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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29화 (29/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29화

각료회의?

투표결과를 두고 헝가리 정부는 둘로 나뉘었다.

다시 국민투표를 하자는 측과 오스트리아와 결전을 벌여야 한다는 측으로 말이다…….

다시금 투표를 하자는 쪽은 코슈트를 비롯한 행정관들이 주축이었고 오스트리아와 결전을 벌이자는 쪽은 괴르게이를 비롯한 군부의 인사들이었다.

무력을 가진 군부는 헝가리가 분열하기 전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야 한다고 코슈트를 압박했다.

“각하, 지금이라도 병력을 휘몰아쳐서 오스트리아군과 일전을 벌여야 합니다.”

“……지금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스트리아와 일전을 벌여야 합니다.”

“설마 승전으로 여론을 되돌려보겠다. 뭐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벌이려는 건가?”

“그럼 이대로 포기하시렵니까?”

괴르게이의 말에 코슈트는 이마를 찌푸렸다.

“이미 자네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머리가 아프니 그 이야기는 이쯤 하는 거로 하지.”

“각하!”

“나가게.”

괴르게이가 코슈트의 집무실에서 나오자 밖에서 대기 중이던 장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

“됐습니까?”

그들의 물음에 괴르게이는 고개를 좌우로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에 하고는 어딘가로 향했다.

그러자 장교들은 그의 뒤에 우르르 따라붙으며 그에게 물었다.

“사령관 각하,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부대로 복귀 중이라네.”

“……더 설득하지 않으시고요?”

“저 머저리들에게 더는 희망이 없어, 그러니 자네들도 따라오지 말고 알아서 하게.”

괴르게이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는 홀로 기지로 돌아가 버렸다.

장교들은 늘 겪는 일이었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좀 더 흥분한 것처럼 보이는 괴르게이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또 저러시는군.”

“반란이라도 일으키시려는 게 아닐까요?”

반란이라는 말에 다들 움찔했다.

다들 지금의 괴르게이라면 혁명의 끝이 다가오는 순간에 구국의 결단을 내리리라 생각했다.

아니, 원했다.

장교들은 내심 괴르게이가 총대를 메고 이 무능력한 정부를 뒤엎고 헝가리 독립의 과업을 이어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은 클럽커의 몇 마디 말에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괴르게이 각하께서? 그럴 리가 있나! 오히려 저분은 사직서를 들고 돌아오실걸세.”

“하지만……. 지금 상황이 그렇잖습니까.”

“크흠……. 아무리 괴르게이 각하라도 독립의 꿈이 좌절되려는 순간을 그냥 지켜볼 리가 없잖나.”

그들의 말에 클럽커는 웃으며 반문했다.

“이런 모자란 친구들 같으니……. 각하께서 그런 일에 신경이나 쓰시던 분인가? 저분은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하신 분이야.”

“그럼……. 이미 각하께서는 이번 일이 잘 안 될 것이라고 확신하셨다는 말입니까?”

“그런 셈이지, 자네들도 이제 실업자가 될 것이니 앞으로 할 일이나 찾아보는 게 어떻겠나?”

그 말을 끝으로 클럽커 역시 자리를 떴다.

점점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장교 중 하나가 물었다.

“이제 뭐 먹고살지?”

* * *

이번 헝가리 국민투표는 오스트리아를 두 번이나 뒤집어놓았다.

첫 번째는 협정이 막 끝나고 그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한 번, 그리고 두 번째는 국민투표가 끝나고 그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였다.

언론은 전투에서 승리하여 승기를 쥐었음에도 헝가리를 독립시키려 한다고 바흐 남작과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을 맹렬히 비난했고 정치권까지 이에 합세하여 둘을 묻어버리려 했다.

물론 바흐 남작은 내가 회의를 주도했다며 나름 소신 발언을 했으나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악독하긴…….]

‘거짓말은 안 했습니다. 제가 언제 바흐 남작의 말을 부인하기나 했습니까?’

내 주변에서는 서로 물고 뜯으며 난리를 피워댔지만 나는 평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나오니 언론사나 귀족들도 굳이 황실까지 건드리지는 않고 오히려 그동안 눈엣가시였던 슈바르첸베르크 공작과 그 일파에게 비난을 쏟아냈다.

[참으로 얄밉지만……. 자네의 행동이 맞긴 하지.]

‘겸사겸사 공작과 그 일당들의 힘도 빼놓았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으음……. 하지만 어머니의 영향력이 더 늘어났으니, 이건 골치 아프군.]

