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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42화 (42/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42화

콜레라?

다음 날.

이그나츠 제멜바이스라는 의사가 나를 찾아와 의외의 소식을 가져왔다.

“폐, 폐하!”

“음? 자네는 누구인가.”

“빈의 작은 병원에서 의사 일을 하는 이그나츠 제멜바이스라는 사람입니다.”

“반갑군. 제멜바이스, 그래서 무슨 일인가?”

의사는 다급히 자신의 왕진 가방을 내려놓더니 무언가를 꺼내어 내게 보여줬다.

투명한 유리병에 투명한 액체 같은 것이 담겨 있었는데, 내가 만지려 하니 의사는 질색하며 뒤로 치워버리는 것이 아닌가?

“마, 만지시면 안 됩니다!”

“그게 무엇이기에 그러는 건가.”

“어제 폐하의 비서관 되시는 분이 한 아이의 아버지를 치료하라는 명령을 내렸기에 마침 할 일도 없었던지라 제가 한번 갔었는데……. 그 아비는 콜레라에 걸린 상태였습니다!”

“코, 콜레라?!”

[콜레라?!]

뜬금없이 콜레라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하긴 하수도와 상수도의 구분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이 시대라면 이상한 일이 아니긴 했다.

“당장 해당 지역을 격리하고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을 가려내어 병의 원인을 찾……. 아니, 그냥 사람들에게 물은 무조건 끓여 먹으라고 하게!”

일단 병이 퍼지는 것은 막아야 했다.

항생제는커녕 경구수액도 없는 시대에 콜레라에 걸렸다고 하면 그냥 죽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물을 끓여 마시게 하여 최대한 전염을 억제하며 대책을…….

“폐하, 저도 다급히 알아봤으나 그 주변에서 병에 걸린 것은 그 사람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래?”

괜히 오바한 것 같아서 무안해졌다.

“크흠…….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콜레라는 병이 한번 퍼지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전부 감염되는 것이 아니던가?”

사람들이 식수로 쓰는 물에 그 병이 퍼졌다면 주변 사람들은 죄다 병에 걸렸어야 했다.

아니, 빈에 있는 사람들 모두 병에 걸렸어야 정상이겠지.

“그래서 제가 폐하를 찾아온 것입니다. 혹시 빈에 다른 구역에서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없는 것인가 싶어서…….”

“알겠네, 당장 사람을 보내어 조사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폐하.”

“아, 그럼 그 환자는 어찌 되었는가?”

“일단 숨은 붙어 있긴 하나……. 제가 손쓸 방법이 없던지라 아이를 보육원에 보내두고 집을 봉쇄…….”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속에 있던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옆에서 경구수액만 투여해주면 사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고?”

“경구…… 수액? 그게 무엇입니까?”

“……후.”

나도 모르게 또 말실수를 해버렸다.

평소라면 의사에게 잘했다며 돈을 쥐여주고 환자는 그냥 죽게 내버려 두었을 텐데, 괜히 어제 봤던 꼬마가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귀찮은 일에 꼬여 버렸다.

“그……. 콜레라에 걸리면 끝없이 설사하며 체내 수분의 상당량을 상실하지 않는가.”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를 보충해 주려 깨끗한 물을 먹여도 잘 듣지도 않고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경증이면 모를까 중증의 환자들은 물을 마셔도 죽었지요!”

제멜바이스라는 의사는 흥분한 것인지 점점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에게서 빠져나간 수분을 보충하려면 특별한 조처를 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게 무엇입니까?!”

[그게 무엇인가?!]

양쪽에서 고함을 치니 귀가 얼얼했다.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말해줄 것이니 목소리 좀 줄여줬으면 좋겠군.”

“죄, 죄송합니다.”

“아무튼……. 신체 내부의 전해질……. 아니, 이 병에 걸린 이들의 몸은 그냥 순수한 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여기에 소금과 설탕을 적당히 섞어 넣으면 된다네.”

“……?”

제멜바이스는 다시금 내게 물었다.

“고작 그런 거로 병을 치유할 수 있습니까?”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병이 자연적으로 치유될 때까지 몸이 버틸 수 있게 만들어줄 것이네.”

“그래도 고작 그런 방법으로…….”

“한번 해보고 말하게.”

의사는 뭔가 믿음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황제가 시키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그냥 고개를 숙이면서 알겠다고 할 뿐이었다.

