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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25화 (25/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25화

협상?

코마롬 요새에 틀어박힌 가스파르는 기어이 이 주일을 더 버텨냈다.

화약이나 식량이 전부 떨어진 상황에서 하루를 더 버틴 가스파르는 결국 그라츠의 지원군이 도착하자 백기를 들고 투항했다.

그리고 내 앞에 강제로 꿇어 앉혀졌다.

“안드라시 가스파르.”

“예, 폐하.”

“그 잘난 민족주의니 혁명이니 하는 것들이 자네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건가?”

“아닙니다.”

“그럼 어째서 제국을 배신한 것인가?”

내 물음에 가스파르는 피딱지와 화약의 그을음이 엉겨 붙은 시꺼먼 얼굴을 들어서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습니다.”

“반역자!”

“폐하, 더 물을 것도 없습니다. 제가 당장 이 녀석을 총살대로 올리셔야 합니다!”

흥분한 하이나우가 난리를 피웠다.

“물러나게, 저자의 처우는 내가 결정할 것이야.”

“하지만…….”

“물러나라고 했네.”

하이나우는 얼굴을 구기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나는 다시 가스파르에게 물었다.

“자네가 무슨 이유로 반군에 참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뜻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자네가 한 것은 반역죄일세.”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처벌도 알고 있겠군.”

“예, 반역자는 사형이지요. 지금은 전시이니 단두대나 교수형보다는 총살이겠군요.”

의연한 얼굴로 스스로 사형을 판결하는 가스파르의 모습에 몇몇 장교들은 얼굴을 찌푸렸고 몇몇은 그의 모습에 감탄했다.

나는 무덤덤하게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럼 자네를 비롯한 다른 이들은 전부 사형이군.”

“예, 폐하.”

사형을 판결받은 병사나 장교들은 절망하며 고개를 떨구거나 눈물을 보이며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가스파르는 여전히 의연한 모습으로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슬퍼하지 마시게, 굴레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자유를 찾아 떠나는 것일 뿐이야.”

“저, 저 반역자 놈이……!”

하이나우는 톡 건드리면 폭발할 것처럼 붉어진 얼굴로 다시금 내게 청했다.

“폐하, 더 들으실 것도 없습니다. 당장 저 무도한 자를 총살대에 올려버려야 합니다!”

그는 내가 말만 한다면 당장 옆에 있는 병사의 총을 빼앗아 그대로 쏴버릴 것 같았기에 얼마 전에 도착한 새로운 야전 원수인 벨덴에 물었다.

“벨덴 경,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으음……. 저는 죽이는 것에 반대합니다.”

“어째서입니까!”

하이나우가 반발했지만 나는 손을 들어서 그를 제지하며 벨덴에 물었다.

“저들의 죽음이 성역화될 것을 걱정해서인가?”

“예, 그렇습니다.”

“나도 그것이 고민이라네, 이대로 죽이자니 저쪽에서 저들의 죽음을 이용하려 들 것이 분명해.”

“그렇다고 이대로 살려두자니, 그건 그것대로 걱정거리가 늘어나는 셈이지요.”

“그렇다고 그냥 풀어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벨덴은 이탈리아 전선에서 라데츠키를 보좌했던 경험 덕분인지 내가 뭘 말하고 싶은 것인지 대충 눈치챈 듯했다.

“폐하께서는 이미 방법을 생각해 두신 듯한데……. 제게도 알려주시겠습니까?”

“짐은 저들을 국민의회에 넘겨주고 싶네만.”

“……폐하께서 말씀하시는 국민의회가 반역자들의 정부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그렇다네.”

벨덴을 비롯한 여러 장교는 큰 충격을 받았는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직 하이나우만이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폐하! 힘들게 사로잡은 반군을 고스란히 적들에게 넘기시겠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어허, 목소리가 크군. 하이나우.”

“제 목소리가 크건 말건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잖습니까! 왜 저들을 반군에게 넘기시겠다는 것입니까!”

