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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23화 (23/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23화

갈림길?

날이 밝자 슐릭은 곧장 병력을 배치했다.

비어 있는 코마롬 시내의 공성 진지와 참호에는 병사들이 배치되었고 고지대에는 포병을 배치하였다.

물론 이번에는 적 기병대의 습격에 대한 방비도 단단하게 해두었고, 말이다.

“포위된 상태에서 역으로 요새를 공략하겠다고?”

가스파르는 적의 무모함에 혀를 내둘렀다.

“다들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양이로군.”

“아군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을 알고 있으니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부관의 말대로 현재 코마롬 요새에 있는 가스파르의 부대는 부상병이 제법 있었다.

부대 전체로 따지면 그 숫자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병사 한 명 한 명이 아쉬웠던 헝가리 방위군에게는 제법 뼈아픈 손실이었다.

헝가리 내에서도 모두가 혁명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신병모집에는 한계가 있었고 빈으로 진격하여 최후의 결전을 벌이기 위해서는 최대한 숙련병을 아껴야 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있었던 전투로 그 귀한 병력을 제법 잃었으니…….

“일단은 외부에 있는 아군에게 신호를 보내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구원을 요청할까요.”

“…….”

가스파르는 고민했다.

여기서 구원을 요청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었고 괴르게이가 정한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제 잘난 맛에 사는 꼴사나운 녀석이 말대로 이뤄지는 것은 사양이다.

그의 말처럼 가스파르는 가난한 구두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구두장이가 될 운명을 깨부수고 군에 입대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그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가스파르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있는 한 코마롬은 함락되지 않을 것이니 아군에게는 적의 본진을 노리라고 하게.”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부관 또한 평소 가스파르의 생각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편을 들어줬다.

그렇게 전장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 * *

코마롬 요새에서 결사 항전을 뜻하는 붉은 깃발이 오른 것을 확인한 괴르게이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가스파르라면 알아서 잘하겠지, 덕분에 고민을 덜었군.”

적이 본격적으로 요새 공략을 준비하자 혹시나 했지만 역시 가스파르는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의를 불태웠다.

이로써 괴르게이는 한숨을 덜고 본격적으로 오스트리아군의 본진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어찌 되었건 적들이 요새 공략을 위해 상당한 병력을 차출한 이상 적의 본진에는 남은 병력이 그리 많지 않을 터.

외부에 있는 클럽커의 부대와 협공하여 적의 본진을 습격, 황제를 사로잡는다면 그의 승리였다.

“코슈트가 아주 좋아하겠어.”

괴르게이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단숨에 내뱉으며 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들을 정도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

“형제들이여! 저기 우리의 압제자가 있다. 나와 함께 압제자를 물리치러 가지 않겠는가!”

“따르겠습니다!”

“좋다. 그럼 이제부터 내 움직임을 절대 놓치지 말고 뒤를 바짝 따라오도록!”

괴르게이는 그대로 전장을 내달렸다.

그대로 말에 올라 다시금 전장을 내달렸다.

그의 뒤를 헝가리 후사르가 따랐다.

“적이다!”

“헝가리 후사르다!”

당연하게도 본진을 방어하던 병력은 자신들을 향해 짓쳐오는 적군을 보고는 다급히 방어선에 자리를 잡았다.

“멍청한 녀석들……. 보병 방진에 정면으로 뛰어들겠다는 건가? 죽고 싶은 모양이지.”

장교는 단단히 준비해 둔 보병 방진에 정면으로 뛰어드는 적 기병대를 비웃었다.

“사격 준비!”

장교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이 총구를 들어 올려 전방에 달려오는 괴르게이를 겨눴다.

그 끝이 향하는 곳은 괴르게이가 있었다.

“발…….”

하지만 장교는 미처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그들의 한가운데 포탄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포격이다!”

“적 포탄 낙하! 적 포탄 낙하!!”

클럽커의 부대였다.

적이 요새를 공격한다는 소식에 클럽커가 급히 병력을 이끌고 괴르게이에게 합류했다.

“산개해, 다들 산개해!”

“무슨 놈의 산개야! 적이 다가온다. 다들 방진을 유지해! 물러서지 마라!”

