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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19화 (19/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9화

코마롬 전투?

뭔가 해보려는 모든 시도가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리자 그라츠는 지휘에서 반쯤 손을 놔버렸다.

어차피 조만간 자신을 대신하여 다른 이로 교체될 것인데 굳이 힘을 쓸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의 휘하에 있던 장교들도 이런 사실을 대충 눈치채고 있었기에 정말 중요한 업무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업무를 전부 쌓아두고만 있었다.

본래대로라면 전선에 나온 황제에게 모든 업무가 몰려야 했지만, 장교들은 그러지 않았다.

괜히 젊음의 혈기가 넘치는 황제에게 일을 맡겼다가 일이 틀어진 사례를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그러한 방치가 괴르게이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그들은 코마롬 요새에서 적들의 수상한 움직임이 있었음에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여겨 넘어갔고, 적들이 바쁘게 움직일 때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선의 병사들만이 무언가 잘못되어간다는 것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었다.

“이봐 한스.”

“왜 불러.”

“요즘 헝가리 놈들이 좀 이상하지 않아?”

“저놈들이야 매일 이상하잖아.”

“그렇긴 한데……. 뭔가 평소랑은 좀 다른 것 같아.”

“뭐가 다른데?”

한스의 물음에 병사는 잠시 고민하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것까지는 모르겠는데.”

“어휴……. 그럴 줄 알았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근무나 똑바로 서, 지난번에 졸다가 걸려서 등가죽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맞았잖아.”

“씨……. 그때는 잠든 게 아니라 그냥 깊은 생각에 잠겼다고 몇 번을 말하냐!”

“그러시겠지.”

그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지루한 근무시간을 불태우던 두 병사의 앞에 단단히 잠겨 있던 코마롬 요새의 철문이 서서히 열렸다.

“어……. 어어?!”

“저, 저게 왜 열려?!”

그리고 문이 열린 작은 틈 사이로 잘 무장한 헝가리 후사르가 쏟아져나왔다.

대열의 최선두에서 그들을 이끄는 것은 붉은 제복을 차려입은 헝가리 방위군의 총사령관 괴르게이 어르투르였다.

“전진! 전진하라! 헝가리의 자유를 위하여! 성 이슈트반 왕관을 위하여!”

“위하여!”

다들 검을 높이 들고 골목을 내달렸다.

코마롬시 곳곳에 만들어진 공성 진지 안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오스트리아의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헝가리군의 습격에 당황했다.

“마, 마자르 놈들이 밖으로 나왔다!”

“본부에 알려라! 헝가리 놈들이 우리를 벗……. 켁!”

괴르게이가 이끄는 기병대들은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짓밟고 깨부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수백 년 전 유럽 전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선조들처럼 용맹하게 전장을 내달렸다.

“멈추지 마라! 절대 멈추지 마라! 설령 내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너희는 절대 멈춰서는 안 된다!”

그들을 지휘하는 괴르게이는 빠르게 코마롬시를 벗어나 드넓은 초원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그들이 빠져나간 빈자리는 가스파르가 지휘하는 헝가리군 본대가 채웠다.

그 때문에 아직 시내에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아군은 소규모 부대 단위로 흩어져 포위당하여 각개격파 당하거나 큰 피해를 입어야 했다.

“장군, 시내의 모든 제국군을 제압했습니다!”

“수고 많았네, 그럼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잠시 휴식을 취하도록. 단, 군장을 풀어서는 안 되네.”

“알겠습니다!”

순식간에 코마롬시를 제압한 가스파르는 괴르게이의 계획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놀라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고 봤던 것이지만 볼 때마다 놀라운 것이었다.

“그 성격만 어떻게 하면……. 쯧.”

그의 이러한 면모에 존경심이 고개를 드는 것 같다가도 그동안 받아온 모욕과 수치를 떠올리면 절로 적의가 샘솟았다.

“쯧……. 될 대로 되라지.”

이미 가스파르의 마음속에는 괴르게이에 대한 증오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저 상관이기에 조국을 위해 명령을 따르는 것이지 마음에서 우러나온 충성심은 아니었다.

“후우…….”

가스파르는 세상 모든 짐을 짊어진 시시포스처럼 어깨가 무거웠다.

* * *

“저건 또 뭐지?”

코마롬시를 빠져나오는 괴르게이의 모습은 탁 트인 초원에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책을 가득 채워놓은 마차 옆에서 한가롭게 마음의 양식을 쌓고 있던 내 눈에도 아주 잘 보였다.