“그럼 일단은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밖에 있는 헨리에게 청구하면 처리해 줄 것이네.”

“예, 폐하.”

제멜바이스가 집무실을 나가자마자 나는 바깥에 있는 헨리를 불러들였다.

“헨리, 거기 있는가?”

“부르셨습니까?”

“빈에서 콜레라 환자가 나왔다는 것은 자네도 알고 있겠지?”

“예, 조금 전에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환자가 딱 한 명만 나왔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본인이 생각하기엔 콜레라는 물과 관련되어 발병되는 병이니 이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게.”

헨리는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빠르게 조사해 보겠습니다.”

“부탁하지.”

헨리는 내 훌륭한 사냥개답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냥감을 물어왔다.

* * *

며칠 뒤, 빈 근교의 어느 음침한 지하 감옥에는 한 장사꾼이 잡혀들어왔다.

“이름.”

“아이고……. 저는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이름을 물었다.”

“하, 한스 루터입니다.”

“그래, 루터……. 자네가 빈에 있는 한 노인에게 마법의 물약이라면서 이걸 팔았다지?”

그림자 속에 숨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내가 묶여 있는 이의 앞으로 약병을 던졌다.

만병통치! 자연 강장제라고 적힌 구릿빛의 약병은 데구루루 굴러 장사꾼의 발치까지 왔다.

병을 본 장사꾼은 얼굴을 굳히며 말하길.

“아, 아닙니다. 저는 약품류는 취급을…….”

“채워.”

“무, 뭘 채우라는 건지……. 우읍?! 우으읍!!”

사내의 명령에 흉악하게 생긴 두 덩치가 달려들더니 입에 재갈을 물리고는 금세 물통에 머리를 처박아버렸다.

고통에 찬 몸부림을 지켜보던 사내는 시계를 지켜보더니 이내 덩치들에게 말했다.

“일으켜.”

“푸하-!”

“네가 팔았지?”

“맞소! 맞소이다! 내가 팔았소!”

사내는 그제야 담뱃불을 붙이며 물었다.

“본명 제임스 믹, 영국에서 사기죄로 기소당했지만, 독일로 도망쳐서 어찌어찌 빈까지 흘러들어온 것이 맞나?”

“마, 맞습니다.”

“됐어.”

사내는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장사꾼의 머리는 다시금 물통에 처박혔다.

하지만 이번엔 아무리 몸부림쳐도 일으켜 세워주지 않았다.

* * *

“알아보니 영국에서 흘러들어온 장사치가 템스강에서 떠온 물에 소금을 좀 섞어서 자연 강장제라고 속여 팔았다는 모양입니다.”

“템스강물……?”

고작 강물 좀 마셨다고 콜레라가 발병한 것이라면 본토인 영국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지 감도 안 잡혔다.

“이게 무슨…….”

“폐하의 말씀대로 물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미 영국에서는 같은 증세로 수천 명이나 죽었고 프랑스와 러시아에서도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이 넘쳐난다고 합니다.”

“우린 그나마 다행이로군.”

아이러니하게도 전쟁 중인지라 외국과의 교역이 끊겼던 것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우선은 항구로 들어오는 모든 배를 검역하고 의심환자가 있다면 전원 격리하도록. 그리고 제국의 인민들에게는 손발을 깨끗이 씻고 물은 반드시 끓여 마시라는 지침을 내리도록.”

“알겠습니다.”

솔직히 이런 명령을 내린다고 몇 명이나 듣겠나 싶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훌륭한 조처로군.]

‘쓰읍……. 돈 들어갈 곳은 많은데, 이젠 공중위생까지 신경 써야 할 때가 왔군요.’

[그건 천천히 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하네만.]

‘전염병이 퍼지면 경제도 퍼집니다. 그러기 전에 미리미리 손을 써야지요.’

그렇게 생각하며 남은 예산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려 서류를 집었는데, 갑자기 배가 찢기는 듯한 고통과 함께 신호가 왔다.

“으윽…….”

“폐하?!”

내가 갑자기 배를 부여잡고 쓰러지니 헨리가 뛰어오려 했다.

“그만! 오지 말게.”

“폐하!”

“젠장……. 아무래도 나도 걸린 모양이야.”

어제 꼬마를 달래준다고 하다가 나도 전염된 모양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헨리! 당장 어제 그 꼬마가 갔다는 보육원을 조사해서 그곳을 격리하게!”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난번의 그 의사를……. 으윽!”

