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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41화 (41/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41화

거리시찰

“카를 페르디난트 그라프 폰 부올 되십니까?”

“그렇소만…….”

“폐하께서 이걸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오오…….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가? 잘 있어라! 말은 쥐뿔도 안 통하는 프로이센 새…….”

러시아 제국과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부올 백작은 이제 본국으로 복귀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프로이센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또 다른 명령이었다.

[러시아 측과 접선하여 최대한의 우호 관계를 다져놓고 은연중에 이쪽의 정보를 흘려 저들이 독일지역의 분쟁에 끼어들지 못하게 할 것.]

“……?”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둘째 치고 명령이 너무 모호했던지라 부올은 몇 번이고 명령서를 들여봤다.

“이보게 독일지역 내의 분쟁은 무슨 뜻……?”

부올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편지를 전해준 장교는 이미 떠난 지 오래였다.

“이게 무슨 상황인고…….”

본능적으로 지금 무언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에게 현 상황을 설명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황제의 명령을 거부한다거나 무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힘만으로 이 난관을 헤쳐나가 오스트리아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쓰읍……. 이반이 보드카를 좋아하던가?”

* * *

“요즘 오스트리아의 외교관이 러시아 쪽 외교관과 자주 만나는 모양입니다.”

“그래?”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베를린에 있는 자신의 궁전에 갇힌 상황이었다.

하지만 유럽 곳곳에서 들고일어났던 혁명의 불길이 진압되며 내부가 혼란스러워지며 국내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얼추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프로이센의 국왕으로서 각 지역에 자신의 사람들을 보내 귀족들이 군대를 결집하게 했고 하노버와 작센으로 사람을 보내 혁명 이후의 일을 대비코자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스트리아의 외교관이 러시아 쪽과 접선하는 것은 그의 시선을 끌었다.

“예, 부올 백작과 자주 어울리는 대사관의 시녀에게 들은 정보이니 확실합니다.”

“무슨 연유로 둘이 자주 만남을 가지는 거지?”

“듣기로는 개인적인 친분 겸 지난번에 러시아에서 들여온 차관을 추가로 더 받으려고 그러는 모양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프로이센의 국왕은 정수리 인근까지 후퇴한 이마 선 뒤에 듬성듬성 돋아난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며 말했다.

“일단은 감시를 풀지 말고 무슨 일이 생기면 내게 바로 보고하도록. 지금 중요한 것은 그쪽이 아니라 하노버와 작센과의 동맹을 맺는 것이니 말이야.”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비서가 집무실을 나서자 빌헬름은 테이블 위에 있던 코냑 한 병을 따서 잔을 채웠다.

‘프랑스는 혁명으로 인해 왕이 쫓겨났고……. 오스트리아는 본국과 헝가리에서 터진 혁명으로 빌빌거리고 있을 때가 기회다.’

오스트리아를 배제하고 독일통일을 완수하려면 그들이 빌빌거리고 있는 지금이 적기였다.

물론 현재 프로이센도 자유주의자들이 난리를 피워대는 통에 어지러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오스트리아처럼 본격적으로 내전을 벌인다거나 하진 않았기에 그나마 괜찮았다.

거기에 승기를 잡았다고 착각한 자유주의자들이 저들끼리 물고 뜯고 싸우는 동안 자신은 이들을 진압할 준비를 모두 끝마친 지 오래였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노버와 작센이 새로이 만들어진 연방에 합류한다면……. 제아무리 오스트리아라도 어쩔 수 없지.’

무려 북독일지역에서 힘 좀 쓴다는 하노버 왕국과 작센 왕국, 그리고 프로이센이 힘을 합치는 것이었다.

이들이 힘을 합치면 분명 남독일지역의 여러 소국과 바이에른 왕국도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것이 분명할 것이니 오스트리아로서는 손도 못 쓰고 독일지역 패권을 넘길 수밖에 없을 터!

‘그때, 독일통일이 시작되는 것이야……. 오스트리아를 배제한 프로이센의 독일이!’

프로이센의 주도로 통일된 독일.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이름이었다.

빌헬름은 프리드리히 대왕도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신의 대에 드디어 이룰 수 있다는 것에 감동하며 눈물에 젖은 술잔을 들이켰다.

오늘따라 술이 잘 들어가는 것이 오늘에야말로 깊이 잠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하며 연거푸 술잔을 채웠다.

그리고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거나하게 취해서는 그대로 안락의자에 몸을 기댄 채로 두 눈을 감았다.

* * *

오랜만의 외출은 기분 좋았다.

호위가 덕지덕지 붙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맛난 것도 사 먹고 빈의 여러 곳을 둘러보니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전부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슬슬 국립극장으로 가야 할 시간이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네요.’

프라터 공원에 있는 카페에서 가볍게 커피를 즐기며 거리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날도 후덥지근하고 건물 사이로 뜨거운 바람이 불어와서 그런지 좀처럼 움직이기가 싫었다.