장교들의 명령이 엇갈리자 병사들과 엉거주춤하면서 진이 흔들렸고 괴르게이는 송곳 하나 들어갈 정도의 틈을 그대로 파고들었다.

“형제들이여 대헝가리를 위해 전진!”

“바, 발사!”

다급히 제국군이 화망을 구성하며 이들을 막아섰지만 제대로 정렬하지 못한 그들의 일제사격은 기병들에게 그리 큰 피해를 주지 못했다.

“큭…….”

“각하! 괜찮으십니까?!”

“일 없다! 다들 나를 따르라!”

대열의 최선두에 있던 괴르게이도 오른팔에 총을 맞았지만 개의치 않고 오히려 검을 높이 들고 고함을 지르며 제국군의 대열로 뛰어들었다.

중간중간 뾰족한 스파이크를 보고 움츠러든 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등 위에 탄 파트너를 믿고 그대로 대열을 들이박았다.

“우왁!”

“어억!”

순식간에 말과 사람이 뒤엉키며 대열은 엉망이 되어버렸고 목표를 완수한 헝가리 후사르는 곧바로 뒤로 돌아서서 도망치거나 무너진 제국군의 대열사로 빠져나왔다.

“재집결! 재집결! 재집결한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를 얼굴에 뒤집어쓴 괴르게이가 자신의 군모를 머리 위로 흔들며 소리쳤다.

“재정렬! 정렬하라! 다들 일어나!”

다행히도 화를 피한 제국군 장교들은 재빨리 무너진 대열을 수습하며 아직 팔다리가 멀쩡한 병사들을 재촉했고 다급히 대열을 수습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들의 머리 위로는 포탄이 계속해서 떨어졌다.

물론 그중에서 대열을 정확히 때리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옆에서 동료가 실시간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면 자연스레 겁을 먹게 마련이었다.

장교들은 겁에 질린 병사들을 열심히 다독였지만 계속해서 포탄이 떨어지는 탓에 병사들은 생각처럼 잘 움직이질 않았다.

아군 본진에서 헝가리군과 제국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나는 전장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괴르게이는 내가 저곳에 있을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지만, 나는 영감님의 강권으로 전선에서 조금 물러나 인근의 숲으로 몸을 피한 상태였다.

“한스 경.”

“예, 폐하.”

“아무래도 아군 본대가 위험에 처한 것 같은데……. 도와주지 않아도 되겠는가?”

내 말에 근위대장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제 임무는 폐하를 지키는 것입니다. 저들을 구하는 것보다는 이곳에서 폐하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이 저와 제 병사들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저들이 무너지면 다음은 내가 될 것이 분명한데 말이야.”

“그렇다면 저는 폐하를 모시고 전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택하겠습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근위대장으로는 훌륭한 마음가짐이었으나 제국군 장교로서는 끔찍한 것이었다.

‘이대로 가면 그냥 밀릴 것 같은데요.’

[내 생각도 그와 같네, 조금 이르지만, 슐츠의 병력과 합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는군.]

‘저쪽도 요새를 함락시키지 못하고 빌빌거리는 건 마찬가지인데요.’

[그래도 안전하잖은가.]

‘식량이나 탄약, 화약 같은 게 전부 본진에 쌓여 있는데 저길 적들에게 뺏기면 그건 그거대로 큰일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영감님은 역으로 내게 물었다.

[그럼 자네는 뭘 하고 싶은 건가? 칼이라도 뽑아 들고 저곳에 뛰어들고 싶은 건가? 뭐 그러다가 죽으면 동상 하나 정도는 세워지겠군. 황위는 동생인 막시밀리안에게 돌아가겠고 말이야.]

영감님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제가 미쳤다고 그러겠습니까?’

[그럼 어쩌려는 건가?]

‘뭐……. 사람은 도시에 숨기고 나무는 숲에 숨기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저는 지금 그걸 해보려고 합니다.’

[……?]

영감님께는 그리 말하며 다시 근위대장을 불렀다.

“한스 경, 명령을 내리겠다.”

“본대를 구원하라는 것은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게, 지금 숙영용으로 챙겨온 나뭇가지에 이파리가 많이 달린 것이 좀 있는가?”

“찾아보면 제법 있을 겁니다만……. 그건 왜 찾으시는 것인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쓸 곳이 있네.”

