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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30화 (30/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30화

새로운 아침?

회의장은 소리 없는 전쟁터였다.

서로 험악하게 인상을 쓴다거나 입에 담지도 못할 몹쓸 말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었지만, 내 의지로 국가의 미래가 결정되니 다들 나를 설득하고자 필사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 본인이 바쁜 이들을 부른 이유는 그대들과 긴히 논의할 것이 있어 그런 것이오.”

“폐하, 그것이 무엇입니까.”

“일단은 크게 두 가지가 있소.”

다들 내 말을 조금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나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러니 좀 분위기가 사네요.’

[……보통 자네 또래라면 이런 상황에서 무섭다고들 그러지 않나?]

‘에이……. 부장님들한테 자주 불려가서 조인트 좀 까이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입니다.’

[박 부장인지 뭔지 하는 그 친구 말인가?]

‘어허, 그 이야기는 그만하시지요.’

긴장되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손가락 두 개를 펴면서 자연스레 말을 이어갔다.

“첫째로 영국으로 망명을 떠난 메테르니히가 공식적으로 빈에 돌아오고 싶다는 의사를 타전했소.”

다들 메테르니히라는 이름에 움찔거리며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 탓에 내가 뒤이어 말하는 것들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듯했다.

“둘째로는 전쟁 이후 제국의 경제 상황의 개선을 위해 짐이 고민한 것들이 있으니 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하오. 이 두 가지 안건에 대해 경들의 생각이 궁금하니 다들 편히 의견을 내주었으면 하오.”

침묵은 제법 오랫동안 이어졌다.

다들 누가 먼저 포문을 열지 기대하며 서로를 주시하기만 할 뿐 누구도 나서지 않을 때.

“폐하, 제가 의견을 내도 되겠습니까?”

“음……. 자네는 교육부 장관 슈타디온이로군.”

“폐하께서 제 이름을 기억해 주니 이는 실로 가문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부족한 저는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뭘 그 정도까지야…….”

말은 그리했지만, 그의 부드러운 혓바닥은 내 귀를 즐겁게 했고 내 입가에 미소를 드리우게 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우선 저는 메테르니히 공을 빈으로 다시 불러오는 것에는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만! 그가 다시 정계에 발을 들이는 것은…….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 친구의 말을 정리하자면 그 늙은이가 빈으로 돌아오는 것은 상관없지만 정치에 끼어드는 건 결사반대라는 뜻이었다.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의 심복인 그가 이렇게 말했다는 건 공작의 생각 역시 이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의견은 없나?”

다들 아무 말도 없었다.

아무래도 잠시 어머니를 만나 뵙는 동안에 공작이 정부 각료들에 손을 써둔 모양이었다.

지난번 국민투표 당시에는 주변에서 쏟아지는 비난에 사직서를 제출하기에 그의 힘이 조금 약해진 것이 아닌가 의심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내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좋아, 그럼 메테르니히에 관한 건은 조금 전 교육부 장관의 말대로 하지.”

“후우…….”

다들 큰 고비는 넘겼다는 듯이 한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그건 오래가지 못했다.

“그럼 다음 안으로 넘어가지.”

‘다음?!’

‘다음이 있었다고!?’

‘그건 전달받지 못했는데……!’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은 자신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바흐 남작을 이것이 어찌 된 일이냐며 쏘아봤지만 그 역시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정부 각료들 역시 이게 무슨 일인지 서로 시선을 교환하느라 바빴지만 건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두 번째 안으로는……. 이번에 헝가리에서 일어난 반란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슬슬 다시금 제국 내에 편입되려는 이때, 짐이 내부를 둘러보니 제국 내의 경제적 사정이 많이 어려워졌더군.”

내 말이 끝나자 다들 눈동자를 열심히 굴렸다.

‘새로운 경제정책에 대한 논의인가?’

‘증세인가?’

‘헝가리인들의 처우 문제인가?’

‘어쩌면 러시아와 프로이센의 협력에 맞서 서방세계와의 협력을 마련하자는 것일 수도…….’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기대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미리 준비해뒀던 것을 하나씩 나눠주며 말했다.

“지난 전쟁 기간 본인이 제국 전역에서 보고받은 바를 상세히 분류해놓은 것이니 다들 한 번씩 읽어보길 권하는 바요.”

“흠…….”

다들 별생각 없이 서류를 들춰보다가 어느샌가 집중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다들 말없이 서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본 영감님이 내게 물었다.

[저기에 무슨 내용을 썼기에 다들 저렇게 집중하는 건가?]

