샤그의 부활을 선언하게 할 것이네.”

“휘유…….”

“허허허…….”

“아니면 전부 무덤에서 잠이나 자고 있겠지.”

다들 당황하여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괴르게이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적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우리는 적의 뒤를 칠 걸세, 그렇게 되면 적들은 앞뒤로 공격받게 되는 것이니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야.”

“그때, 제국의 황제를 사로잡는 것이군요.”

“그렇지.”

괴르게이는 웃으며 다시금 장교들을 돌아봤다.

“질문은?”

대답은 없었다.

그러자 괴르게이는 가볍게 테이블을 두드리고는 선창했다.

“성 이슈트반 왕관에 영광을!”

“영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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