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32화
외교?
공작과 나는 내 집무실에서 프로이센으로 보낼 인선을 고민하고 있었다.
“막시밀리안 공을 영국으로 보낸 것은 탁월한 판단이셨습니다.”
“이쪽이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지.”
아무리 오스트리아가 중부유럽에서 힘 좀 쓰는 강대국이라 해도 영국은 우리와는 비교가 불가한 존재였다.
다른 나라들은 이제 막 산업화의 도입부에 들어섰을 때, 영국은 다른 이들보다 한발 앞서서 산업화를 이룩했고 거기서 비롯된 압도적인 경제력을 전 세계에 뻗치고 있었다.
신대륙에서 저 멀리 떨어진 아시아에 이르는 모든 바닷길이 대영제국의 것이었고 그들의 경제력은 전 유럽을 선도하는 수준이 아니라 압도했다.
그렇기에 나도 평범한 외교관이 아닌 제국의 황족이자 내게 변고가 생긴다면 내 뒤를 이어서 황제가 될 내 동생인 막시밀리안을 보낸 것이다.
“메테르니히가 좀 걱정인데……. 막스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불어넣지는 않겠지?”
“영민하신 분이니 잘 해낼 것입니다.”
“아무리 똘똘해도 이제 열일곱이잖나…….”
“하하하, 폐하께서는 이제 열아홉입니다. 그런데 제국의 모든 일을 도맡아서 관리하시잖습니까? 그런 폐하의 동생분이니 잘하실 겁니다.”
“으음…….”
나야 예전부터 야근, 특근, 추가 근무가 일상이었던지라 요령껏 하는 것이지만 막시밀리안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라는 것을 공작이 알까?
그의 얼굴을 보아하니 전혀 모르는듯했다.
아마 황실의 핏줄이니 이 정도는 무난하게 하겠지라는 생각인 듯한데…….
[그래도 곁에 메테르니히가 붙어 있으니 그럭저럭 잘 해결할 걸세.]
‘그랬으면 좋겠네요.’
뭐 그쪽은 일단 그렇게 하고……. 중요한 것은 프로이센으로 보낼 인선을 정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프로이센에는 누굴 보내면 좋겠는가?”
“본래 프로이센이 독일연방 내에서 가진 위치를 생각하면 제가 직접 가는 것이 맞겠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도저히 여유가 나질 않더군요.”
“그렇군. 그럼 따로 생각해 둔 인물이 있는가?”
“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을 처리하던 부올 백작이라는 인물이 적격일 듯합니다.”
부올 백작이라는 이름을 듣자 영감님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내게 말했다.
[으음……. 부올이라…….]
‘아는 사람입니까?’
[알다마다……. 그 녀석 때문에 제국이 얼마나 어려운 처지에 처했던지…….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치밀어오른다네.]
‘아, 예…….’
영감님이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뭔가 문제가 있는 인물임이 분명했다.
“으음……. 부올 백작이라…….”
“러시아어에도 능통하고 동유럽의 사정에도 해박한 인물이니 프로이센에서 우리나라와 러시아, 삼국의 이해관계를 잘 조정할 만한 인물입니다.”
“으음…….”
나는 고민하는 척 눈을 감으며 슬쩍 영감님의 기억을 뒤졌다.
‘부올……. 부올 백작이……. 여깄군.’
케케묵은 영감님의 기억 도서관을 둘러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이 급사하고……. 그의 뒤를 이어서 외무장관직을 수행한 인물?’
공작의 뒤를 이었다는 것은 능력 하나만큼은 어느 정도 인정받는 인재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왜 영감님은 이런 사람을 싫어하는 것일까.
‘흠……. 크림전쟁 당시에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며 중립을 지키다가……. 종래에는 러시아에 선전포고하여 러시아를 적으로 돌렸는데……. 괜히 발칸 쪽에 집적대다가 서방세계의 미움을 받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이탈리아 독립전쟁 당시 오스트리아는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홀로 싸워야 했다.
설명만 들어보자면 여러 곳에서 거하게 삽질을 한 인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큰 그림을 보는 눈이 조금 떨어지는 모양이로군.’
지금이야 제국의 힘만으로 헝가리에서 일어난 봉기를 진압하긴 했지만, 영감님이 겪었던 원 역사에서는 러시아의 도움을 받고서야 겨우 이길 수 있었다.