‘그것도 조만간에 싹 걷어낼 겁니다.’

[어떻게 말인가?]

‘그건…….’

그때, 밖에서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폐하, 바흐 남작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바흐?”

공작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바흐 남작이 나를 찾아왔다는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왜 절 찾아온 걸까요?’

[법무부 장관이 찾아왔다는 것은 법리적인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지.]

‘그렇군요.’

지금 법리적인 문제가 생길 게 뭐가 있는지 고민하며 그를 안으로 들였다.

“황제 폐하 만세!”

“인사는 됐네, 무슨 일인가?”

“폐하, 혹시 지난번 수도에서 일어났던 소요사태를 기억하시는지요?”

“소요사태? 빈에서 일어난 혁명을 말하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그때 영국으로 명명 가셨던 메테르니히 각하께서 영국 정부를 통해 빈으로 돌아오기를 청했습니다.”

“메테르니히가?”

메테르니히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다.

각 국가의 이해관계를 잘 조율하여 나폴레옹을 무너뜨리고 전후 국제질서를 재편한 사람이었다.

비록 그가 만든 빈 체제는 혁명의 불길에 부서져 버리고 그 역시 총리직에서 물러나 쫓겨나듯이 영국으로 도망쳤지만……. 그는 아직도 제국 정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지금 총리직을 수행하는 슈바르첸베르크도 그가 키운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그가 돌아온다고?”

이건 호재인가 악재인가.

잠시 고민했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반대일세.]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안전제일주의인 영감님은 메테르니히의 복귀를 반대하셨다.

[안 그래도 어머니와 공작의 대립이 나날이 심해지는데, 그를 불러들여서 좋을 것이 없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자면 곧 죽을 늙은이를 불러들여서 둘 사이를 잘 중재할 수도 있겠지요.’

[그건 또 무슨 말인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막 황제가 된 젊은 황제가 정치계의 거물 메테르니히를 불러들인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야…….]

나는 영감님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에게 맞서고자 일치단결하겠지……. 저는 메테르니히를 적당히 부리면서…….”

“폐, 폐하?”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 나와버렸다.

가끔 영감님과 말할 때 이런 식으로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오곤 했다.

이래서 다른 이들 앞에서는 영감님과 대화를 안 하는데 말이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바흐 남작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아닐세, 일단은 이 건에 대해 다른 이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군.”

남작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다음 국무회의에 안건으로 올리겠습니다.”

“다음이라니? 난 지금을 말한 것이네.”

“예? 지금이요?”

“다들 한가로울 테니 금방 오겠지.”

“아, 알겠습니다.”

바흐 남작은 황급히 집무실을 빠져나가 버렸다.

[그렇게 급하게 일을 벌일 필요가 있나? 바흐가 고생이 많군.]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들 하잖습니까? 그리고 겸사겸사 같이 상담해 볼 만한 일도 있고요.’

* * *

황제의 집무실을 나선 바흐 남작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고는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았다.

숨을 몰아쉬며 비 오듯이 땀을 흘리는 그의 모습에 집무실을 지키고 서 있던 근위병이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괘, 괜찮네.”

바흐 남작은 갑갑함을 느끼고는 목을 옥죄어오는 옷깃을 풀어헤쳤다.

‘황제가 메테르니히를 불러와서 공작 각하를 찍어내려 하는 건가……!’

동양에서는 가량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는 미개한 풍습이 있다고 들었다.

황제 또한 전쟁이 끝났으니 자신과 대립하던 이들을 찍어내려는 것임이 분명했다.

‘어서 이 사실을 각하께 알려야 한다!’

바흐 남작은 다급히 총리관저로 뛰어가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에게 접견을 청했다.

“후우…… 후우……. 가, 각하께서는 안에 계시는가?”

“예, 업무를 보시는 중입니다.”

“그, 그럼 각하께 접견을 요청해 주게.”

“약속은 잡으셨…….”

“안 잡았으니까 당장 알리게!”

남작의 말에 공작의 비서는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각하, 법무부 장관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들어오게.”

바흐 남작은 안에서 답변이 들려오자마자 문을 벌컥 열어젖히면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각하! 크, 큰일입니다!”

하지만 공작은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말하게.”

“황제가 메테르니히를 불러오려고 합니다!”

그의 말에 서류를 검토하던 공작의 손이 멈칫하더니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그에게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지, 메테르니히가 돌아온다고?”

