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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34화 (34/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34화

황제???

‘황제라고……?’

나는 당황해 무릎을 꿇는 것도 잊은 채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청년의 얼굴을 훑었다.

하지만 그 역시 황제를 멀리서 본 것이 전부인지라 확신할 수는 없어 뚫어지라고 황제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이 거기!”

“저, 저 헝가리 놈이 폐하를 시해하려 한다!”

누군가의 말이 들리자마자 근위대는 재빨리 달려들어 나를 제압했다.

그러자 내가 부인에게 선물하려던 브로치는 바닥에 떨어지며 상자가 찌그러지고 브로치는 병사의 군홧발에 밟혀 부서졌다.

“아, 안 돼!”

“가만있어!”

나는 선물을 어떻게든 회수하려 손을 뻗어봤지만, 병사들은 그가 저항하는 줄 알고 그를 더욱 힘을 줄 뿐이었다.

그렇게 내가 움찔거리고 있을 때, 조금 전에 봤던 황제가 내게 걸어오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바닥에 떨어진 브로치를 집어 들었다.

“자네들은 왜 애꿎은 시민에게 그러는 건가.”

“폐하, 이자는 헝가리인입니다!”

“그래서?”

“폐하께 위해를 가할 수도 있습니다.”

병사의 말에 황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조금 전의 허술한 얼굴은 어디 가고 무서울 정도로 냉담한 얼굴로 병사에게 말했다.

“저자가 단순히 헝가리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것이라면 나는 자네에게 혐오감을 느낄 것이네.”

“폐, 폐하……. 소인은 단지…….”

“알지, 자네는 나를 향한 충성심으로 그런 것이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 충성심이 애먼 시민을 핍박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 충성심을 받을 수가 없어.”

“…….”

“그러니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다들 비켜주겠나?”

황제는 병사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주며 그들을 떼어냈다.

몸이 자유로워지자 재빨리 손을 뻗어서 황제의 손에 들려 있던 브로치를 낚아챘다.

“이 녀석이……!”

병사는 단단한 군홧발로 내 복부를 걷어찼지만 그래도 브로치는 건졌으니 다행이었다.

깨지고 부서지긴 했지만, 부인에게 줄 선물을 오스트리아 놈들에게 넘길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만! 내가 그만하라고 했잖나.”

“하지만 이 녀석이…….”

“그저 내 손에 있는 브로치를 되찾으려 했을 뿐이잖나? 너무 과민반응하지 말게.”

“죄송합니다…….”

황제는 마음대로 행동한 병사를 혼내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사과하는 것이 아닌가?

“후……. 그래, 자네는 할 일을 다 했을 뿐이지……. 내가 좀 흥분했군. 미안하네.”

“아, 아닙니다. 전부 제 잘못입니다.”

“아닐세, 내가 말이 좀 심했군. 아무튼……. 이 신사분을 일으켜주고 저기 있는 청년들도 이만 풀어줬으면 좋겠어.”

“예, 폐하.”

그리 말한 황제는 주변을 둘러보며 여전히 꿇어앉아 있는 시민들에게 말했다.

“사랑하는 빈의 시민들이여. 그대들도 이만 돌아가게나 그대들의 집에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기다리지 않는가.”

그러자 시민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못난 남편이나 말 안 듣는 자식놈들은 매일 볼 수 있지만, 폐하의 잘생긴 얼굴은 오늘이 아니면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잖습니까~”

“그거 맞는 말이로군.”

황제는 무엇이 그리도 기분 좋은 것인지 웃으며 빈의 시민들에게 말했다.

“그래도 집에는 여우 같은 남편이나 늑대 같은 부인이 기다리고 있잖은가? 내 얼굴은 신문기사로 보는 것에 만족들 하시고 이만 돌아가게, 이건 황제의 명령일세.”

“예, 폐하.”

어째서 시민들은 저자를 저리도 따르는가.

저 녀석은 그저 운 좋게 황제가 된 압제자가 아니었던가.

머릿속이 복잡했다.

* * *

‘제가 좀 잘생기긴 했죠?’

[본인이 잘생긴 것이지.]

‘쯧쯧쯧……. 제가 열심히 관리를 해줘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처음 거울 봤을 때는 웬 반쯤 썩어버린 오이 같은 게 있어서…….’

[오이?! 이놈!]

슬슬 시민들이 물러나자 아직도 바닥에 깔린 청년들을 돌아봤다.

그들의 낡은 군복을 보아하니 퇴역군인 같아 보이는데, 그중에는 훈장을 받은 이도 있었다.

[금성훈장이로군.]

‘훈장이라……. 그럼 전쟁 때 용감하게 싸웠던 병사라는 건데……. 왜 이러고 있는 겁니까?’

[글쎄……. 들판에 널려 있는 무덤만큼이나 사람들의 사연도 많은 법이잖나.]

‘키야……. 들판에 널려 있는 무덤만큼이나 사람들의 사연도 많은 법이다……. 훌륭하십니다.’

[쯧……. 괜한 소리 말고 어머니를 달랠 방법이나 고민해 보게, 이대로 바깥을 전전할 생각인가?]

