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40화
정시퇴근!
대규모 공공사업과 대규모 해외차관으로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자 그동안 한쪽에 치워두고 있던 문제점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먼저 대관식.
오스트리아 내에서는 대관식을 진행했지만 내전으로 인해 헝가리 쪽은 아직이었다.
그렇기에 선대 황제이시며 내 숙부 되시는 페르디난트 공께서 헝가리 왕위를 가지고 계셨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니까 헝가리의 국법에서는 국왕이 사망하지 않는 이상 왕위를 내려오는 게 불가하다고?”
“국법이 그렇습니다.”
“아니, 오스트리아의 법대로 처리하면 안 되나?”
“그것이……. 같은 왕을 모시고 있긴 해도 서로 다른 국가인지라 법도에 대해서는 간섭할 수가 없습니다.”
“허…….”
그러니까 숙부님이 죽기 전까지는 내가 헝가리 왕관을 쓸 수 없는 상황이란 뜻이었다.
“다른 방법은 없는가?”
“그……. 페르디난트 전하를 폐위시키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그건…….”
조카가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태어날 때부터 몸도 안 좋은 숙부를 폐위시켰다?
내부의 사정이 어떻건 간에 국제사회에서 제국의 이미지는 바닥에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나나 공작이나 서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머리만 부여잡고 있었다.
‘숙부님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건…….’
[숙부님은 여든두 살까지 살아계셨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4년 정도 걸리겠군.]
‘아니, 평생 몸이 안 좋아서 골골거리시던 분이 왜 그렇게 오래 사시는 겁니까?!’
[그거야 나도 모르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머리가 아팠다.
“으음……. 정말 아무런 방법이 없는가?”
“예, 폐하……. 헝가리 의회도 이런 사실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듯합니다.”
“나 원 참…….”
아무리 실질적으로 헝가리를 다스리는 것이 나라고는 해도 이런 괴상한 방식이 지속하다가는 다음에 정통성 문제로 시비가 걸릴 수도 있었다.
거기에 아직 헝가리 내부에 남아 있는 불만 세력들도 다시금 스멀스멀 고개를 들지도 모를 일이었고 말이다.
“무슨 방법이 있을 텐데…….”
“일단 법무부 장관인 바흐 남작에게 조언을 구해보심이 어떻겠습니까?”
“그거 괜찮은 생각이로군. 당장 불러오게!”
잠시 뒤 내 부름을 받은 바흐 남작은 잠시 조심스럽게 자기 생각을 말했다.
“폐하……. 그렇다면 차라리 의회를 해산하시고 법을 새로이 뜯어고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법을 뜯어고친다고?”
“네.”
“헝가리인들이 다시 그들의 자치권을 헤친다며 반발하는 것은 어찌하고?”
“이미 그들의 구심점이 될 만한 이들은 처벌을 받고 칩거 중이기도 하니 생각처럼 조직적인 반발은 없을 것입니다.”
“으음…….”
바흐 남작의 말은 솔깃했다.
막말로 현재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동군연합을 구성하여 한집에 살고는 있지만 내 명령을 듣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 따로국밥이었다.
그런데 아예 법을 뜯어고쳐서 이런 상황을 조금 해결할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것이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그래도 자기네들의 자치권을 회수하려는 것이니 반발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인데…….”
그렇게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공작이 말했다.
“폐하,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혁명세력이 주장했던 3월 헌법의 내용을 일부 수용하여 법을 ‘개정’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법을 개정한다고?”
“예, 표면적으로는 폐하께서 혁명세력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방향으로 제국 내부를 개혁하겠다고 하되……. 실질적으로는 우리의 입맛대로 헌법을 처음부터 새로 뜯어고치는 겁니다.”
“현재 상태는 유지하면서?”
“예, 폐하.”
공작의 말은 이러했다.
얼핏 보면 우리도 영국처럼 입헌군주제의 형태로 정부체제를 개혁하겠다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냥 현재의 전제군주정을 헌법상으로 명시하겠다는 것과 같았다.
“그거참 묘안이로군!”
공작의 말은 실로 감탄스러웠다.
모든 것을 이용하겠다는 정치인의 마인드가 절로 느껴져 나도 모르게 그에게 살짝 혐오감을 느낄 정도였으니 말이다.
“버, 법을 뜯어고치다니요?!”
