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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27화 (27/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27화

투표????

회담이 끝나고 회담 내용이 공개되자 제국과 헝가리 양측 모두 뜨겁게 불타올랐다.

제국 측에서는 자신들이 승기를 잡았음에도 헝가리를 놓아줘야 한다며 분노했고, 헝가리 측에서는 이번에야말로 독립할 수 있다며 축배를 들었다.

“이건 패배주의에 물든 이들이 폐하를 제대로 모시지 못했기에 그런 것이오!”

“무능한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을 당장 해임해야만 합니다!”

“그뿐입니까? 이런 굴욕적인 외교를 벌인 바흐 남작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당연하게도 어머니께서는 자신의 사람을 풀어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을 신나게 물어뜯으셨다.

하지만 공작 역시 그냥 당하고만 있진 않았다.

“이게 뭔가?”

“제 사직서입니다. 폐하께서 저를 쫓아내시고자 하시니 신하 된 도리로 먼저 물러나려 합니다.”

돌연 사표를 던지는 그의 모습에 영감님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찢어버리게!!!]

나는 영감님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

“이런! 찢어져 버렸군.”

“……폐하.”

“그만둘 정신이 있으면 자리를 지키게, 아직 이 나라에는 자네가 더 필요하다네.”

공작은 한숨을 내쉬며 내게 물었다.

“후우……. 폐하, 그럼 이것만 대답해 주십시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헝가리인들에게 그렇게 많이 양보하신 것입니까?”

“양보? 무슨 양보 말인가.”

“……지금 말장난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들에게 양보한 기억이 없네만.”

“폐하, 이미 바흐 남작에게 모든 것을 전해 들었습니다. 협상 때 폐하께서 사사건건 헝가리인들의 편을 들어줬다고 말입니다.”

공작은 무척이나 화가 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태연하게 웃으며 반문했다.

“이상하군. 짐은 그들에게 양보한 적이 없어.”

“폐하……!”

그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평소에 어떤 상황에서도 예법을 잊지 않던 공작이 이토록 무례하게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몰려 있는 상황이고 그 원인을 만든 내게 화가 많이 났다는 뜻이었다.

“한 달만 기다리게, 그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니 말이야.”

나는 여유롭게 웃었다.

하지만 공작은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저를 말려 죽이시려는 것이로군요. 잘 알겠습니다. 사직서는 다시 써오겠습니다.”

그러고는 다시금 나가버렸다.

[다음에는 좀 더 자연스럽게 찢어버리게.]

* * *

“무슨 투표?”

“아이고 독립투표요! 왜 황제가 우리 헝가리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들어준다고 했다니까요?”

“폐하께서 그러셨다고?”

“예, 투표만 하면 그렇게 해준대요.”

“그으래……?”

코슈트를 비롯한 헝가리 국민의회의 정부 인사들은 한 명이라도 더 투표할 수 있도록 헝가리 전역에 투표소를 빼곡하게 설치했으나 정작 시민들의 반응은 예상과는 다르게 미지근했다.

“아니 뭐……. 지금도 괜찮은데…….”

“굳이 독립해야 하나……?”

애초에 제국을 지지하던 이들은 독립에 반대하는 처지였고.

“다들 반대표 던지는 거야 알겠어?”

“예, 어르신.”

“걱정하지 마셔요.”

거기에 헝가리의 지주나 귀족들은 한술 더 떠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헝가리 국민의회가 독립하는 것을 막고자 자신들의 휘하에 있는 농노나 소작농들에게 대놓고 반대표를 던질 것을 종용했다.

당연하게도 그에 상응하는 콩고물이 떨어졌으니 농노들이나 소작농들은 웃으면서 반대표를 던졌고, 말이다.

거기에 헝가리 민족의 자유를 위해 제 한 몸을 불사른 애국자들은 지금 전선에서 제국군의 침략을 막아내고 있어 제대로 투표를 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겹치니…….

상황은 점점 헝가리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뭐?! 귀족들과 지주들이 농노들에게 반대표를 던지라고 강요한다고?”

코슈트가 일이 잘못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투표가 반쯤 진행된 뒤였다.

당연하게도 이걸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던 코슈트는 조직적으로 독립반대를 위해 움직이는 이들을 손수 때려잡았다.

경찰이건 군대건 동원 가능한 병력을 모두 동원하여 이런 악질적인 반동을 때려잡았다.