‘크흠…….’

영감님의 잔소리에 잠시 가만히 있으니 근위병들에게 깔려 있던 청년이 내게 외쳤다.

“폐하! 소인은 단지 저 헝가리 놈이 시비를 걸어오기에 싸운 것일 뿐이지 폐하께 해를 끼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헝가리?”

그 이름을 여기서 들을 줄 몰랐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무 생각 없이 빈으로 온 헝가리인이 누구인지 궁금하여 근위병들이 붙잡고 있는 신사의 모자를 슬쩍 들춰봤다.

[괴, 괴르게이……!?]

‘아, 아니 이 양반이 오, 왜 여기에……!’

[나, 난들 알겠나!]

헝가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깄는 거지?

당혹스러움에 할 말을 잊고 그를 가만히 바라보자 괴르게이가 피식 웃으며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누군지 알아보시는군요.”

“으음……. 자네를 보고 있으니 묻고 싶은 게 조금 생겼는데, 시간 좀 괜찮은가?”

“그건 부탁입니까? 명령입니까?”

“공손한 부탁이네.”

그리 말하며 괴르게이를 붙들고 있는 근위병들에게 손짓해 그를 놓아줬다.

다시금 몸이 자유로워진 괴르게이는 어깨를 두어 번 움직이며 근육을 풀더니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모자를 집어 들며 말했다.

“내일 제가 황궁으로 찾아가겠습니다.”

“그리하게……. 아, 잠시.”

나는 바닥에 떨어진 작은 선물상자를 들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런 건 잘 챙겨야지.”

“감사합니다.”

괴르게이는 그 말을 끝으로 내게 가볍게 고개를 까딱거리고는 뒤돌아서 가버렸다.

[자네 미쳤나?! 반역자 괴르게이를 이대로 놓아주려는 건가!]

‘허허, 영감님 제가 그냥 놓아줬겠습니까?’

영감님께 그리 말하며 살짝 깨진 브로치를 꺼냈다.

‘저 친구가 제법 아끼는 물건인 것 같더군요.’

[허허……. 이런 손버릇 나쁜 녀석을 보았나.]

‘칭찬 감사합니다.’

푸른 보석이 반짝이는 브로치를 주머니에 넣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슬슬 해가 지고 있었다.

“슬슬 어머니의 화도 풀리셨을 테니 돌아가 볼까.”

“폐하!”

“깜짝이야……. 무슨 일인가?”

이제 슬슬 궁전으로 돌아가려는데, 조금 전에 근위병들에게 제압당했던 청년들이 나를 불러세웠다.

그러고는 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내게 애원했다.

“폐하, 저희는 지난 전쟁에서 조국을 위해 용감히 싸웠으나 고향으로 돌아오니 누구도 저희를 반겨주지 않았습니다.”

“일자리를 구해보려 해도 사람들은 팔다리에 문제가 있는 이들은 원하질 않아 먹고살기가 어렵습니다.”

“전쟁터에서 얻은 군복과 훈장이 사회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질 않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폐하……!”

“부디 저희에게 나아갈 길을 알려주십시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것이었다.

군대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다쳐서 전역했는데 먹고살 길이 너무 막막하다.

그러니 먹고살 길을 좀 내어달라.

[훌륭한 요약이로군.]

‘쩝…….’

내가 저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 줄 수는 있다.

이대로 공작에게 가서 사지 안 멀쩡한 청년 네 명이 일할 일자리를 구해달라고 하면 공작은 투덜거리면서 적당한 일을 물어올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제국 전역에 있는 상이군인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구해달라며 아우성을 칠 것이 분명했다.

“그건 어렵겠군. 나는 제국을 통치하는 사람이지 자네들에게 일거리를 쥐여주는 사람은 아니니까 말이야.”

“아아…….”

청년들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조금 야박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흠…….’

크게 실망한 이들을 내려다보며 잠깐 고민에 잠기니 영감님이 슬쩍 내 눈치를 살피며 말씀하셨다.

[저들이 불쌍하긴 하지만 자네가 해줄 일은 없네.]

‘저 친구들이 불쌍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국가의 부품이 되어 줄 사람들을 제대로 써먹질 못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그런 것입니다.’

[국가의 부품……?]

‘쓰읍……. 다리가 좀 불편한 친구는 컨베이어 벨트가 설치된 공장에 넣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일할 수 있을 것 같고……. 얼굴에 상처가 깊은 친구는 나무꾼이나 농부로 써먹으면 될 것 같은데…….’

내 말에 영감님이 당황하며 되물으셨다.

[아니, 잠깐만……. 지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자네는 저 불쌍한 이들을 쥐어짜겠다는 건가?!]

‘쥐어짜다니요? 저는 저 친구들을 국가에 성실히 납세하는 훌륭한 산업의 역군으로 키워주려고 그러는 겁니다.’

영감님은 황당하다 못해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말씀하시길.

[그……. 자네는 이곳에 떨어지기 전에 국가에서 복지 관련 업무를 전담했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랬죠.’