물론 이 의견의 제안자인 바흐 남작은 진짜로 이걸 받아들일 줄 몰랐다는 듯이 질색하며 공작에게 한마디 했다.
“왜 그러는가, 바흐.”
“각하, 아무리 그래도 헝가리 쪽 법을 우리가 뜯어고친다면 대규모 반발이나 항명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고……. 또 저들의 자율성을 헤칠 수도…….”
이를 본 영감님은 한마디 하셨다.
[허허, 누구보다 헝가리인 탄압에 앞장섰던 바흐 남작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니……. 조금 신선하군.]
‘일하기 싫어서 몸부림치는 거죠.’
물론 그의 고충은 잘 알고 있었다.
법무부 장관이라는 직책상 헝가리의 법체계를 개편하고 나아가 새로운 헌법까지 언급되는 상황이니 일이 얼마나 많을지는 도무지 상상이 안 갔다.
그렇다고 해도 참으로 괘씸했다.
나는 매일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일감을 처리하느라 제대로 먹고 잘 시간도 없는데, 자기는 좀 편히 있겠다고 저런 말을 하다니……!
그럼 일감이 넘치는 곳으로 보내줘야지.
“그래? 그럼 바흐, 자네를 헝가리 총독으로 임명할 것이니 내 대관식문제는 자네에게 일임해도 아무 문제가 없겠지?”
“…….”
“그것참 묘안이시군요. 폐하.”
“고맙네.”
나와 공작은 웃자 바흐 남작도 내 눈치를 살피며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넌 가서 고생 좀 해라.
“그럼 차기 법무부 장관을 내정하게.”
“폐하, 이미 생각해 둔 자가 있습니다.”
“이미 있다고?”
“예, 폐하께서도 잘 아시는 사람입니다.”
“나도 알고 있다…….”
공작의 말에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누구지?’
[아무래도 안톤을 불러오려는 모양이군.]
‘안톤? 그건 또 누굽니까.’
[프랑크푸르트 의회 놈들이 제멋대로 주장한 독일제국인지 뭔지 하는 정부의 총리였던 인물이지.]
‘독일제국이요? 지금 연방 아닙니까?’
[내가 말했잖나 그놈들이 제멋대로 주장했다고.]
‘아, 그럼 못 데려오는 거 아닙니까?’
[그건 상관없네, 이미 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다가 정치싸움에서 밀려 사임했을 테니 말이야.]
‘쯧쯧쯧…….’
영감님의 말을 듣고 보니 왜 독일지역에서 일어난 혁명이 망했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럼 의회가 망하면……. 독일제국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다시 독일연방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아니, 프로이센은 북독일지역의 왕과 제후들을 모아서 에어푸르트 연방이라는 것을 만들려 할 걸세.]
‘그래요? 그게 언제쯤인데요.’
[어디 보자……. 올해가 1849년이니……. 지금쯤이면 작센과 하노버에 접촉하면서 기초적인 틀은 만들어두고 있겠군.]
‘?!’
갑자기 자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이 중요한 걸 왜 이제 알려준다는 말인가?
‘그걸 왜 이제 말씀하십니까?’
[별일 아니기에 그런 것이네, 어차피 프로이센 놈들의 그런 시도는 러시아의 개입으로 잘 끝났…….]
‘지금 러시아는 골골거리는 프로이센에 눈독 들이고 있는데, 이걸 개입하겠습니까? 오히려 우리한테 군대를 대라고 하겠죠!’
[…….]
영감님도 이건 생각 못 했는지 잠시 말이 없으셨다.
[으음……. 미안하군.]
‘알면 됐습니다.’
내전도 끝났으니 이제 사르데냐가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릴 때까지 느긋하게 내부를 좀 정리할 생각이었는데,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당장 내년쯤이면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의 패권에 도전하며 치고 나올 예정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작은 웃으면서 내게 물었다.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안톤 리터 폰 슈메를링.”
“오……. 역시 폐하께서도 염두에 두고 있던 사람인 모양이로군요.”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닐세.”
“예?”
공작은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물었다.
“지금 대관식 말고 중요한 일이 뭐가 있습니까? 폐하의 정통성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프로이센에서 들어온 첩보에 따르면 저놈들이 작센과 하노버와 접촉했다는 모양이야.”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어디서 얻은 정보인지 알려주시겠습니까?”
“그게 중요한가?”