하이나우는 지금 포로 앞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인지 자꾸만 목소리를 높였다.

포로들은 내가 돌려보내겠다는 말에 얼굴에 화색을 띠다가 돌연 하이나우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얼굴이 빠르게 굳어졌다.

“그건 전부 사정이 있어 그런 것이네.”

“그러니까 그 사정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은 설명해 주기 조금 그런 것 같으니, 다음에 설명해 주도록 하지.”

“저는 지금 듣고 싶습니다.”

거참 말은 더럽게 안 듣는 녀석이었다.

일단은 술렁거리는 포로들을 치우는 것이 급했다.

저들은 이미 들어서는 안 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들어버렸다.

“심문은 내일 이어서 하지.”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수많은 포로를 요새 밖으로 끌고 나갔다.

주변이 좀 조용해지자 나는 흥분한 하이나우를 바라보며 턱짓으로 의자를 권했다.

“앉게.”

“예, 폐하.”

하이나우는 흥분했음에도 품위를 잃지 않았다.

지금 그가 화를 낸 이유도 반역자들을 살려놓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이지 내게 불만이 있다거나 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죠?’

[잘 아는군.]

‘이런 사람들을 다루는 건 쉽죠.’

이런 사람들은 질릴 정도로 많이 만나봤다.

“우선 자네가 심문을 망치고 내 앞에서 목소리를 높인 것에 대해서는 다음에 따로 질책을 할 것이니 지금은 넘어가겠네.”

“죄송합니다.”

“자네가 그리 화가 난 것은 기껏 잡아놓은 반군 포로들을 다시 반역자들에게 넘긴다는 것 때문에 그런 것이지?”

“예, 그렇습니다!”

하이나우는 조금 전보다 성질이 죽긴 했어도 여전히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벨덴은 조심스레 내 귓가에 속삭였다.

“하이나우 경은 성격이 포악하긴 해도 충성심이 부족한 건 아니니 말로 잘 다독이시면 될 것입니다.”

“…….”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내게 말하는 그를 잠시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려 하이나우와 눈을 맞췄다.

“본인은 그들을 러요시 코슈트에게 돌려보내 그와 괴르게이 어르투르의 사이를 틀어지게 만들려고 하네.”

“그들을 돌려보낸다고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음……. 그래, 좀 설명을 해줘야겠군.”

내가 지금 하려는 것은 그냥 단발적인 사건으로 저들의 사이를 틀어놓으려는 것이 아니다.

연인 간의 고백이 서로 간의 감정을 확인하는 작업이듯이 이런 종류의 정치공작 역시 그동안의 성과를 폭발시키는 것에 가까웠다.

“자네들은 모르겠지만 본인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코슈트와 개인적인 연락을 주고받았다네.”

“저, 정말입니까?!”

“그래.”

답장을 받는 것은 없었지만 일단 코슈트가 편지를 받았다는 것은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 결과 조금씩 그의 마음에 의심을 심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

“아, 아아…….”

하이나우는 그제야 나에 대한 의심이 풀렸다는 듯이 붉으락푸르락하던 얼굴이 본래의 색을 되찾았다.

“짐이 왜 저들을 돌려보내려 하는가? 그건 아주 간단하네, 괴르게이는 저들을 버렸지만, 코슈트는 그들을 구해왔다. 이걸 헝가리인들에게 널리 알려서 괴르게이와 코슈트 간에 사이를 후벼팔 생각으로 그런 것이네.”

내 말을 들은 벨덴이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하, 하지만 고작 그런 것으로 저들이 분열될 것이라 보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저들은 독립이라는 명분으로 뭉친 이들인데…….”

“그러니 더욱 갈라지는 것이지.”

역사 속에서 민족이니 독립이니 혁명 같은 대의 아래 모인 이들이 서로 갈라져서 내부에서 총질했던 사례는 무수히 많았다.