“폐하, 무언가 변고가 생긴 듯합니다.”

“변고? 그냥 기병대가 훈련하는 거 아닌가?”

“오늘 별도의 훈련이 있다는 것은 통지받지 못했습니다. 본영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근위대장인 세자나의 남작 한스란다는 내게 본영으로 돌아가길 권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쓸데없이 기 싸움이나 거는 그라츠의 시선에서 벗어나 조금 자유를 만끽하는 시간을 버리기 아까워 이를 거부했다.

“뭐 별일이야 있겠나? 거기에 자네들도 있잖나.”

“알겠습니다. 그럼 본영에 사람을 보내어 지원병력을 요청하겠습니다. 그것은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그건 허락하지, 나머지는 굳이 내게 보고할 필요 없이 자네의 판단에 따르겠네.”

“감사합니다.”

한스 경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경례를 올리고는 다급히 어딘가로 달려갔다.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되자 영감님이 슬그머니 말을 걸어왔다.

[뭔가 심상치 않은데,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건가?]

‘또 뭐가 심상치 않습니까?’

[분명 괴르게이가 요새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야.]

‘에휴……. 영감님 또 그러신다.’

[자네는 왜 매번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질 않는 건가! 내가 살아도 자네보다 수십 년을 더 살았어!]

‘아니, 제가 영감님의 정치적 경륜이나 날카로운 직감을 깎아내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상하잖습니까.’

내 말에 영감님은 답답해 미칠 것 같은 반응을 보이며 괜히 잡지도 못하는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려고 하셨다.

[으그극……. 이런 고집불통 같으니!!!]

‘영감님만 하겠습니까?’

[으아아아아아아!!!!]

말은 이렇게 했지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다.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기병대가 전선을 크게 우회하여 점점 나와 가까워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흠…….”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너른 초원으로 나온 기병대는 이내 속도를 줄이면서 인근을 천천히 배회했다.

마치 이쪽을 살펴보듯이 말이다.

읽던 책도 내려놓고 망원경으로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니 맨 앞에서 붉은 제복을 차려입은 사람이 눈에 띄었다.

마치 자신을 봐달라는 듯이 화려한 제복이었다.

[저, 저자야! 바로 저 녀석이라고!]

‘예? 뭐가요?’

영감님은 붉은 제복을 입은 사람을 보더니 평소와는 다르게 잔뜩 흥분해서는 소리쳤다.

[저 녀석이 괴르게이라고!]

‘!!!’

영감님의 말을 들으니 머리를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자, 잘못 보신 것 아니에요?’

[잘못 보긴……. 내가 다른 것은 다 잊어도 저 녀석의 낯짝은 절대 못 잊는다네.]

‘으음…….’

괴르게이가 요새를 버리고 튀어나왔다.

그것도 기병대를 이끌고, 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잠시 고민해 봤지만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자네 무얼 하는 건가? 빨리 본영으로 물러나게, 이대로 있다가는 괴르게이 저놈한테 잡아먹힐 걸세!]

영감님은 그런 내 모습이 답답했는지 이전보다 더 큰 목소리로 내게 물러날 것을 권하셨다.

거기에 조금 전까지 바쁘게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한스 경도 가쁜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내게 뛰어와서는 당장 몸을 피할 것을 권했다.

“지금 적들이 움직였다고 합니다.”

“그렇군.”

“이렇게 여유롭게 계실 때가 아닙니다. 근위대가 모시겠습니다.”

“으음……. 부탁하지.”

급히 말에 오르며 아군 진영 쪽을 살펴보니 하이나우가 이끄는 기병대가 나를 마중 나오고 있었다.

“폐하!”

“하이나우 경.”

“이제부터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러지……. 그런데 지금 그라츠는 무얼 하는가? 적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아군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질 않는군.”

내가 아군의 늦장 대응을 지적하니 하이나우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평소라면 지금쯤 무슨 움직임이라도 보이셔야 했는데…….”

“흠……. 일단 지휘부로 가지.”

“후방에 자리를 마련해뒀습니다. 우선 상황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그곳에 계시는 것이…….”

“지휘부로 간다고 했네.”

살짝 힘을 주어 말하니 하이나우도 머리를 숙였다.

“그럼 그리로 모시겠습니다.”

하이나우의 경호를 받으며 지휘부로 향하는 동안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이런 멍청한 새끼들이 장교랍시고……!’

