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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37화 (37/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37화

집행?

느슨해진 제국 경제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경제개발계획은 차근차근 기틀을 잡아갔다.

일단 당장 할 수 있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국가 재원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진행하며 시간을 벌며 그 틈에 구체적인 계획안을 만들었다.

브루크를 비롯한 재무부의 모든 인원과 국내의 내로라할 경제학자들이 달라붙어 피 대신 침을 튀겨가며 싸워댔다.

다들 황제인 내가 구상한 초안에다가 어떻게 살을 붙여야 하는지를 두고 다퉜는데, 그중에서도 ‘복지’라는 개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두고 치열하게 대립했다.

“무작정 나눠주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기왕 경제에 개입하기로 결정한 이상 인민이 필요한 것을 철저히 분석하여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말씀하셨던 것은 하층민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셨으니 무작정 지원책을 꺼내기보다는 간접적으로 시장에 자금이 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제국의 전통산업인 제조업과 화학에 집중하여 경쟁력을 끌어올려 국제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하는 것이지요.”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일단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차근차근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끌어올리자는 것.

대규모 사업과 적절한 개발사업, 그리고 기업들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산업 자체를 끌어올려 밑에 있는 이들도 따라 올라오게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둘 다 제국을 번영시키겠다는 뜻은 같았지만,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당연하게도 양측은 서로의 생각을 이해 못 했다.

아니,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다.

제국 내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모인 만큼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는 자신이 최고, 못해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실제로도 얼추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타협보다는 자기 뜻을 관철하는 것에 익숙했다.

그럼 어떻게 되었겠는가?

끝없는 논쟁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된 겁니다.”

회의 중간경과를 보고하러 온 브루크 경은 오랫동안 이어진 소모적인 논쟁에 너덜너덜해져 예전에 활기차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네 괜찮은가?”

“예……. 아직 숨은 붙어 있는 것 같습니다.”

“숨만 붙어 있는 것 같군. 무리하지 말고 쉬어야 할 때는 편히 쉬게나.”

“…….”

브루크는 말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는 내 책상 위에 쌓여 있는 두꺼운 책자들과 서류뭉치, 그리고 쓰레기통에 가득 쌓여 있는 펜촉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보다는 폐하께서 좀 쉬셔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하하, 공작과 바흐 남작도 그리 말하더니 자네까지 그러긴가? 다들 쓸데없이 걱정만 많군.”

“그러다가 정말 쓰러지실 것 같습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브루크 경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래, 나도 쉬엄쉬엄할 테니 자네도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쉬면서 하게.”

“예, 폐하.”

브루크가 방을 나서자 이마를 찌푸렸다.

“쯧……. 이런 것도 제대로 처리하질 못해서 여기까지 올라오게 만드는군.”

[또 왜 심술인가.]

“이런 것 하나 처리 못 해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을 보고 있으니 짜증이 치밀어서 그렇습니다.”

[브루크 경은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맞추는 것보다는 큰 그림을 보며 대강 어찌할지 구상하는 쪽에 가까운 것이니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시간을 이렇게나 줬는데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건 조금 화가 나는군요.”

[그럼 조금 전에 화를 내지 그랬나? 어째서 그냥 보내준 것인가.]

“그야…….”

영감님의 말에 무어라 대답하려다가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평소였다면 뒷일은 생각 안 하고 그냥 내질렀겠지만, 왠지 모르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갔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한번 참았습니다.”

[잘했네, 만인의 머리 위에 군림하려면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며 상대가 내 속을 읽지 못하게 해야 하는 법이지.]

“브루크 경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던데요.”

[지금은 무사히 넘겼다고 다행이라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매사에 감정적이던 자네가 오늘의 일을 그냥 넘어갔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압박을 느낄 걸세.]

“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알 수 없는 말씀을 하시는 영감님에게 대충 대답하고는 다시금 서류를 들여다보니 지난번에 공작과 이야기했던 것이 보고서로 올라와 있었다.

“헝가리 반역자들에 대한 특별대책이라…….”

듣기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제목이었다.

파벨로프가 종을 울리면 개가 침을 흘렸듯이 나는 이 제목을 보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 * *

“갑자기 이게 무슨 일입니까?”

“대뜸 모이라니…….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다들 모일 때까지 기다리시게.”

헝가리 정부의 각료들은 코슈트의 갑작스러운 부름을 받아 한곳에 모였다.

다들 얼추 모이자 코슈트는 자리에 모인 이들의 얼굴을 한 번씩 쭉 훑어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늘 아침에 빈에서 전보가 도착했습니다.”

“전보?”

“무슨 내용이기에 그러시는 겁니까?”

“후우…….”

코슈트는 한숨을 내쉬더니 빈에서 내려온 황제의 친서를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그런고로 현시점부터 지난 소요사태에 동참했던 주동자들을 체포하겠다……. 라는군.”

“으음…….”

“다들 어느 정도 예상하신 바 아닙니까? 오히려 황제가 지금까지 내버려 둔 것이 신기한 일이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들이 장성하는 것을 보고 가지 못하는 것은 슬프지만……. 그래도 그 녀석들은 저를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기억해 줄 겁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이었지만 다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그리 큰 충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저승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파티나 하자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풍길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의 화기애애함도 얼마 가지 못했다.

“……다들 무언가 오해하는 듯하군. 빈의 황궁에 계신 분께서는 우리의 목숨을 거두시려는 것이 아니라 수염과 머리카락을 거두어가고 충성서약문에 서명하라고 했네.”

“수염과…….”

“머리……?”

