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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26화 (26/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26화

협상 끝?

[그런데 자네는 왜 헝가리 놈들의 4월 헌법을 받아들이겠다고 한 건가?]

‘읽어보니까 좀 괜찮더라고요.’

[흠……. 자네는 그 내용이 좋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제국의 현 상황에서는 이를 좋다고 받아들일 사람들보다는 이에 반발할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은 알고 말하는 건가?]

‘예, 아마 수많은 이들이 들고일어나겠지요.’

[허허……. 그렇게 잘 알고 있다는 것은 대책도 있다는 것이겠지?]

영감님의 물음에 나는 예전에 영감님께서 추천해 주신 프랑스의 대문호(진)인 알렉상드르 뒤마의 시집을 덮으며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럼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일을 벌인 건가? 지금 자네가 하려는 일은 제국의 근간을 통째로 뒤흔들려는 것이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칼춤 추기 전에 제 적과 아군을 구분을 지어보려 합니다.’

[칼춤?]

영감님은 칼춤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셨는지 잠시 내 기억을 뒤져보러 가셨다.

다시금 조용해지자 나는 유유자적하게 차를 즐기며 몇 주간 쌓인 편지와 보고서를 하나씩 읽었다.

대부분은 나와 어떻게든 얼굴을 터보려는 이들의 발악들이었지만 그중에 몇몇은 내 눈길을 끌 만한 내용이었다.

[이 칼춤이라는 것이 대대적인 숙청을 뜻하는 건가!? 자네 혹시 미친 건가!]

‘…….’

[이보게 도대체 자네가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지금 대놓고 귀족세력을 쳐내려는 것은……. 자네. 내 말 듣고 있나?]

‘잠시만요.’

영감님이 무어라 떠들었지만 이미 내 시선은 어느 노동자가 보낸 편지에 고정됐다.

대충 잘츠부르크에서 잡일을 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하층민의 이야기였는데, 이제 막 학교에 다니는 어린 아들의 도움으로 내게 편지를 보낸 것이라고 밝히며 자신의 사정을 풀어내고 있었다.

[……전쟁으로 잘츠부르크는 죽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웃들은 희망을 잃고 거리에 내앉았고 우리 가족들 또한 저축해놓은 비상금이 다 떨어져서 조만간 거리에 나앉게 생겼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자비를 구해봤지만 제게 돌아오는 것은 제 무식함을 비웃는 조롱뿐이었습니다.

폐하, 저와 제 가족들은 앞으로 어찌해야 합니까?]

늘 날아오는 노동자들의 투서 비슷한 것이었다.

대부분은 내 일을 돕는 비서들이나 황실의 우편을 관리하시는 어머니께서 알아서 거르지만, 이번에는 전장으로 직접 배달된 탓에 내가 볼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 흥분하셨던 영감님은 슬쩍 내 눈치를 살피며 딱 잘라서 말씀하셨다.

[자네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네.]

‘아무래도 전쟁 때문에 다들 힘든 모양이로군요.’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지금 혁명 때문에 유럽 전역이 혼란스러운 탓에 경제 사정이 어려워진…….]

내 기분이 언짢아진 것은 이 가족들이 불쌍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게 아니죠 영감님, 지금 중요한 건 제국 내에 있는 중산층이 붕괴하고 하층민들이 양산되는 게 진짜 문제입니다.’

[그건 뭐 차차 해결하면…….]

영감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게 중요한 겁니다. 지금 국가의 허리를 받쳐줄 사람들이 무더기로 쓸려나가는데 이게 어찌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까?’

[으음…….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어찌 되었건 헝가리와의 전쟁은 내전입니다. 그리고 내전은 결국 제살깎아먹기지요. 이 전쟁이 끝나고 나면 제국은 더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

제국의 부정적인 전망을 들은 영감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셨다.

[그 정도는 본인도 잘 알고 있다네, 내가 젊었을 적에도 제국은 가진 것을 제대로 지키는 것도 힘겨워하던 국가였지.]

‘그게 왜인 것 같습니까?’

[중산층의 붕괴 때문이라는 건가?]

‘여러 가지 이유가 뒤섞인 탓이지만 그것도 이유 중에 하나겠지요. 당장 병사나 노동자로 쓸 만한 이들이 쭉 갈려 버리니 내전으로 제국 내에서 그나마 산업이 어느 정도 발달해 있는 두 곳이 쓸려나갔으니……. 이후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지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헝가리는 제국에 있어 아주 중요한 땅이었다.

제국 내에서 본토 다음으로 가장 잘 산업화를 한 곳이기도 했고 그곳에서 나오는 식량은 제국의 다른 지역의 노동자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곳이 전쟁으로 제 기능을 잃고 이후에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니 제국이 연이은 전쟁에서 휘청거리는 것은 당연했다.