[그런데 저런 이들을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써먹을 방법을 고민한다고.?]

‘예.’

뭐가 잘못됐냐는 듯이 영감님에게 되물었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영감님 역시 내 훌륭한 계획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며 감탄하시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허……. 신이시여 제가 악마의 꼬임에 빠졌다고 제게 이런 시련을 내리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기도하노니……. 부디 이 몹쓸 종자를 악으로부터 구원하시고 제국을 구원해 주소서…….]

얼마나 감동하신 것인지 신에게 내 안부 인사까지 전해주실 정도였다.

영감님과 아옹다옹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제국근위대장이자 오늘 내 곁에서 호위업무를 총괄하던 한스 경이 내게 말했다.

“폐하, 슬슬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벌써 그런 시간이로군.”

잠시 품속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니 슬슬 시침은 8에 가까워져 있었다.

“쓰읍……. 배가 고프군.”

급하게 어머니로부터 도망치느라 저녁 식사도 못 해서 배가 몹시 고팠다.

그렇다고 시내 거리에서 식사하자니 또 조금 전처럼 괜히 사람들이 몰리면 골치였기에 어찌할까 고민하던 차에 바닥에 꿇어앉아 눈물 흘리는 청년들의 군복이 눈에 들어왔다.

근위대가 화려한 군복을 입는 것보다는 저런 후줄근한 군복을 입는 것이 더 눈에 덜 띄지 않을까?

어차피 군복은 황궁으로 돌아가면 다시 지급해 주면 그만이었으니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곧장 그들을 불렀다.

“이보게.”

“예?”

“자네들 군복이 좀 낡았군.”

“아……. 이건 그동안 관리를 잘 못 해서…….”

“탓하려는 것은 아니고 자네들의 그 군복을 여기 있는 병사들의 것과 바꿀 생각 없나?”

“폐하?”

내 제안에 한스 경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청년들 또한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멀뚱히 나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으음……. 하긴 그냥 옷만 바꿔입는 결론 성에 안 차는 모양이니……. 내 특별히 추천서까지 써주지. 이 정도면 어디 공장 경비원 정도는 할 수 있을 걸세.”

“추, 추천서요……!”

“폐하?!”

한스 경이 나를 불렀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그래, 기왕이면 멋진 제복까지 곁들이면 공장장도 자네들을 좀 더 좋게 봐주지 않겠나?”

“그거야 그렇긴 한데…….”

청년들은 슬쩍 내 곁에 있는 근위대 병사들의 눈치를 살피며 내게 말했다.

“저분들은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은데…….”

“응? 그런가?”

“아닙니다.”

“그렇다는군. 그럼 어서 갈아입게.”

한스 경과 병사들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이었으나 묵묵히 명령을 따랐다.

이내 서로 옷을 갈아입으니 우중충해 보이던 청년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었다.

“좋아, 이렇게 보니 아주 보기 좋군.”

반면에 근위대 병사들은 후줄근해진 차림 때문에 이게 군인인지 거지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래도 덕분에 다른 이들의 시선을 덜 받게 되었으니 그건 다행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폐하.”

“고마우면 세금 꼬박꼬박 내고 기왕이면 자식은 여섯쯤 낳아줬으면 좋겠군.”

“노,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래, 바로 그걸세.”

그렇게 청년들이 다시금 자신감을 되찾고 내게 경례를 올리며 돌아가려 할 때, 근위대 병사의 가슴팍에 달린 훈장이 내 눈에 띄었다.

“아, 잠깐……. 아담 보로예비치가 누구인가?”

“접니다!”

청년들 사이에서 대장 노릇을 하던 이가 손을 번쩍 들며 내 앞으로 걸어왔다.

“이걸 두고 갔더군.”

나는 그런 청년의 가슴팍에 손수 훈장을 매달아주며 그의 어깨를 두들겨줬다.

“자네 같은 헌신적인 사람들 덕분에 내가 두 발 뻗고 편히 쉴 수 있네, 그럼 앞으로도 수고해 주게.”

“…….”

“응? 대답이 없군.”

“가, 감사합니다…….”

싱글벙글 웃고 있던 청년은 내가 손수 가슴팍에 훈장을 달아주자 어느샌가 눈물을 글썽이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쯧쯧쯧……. 사나이가 눈물을 보여서야 쓰겠나? 그러지 말고 다들 어디 분위기 좋은 선술집에서 맥주나 한 잔씩 더하게, 그건 내 가사지.”

그리 말하며 내 얼굴이 찍혀 있는 금화 세 개를 그의 손 위에 올려줬다.

그러고는 뒤돌아서 오늘 저녁을 해결할 식당을 찾으러 거리의 인파 속으로 뛰어들었다.

[저 친구는 크게 감동한 모양이로군.]

‘제 잘생긴 얼굴을 보면 감동할 만하죠.’

[……됐네, 말을 말지.]

‘저들에게 따스하게 대해주는 제 모습에 감동하기라도 하신 겁니까? 그럼 마음껏 감동하시지요! 음 하하하!’

[자네는 입만 안 열면 참 괜찮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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