하지만 코슈트의 이러한 행동은 오히려 그동안 억눌려 있던 반대세력의 결집을 불러왔다.

그동안 급진적인 정책으로 많은 피해를 보고 주류에서 밀려났던 귀족들과 지주세력이 단체로 반발하고 나선 것이었다.

특히 헝가리의 작은 시골 지역인 러모처하저에서는 호르티 이슈트반이라는 젊은이가 사람들을 불러모아 공개적으로 코슈트와 정부를 비난할 정도였다.

“지금 정부가 우리에게 해준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제게 농민들을 착취하는 악질지주라고 손가락질했지만 제가 언제 여러분께 그러던 적이 있었습니까?”

청년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농부들은 입을 모아 소리쳤다.

“아니요!”

“도련님은 제 아내가 아플 때 도시에 마차를 끌고 가서 의사를 데려오셨소!”

“거기에 마을에 일이 있을 때마다 언제나 제 일처럼 앞장서셨지요!”

농부들은 그동안 청년과 그의 아버지가 보여줬던 친절함과 성실함을 기억하며 그를 지지했다.

“그런데 부다에 있는 코슈트와 그 패거리들이 제게 뭐라는 줄 아십니까? 농부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모기 같은 놈! 악덕 지주!”

울분에 찬 청년의 목소리는 농부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했다.

“여러분! 저를 보십시오. 제가 악덕 지주처럼 보이십니까? 제가 정말 여러분을 착취했습니까?!”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런 적 없습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공개적으로 정부를 비난하던 호르티 가문의 젊은이는 그대로 군대로 끌려가서 몰매를 얻어맞았지만, 다음날에도 또 다음날에도 마을광장에 나와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지역신문과 헝가리 국영신문을 통해 헝가리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곧 민심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코슈트는 다급히 신문기사를 검열하고 말을 듣지 않는 친 제국성향을 띠는 신문사를 폐쇄하기도 했지만 때는 늦은 뒤였다.

오히려 신문사들은 신나서 이런 기사를 찍어냈다.

[제국의 검열은 거부해도 자신들의 검열은 환영하는 이중적인 정부!]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유가 아닌 권력!]

[헝가리인들이여 새로운 압제자를 환영하라!]

코슈트는 그제야 자신이 황제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투표가 끝나고 투표함이 공개되었을 때, 코슈트의 집무실에는 빈 술병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 * *

러시아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유럽의 헌병을 자처하며 유럽 내의 민족주의와 자유주의를 때려잡는 것에 앞장섰던 러시아 제국의 황제 니콜라이는 오스트리아에서 벌어진 일에 관심을 보였다.

“아무래도 우리 이웃인 오스트리아가 내부의 소란 때문에 골치 아픈 모양이로군.”

“듣기로는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헝가리인들과 잘 타협하여 내부정리가 끝나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쯧쯧쯧……. 지난 황제는 너무 약해빠져서 뭘 제대로 하질 못해서 문제였는데, 이번 황제도 비슷한 모양이로군.”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를 혐오하는 그에게는 봉기를 일으킨 반역자들과 협상을 하는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러시아가 유럽 내 영향력을 넓힐 기회가 사라진 것에 더 화가 난 것이었지만 말이다.

“프로이센은 좀 어떻다던가?”

“그쪽은 아직 혼란을 완전히 정리하는 데 실패하고 결국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일부 수용하는 것으로 정리를 하려는 모양입니다.”

“그래?”

“예, 그들은 지금 본격적으로 독일연방의 통합안을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모양입니다.”

“흠…….”

러시아로서는 자신들의 코앞에 통합된 독일제국이 생기는 것이 영 꺼림칙했다.

그들이 유럽 내의 영향권을 펼치려면 독일이 거대한 국가로 뭉쳐 있는 것보다는 잘게 쪼개져 있는 것이 더 수월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센의 국왕이…….”

“프리드리히 빌헬름입니다.”

“그래, 빌헬름은 무얼 하는가?”

“제가 알기로는 자유주의자들의 손에 붙들려 인형 신세가 된 모양입니다.”

“쯧쯧쯧……. 독일 놈들은 하나같이 물러터졌어!”

니콜라이는 혀를 차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신의 집무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말했다.

“반역자들에게는 자비가 아니라 철권을 휘둘러야 하는 것도 모른단 말인가? 쯧쯧쯧……. 하나같이 물러터졌어!”

