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28화
혁명의 시대?
국민투표 결과 헝가리는 오스트리아 제국에 잔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헝가리인들 모두가 이걸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몇몇 혁명가들과 애국자들은 이러한 투표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거세게 반발하며 제국 잔류에 투표한 ‘반동’을 색출했다.
선거기간 동안 대놓고 헝가리 국민의회에 반하는 내용을 떠들고 다녔던 호르티 이슈트반 역시 이러한 애국자들의 손에 붙들려 광장으로 끌려 나왔다.
“다들 보시오!”
분노한 애국자의 외침은 조용한 마을의 적막을 깨뜨렸고 순박한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이자는 우리 머저르민족의 배신자요! 제국에 우리 민족의 긍지를 내다 판 배신자요!”
애국자들은 한마디씩 말할 때마다 호르티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선사했다.
그들의 폭력이 행해질 때마다 광장에는 호르티의 피가 바닥에 뿌려졌으며 마을 사람들은 가축처럼 끌려 나와 두들겨 맞는 그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수많은 농민을 억압하고 수탈한 악덕 지주이며 헝가리 땅에서 없어져야 할 구체제의 유산이요!”
“끄억!”
“이런 자는 없어져야 마땅하오! 그렇지 않소! 친애하는 헝가리의 형제자매들이여!”
호기롭게 외쳤으나 그의 말에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의아함을 느낀 애국자가 다시금 물었다.
“이런 자는 없어져야 하지 않소이까!”
하지만 역시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마을주민들은 자신들을 친절히 대해줬던 마을 지주의 아들이 외부인들에게 두들겨 맞는 것을 보고 흉흉한 기세로 그들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마침 그들의 손에는 각종 농기구가 들려 있었으니 그 위협은 배가되었다.
“왜, 왜들 이러는 것이오!”
농민들은 주먹을 휘두르는 이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물론 이들의 이러한 행위는 이내 도착한 헝가리 방위군에 의해 저지되었지만 이미 애국자들은 분노한 민중에게 두들겨 맞아 숨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
당연하게도 헝가리 방위군의 장교는 주도자를 잡으려 했지만, 병사들이 명령을 거부했다.
“지금 뭐 하는 건가!”
“싫습니다!”
“뭐?”
“여기 계신 분들은 우리 가족이나 친지들, 그리고 이웃들인데 왜 체포하는 겁니까?”
헝가리 방위군은 헝가리 혁명이 발발함과 동시에 제국군에 복무 중이던 헝가리계 병사들과 새로이 병사들을 모집하여 만들어진 군대였다.
당연하게도 다들 헝가리가 독립하면 다들 더 잘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군대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받은 명령이 같은 헝가리인들을 체포하라는 것이니 병사들이 의문을 가질 법도 했다.
“폭력시위의 주모자들이다.”
장교는 그리 말했지만, 병사들은 여전히 그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거부했다.
“싫습니다!”
“이건 명령 불복종이야! 전시에 명령 불복종은 총살이란 것도 모르는 건가?! 당장 저들을 체포해!”
장교는 병사들을 닦달했지만, 병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러모처하저라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분열의 조짐은 점점 헝가리 전역에 퍼져 나갔다.
* * *
[결국, 이렇게 되었군.]
‘떨어지는 것들에는 항상 날개가 달려 있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허허……. 하지만 코슈트가 이걸 내버려 둘 리가 없을 텐데……. 이에 대한 대비는 되어 있나?]
‘대비요?’
[설마 안 한 건가?]
영감님의 물음에 나는 웃으며 답했다.
‘할 필요가 없다는 게 맞지요.’
[필요가 없다?]
‘저는 헝가리인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독립이라는 성전에 눈이 돌아가서 현실을 외면할 때, 그들에게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 것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하기엔 자네가 한 일은 헝가리의 국론을 분열시켜놓은 것뿐이잖나.]
‘그게 중요한 겁니다. 헝가리는 여태껏 하나로 뭉쳐 우리와 맞서왔습니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내부의 불안을 가진 채로 우리와 맞서게 되었군요.’
[내부의 불안이라고 해봤자 그 숫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아닌가?]
영감님은 계속해서 나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나는 여유로움을 잃지 않으며 맞받아쳤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저들이 믿어 의심하지 않던 독립을 향한 열망에 의심을 심어준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이제 저들은 두 번 다시 하나로 뭉치지 못할 겁니다.’
[그렇군…….]
영감님은 감탄하며 내게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라는 것이군.]
‘그렇죠. 원래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한번 급해지면 주변이 잘 안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저들의 정부가 삽질을 반복할수록 지지자들은 떨어져 나가겠지요.’
나는 그리 말하며 전후 오스트리아의 실업자를 구제할 긴급 지원책을 구상했다.
당장 전쟁과 유럽을 휩쓴 혁명의 물결 때문에 오스트리아의 경제는 박살 난 지 오래였다.
군대와 경쟁하며 쓸 만한 인력을 모조리 뺏겨버린 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했고 그 때문에 빈의 거리에는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온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러한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가난은 개인의 나태함과 무능력함 때문이며 국가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돌아가는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정설로 통하는 시절이었다.
사회는 무능력자에 적대적이었고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실업자가 된 사람에게는 더욱 적대적이었다.
[금태환 일시 중단과 전국산업부흥법……? 자네 지금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건가!]
‘제가 그동안 조용히 제국을 쭉 둘러보니 문젯거리가 한둘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이번에 대대적으로 썩은 살은 도려내 볼 참입니다.’
[그래, 그건 잘하는 일이네! 하지만 금태환을 중단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이게 얼마나 큰 혼란을 불러올지 알고서 하는 말인가?!]
