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43화
거래?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에 제일 먼저 달려온 것은 쓰러져 있는 동안 내 진료를 전담했던 의사 제멜바이스였다.
“깨, 깨어나셨다니 다행입니다!”
“자네 고생이 많아 보이는군.”
“아닙니다……. 폐하께서 깨어나셨으니 흑흑…….”
제멜바이스는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인지 눈물까지 보이며 내가 깨어난 것을 기뻐했다.
“저는 그냥 산부인과 의사일 뿐인데……. 갑자기 폐하께서 전속 의사로 지명하시어…….”
“아, 그런가?”
꼬마의 아버지를 진료해 줬다기에 내과인 줄 알았는데 산부인과였던 모양이다.
“그럼 그때는 왜 자네가 진료를 본 것인가?”
“그……. 요즘 사람들이 헝가리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고용해 주질 않아 벌이가 마땅치 않은 탓에……. 돈을 좀 챙겨준다기에 따라나섰습니다.”
“쯧쯧쯧……. 돈을 그렇게 밝히니까 벌 받은 거야.”
“그건 반성하고 있습니다…….”
하긴 요즘 같은 시대에 돈을 벌려면 뭐라도 해야지 않겠는가? 어찌 되었건 나를 살려준 게 저 의사 양반이었으니 말이다.
“으음……. 그래도 내 목숨을 구해준 것은 그대이니 감사를 표해야겠지.”
“예? 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폐하께서 알려주신 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폐하의 목숨을 구한 것은 제가 아니라 폐하이십니다.”
“그런가? 그럼 고맙다는 것도 취소하지.”
그러니 제멜바이스는 순식간에 똥 씹은 표정을 지으며 얼굴이 굳었다.
아주 그냥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에 다 보이는 사람이었다.
“예? 아, 예…….”
“농담일세, 그렇다고 해도 자네에게 도움을 받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잖나.”
그제야 그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그런데 내가 얼마나 쓰러져 있던 건가?”
“대략 사흘 정도 의식을 잃고 계셨습니다.”
“……사흘씩이나?”
사흘 동안 누워만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일이 쌓여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으음……. 그 말을 들으니 배가 살짝 아프군.”
“아직 전부 나으신 것이 아니라 그런 것입니다. 그래도 일주일 정도 요양하신다면 털고 일어나실 겁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다니 다행……. 잠깐, 일주일?!”
다 나은 것이 아니었던가.
일주일이나 침대에 박혀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도 제국의 적들은 시시각각 우리의 것을 빼앗고자 칼을 갈고 있을 게 분명했다.
“당장 씻을 물과 내 의복을 가져오게.”
“요제프, 일주일 정도는 쉬려무나.”
“일주일이나 쉴 수는 없습니다. 안 그래도 쓰러져 있는 동안 일이 얼마나 쌓였는지부터 확인하고…….”
어머니께서는 허둥지둥 일어나려는 내 손을 꼭 붙잡으시더니 나와 시선을 맞추시며 말씀하셨다.
“쉴 때는 쉬어야 한단다.”
“하지만……. 제가 쉬면…….”
“네가 쓰러진다고 제국이 멈추어 서지는 않으니 안심하고 조금만 쉬려무나.”
평소라면 어머니의 간곡한 만류에도 일을 해야 한다면서 뛰쳐나갔겠지만……. 왠지 모르게 수척하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제 침대에서 업무를 보겠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겠지요?”
“쉬려무나.”
“그, 그럼 하루에 열 시간 만이라도…….”
“휴식이 필요하다잖니.”
결국, 어머니의 성화를 이기지 못해 하루에 다섯 시간 정도만 정무를 보는 것으로 극적 합의를 이루고 그동안 날 돌보시느라 수척해지신 어머니를 내보내고 난 후에……. 제멜바이스를 다시 불렀다.
“그래, 내가 쓰러져 있는 동안 환자가 추가로 늘어나거나 하진 않았나?”
“제국 곳곳에서 환자들이 다수 발생하긴 했습니다만……. 폐하께서 알려주신 민간요법……? 아니, 치료법을 이용한 덕분에 사망자는 없었습니다.”
“그거 다행이로군.”
피해가 없다니 다행이긴 했다.
다른 국가들은 콜레라로 인해 수천, 수만 명씩 죽어 나가는 상황이니 이 정도면 기적이라고 해도……. 어?
“……지금 영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에서도 콜레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했던가?”
“예? 아마 그럴 겁니다. 오늘 아침신문만 보아도 파리에서 콜레라로 인해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다른 나라는 콜레라로 몸살을 앓는데, 우리 오스트리아는 황제인 내가 콜레라에 걸려 쓰러졌는데 며칠 만에 털고 일어났다.
이 소식 접한 다른 국가들은 자연스레 내게 뭔가 특별한 방법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할 걸세, 아마 모르긴 몰라도 영국이나 프랑스는 눈이 뒤집혀서 당장 방법을 말하라고 윽박지르겠지.]
그러니 이쪽에서 먼저 새로운 치료법을 비싼 값에 팔아치워야 했다.
다른 쪽이 선수를 치기 전에 말이다.
“제멜바이스라고 했던가.”
“예, 폐하…….”