“예, 방금 영국 정부에서 공식으로 메테르니히의 복귀 의사를 타전했고 폐하께서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으음……. 메테르니히가 돌아온다고…….”

공작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메테르니히가 누구던가?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후 유럽을 혁명 이전으로 돌려놓으려 한 인물이었다.

본디 외교관 출신으로 각 국가의 이해관계를 잘 조율하여 프랑스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누더기가 된 제국을 다시 부흥시킨 인물이기도 했다.

그만큼 제국 내에서 그의 입지는 황제에 버금갔고 비록 자유주의자들의 손에 끌려 내려와 영국으로 망명을 떠나긴 했지만, 그의 영향력이 완전히 거세된 것은 아니었다.

“그자가 돌아온다면……. 또 권력을 잡고 구체제로 돌아가려 할 텐데…….”

이미 제국 내에 산재하고 있는 문제들은 메테르니히가 주장하는 구체제만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것이 많았다.

만약에 그가 실권을 잡게 된다면 제국에는 재앙이 닥칠 것이 분명했다.

“바흐.”

“예, 각하!”

“당장 브루크 남작과 슈타디온을 불러오게.”

“안 그래도 폐하께서 임시국무회의를 여신다고 실무자들을 불러오라 하셨습니다.”

“으음……. 그전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만들 수 있겠나? 폐하께 가는 동안만이라도 그들과 대책을 의논해야만 하네.”

메테르니히를 불러오겠다는 황제의 말에 공작은 다급히 교육부 장관과 재무장관을 역임하고 있는 자신의 심복을 불러 이일을 상의하려 했다.

바흐 남작 역시 공작의 뜻을 눈치챘다.

“그……. 조피 대공비 전하께 이 사실을 알린다면 시간을 좀 벌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그렇지! 그분이라면 당장 황제께 달려가서 시간을 좀 끌어주실 거야. 당장 하게!”

* * *

한편, 어머니 되시는 조피 대공비 역시 메테르니히에 대한 급보를 전해 듣고는 곧장 나를 찾아왔다.

“이번엔 또 무슨 일입니까.”

“듣자 하니 네가 메테르니히를 불러들이려 한다던데……. 그게 사실인지 궁금하여 찾아왔단다.”

“후우…….”

아무리 궁정에서 하루 이상 가는 비밀이 없다고들 하지만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른 것이 아닌가.

이 정도면 내 집무실 보안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일단 앉으시지요.”

그래도 험한 말로 어머니를 쫓아낼 수는 없었기에 일단 시간을 내드려야 했다.

“어머니, 전 총리인 메테르니히 공이 본국으로 귀환을 요청하긴 했지만 저는 그를 중요할 생각이 없습니다.”

“어째서 그러는 것이냐 메테르니히라면 분명히 내게 큰 힘이 되어 줄 텐데 말이다.”

나도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메테르니히는 충성스러운 인물이었고 가진 능력 역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는 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전대 황제이시어 보이자 사사로이 제 숙부님 되시는 페르디난트 공의 사람이지요.”

“……그래서?”

“저는 그분을 제 사람으로 만들 힘도, 생각도 없습니다. 굳이 그분이 아니더라도 제 말을 들을 사람은 많잖습니까.”

어머니께서는 내 말을 조용히 경청하시더니 이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네 말이 옳구나, 이 어미가 또 쓸데없이 찾아와서 네 시간을 낭비케 했구나.”

“아닙니다. 어머니께서는 저를 걱정하시어 그런 것이잖습니까? 그런 방문이라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걸 이제 알았냐며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영감님이 대로하실 것이 분명했기에 최대한 정중하게 돌려보냈다.

그렇게 어머니께서 무사히 자신의 궁으로 돌아가는 것까지 배웅하고 나니 시간이 제법 흘러 있었다.

“쯧……. 다음부터는 아예 시간을 정하고 만나자고 하든가 해야지 원…….”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아무리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한다고들 하지만 회의 주최자가 이렇게 늦는 것도 상당히 결례였기에 당장 급한 서류만 조금 처리하고 곧장 회의장으로 향했다.

“제국의 주인이신 황제 폐하께서 납시오!”

근위병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을 비롯한 정부 각료들이 일제히 나를 돌아보며 외쳤다.

“황제 폐하 만세!”

그러고는 각자 자기 쪽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는 모종의 사인을 보내기 시작했다.

‘요것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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