거기에 군대나 산업의 중추가 되어줄 이들이 내전으로 인해 경제와 산업이 망가져 버려 거리로 나앉기 시작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전쟁이 일 년만 더 지속하거나 헝가리가 완전히 박살 나버리면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이후에 찾아올 무수한 도전들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었다.

‘프로이센, 사르데냐, 프랑스, 러시아, 세르비아, 오스만……. 어느 하나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영감님도 동의하시지 않습니까.’

[으음……. 그렇다고 벌써 내부를 자네 입맛대로 만지작거리는 것은 그리 좋은 생각 같지는 않네.]

‘대의를 위한 소수의 희생입니다. 뭐 제가 스탈린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전부 쳐 죽이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공직에서 배제하겠다는 것뿐이니 너무 걱정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스탈린은 또 누구인가?]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이미 제국은 내부 문제로 골골대는 상황이었다.

마리아테레지아가 이러한 문제점들을 어느 정도 해결하긴 했지만, 그녀 역시 전쟁으로 이어지는 외부의 도전들 때문에 이를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제국은 점차 병들어왔고 나폴레옹 전쟁과 민족주의의 광풍이 화약고에 불을 붙였고 이게 헝가리 혁명으로 폭발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간단히 설명하자면 선대로부터 내려온 온갖 문제들이 내 대에 폭발하고 있다.

나는 이런 문제점들을 전부 해결하거나 터지지 않게 잘 관리하며 연착륙을 시켜야 했고 말이다.

못하면?

망하는 거지 뭐.

“폐하, 헝가리 측 대표단이 도착했습니다.”

“곧 가지.”

이제 제국의 모든 문제점을 해결할 첫 단추를 끼우러 갈 시간이었다.

* * *

“황제 폐하께서 납시었습니다.”

근위병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회담장의 문이 활짝 열렸다.

안에 있는 이들은 정 중앙을 기점으로 왼쪽에는 오스트리아를 상징하는 흰 제복을 입은 제국 측 대표단이 앉았고, 오른쪽에는 갈색 제복을 입은 헝가리 측 대표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황제 폐하 만세!”

서로 총질하며 전투를 벌이긴 했어도 어찌 되었건 아직은 제국과 헝가리 모두 같은 황제를 섬겼기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날 반겼다.

물론 헝가리 쪽의 인사는 조금 달랐지만 말이다.

“프란츠 요제프 ‘황태자’ 전하 만세!”

나는 아직 헝가리 왕국의 대관식을 받지 못했기에 명목상으로는 내 숙부이신 페르디난트 1세가 헝가리의 왕이었다.

그렇기에 다들 저리 말한 것이겠지만……. 실제로는 나를 한번 도발하겠다는 마음으로 그런 것이겠지.

“자네가 코슈트로군.”

상대가 강하게 나온다면 나도 강하게 맞받아친다…….

그게 온갖 진상들을 맞상대하면서 내가 배운 것 중 하나였다.

내가 코슈트에 손을 내밀자 상대는 당황하며 이걸 어찌해야 할지 몰라고 하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하.”

“그래, 오늘 회담이 잘 풀렸으면 좋겠군.”

갈 곳 없어진 손을 다시 원위치시키며 회담장 중앙에 마련된 내 자리에 앉으니 헝가리 측 대표인 코슈트와 제국 측 대표인 알렉산드르 폰 바흐 남작이 서로의 제안을 낭독했다.

제국 측이나 헝가리 측이나 상대측의 제안을 들을 때마다 표정 관리가 잘 안 됐지만, 회담은 그럭저럭 잘 굴러가는 편이었다.

“……헝가리 측이 주장한 4월 헌법의 내용 중에 귀족면세 폐지나 정치범 석방, 노동조합의결권 조항 같은 것은 조금 조율이 필요할 것 같군요.”

“우리 쪽은 위 의견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 전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회담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우리 쪽에서 너무나 진취적이며 급진적인 헌법 내용을 뜯어 고쳐보려 거래를 제시해도 코슈트를 비롯한 헝가리 대표들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대들의 뜻대로 하지.”

거기에 내가 헝가리 측의 편을 들어주니 바흐 남작은 답답해 미칠 것 같다는 듯이 내 쪽을 바라보고는 했다.

그렇게 회담은 점차 헝가리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고 제국 측에서도 불만 섞인 말들을 흘러나왔다.

“이거야 원……. 서로 입장이 완전히 반대됐군.”

“왜 폐하께서는 저런 반역자들의 편을 들어주는 것인지 원…….”