내 대답에 공작은 잠시 말없이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눈을 내리깔며 답했다.
“저는 그저 다른 이들이 잘못된 정보로 폐하의 눈과 귀를 어지럽게 만든 것이 아닌지 걱정되어 그런 것일 뿐입니다.”
“정보의 신뢰성은 의심하지 말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만남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야.”
“그저 단순한 만남일 수도 있잖습니까.”
“후우……. 이보게 펠릭스, 저들이 단순히 친목회나 하자고 만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자네도 잘 알고 있잖나.”
“흠…….”
공작은 잠시 입을 다물고는 고민에 잠겼고 옆에 있던 바흐 남작은 당혹스러워하며 내게 물었다.
“세 국가가 모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런 것입니까?”
“그들은 오스트리아를 배제하고 프로이센의 주도로 독일 지방의 연합을 만들려 하고 있다네.”
“그렇다면 큰일 아닙니까?!”
“큰일이지.”
무척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프로이센이 본격적으로 행동하기 전에 알 수 있었다는 것 정도?
“미리 알고 있으면 대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
“하지만……. 프로이센과 하노버, 작센이 힘을 합쳤다면 사실상 북독일지역은 저쪽에게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는데…….”
바흐의 말대로였다.
저 셋이 힘을 합쳤다는 것은 북독일 지방은 프로이센이 꽉 쥐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남독일은?
우리 앞마당이었다.
“좋은 지적이네, 하지만 남독일지역에는 바이에른과 바덴, 뷔르템베르크, 헤센을 우리 편으로 돌릴 수 있지 않겠는가?”
이에 공작이 반박했다.
“그렇지만 제국은 내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다시 한번 전쟁이 벌어진다면……. 얼마나 버틸지 장담 못 합니다.”
“우리가 직접 싸운다면 그렇겠지.”
제국이 프로이센보다 군사적인 면으로는 뒤처질지 몰랐지만, 외교만큼은 저들을 압도하다 못해 압살하는 수준이었다.
당장 혁명 이전에 유럽을 제패하겠다던 나폴레옹을 유럽의 여러 친구와 함께 막아선 것도 우리였고 그 이후에 빈체제를 만든 것 역시 우리였다.
반면에 그때 프로이센은 무엇을 했는가?
프랑스 혁명전쟁 당시에 유럽국가 중에서 제일 먼저 프랑스와 협상하여 전쟁에서 발을 뺐다.
그러다가 결국 나폴레옹의 발아래 굴복하여 반식민지 상태로 지내면서 강제로 러시아 원정까지 따라가지 않았던가?
저렇게 외교를 포기한 머저리들이 자기 힘만 믿고 설칠 때는 다 같이 합심해서 두들겨 패는 것이 유럽의 관례라고 배웠다.
[그런 관례가 있었던가……?]
그런고로 나는 지난번에 영감님께 배운 ‘외교적 관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저들을 징벌할 생각이었다.
“당장 베를린으로 사람을 보내 부올에 러시아와 접촉하도록 명하시오.”
“러시아……. 그렇군요. 그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흐 자네는 당장 한 주일 안에 안톤에게 인수인계를 끝마치고 헝가리 총독으로 부임할 수 있게 준비를 마치게 해주게.”
“이, 한 주일 안에 말입니까?!”
바흐는 뭔가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나는 그의 징징거림을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이달 말까지 대관식 준비가 끝났으면 하는데…….”
“폐하, 다시 생각해 보니 법체계를 다시 뜯어고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건 조금 전에 자네가 불가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닌가?”
“제가 잠시 생각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마자르 놈들이 들고일어난다고 해도 막강한 제국군이 버티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바흐 남작은 어떻게든 빈에 남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했으나 공작과 나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든든하군. 역시 헝가리를 맡길 사람은 자네뿐이야!”
“…….”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
“어디 가십니까?”
“아, 이번에 라데츠키 장군을 위한 행진곡을 다시 공연하는데, 극단주가 꼭 좀 와달라고 하더군.”
“그건 지난번에도 가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굳이 왜…….”
빠르게 외출복을 걸치고는 집무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말했다.
“그건 핑계도 나가서 술 좀 먹으려고 그런다네!”
“폐하?!”
시계는 딱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랜만에 정시퇴근에 기쁜 나머지 집무실에 바흐 남작과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을 남겨둔 채 그대로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