거기에 이후에 이어진 프로이센의 도전을 굴복시킨 것 역시 러시아였다.
오스트리아로서는 구국의 혈맹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든든한 동맹이었는데, 고작 서방세계의 눈치를 본다고 이들을 걷어차 버린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후에 러시아 오스트리아를 증오하게 했으니……. 그가 제국 외교사에 남긴 발자국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이 녀석 때문에 대러시아 외교가 처음부터 어긋나버린 것이로군.’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던져 버리기엔 조금 아까운 사람이기도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현재 제국 내에는 쓸 만한 인재라는 것이 메말라버렸으니 말이다.
‘사람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자리가 잘못된 것인지부터 알아봐야겠군.’
사람이 문제라면 어디 한직에 처박아놓으면 될 일이었고 자리가 문제라면 그에게 적절한 자리를 마련해 주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영감님의 도서관을 나와 눈을 뜨니 공작이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은 인선 같군.”
“그럼 그렇게 진행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헝가리의회에 전보를 보내서 내 즉위식은 언제쯤 여는 것이 좋겠는지도 물어봐 주게.”
“하하하, 알겠습니다!”
* * *
훈훈한 제국의 정계와는 다르게 헝가리의 정계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살벌하기만 했다.
“우리의 혁명이 실패한 것은 전부 무지몽매한 민중이 위대한 뜻을 알아채지 못하고 구세력들의 감언이설에 놀아났기에 그런 것이오!”
“어허, 무지몽매한 민중이라니?! 그들이야말로 헝가리를 떠받치는 기둥임을 모른단 말이오!”
“흥, 그들이 떠받치는 건 헝가리 왕국이 아니라 제국 내에 속한 제국령 헝가리겠지요.”
“쯧쯧…….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떼쓰는 꼴이 꼭 어린아이 같구려.”
“지금 말 다 했소!?”
헝가리 의원들은 선거를 부정하고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재선거를 해야 한다는 입헌파와 시대의 뜻을 따라서 다시 제국에 복귀해야 한다는 민중파로 나뉘어 서로를 향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만약 모르는 이가 들었다면 이곳이 신성한 의회가 아니라 어디 시장판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후우…….”
이를 중재해야 할 코슈트는 한숨만 푹푹 쉬며 앞으로의 일을 걱정할 뿐이었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정부의 교 통장관 이슈트반 세체니가 참관석에서 일어나 의원들에게 일갈했다.
“지금 신성한 의회에서 다들 뭣들 하는 짓이오!”
건물을 때려 부술 것처럼 울려 퍼지는 천둥벼락 같은 그의 노호성에 다들 움찔하며 그를 돌아봤다.
수백 개의 눈동자가 그에게로 향했으나 이슈트반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들을 꾸짖었다.
“어찌 되었건 투표결과 인민들은 제국에 남기를 결정했소이다! 그것은 그들이 무식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제국의 공작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그는 분노 어린 주먹으로 고급원목으로 만들어진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건 전부 우리가 부족했던 탓이고 어리숙했던 탓입니다! 여기 있는 이들 중에 어느 누가 인민들을 가르치려 했고 인민들과 소통하려 했습니까?
당신네는 그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잘 포장된 미숙한 젊은이들을 끌고 와 전장으로 내보내기밖에 더했습니까?!”
“으음…….”
“커험…….”
그의 일갈에 대부분 의원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지만 몇몇 의원들은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고 그에게 반박했다.
“댁도 안전한 후방에서 종이 쪼가리에 서명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았소!”
“거 참 누가 누구보고 뭐라 하는 것인지 원…….”
이슈트반은 그런 의원들의 어쭙잖은 반박에 코웃음 치며 외쳤다.
“그렇지요. 저 역시 안전한 후방에 남아 당신네의 말처럼 종이 쪼가리에 서명이나 하며 시간을 보냈지요. 그렇지만 저는 부끄러움을 압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미칠 것 같단 말입니다!”
“…….”
“우리의 혁명이 실패한 원인 말입니까? 다들 높은 곳만 바라보며 정작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낮은 곳을 바라보지 못했으니 그들의 지지를 얻어낼 수 없었던 게 아닙니까! 제 말이 틀렸습니까?!”