“폐하?! 폐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복통에 정신을 잃으면서도 명령을 내리는 것은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쓰러지면……. 방으로 옮기고……. 집무실과 방을 폐쇄하게……. 그리고 날 보좌할 사람들은 따로 선별하여…….”

“폐하, 말을 아끼시옵소서! 금방 의사를…….”

“의사 역시 조금 전에 말한……. 그 제멜바이스인지 뭔지 하는 사람을 불러서……. 접촉 인원은 최소로…….”

하지만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정신을 잃었다.

* * *

그리고 정신을 차린 곳은 내 자취방이었다.

“돌아온 건가?”

“아닐세.”

무척이나 아늑한 내 자취방에 제일 안 어울리는 영감님이 뿅 하고 나타났다.

“쯧쯧쯧……. 방 꼴이 말이 아니로군. 좀 치우고 사는 것이 어떻겠는가?”

“……영감님은 평생 제 손으로 뭘 치워본 적도 없으신 분이 말은 잘하시는군요.”

“하하하, 그건 그렇지.”

영감님은 어디 앉을 곳을 찾다가 내가 큰맘 먹고 산 안마의자에 앉으시며 말씀하셨다.

“자네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자네는 쓰러졌네.”

“콜레라로요?”

“그렇지.”

“그 뭐냐……. 영감님도 이때 콜레라에 걸리셨어요?”

영감님은 코웃음을 치셨다.

“그럴 리가 있나. 자네와는 다르게 본인은 몸 관리가 철저하다네.”

“흠……. 그럼 제가 꼬마를 도와준 게 잘못이군요.”

괜히 쓸데없는 일을 벌여서 시간을 버리는 건가 싶었는데, 영감님이 호통을 치셨다.

“아니! 자네가 한 일은 무척이나 훌륭했다네.”

“그것 때문에 병에 걸렸는데요?”

“자네가 몹쓸 병에 걸린 것은 단지 재수가 없어서 그런 것일 뿐이네.”

“그렇군요.”

별다른 대답이 없으니 영감님이 내게 물었다.

“그게 끝인가?”

“네.”

“허, 자네는 참모가 족속이로군.”

“그런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기지개를 쭉 켰다.

죽을 일은 없다니 그동안 쉬지 못했던 것까지 푹 쉬려고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자려고 누워 있으니 좀 심심했다.

“영감님.”

“왜 부르는가.”

“자장가 좀 불러주실래요?”

내 말에 영감님은 얼굴을 굳히셨다.

“내 아들딸에게도 해준 적이 없는데, 내가 왜 자네에게 그렇게까지 해줘야 하는가?”

“그럼 오늘만이라도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해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참으로 가지가지 하는군.”

“싫으시면 말고요.”

문득 영감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호기심이 생겼다.

“그런데 영감님, 영감님은 아들 때문에 악마인지 뭔지 하는 녀석이랑 계약하셨다면서요? 그렇게나 아들이 보고 싶으신 거예요?”

“……루돌프를 그다지 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네, 내가 그 녀석을 봐서 무엇하겠나.”

“그럼 왜 그러신 거예요?”

“그건…….”

영감님은 잠시 창밖에서 반짝이는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시더니, 이내 말씀하시길.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군.”

“에이……. 재미없네.”

“본인이 자네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인가?”

“뭐 비슷하죠.”

“허허허……. 재밌군.”

영감님은 평소와는 다르게 내 장난기 어린 농담에도 화를 내신다거나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그저 못마땅하다는 듯이 혀를 두어 번 찼을 뿐.

아늑한 자취방에 누워 있으니 옛날 생각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보육원을 떠나 처음으로 방을 구하러 다녔던 일이나 어찌어찌 첫 직장을 구했던 일, 그리고 민원인들에게 온갖 쌍욕을 먹고 돌아와 혼자 소주병을 까던 일까지…….

“어째 좋은 일은 하나도 없냐…….”

괜히 소주 생각이 간절해졌다.

딱 한 잔만 하고 잘까 생각하던 차에 영감님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매일 아침 나를 반겨주네-

작고 하얗고, 밝고 깨끗한 네 모습은-]

중후한 독일민요 가락은 기억에도 없고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아버지가 불러주는 자장가처럼 정겹기만 했다.

순간 영감님이 내 아버지였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니었다.