‘아이스크림 하나만 먹으면 딱 맞는데…….’

[그건 궁전에서 먹을 수 있잖나.]

‘제가 말한 건 그런 고급스러운 게 아니라 좀 냉장고 밑바닥에서 꽁꽁 얼어서 이가 시릴 정도로 딱딱하게 얼어붙은 것을 열심히 녹여 먹는 그런 걸 말한 겁니다.’

[이가 아프겠군.]

‘어휴…….’

하다못해 냉장고라도 있었다면 먹을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냉장고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듯했다.

‘내가 하나 만들어?’

황제의 힘을 쓴다면 냉장고를 만드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전 세계의 신문사에 광고를 내서 발명가들을 끌어모으고 그들에게 냉매의 개념을 알려준다면…….

[자네가 말하는 냉매가 물건을 차갑게 식히는 기술이라면 그건 이미 개발되어 있다네.]

‘이미 있다고요?’

[그렇다네.]

그럼 이야기는 좀 더 쉬워졌다.

냉매기술이 있으니 해당 특허를 지닌 기술자들을 불러모으고 엔지니어들을 끌어모아서 냉장고를 만들라고 하면 그만 아닌가?

[자네는 왜 그리고 냉장고에 집착하는 건가.]

‘크흠……. 저는 어디까지나 시민들의 질적 수준 향상과 전쟁터에서 상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안쓰러워 그런 것입니다.’

[퍽 그러시겠군.]

영감님은 내 애민정신을 무참히 짓밟으셨다.

역시 역사에 이름을 남긴 폭군다우신 탄압이었다.

[지금 누구보고 폭군이라는 건가!]

‘아닙니까?’

[아닐세! 국민은 모두 날 사랑해 줬네!]

‘그런데 왜 제국이 망했습니까?’

[으음……. 그건……. 전쟁에서 패배하여 그런 것이겠지……. 자세한 것은 나도 모른다네.]

‘폭군 맞네.’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그럼 그런 거로 하죠. 뭐~’

역시 영감님을 놀리는 게 제일 재밌다.

평소에는 끝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던 영감님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가 조금 풀리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아주 기분이 좋았다.

괜히 거리에 있는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 정도로 말이다.

“춤을 잘 추더구나.”

“네?!”

“어디서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것이냐?”

“그, 그건 아닌데…….”

주근깨가 인상적인 소녀는 갑작스러운 내 말이 당혹스러운 것인지 주위에 있는 친구들을 둘러보며 도움을 청하는 듯했다.

“아, 본인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 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지?”

수상할 정도로 흉악한 아저씨들을 우르르 끌고 다니는 소년이 거리에서 춤을 추는 소녀에게 말을 거는 것을 누가 수상하지 않겠다고 하겠는가?

소녀 역시 나를 두려워하며 당장에라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것처럼 보였다.

기분이 좋은 김에 좋은 일 좀 하나 해보려다가 졸지에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려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황실의 문장이 그려진 소매 단추 하나를 떼어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런 곳에서 썩히기 아까운 실력이니 원하는 여학교가 있다면 그걸 보여주며 황제의 추천장이라고 말하거라. 그럼 어렵지 않게 합격할 것이다.”

“화, 황제 폐하……?!”

“그럼 나중에는 국립극장에서 보자꾸나.”

“어, 어어……?!!”

소녀는 고장 난 기계처럼 버벅거리며 어찌할 줄 몰라고 하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저 여인에게 관심이 있는 건가?]

‘아예 없지는 않은데, 이번에는 순전히 춤을 잘 춰서 기부 삼아 그런 것뿐이니 오해 마시길.’

[만나는 것까지 뭐라 할 생각은 없네만 결혼은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예 예.’

영감님의 잔소리는 계속되었으나 전부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렸다.

* * *

요한은 며칠간 크게 앓았다.

온몸에 기운이 없고 먹은 것은 그대로 토해내었고 설사가 계속해서 나오는 통에 도통 기운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빠…….”

“알로이스……. 가까이 오지 마라…….”

요한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이 슬슬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동안 멍청하게도 너무 몸을 혹사해서 벌을 받는 것이 분명했다.

‘진즉에 일을 줄였어야 했는데…….’

하지만 손에 돈이 좀 쥐어지니 돈맛을 보고 일을 멈추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끄응…….”

“아빠 죽으면 안 돼!”

“알로이스……. 지, 지금부터 아버지가 하는 말 잘 들어라…….”

요한은 꺼져가는 정신을 붙잡으며 홀로 남을 아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전하려 했다.

하지만 어린 아들은 아버지가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인지 요한의 손을 뿌리치고는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으앙!”

“알로이스……. 알로이스! 아아……. 알로이스…….”

다시금 혼자가 된 요한은 연신 기침을 콜록대며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제 자신은 곧 죽을 것이었다.