* *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마롬 서쪽에 있는 숲의 나무가 흔들리며 새 떼가 날아올랐다.

누가 보더라도 심히 부자연스러운 모습에 클럽커의 시선이 따라갔다.

“음……. 따돌렸다고 생각했거늘……. 결국 내 착각이었던 모양이로군.”

클럽커는 이러한 징조들이 그라츠가 다시 부대를 이끌고 돌아온 것이라고 판단, 본대를 공격하던 부대를 둘로 나눴다.

한쪽은 그대로 괴르게이를 지원하고 나머지는 그라츠의 병력을 상대로 지연전을 펼칠 생각이었다.

“부관.”

“예, 장군!”

“아무래도 그라츠가 눈치를 챈 모양이니 부대를 둘로 나눠 저쪽을 막아야겠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대를 둘로 나누되 한쪽은 괴르게이 각하께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클럽커는 빠르게 부대를 재편했다.

그리고 그들의 사령관인 괴르게이에게 사람을 보내 이 사실을 알리려 했지만……. 전투가 한창인 탓에 클럽커가 보낸 전령은 괴르게이를 찾지 못했다.

시간이 좀 지나고 전투가 좀 소강상태가 되었을 때야 보고를 받은 괴르게이는 고함을 쳤다.

“뭐?! 클럽커가 부대를 나눴다고!”

“그, 그렇습니다.”

“허…….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라 최대한 빠르게 적을 분쇄해야 하거늘……!”

잠시 다음 돌격을 준비하며 목을 축이던 괴르게이는 고개를 돌려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서쪽 숲을 바라봤다.

“적의 지원군…….”

그는 수통에 남아 있는 물을 머리 위에 전부 쏟아부으며 전투의 열기를 식혔다.

그러고는 다시 생각했다.

‘클럽커의 보고대로 그라츠가 빈으로 향했다면……. 아무리 빠르게 회군한다고 해도 지금 이 시간에 전장에 도착할 수는 없어.’

다시 고개를 들어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서쪽 숲을 바라봤다.

‘하지만 저건 무엇인가……. 때마침 동물들이 떼를 지어 돌아다니기라도 하는 건가? 아직 유럽 내에서 떼를 지어 돌아다닐 만한 동물들이 있었던가?’

그가 기억하는 것 중에 그런 종류는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적의 군세라는 것인데……. 그것 역시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오스트리아군이 동원할 수 있는 부대는 뻔해, 이미 예비대까지 전부 동원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디서 부대를 새로 구해오지 않는 이상에야…….’

그때, 무언가가 잊고 있었던 것이 괴르게이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제국군이 최후의 예비대까지 전부 동원했음에도 아직 전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이들이 딱 하나 있었다.

‘제국근위대……. 황제가 이곳에 있다면 진작 모습을 드러냈어야 할 녀석들이 도통 모습을 안 보인다는 건.’

황제는 이곳에 없다는 뜻이었다.

‘허, 적들이 이를 악물고 버티기에 황제가 아직 본진에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미 다른 곳으로 몸을 피했던 거로군.’

그럼 이 모든 의문이 풀렸다.

저기 보이는 흙먼지는 황제가 자신을 부르는 신호였다.

내가 여기 있다.

와서 잡아봐라. 뭐 이런 것 말이다.

“……본진을 점령하느냐 황제를 잡느냐…….”

상대를 천천히 말려 죽이는 것을 선호하는 괴르게이는 전자가 더 끌렸지만, 자신보다도 한참 어린 황제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근위대라고 해봤자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아군이 조금 지치기는 했어도 적은 더 지친 상황이니 이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쩌면 황제의 위기에 슐릭이 부대를 뒤로 돌릴지도 모를 일이지.

괴르게이의 귓가에 천사인지 악마인지 모를 무언가가 그리 속삭였다.

그리고 그의 가슴속에 있는 민족주의가 불타오르는 열정, 그리고 혈관 속을 타고 흐르는 젊음의 열정이 등 떠밀었다.

“형제들이여!”

괴르게이가 돌연 검을 뽑아 들자 다들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봤다.

“나처럼 황제를 잡으러 가지 않겠는가?”

그의 말에 병사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꽃피었다.

그러고는 다들 검을 뽑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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