다들 그 말을 듣고는 자연스레 자신의 풍성한 수염과 그에 비해 조금 빈약한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매일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에 떨어진 머리카락만 봐도 심란한데, 그걸 전부 밀어버리겠다고?

심지어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수염까지 건드리겠다고 한단다.

“……각하.”

“말하게.”

“흩어진 병사들을 다시 끌어모은다면 최후의 발악 정도는 할 수 있을 겁니다.”

“차라리 목을 잘릴지언정 제 머리를 자르지는 않을 겁니다!”

“황제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요. 우릴 모욕하려고 이런 더러운 술수를 쓰다니……!”

회의장은 이내 혼돈에 빠져들었다.

“조용……. 조용! 다들 진정하시게.”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빈에 있는 황제가 우리의 자존심을 짓밟아놓겠다는데, 이건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옳소!”

그들은 단순히 머리털과 수염이 깎이는 것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었다.

어설픈 자비로 자신들의 자존심을 파헤치다 못해 진창에 던져놓고 짓밟으려 하는 황제의 태도에 분노한 것이다.

아마도 말이지…….

하지만 개가 짖는다고 기차가 멈추어 서진 않듯이 그들이 반발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헝가리 국민의회는 자신들의 소중한 털들(?)을 지키기 위해 시민들에게 현 상황의 부당함을 알렸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시들했다.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지.”

“머리카락과 수염은 다시 자라지만 잘린 목은 다시 안 자라잖아.”

“저쪽에서는 반역자라고 사형에 처해도 할 말이 없는데……. 수염 좀 밀리더라도 살아 있는 게 낫지.”

시민들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다들 절망하고 있을 때, 이슈트반 세체니가 나섰다.

“다들 걱정하지 마시오. 제가 빈으로 가서 황제와 독대하여 현 상황을 해결해 보겠습니다.”

“오오……!”

“이슈트반 경이라면 믿을 만하지!”

이슈트반의 지난 의회 연설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가 황제를 설득하겠다는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제가 책임지고 깔끔하게 여기 계신 분들 전원이 명예롭게 사형당하는 것으로 확답을 받아오겠…….”

“저 새끼 끌어내!”

아직 삶에 미련이 남아 있던 코슈트와 정부 각료들은 이슈트반을 끌어내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의견은 없소?”

“…….”

다들 명예를 잃느니 목숨을 잃겠다며 길길이 날뛰었지만 뜨거웠던 감정의 시간이 지나고 차가운 이성이 돌아오자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개똥밭에 구른다고 한들 이승이 좋은 법이었다.

이들 모두 이슈트반처럼 굳건한 신념을 가진 이들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없는 모양이군……. 그럼…….”

코슈트는 떨리는 손으로 새로운 황제에 대한 충성서약에 서명했고 아직 죽기에는 아쉬움이 많았던 이들도 뒤이어 서명했다.

하지만 이슈트반 세체니를 비롯한 몇몇 장관들은 서명을 거부하며 크게 반발했다.

“우리가 무엇이 부족하여 이런 굴욕적인 충성서약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황제를 존경하기는커녕 뒷골목 쓰레기통만도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후우……. 그럼 자네는 서명하지 않겠다는 건가?”

“못합니다. 차라리 죽이라고 하시지요.”

강경하게 나오는 반대파의 모습에 코슈트가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황제의 진정한 뜻을 모르는 건가? 이건 그저 명분에 지나지 않네, 자네들 말마따나 우리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이걸 거부한다고 쳐보지. 그럼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어떻게 되긴요. 황제는 저희를 설득하려 들거나 다시금 군대를 보내 저희를 처형하겠지요.”

“그렇지, 그렇게 소극적인 저항을 이어가다가 죽으면……. 사람들은 자네들을 뭐라고 기억할 것 같은가? 그렇게 되면 자네들은 머리카락과 수염을 지키려다가 죽은 멍청한 인물로 기억될 걸세.”

“!!!”

“이게 황제의 노림수라는 것이야. 가만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제안을 받은 시점에서부터 명예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이네.”

코슈트의 말을 들은 반대파는 이내 아무 말도 없이 충성서약에 서명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처형을 집행하는 장교의 인도에 따라 부다의 러요시 광장으로 끌려 나왔다.

“보시오! 이들은 제국을 혼란에 빠트리고 거짓된 선동으로 사람들을 고통에 신음케 한 반역자들이오! 황제 폐하께서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죽이지는 않으셨으나 대신 그들의 터, 털……. 푸흡.”

목 대신 털을 자르라니, 형벌을 집행하는 이발사가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어버리자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히히히!”

“푸흡……. 곧 대머리가 되겠구먼.”

“부, 불쌍해서 어떻……. 푸핫!”

부다의 시민들은 황제가 만들어준 정치적인 쇼를 감상하며 마음껏 웃었다.

그리고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올수록 코슈트와 정부 관료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크흠……. 흠흠……. 조용! 다들 정숙하시오! 지금부터 면도를 시작……. 아니, 형을 집행하겠소!”

형을 집행하겠다는 말을 들은 시민들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집행인이었던 장교가 이를 말리고자 했으나 이미 본인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통에 시민들을 어찌 말릴 수 있을까?

결국, 포기하고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상황에서 형이 집행되었다.

인근 선술집에서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관료들의 턱과 머리가 매끈해질 때마다 시원하게 웃어 재끼면서 맥주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자비로우신 황제 폐하를 위해 건배!”

“건배!”

“눈요깃거리를 주신 황제 폐하께 건배!”

“건배!”

물론 다들 차가웠던 맥주가 미지근해질 때까지 웃기 바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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