‘별 내용은 안 썼습니다. 그냥 여기로 오기 전에 관청에서 하던 대로 정리했지요.’

하던 대로라는 건 자료를 취합하고 높으신 분들이 보기 좋게 간단명료하게 정리해놓는 것을 의미했다.

컴퓨터는 물론 타자기 하나 없는 곳에서 자필로 도표를 그리고 정리하느라 며칠 밤을 꼬박 새워야 했지만,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허허허…….”

한참 동안 서류에 집중하던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은 저도 모르게 웃으며 내게 물었다.

“이걸 폐하께서 모두 준비하신 것입니까?”

“그렇다네.”

“대단합니다. 전쟁통에 국내현황을 이렇게 정리해놓으시다니…….”

공작은 탄식을 터뜨리며 다시금 서류를 둘러봤다.

그 안에는 제국 행정부의 모든 자료를 취합하여 만들어진 표본들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 말은 황제가 그 모든 자료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손수 정리했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말이다.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물론 꾸준히 노력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무척이나 어렵고 힘든 일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이 모든 것을 처리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다른 이들의 반응도 대체로 공작과 같았다.

저마다 상세히 정리되어 있는 도표에 감탄하거나 서류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쯤에서 생기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폐하, 참으로 훌륭한 도표이긴 합니다만……. 이걸 무슨 이유로 만드신 겁니까?”

“아주 좋은 질문이네, 그에 대한 대답은 서류 맨 마지막 장에 있으니 그곳을 보게.”

내 말에 회의장은 종이 넘기는 소리로 시끄러워졌고 이내 다들 깜짝 놀라는 소리에 더욱 시끄러워졌다.

“이, 이게 무슨…….”

“금태환 중지……?”

“폐하!!”

금태환을 중지한다는 말에 재무부 장관 카를 루트비히 브루크는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금화 생산을 중단하고 지폐의 그, 금태환을 중지하신다면 대체재로 쓰실 것은 구상해두셨는지요……?”

“아, 뭔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로군. 본인은 금화 생산을 기존 금태환 지폐 발행을 증설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금태환을 전면중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것이네.”

재무장관은 그제야 한시름 덜었다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렇다면 아주 훌륭하신 판단입니다. 요즘 전쟁으로 지출이 늘다 보니 이걸 맞추는 것이 조금 어려웠는데……. 지폐를 발행하여 통화유통량을 늘린다면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겁니다!”

“거기에 느슨해진 금융시장에 고삐도 쥘 수 있으니 나쁘지 않겠습니다만…….”

내 의견에 동조하는 것 같던 공작은 심각해진 얼굴로 내게 말했다.

“하지만……. 귀족이나 자본가들 같은 상류층은 이를 곱게 보지 않을 겁니다. 특히 영국 측에서는 이일을 계기로 제국의 굴덴화의 가치를 사정없이 깎아내릴 겁니다.”

“그렇겠지.”

“이에 대한 대비책은 있으신지요?”

[있는가?]

공작과 영감님이 동시에 내게 물었다.

“있지, 설마 본인이 그런 준비도 없이 일을 벌였으리라고 생각한 건가?”

“그건 아닙니다만…….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게 무엇인지 알려주시겠습니까?”

공작은 여전히 의심 가득한 눈이었다.

[나 같아도 의심스럽겠군. 평소에는 도장만 찍던 기계 같은 사람이 갑자기 이런 걸 가져왔으니 말이야……. 참으로 의외겠지.]

영감님은 그리 말씀하시면서도 입가에는 미소를 지으시며 마치 다 늙은 아버지가 든든한 자식을 바라보듯이 따스한 눈빛으로 내 어깨를 두들겨주셨다.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허허,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너무나도 기뻐서 그러는 것이네.]

‘사람보고 굼벵이라뇨…….’

영감님의 말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폐하?”

“음? 아, 대책이야 물론 있지.”

대책이야 몇 가지 세워둔 것이 있다.

“우선은 영국 놈들이 먼저 손을 쓰기 전에 우리 쪽에서 먼저 굴덴화의 가치를 영국의 파운드화를 기준으로 1파운드에 15굴덴까지 낮추도록 하지.”

굴덴화를 평가절하한다는 말에 재무장관이 게거품을 물고 반대했다.

“폐, 폐하! 그건 안됩니다! 당장 굴덴화의 가치를 낮춘다면 외환 보유량이 늘고 수출이 늘어날 수 있겠지만 사회의 혼란이나 시장의 혼란까지 고려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손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는군요.”