거기에 괴르게이나 코슈트는 영감님도 알고 있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자 코슈트가 괴르게이가 모든 것을 망쳤다고 대놓고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을까?

[지금 중요한 것은 둘의 사이를 파고들되 너무 깊게 파고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네.]

‘예,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해 볼 생각입니다.’

[코슈트는 의심이 많은 성격이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서울 정도로 밀어붙이는 인물이니 이점을 유의하게.]

‘예, 영감님.’

잠시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헛기침하며 말을 이어갔다.

“크흠……. 아무튼 본인이 저들을 그냥 돌려보낸다는 것은 아니네, 저 쪽에게 많은 것을 양보하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협상을 하는 척은 해야겠지.”

“그럼 저들에게 어디까지 양보하실 생각이신지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좋은 질문이네 벨덴 경, 일단 본인은…….”

* * *

코슈트는 자신의 집무실 책상 위에 놓인 한 장의 보고서와 편지를 번갈아 보며 이마를 짚었다.

“괴르게이……. 괴르게이 어르투르……!”

코슈트는 패전을 알리는 보고서를 거칠게 구겨서 집무실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그가 걱정하던 일이 현실로 벌어지자 더는 스트레스를 참을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 생각했지 괴르게이 그 멍청한 녀석이 대업을 망칠 것이라고……!”

헝가리 내 대부분 행정업무를 총괄하던 코슈트는 슬슬 자신들이 한계점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 패배는 곧 죽음으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후우…….”

괴르게이도 괴르게이지만 더 큰 문제는 황제로부터 날아온 편지였다.

“협상이라…….”

자신들이 유리한 상황에서 공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협상을 하자는 것이 그의 눈에는 무척 의심스러워 보였다.

거기에 저들이 협상 조건이라고 적어둔 것이 그가 원하던 것을 다수 포함하고 있었던지라 그 의심은 배가 되었다.

‘4월 헌법의 준수와 헝가리 의회의 자치권과 자결권을 보장하고……. 이번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죄를 묻지 않는다고? 황제가 미친 건가?’

이건 자신들이 전쟁 초기에 황제에게 제안한 것과 거의 비슷한 것이었다.

그나마 추가된 것이 있다면 이번 코마롬 요새에서 붙잡힌 포로를 우리가 데리고 있는 포로와 교환하자는 것 정도?

‘도대체 황제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것일까……. 아니, 그전에 슈바르첸베르크는 무슨 생각으로…….’

코슈트는 황제와 그 너머에 있는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의 생각을 읽어보려 했지만,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으음……. 모르겠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봤지만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거기 아무도 없느냐?”

“예, 각하.”

코슈트는 자신의 비서를 부르더니 그 자리에서 친필로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중간중간 멈칫거리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내 유려한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문서를 작성한 코슈트는 헝가리 왕국의 문양이 그려진 인장으로 봉인까지 마치고 비서에게 이를 건넸다.

“이건 코마롬에 있는 오스트리아의 황제에게 보내고 한 장 더 필사하여 빈에 있는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에게 보내게.”

“알겠습니다.”

“후…….”

코슈트는 괴르게이가 싸지른 똥을 치울 생각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가만있어봤자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직접 황제를 만나야겠군.’

* * *

갑작스러운 협상 소식에 놀란 것은 코슈트뿐만이 아니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외무장관과 내무장관, 그리고 총리직을 겸임하던 슈바르첸베르크 공작 또한 승전소식에 이어 들려온 협상 소식에 적잖이 당황했다.

“폐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헝가리인들에게 너무 후한 협상 내용에 그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 내용이 제국 내에 알려지면 귀족사회에서 적잖이 말들이 쏟아질 것인데…….”

공작은 협상의 내용 자체에는 황제와 뜻이 같았다.

하지만 이것이 공개될 때 생길 파장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 그대로 이뤄진다면 안 그래도 제국 내에 억눌려 있던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올 것이 뻔히 보였으니 말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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