그럼 저 불쌍한 아이는 누가 거둬준다는 말인가?

‘신이 있다면 제발 불쌍한 제 아들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생각하며 요한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마지막 페이지를 닫으려는 찰나.

“이건 또 뭐야.”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연주가 시작한 지 정확히 2분 만에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극장을 빠져나오니 영감님은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으셨다.

[자네가 연주 중에 나가버리면 악단이나 극장주는 어떻게 되겠는가! 예의상이라도 자리를 끝까지 지켰어야지!]

‘듣기만 해도 잠이 솔솔 오던데, 극장 안에서 잠자는 것보다는 그냥 나오는 게 서로 좋지 않을까요.’

[이렇게 되면 황제가 시작한 지 몇 분 만에 나가버린 공연이라고 사람들이 안 찾아올 것이 아닌가.]

‘괜찮아요. 끝날 때쯤에 슬쩍 돌아가면 사람들은 황제가 바쁜 일이 있어서 나갔다 왔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래 자네 마음대로 하게.]

결국, 영감님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다무셨다.

그렇게 잔소리도 없어졌겠다.

시간도 남아돌겠다.

느긋하게 거리를 거닐면서 시민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적당히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폐하! 폐하!”

웬 꼬마가 호위병들이 몸으로 만든 장벽을 뚫고서 내 앞까지 달려와서는 바짓단을 붙잡고는 울부짖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아버지가……!”

“폐하, 당장 치우겠…….”

“어린애지 않는가.”

“예, 폐하…….”

나는 조심스레 떼어내라고 말한 것인데 헨리나 한스 경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조심스레 뒤로 물러났다.

아니, 그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무얼 하는가? 당장 아이를 달래줘야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이 꼬마를 보고 있으니 옛날에 민원실을 찾아왔던 꼬마가 떠올랐다.

부모가 다른 복지사의 멱살을 붙잡으며 같이 뒤지자고 소리를 지를 때도 민원실 한구석에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던 아이가 말이다.

그 뒤로 책을 읽으러 자주 놀러와서 친해졌었는데……. 지금도 잘 지낼지는 모르겠다.

부모 성격을 보아 하면 잘 지낼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씩씩한 새 나라의 어린이는 울지 않고 씩씩하게 말해야지 않겠는가.”

“흐잉……. 아버지……. 아빠가…….”

“그래, 네 아비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모양이구나 그럼 내가 무엇을 해줬으면 좋겠는고.”

꼬마는 잠시 울음을 뚝 그치려는 것인지 숨이 거칠어지더니 오른팔로 얼굴을 쓱쓱 닦았다.

그러고는 빨갛게 부어오른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씩씩하게 말했다.

“아빠가 아주 아파요! 그런데 약이 없습니다! 폐하께서 약을 주세요!”

“난 의사가 아닌데?”

“선생님이 폐하는 뭐든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면 약도 주실 수 있잖아요.”

논리는 부실했지만 조금 전까지 울기만 하던 아이가 씩씩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그래 네 말이 맞는다.”

그러고는 헨리를 불렀다.

“저 아이의 집으로 의사를 보내주게, 비용은 내 앞으로 달아놓고.”

“예, 폐하.”

“이제 되었느냐?”

꼬마는 다시금 울먹였다.

“어허, 새 나라의 어린이는 씩씩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렇다면 짐에게 해야 할 말은 정해져 있을 터……. 어디 학교에서 배운 대로 해보아라.”

“가, 감사…….”

“목소리가 작아서 잘 안 들리는군.”

“감사합니다!”

꼬마의 우렁찬 목소리에 주변에 모인 시민들도 웃음을 터뜨리며 손뼉을 쳤다.

나 역시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은화 하나를 손에 쥐여주었다.

“이걸로 아버지께 맛난 걸 사드리거라.”

“어, 그게…….”

“적으냐?”

“그게 아니라……. 아버지께서 다른 이에게 뭘 받으면 꼭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드리라고 하셔서…….”

소년은 그리 말하며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어딘가로 급히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에 돌아와서는 구릿빛의 약병 하나를 건넸다.

“이, 이거 강장제……? 라는 건데 아버지 거예요!”

“그래? 허 참…….”

예전에는 일하면서 고맙다고 에너지 드링크 한 병 받아본 적도 없었는데, 이런 꼬맹이한테 받을 줄이야.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 그대로 들이켰다.

맛은 동네 하수돗물을 퍼온 것인지 끔찍했으나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넘겼다.

내가 다 마시는 것을 본 꼬마는 내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다시금 인파 속으로 사라지자 영감님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시며 물었다.

[아이들은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나?]

‘저는 애들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애들을 앞세워서 지랄하던 부모들이 싫었던 겁니다.’

[……그동안 자네를 대충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로군.]

‘제가 원체 잘나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님 말고요.’

그렇게 웃으며 다시 궁전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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