‘알고 있습니다.’
사회복지학과 경제는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금태환을 정지한다면 외국에서는 제국의 지급능력에 의문을 품으며 채권을 환수하려 들 것이고, 시민들 또한 자신들의 저축이 휴짓조각이 되는 것 아닌가 하여 은행으로 달려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뿐인가?
환율에도 악영향을 미쳐 장기적으로는 제국의 수출에 큰 지장을 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단점을 감수하고서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은행이 망하는 건 막아야 해.’
민간과 기업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제국의 중심을 지키고 있는 은행들까지 무너져 내린다면 타국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 놈들이나 영국 놈들의 말에 설설 기면서 시간을 버리게 된다.’
그러니 나중에 좀 손해를 보더라도 지금 무너지는 경제에 개입해야만 했다.
[으음……. 자네의 생각이 맞는 것 같긴 하네만……. 그래도 중앙정부가 정부에 개입하는 것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군.]
‘어쩌겠습니까? 영감님에게는 영감님의 방식이 있듯이 제게는 저만의 방식이 있는 것을요.’
[그래도 금태환을 중지하는 것은 적잖은 충격이 될 것이네, 그에 대한 대책이 있는가?]
‘생각해둔 것이 몇 개 있긴 합니다.’
영감님께 그리 말하며 한쪽에 치워뒀던 독일연방의회에 대한 보고서를 꺼내 들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제가 요즘 구상하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 * *
베를린에서 벌어진 혁명으로 만들어진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는 지난 몇 달간 독일 민족의 통일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느라 바빴다.
의원들은 오스트리아를 배제하고 프로이센의 주도로 독일 통일을 완수하자는 소독일 주의와 오스트리아를 포함하여 독일 통일을 이루자는 대독일주의로 나뉘었다.
구체적으로 따지자면 소독일 주의와 대독일주의 내부에서도 몇몇 분파로 갈라지긴 했지만 크게 나눠보자면 그러했다.
요사이에 이들이 허튼짓에 힘을 빼는 탓에 프로이센이나 오스트리아에서 반혁명 정서가 강해지며 혁명의 불씨가 꺼져가긴 했으나 국민의회는 여전히 독일연방에서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독일 통일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던 의원들에게 헝가리에서 날아온 소식이 도착했다.
“다들 이것 좀 보십시오.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헝가리의 독립을 지지하며 그들에게 국민투표를 권했다고 합니다!”
“오오……!”
“역시 오스트리아의 황제도 독일 통일에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아직 섣부른 판단은 이릅니다.”
“이르긴 뭐가 이르다는 것이오? 지금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직접 헝가리의 왕관을 포기하고 원래 주인이었던 민중에게 돌려주겠다 하지 않습니까!”
“이전에 블롬 경을 처형했던 것이 누구였는지 잊은 것은 아니겠지요?”
“그건 지금의 황제가 아니라 전대 황제의 독단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 아닙니까!”
단순히 헝가리인들의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를 시행했다는 것만으로 자유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로 구성된 국민의회의 여론은 단숨에 오스트리아 쪽으로 기울었다.
아직 반대하는 이들도 여럿 있었지만 그들 역시 프로이센에서 뒤이어 들려온 소식에 편을 갈아탈 수밖에 없었다.
“크, 큰일입니다. 러시아의 황제가 프로이센의 국왕에게 당장 국민의회를 해산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러시아에서 프로이센 정부에 압박을 넣고 있다는 소식에 국민의회가 발칵 뒤집혔다.
그들이 의회를 자처하긴 했지만, 여전히 독일 각 지역의 지방에서는 혁명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막강한 세력을 유지하는 중이었는데, 정작 그들이 자신을 지킬 힘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시민들의 지지뿐이었다.
반면에 러시아는 어떤가?
유럽을 제패하겠다던 나폴레옹과 프랑스를 짓밟고 유럽에 자신들만의 평화를 가져온 이들이었다.
그들의 군대는 막강했고 또 황제에게 조건 없는 충성을 보낼 정도로 충성스러웠다.
그런 이들이 유럽 내의 혁명을 진압하러 들어온다면 과연 국민의회가 이를 막을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적어도 의회에 모인 이들 중에서는 없었다.
다들 당장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우왕좌왕하자 국민의회 의장직을 맡은 에두아르트 폰 짐손은 의사봉을 두드리며 의원들을 진정시켰다.
“정숙! 다들 정숙하시오!”
“지금 정숙하게 생겼습니까? 러시아 놈들이 밀고 들어오면 우린 다 죽을 겁니다!”
“망할 슬라브 녀석들!”
“차라리 잘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 러시아와 일전을 벌여 새롭게 탄생할 독일제국의 선포식은 러시아의 수도에서 벌이는 겁니다!”
“제발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하시오!”
이렇듯이 의원들은 혼란에 빠져 저마다 아무 의견이나 내놓던 중에 한 의원이 말했다.
“그럼 기왕 이렇게 된 거……. 오스트리아의 황제에게 새롭게 태어날 독일제국의 황제가 되어달라고 간청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저 포악한 슬라브 놈들로부터 우릴 지켜주지 않겠습니까?”
“말이 되는 소릴 하시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갔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우리가 만든 헌법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하질 않았는데, 오스트리아의 황제에게 제관을 넘겨주자니까요?”
당연하게도 반발이 튀어나왔지만 이미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럼 이대로 죽자는 거요?”
“일단은 살고 봐야 할 것이 아닙니까!”
“됐습니다. 이 건에 대해서는 긴급표결에 부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모두 정숙하시오!”
의장의 권한으로 긴급표결에 들어간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는 이윽고 환희에 찬 함성으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