‘영감님은 잔소리가 너무 심해.’

아마 영감님이 내 아버지였다면 얼마 못 버티고 바로 내 머리에 총을 쏴버리지 않았을까?

그렇게 영감님의 노래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실로 오랜만에 아무 걱정 없이 잠들 수 있었다.

* * *

요제프는 깊이 잠든 병권을 내려다봤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루돌프가 자신에게 눈을 치켜뜨며 바락바락 대들던 마지막 날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다.

‘너 같은 놈은 꼴도 보기 싫다! 제발 가정에 좀 충실하거라 어리석은 녀석아!’

‘……폐하께서 저를 그리도 보기 싫어하시니 못난 아들은 이만 사라져드리겠습니다.’

‘그래, 기왕이면 제국 밖으로 사라져줬으면 좋겠구나! 아니, 내 인생에서 사라져다오!’

그날따라 유독 감정이 격해져서 마음에도 없는 말로 아들에게 큰 상처를 주고 말았다.

나중에 후회하면서 그래도 아들 녀석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그 망할 정부인지 뭔지 하는 계집에게 별궁을 하나 내어줄 생각이었는데…….

‘폐, 폐하! 큰일입니다.’

‘무슨 일인가?’

‘루, 루돌프 저하께서…….’

‘!!!’

사냥용 별장인 마이어링으로 떠난 루돌프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스스로 주님께서 주신 목숨을 끊어냄으로써 이젠 천국도 갈 수 없는 불쌍한 아들의 소식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보다 자신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던 것은 아들의 사망 이후 자신을 찾아온 엘리자베트의 말들이었다.

‘당신은 정말 여러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군요.’

‘황후,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당신에게는 가족보다도 이 제국이 우선인가요? 그럼 왜 당신은 제 언니가 아니라 저를 선택했나요! 제게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것은 전부 거짓이었나요? 아들이 죽었다는데! 왜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처럼 평소와 같을 수 있냔 말이에요!’

그녀의 말은 비수처럼 심장에 꽂히며 그를 괴롭게 만들었지만, 요제프는 반박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헨리를 불렀을 따름이었다.

‘……헨리, 황후께서 슬픔을 견디지 못하시는 모양이니 쉴 수 있게 모시거라.’

‘요제프! 이 악마 같은 자야! 당신이 내 아들을 죽였어! 당신이 루돌프를 죽게 했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당신의 청혼 같은 건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는데……. 그럼 내 인생도…….’

‘그만! 이제 그만하시오! 헨리, 지금 무얼 하는가? 당장 황후를 모시게!’

‘아, 알겠습니다. 폐하.’

요제프는 늘 그렇듯 말없이 병권을 내려다봤다.

그는 무척이나 슬펐지만 우는 법을 잊어버려 울 수조차 없었다.

사랑스러운 동생이 비명에 죽었을 때도 그러했고 충격을 받은 어머니가 쓰러져서 돌아가셨을 때도 그러했으며 그에게 기쁨을 알려준 아들, 그리고 일평생 사랑했던 엘리자베트가 죽었을 때도 그러했다.

사람들은 불행을 이겨낸 황제를 초인이라며 칭송했지만, 자신은 그저 우는 법조차 잊어버린 고장 난 기계였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계였지만 매일같이 서류에 서명 정도는 할 줄 아는 그런 기계 말이다.

요제프는 울적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오늘도 안마의자에 몸을 기댄 채로 병권의 자취방을 굴러다니는 소주병을 들었다.

그러고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을 때까지 연거푸 술을 마셨다.

하지만 몸이 없는 요제프는 술에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가족들의 불행했던 과거가 떠올랐을 뿐이었다.

요제프는 어둠 속에서 소리죽여 울었다.

* * *

그리고 다시 눈을 뜨니.

“요제프? 요제프!”

굉장히 수척해진 어머니께서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계셨다.

“어머니?”

“드디어……. 드디어 정신을 들었구나.”

어머니의 두 눈에서는 맑은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어머니께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나를 껴안으시며 말씀하셨다.

“깨어났으니 되었다. 그래, 깨어났으니 되었어.”

내 품에서 눈물짓는 어머니의 모습에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어색하게 앉아 있으니 영감님이 내 등을 가볍게 밀며 말씀하셨다.

[이럴 때는 말 없이 안아드리면 된다네.]

나는 그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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