그들은 마치 내가 들으라는 듯이 대놓고 불만을 늘어놓았지만 나는 그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시종일관 코슈트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그가 빈틈을 보일 때를 노릴 뿐이었다.

“하하하……. 프란츠 요제프 전하께서 저희를 도우신 덕분에 회의가 순조롭게 끝난 것 같습니다.”

“끄응…….”

저들에게 완전히 주도권을 빼앗기고 간신히 독립선언만 철회시킨 바흐 남작은 나를 원망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럼 회의는 이렇게 끝내는 것으로…….”

그렇게 코슈트가 싱글벙글하며 자신들의 승리를 선언하려던 참에 내가 그를 막아섰다.

“잠깐.”

“……전하?”

“무슨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고작 여기에 모인 몇몇 인원들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수천만의 헝가리 시민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좀 너무하다고 생각지 않는가?”

내 말에 코슈트는 의아해하며 내게 물었다.

“그 말씀은……. 전하께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제 말이 맞습니까?”

“그렇다네.”

내 말에 바흐 남작을 비롯한 제국 층 대표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들로서는 내가 마지막에 판을 엎으려는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그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전하께서 생각하신 방법이 무엇입니까?”

코슈트는 아주 자애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는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투표일세.”

“투표…… 말입니까?”

“모름지기 수백 년간 함께한 이웃들과 헤어지는 일인데 설마 이렇게 단순히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건가?”

“으음…….”

코슈트는 복잡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고 이는 바흐 남작 역시 비슷했다.

모르긴 몰라도 둘은 아마 이번 투표가 과연 자신들에게 이득일지 손해일지를 점치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자네는 어찌 생각하나?]

‘당연히 헝가리 사람들은 제국에 남을 겁니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는가?]

‘간단합니다. 수백만 대군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로베스피에르가 왜 권좌에서 밀려났을까요?’

[그거야 쿠데타 때문이 아닌가?]

‘그렇지요. 쿠데타!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당시에 로베스피에르를 향한 지지가 좀 시들시들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를 지지하는 세력은 여전히 막강했는데, 너무 쉽게 밀려났지요.’

[그건……. 그렇군.]

이건 몇 년 전까지 사관학교에 다니다가 실종된 내 친구 놈이 해줬던 이야기다.

로베스피에르는 프랑스를 지키고자 자신을 지지하는 자코뱅들과 시민들을 전장으로 내보냈다.

그렇다 보니 수도인 파리에는 그를 지지할 만한 이들이 많이 줄어들게 되었고 반대세력은 그 빈틈을 파고들어 그를 실각시키고 단두대로 보내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국가를 향한 그의 뜨거운 열정이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네 생각은…….]

‘헝가리인들도 비슷합니다. 분명 그들 중에 독립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전선에 나온 상황이지요.’

[그러나 후방에 남아 있는 이들도 상당할 텐데?]

‘그들은 시류에 따라 휘둘리기 쉬운 갈대와 같은 자들입니다.’

[갈대?]

‘예, 바람 불면 이리저리 휘둘리는 갈대 말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아주 강한 바람이 될 생각입니다.’

[허허허…….]

영감님은 그저 웃기만 하셨다.

코슈트 역시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요. 하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런 투표는……. 굳이 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요.”

“뭐든 확실하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그러니 기왕 하는 것 헝가리 모든 시민에게 투표권을 주고자 하는데…….”

내 말에 바흐 남작은 뜨악하며 외쳤다.

“폐, 폐하! 모든 이들에게 투표권을 주시겠다니요! 그건 좀…….”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로서는 조금 전의 내 말이 헝가리의 독립을 지지한다는 것처럼 들리지 않았을까?

“수용하겠습니다.”

당연하게도 코슈트는 이를 수용했다.

혹시나 헝가리인들의 시민의식이 덜 완성되었느니 뭐니 하며 투표권확대를 미루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건 기우였던 모양이다.

“좋아, 그럼 투표일은 정확히 한 달 뒤로 하고……. 투표는 헝가리 전역에서 우리 쪽 대표단의 감시하에 최대한 공정하게 벌어져야 할 것일세.”

“동의합니다. 당연히 투표 기간 내에는 어떠한 전투행위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지.”

내 말이 끝나자 코슈트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솔직히 전하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뭐 결국엔 이렇게 되었군요. 헝가리인들을 대표하여 감사를 표합니다.”

“뭘 감사할 것까지야.”

나는 웃으며 코슈트의 손을 맞잡았다.

[푸흐흡……. 저런 멍청한 놈 같으니……. 푸하하핫!]

영감님은 이 모습에 애써 웃음을 참으려 하다가 결국 포복절도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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