그렇게 한참 동안 방안을 배회하던 니콜라이는 돌연 멈춰 서며 말하길.

“오스트리아는 이미 우리가 손을 쓰기엔 늦어 보이지만……. 프로이센은 어떤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요.”

“우리가 군대를 보내거나……. 외교적인 압력으로 프로이센의 반역도들을 처리하는 것이지.”

니콜라이의 말에 궁정 신하들이 당황했다.

“폐하, 그건 내정간섭이 아닙니까……?”

“프로이센 측에서 그리 좋아할 것 같진 않습니다.”

“급진적인 확장은 오히려 유럽 내 러시아의 평판을 악화시킬 것입니다.”

신하들의 반대에도 니콜라이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이센의 주도로 통일된 독일계 국가가 탄생하는 것도 큰 문제 아닌가? 프로이센 녀석들은 언제나 문제를 몰고 다니는 녀석들이잖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설마 프로이센의 국왕이 자유주의자들과 손을 잡겠습니까?”

“맞습니다. 지금이야 목숨을 위협받고 있으니 최대한 친밀한 모습을 보일 뿐……. 그들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습니다.”

신하들은 결국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 설명하였지만 니콜라이에게는 참아야 할 이유도 생각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앞마당인 독일 지방에서 자유주의자들이 설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면 도대체 언제쯤 러시아의 영향권을 확대하겠는가? 지금은 움직여야 할 때일세.”

“하지만…….”

“당장 프로이센과 독일연방의회인지 뭔지 하는 무도한 자들에게 통보하게, 당장, 이 참담한 짓을 멈추고 원래대로 돌아가라고 말이야!”

니콜라이의 말에 신하들의 얼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만약 우리의 요구를 듣지 않는다면 남은 것은 전쟁뿐이라는 것도 잊지 말고 넣게.”

“……알겠습니다.”

궁정 신하들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저들끼리 속닥거리며 입을 맞췄다.

“이번에도 몇몇 표현을 조정해야겠습니다.”

“최대한 문제가 될 만한 단어는 배제하되…… 폐하의 뜻을 크게 거스르지 않는 방향으로 말이지요?”

“바로 그겁니다.”

그렇게 저들끼리 대책을 논의하던 그들에게 헝가리에서 온 급보가 도착했다.

“폐하! 폐하!”

“무슨 일인가?”

“헝가리에서 열린 국민투표 결과가 발표되었다고 합니다!”

“그래? 결과는 어찌 나왔다던가.”

니콜라이의 물음에 장교는 숨을 고르면서 손수건을 꺼내 목덜미의 땀을 훔쳤다.

“헝가리는 제국에 잔류할 것입니다.”

* * *

“뭐?!”

“이건 조작이 분명해!”

“제국 녀석들이 투표함에 손을 댄 것이야!”

투표결과는 찬성 23, 반대 76, 기권 1로 헝가리인들은 제국에 남는 것을 택했다.

당연하게도 헝가리의 혁명가와 애국자들은 이러한 투표결과에 분통을 터뜨리며 항의했다.

“이런 머저리 같은 녀석들! 압제자에게 다시 권력을 들어다 받치는 건가!”

“이래서 못 배워서 모자란 놈들에게 투표권을 주면 안 되는 것인데……. 쯧쯧.”

“이 선거는 무효야! 오스트리아 놈들이 조작한 선거를 인정할 수 없다!”

괴르게이를 비롯한 헝가리 방위군 장교들은 이러한 투표결과에 충격을 금하지 못했다.

힘들게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는데, 정작 헝가리인들은 독립이 아닌 제국에 남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 다들 혼란에 빠졌고 병사들 또한 상실감과 허무함에 빠져들었다.

“각하, 지금 헝가리 각지에서 잔류파와 독립파가 서로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방위군 내부에서는 탈영병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모두 전달받은 코슈트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머릿속으로 수많은 것이 떠올랐다.

처음 봉기했을 때부터 파코즈드에서 제국군을 크게 물리치며 위세를 떨쳤을 때, 그리고 춘계공세로 제국군을 몰아낸 것과 코마롬에서 참혹한 패배를 당한 것까지……. 모두 군부의 일이었다.

자신은 그저 후방에서 그들을 묵묵히 지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게 생겼다.

‘나는 잘못한 게 없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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