이슈트반의 울분의 찬 목소리에 누구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모두 숨죽인 채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릴 뿐.
하지만 이슈트반은 그들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까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벅차오른 감정을 갈무리하며 조용히 자리에 앉았을 뿐이었다.
“…….”
“흠흠…….”
의원들은 다들 짙은 패배감과 절망을 느끼며 고개를 떨궜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코슈트가 적막을 깨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의사봉을 높이 들었다.
“그럼 금일 의회는 이만 폐회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아마 새로운 왕을 추대하는 의전에 대해 의논코자 모일 것 같군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코슈트는 의사봉을 부숴 버리려는 것인지 있는 힘껏 두드리고는 바닥에 내팽개치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 * *
프로이센의 왕궁에 도착한 부올 백작은 자신을 노려보는 시민군의 눈빛에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혹여라도 이 무도한 자들이 자신에게 칼을 겨누고 죽이는 것은 아닐지 의심이 들려던 찰나.
“폐하께서 접견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쪽으로…….”
“크흠…….”
부올 백작은 조금 전까지 자신을 노려보던 어리숙한 병사를 쏘아보고는 왕실 비서의 뒤를 따라 프로이센의 국왕을 만나러 갔다.
프로이센 왕궁의 복도를 지나며 그는 자신의 임무를 다시금 상기했다.
‘프로이센의 국왕에게는 단순히 친선관계를 재확인하고자 방문했을 뿐임을 강조하며 은근히 러시아를 언급하여 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얼핏 보면 간단한 임무였지만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듯이 까딱 잘못했다가는 이야기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튈 수 있었기에 조심해야 했다.
“이곳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폐하, 오스트리아에서 오신 부올 백작께서 뵙기를 청하옵니다!”
“들어오라.”
“이제 들어가시면 됩니다.”
부올 백작은 마지막으로 복장을 점검하고는 프로이센 왕실 근위대가 열어준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피부 마디마디에서 땀이 배어 나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지만 애써 감정을 다스리며 프로이센의 지배자 앞에 머리를 숙였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폐하, 외신은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외교업무를 담당하는 카를 페르디난트 폰 부올입니다.”
“반갑군. 부올 경, 오스트리아 쪽은 아직 봉기가 진압되지 않았다던데……. 그건 어찌 되었는고?”
부올은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목소리가 들려왔음에도 고개를 들지 않고 머리를 숙인 채로 답했다.
“다행히도 용맹한 제국군의 활약과 황제 폐하의 혜안으로 잘 해결되었습니다. 조만간 폐하께서 헝가리 왕국의 왕관을 이어받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니 다행이로군……. 이만 고개를 들게.”
프리드리히의 명령에 부올 백작은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쳤다.
정수리까지 벗어진 머리와 축 늘어진 볼살, 그리고 축 처진 눈꼬리는 그간의 심경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에서 무슨 일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내게 사람을 보냈는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니요……! 혹여라도 누가 들을까 무섭습니다.”
“허, 밖에 있는 무도한 폭도들에게 강제로 끌려다니는 내가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심지를 굳건히 하십시오. 저희 오스트리아는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도움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
부올 백작의 말에 프리드리히는 흥미롭다는 듯이 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묻겠네,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을 위해 어느 정도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겠는고?”
“그, 그건…….”
부올 백작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오스트리아의 국력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많은 병력을 보낼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국력이 허락하지 못하면 한 명도 보내지 못한다는 뜻처럼 들리는군.”
“그럴 리가요! 제국은 독일지역의 혈맹들을 버릴 생각이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굳건한 의지로 정의를 실현하실 것입니다.”
“흥, 그렇군.”
프리드리히는 그의 말에 코웃음을 쳤지만, 일단은 알았다는 듯이 넘어갔다.
그렇게 분위기가 조금 풀리자 부올 백작은 국왕의 눈치를 살피며 은근슬쩍 본 이야기를 꺼냈다.
“폐하, 외신이 듣기로는 러시아에서 프로이센에 강경한 외교 서한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벌써 소문이 거기까지 퍼진 모양이로군.”
“외람되오나……. 그 내용을 제게도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부올 백작의 물음에 프로이센의 국왕은 가볍게 웃으며 답하길.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그 대답을 들은 부올 백작은 쾌재를 불렀다.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