공작은 안타깝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아마 내가 자신만만하게 들이민 정책이 턱 막히니 그런 것 같은데, 나도 이걸 아무 생각 없이 들이민 것은 아니었다.

“당장 시장의 물가가 요동치고 사람들을 직장 밖으로 쫓겨나고 있네, 장기적으로 보자면 자네의 말이 옳을지도 모르나 지금은 그러한 문제점을 감수하고서라도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네.”

재무장관은 슬쩍 나와 공작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평소에 폐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소인은 그저 따르겠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아닙니다. 시장이 침체기에 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시간이 자연스레 해결해 줄 일입니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그의 말은 새끼손가락에 박혀 있는 작은 가시처럼 내 기분을 불쾌하게 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 줄 알고 그리 무책임하게 말하는 건가? 당장 길거리에 나앉은 이들이 다 죽고 나서야 정상화되는 것인가?”

“그, 그건 어쩔 수 없는 부수적인 피해입니다. 폐하께서는 마음을 굳게 다지시고 이를 헤쳐나가셔야만 합니다.”

“아니, 나는 그러고 싶지 않네! 그럴 마음도 없고 말이야.”

제국에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당장 이웃하고 있는 러시아는 유럽 내의 영향권을 목표로 발칸반도와 독일 지역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고 프로이센은 독일 지방의 패권을 두고 우리와 경쟁 중이었다.

그뿐인가?

사르데냐 왕국 또한 통일 이탈리아를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라데츠키 장군의 활약으로 눌러놓긴 했지만, 조만간에 다시금 터져 나올 터였다.

“폐하, 시장경제에 국가가 개입해서 좋을 것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시장의 자연스러운 회복을 기다리며…….”

재무장관의 말을 들으니 한창 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들었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복지학을 공부하다가 알게 된 경제 관련 인물이었는데, 제법 내 마음에 드는 말이었기에 지금까지 기억해둔 말이었다.

“자네의 그 빌어먹은 장기적인 계획이 현재 우리가 처한 사안의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어! 자네 말대로 장기적으로 보자면 여기 모인 이들은 전부 백 년 안에 죽을 걸세!”

내 일갈에 다들 숨죽인 채로 입을 다물었다.

잠시 당황한 재무장관은 이내 무어라 반박하려 했지만 나는 그의 반박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나도 내가 제안한 것이 어떤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미 멈춰버린 제국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 방법이 없잖은가!”

“……조금 더 안전한 방법들이 있는데, 왜 폐하께서는 그리도 다급하게 일을 진행하시는 겁니까.”

“옛말에 이런 말이 있네, 오늘 걷지 않고 앉아서 쉰다면 내일은 달려야만 한다네, 우리는 지난 전쟁 기간 혼자 고꾸라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네! 그러는 사이에도 우리의 적들은 앞서나갔지.”

재무장관이 뭔가 더 할 말이 남았다는 듯이 말하려 했으나 공작이 슬쩍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그를 말렸다.

이제 그만하라는 공작의 눈치에 제국의 재무장관인 브루크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입을 다물었다.

“우선은 날이 늦었으니 이 건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논의하는 것으로 하고 오늘은 이만 해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니, 본인은 젊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기력이 팔팔하니 오늘 정하도록 하겠네.”

“으음…….”

내 말에 다들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 황제의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

지금 제국의 망가진 경제 상황을 버려둔다면 다음에 더 큰 문제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렇기에 브루크 경이 무언가 더 말하려 할 때 그를 말렸다.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본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은 이내 황제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소신은 폐하의 뜻을 따를 것입니다.”

공작이 먼저 숙이고 나오니 다른 이들 역시 내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이렇게 쉽게 동의할 줄 몰랐는데…….’

[공작은 원래 그런 인물일세, 누구보다 제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움직이는 인물이지.]

‘쓰읍……. 이렇게 되면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을 잘 꾀어내려던 제 계획이 물거품이 돼버리는데…….’

[또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는군.]

‘히히히.’

어찌 되었건 공작이 내게 머리를 숙였으니 그 일파들도 표면상으로는 내 명령을 따를 것이었다.

이 불안불안한 연정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뭐 적어도 공작이 죽는다면 그의 세력을 한 번에 꿀꺽할 만한 작은 계기가 생긴 것이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제야 제가 좀 잘하는 분야로군요.’

[자네가?]

영감님은 못 믿겠다는 반응이었지만 나는 웃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제 제국에 새로운 아침을 불러와야지요.’

[기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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