[자네가 안 나온다고 확신하지 않았나.]

‘조용히 좀 하십시오. 건수 하나 잡았잖습니까.’

* * *

내 예상대로 지휘부는 개판 오 분 전이었다.

몇몇 장교들은 계속해서 밀려들어 오는 정보들을 분류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다른 이들은 어느 부대가 당했고 어느 부대가 아직 전력을 유지하고 있는지 현황파악을 하느라 바빴다.

“크흠……. 황제 폐하 납시…….”

“그만, 다들 바쁘잖나.”

이런 상황에서 눈치 없이 나서려는 하이나우의 입을 막으며 지휘소 한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그들을 지켜봤다.

그런데 지휘소에 보여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라츠는 어디 갔지?”

“찾아볼까요?”

하이나우의 말은 당장에라도 목줄을 채워서 끌고 오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럴 필요는 없네, 무슨 일이 있는 것이겠지.”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었기에 당장 달려오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었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일이 끝나고 내 앞에서 제대로 설명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3사단은 어디 있는가?!”

“지금 적의 규모는 어찌 되고!”

“헝가리의 강상함대가 지난밤에 사라졌다고?!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 건가!”

지휘부의 혼란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헝가리군의 기습은 예상 밖의 것이었고 또 치명적이었다.

[뭐가 예상 밖이란 말인가! 내가 지난주에도 말했고 어젯밤에 자기 전에도 말하지 않았는가!]

‘언제 나온다고는 말씀 안 하셨잖아요.’

[으그그극……. 그게 그거 아닌가! 이런 덜떨어진 자 같으니라고……. 이런 자에게 제관이 돌아갔으니 제국은 이제 망했군.]

‘에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제가 다 수습할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개 공무원이 무슨 수로 이 상황을 수습한다는 건가?! 자네가 무슨 나폴레옹이라도 되는 줄 아는가!]

영감님의 말에 속이 쓰렸지만 억지로 웃으면서 대답했다.

‘적도 웰링턴은 아니잖습니까.’

[끄응…….]

도저히 지휘부의 혼란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내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야 했다.

“크흠……. 다들 주목.”

“다들 주목!”

하이나우가 큰 목소리로 외치자 왁자지껄했던 장교들이 그제야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급히 경례를 올렸다.

“황제 폐하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예식은 생략하도록, 지금 상황이 어떤가.”

내 물음에 다들 우물쭈물하며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러자 하이나우가 으르렁거리며 외쳤다.

“지금 폐하께서 묻고 있잖나!”

“혀, 현재 아군 제3사단과 5사단이 코마롬 시내에 갇혀 고립되어 있고 1군단은 그라츠 경을 따라 죄르로 갔습니다.”

“죄르? 그라츠가 내 허락도 없이 병력을 이끌고 죄르로 갔다고?”

내 물음에 다들 안색이 새파래졌다.

군 최고통수권자가 현장에 있는데, 허락도 받지 않고 군대를 움직였다는 것은 반역죄를 물어도 할 말이 없었으니 말이다.

“흠…….”

“가, 각하께서는 적을 요격하신다면서 군대를 이끌고 가셨습니다.”

누군가 다급히 설명을 덧붙였지만 어떻게 들어도 변명으로 들릴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가 아니라 괴르게이였기에 일단은 묻어두기로 했다.

“일단 그건 나중에 처리하는 것으로 하고……. 그럼 현재 동원 가능한 병력은 어느 정도이고 아군은 적의 도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그것이…….”

다들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있을 때, 한쪽 눈에 안대를 찬 장교가 말했다.

“일단 현재 동원 가능한 병력은 2군단 휘하의 제7, 8, 10보병사단과제331, 332, 333기병연대가 대기 중입니다. 그리고 현재 적 기병대의 도발에 아군은 창기병을 내보내 대응하고 있으며 기마포병대가 방열을 마치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렇군. 그럼 적의 이번 도발이 본격적인 전투인가 아니면 그저 정찰인가?”

“아무래도 본격적인 전투를 벌이려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들이 전군을 이끌고 요새 밖으로 나올 리가 없습니다.”

안대를 찬 장교는 물어보는 족족 막힘없이 답변을 뽑아내 나를 흡족하게 했다.

“자네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이름이 뭔가?”

“바이스키르헨의 백작 프란츠 슐릭입니다.”

“그래, 슐릭 경 그럼 지금 우리 군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내 물음에 슐릭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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