“오늘부로 그대를 궁정 의사 중 한 명으로 임명하고 싶은데……. 그래도 괜찮겠지?”
“구, 궁정 의사……!”
일단은 이 치료법을 알고 있는 것이 나와 이 친구뿐이었으니 어떻게든 이 녀석을 내 곁에 붙여두어야만 했다.
적어도 다른 국가에 이 치료법이 퍼져나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정작 당사자는 궁정 의사라는 말에 상대는 심장이 멎기라도 한 것인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싫으면 관두게나.”
“아, 아닙니다! 저, 저는 그저……. 의사도 아니고 그냥 조수인 데다가 헝가리 사람인 제가 궁정 의사가 되면 폐하의 명성에 흠집을 내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어 그런 것일 뿐입니다.”
뭐 그런 거로 내 말을 끊는 건가 싶어 말했다.
“내 명성을 왜 자네가 신경 쓰나? 자네는 그냥 내가 시키면 어이쿠 감사합니다. 하면서 받기만 하면 그만이야.”
“예, 폐하…….”
“그리고 자네가 뭘 하던 사람이건 자네가 어떤 민족이건 나한테는 상관없네, 자네는 흰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 중에 어떤 고양이가 쥐를 더 잘 잡을 것 같은가?”
“그거야…….”
“답은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네, 쥐를 잘 잡는 쪽이면 내 무릎에서 이쁨받는 거고, 아니면 벽난로에서 혼자 똬리를 틀고 잠이나 자는 거지.”
“아…….”
괜히 말을 길게 해서 그런지 배가 더 아파졌다.
“끄응……. 대충 알아들었으면 헨리에게 자네가 궁정 의사가 되었다고 말하고 전달사항을 전해 듣게, 그리고 기왕이면 쉰부른 궁에 들어와서 살았으면 좋겠군. 언제든지 부를 수 있게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보게, 잠시 눈 좀 붙여야겠어.”
제멜바이스는 후다닥 밖으로 나가버렸고 혼자가 된 나는 다시금 푹신한 침대에 몸을 뉘었다.
역시 고급스러운 재료로 만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부드러우면서 푹신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옆에 어머니도 계시니 왠지 모르게 안정감도 들었고, 말이다.
전에는 경험해 본 적 없는 신기한 기분이었다.
예전에는 아플 때마다 차가운 원룸 안에서 혼자 끙끙대며 뭣 같은 기분을 곱씹었는데 말이다…….
[쓸데없는 생각은 그쯤하고 자게.]
“예,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너도 잘 자려무나 요제프.”
어머니께서는 내 이마에 입술 자국을 새겨주셨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두 눈이 사르르 감겼다.
* * *
한편 런던에서는 콜레라로 인한 환자 때문에 의료시스템이 마비되기 직전이었다.
환자는 밀려드는데 이를 받쳐줄 병상이나 병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영국 정부 역시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들이 당장 취할 방법은 감염확산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환자와 사망자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던 차에 오스트리아에 파견된 외교관이 한 가지 소식을 전해왔다.
그건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콜레라에 걸린 지 며칠 만에 증상이 호전되고 정무를 볼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다는 소식이었다.
당장 환자가 넘쳐나는 상황에 영국 정부는 이 소식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게 사실입니까?”
“몇 번이고 확인해 본 결과……. 그렇다는군요.”
다우닝가 10번지에 있는 총리관저에 모인 영국의 총리 존 러셀과 그가 꾸린 내각의 각료들은 짧은 회의 끝에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저는 국내외의 여러 가지 요건을 고려해 봤을 때, 지난번 오스트리아에 대여한 차관을 조금 빨리 받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럼 만장일치로 오스트리아 측에 이른 시일 내 부채를 상환하라는 서한을 보내는 것으로 결정하겠습니다.”
러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각료들은 상환방식에 대해 저마다 의견을 내놓았다.
“크흠……. 오스트리아는 내전이 끝나지 않아 유용 가능한 자금이 많지 않을 것이니……. 그들의 사정을 고려하여 자본 이외에도 특별한 기술도 받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좋은 선택 같군요.”
“아주 자비로운 방법이외다.”
“좋습니다. 그럼 이견이 없는 듯하니……. 의회의 동의가 떨어진다면 곧장 실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하게도 러셀과 각료들은 여당 의원들은 물론 야당 의원들에게까지 손을 뻗쳐 그들의 동의를 구해놓은 지 오래였다.
당장 불치병이라고 알려진 콜레라를 치료할 방법이 있다는데 이를 거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영국이 콜레라 치료제확보에 뛰어들자 이 소식은 자연스레 도버해협 너머의 프랑스에도 흘러 들어갔다.
“뭐?! 섬나라 녀석들이 콜레라 치료제를 찾은 것 같다고!”
“예, 각하.”
영국이 콜레라 치료제를 찾은 것 같다는 소식은 영국 내에 암약하는 프랑스 스파이를 통해 나폴레옹 3세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
2월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고 부르주아들의 뒤통수를 맞은 소작농들과 노동자들에게 큰아버지인 나폴레옹의 이름을 팔아서 대통령에 선출된 나폴레옹 3세는 치료제를 들여온다면 한창 콜레라로 신음하는 파리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다고 판단.
그 즉시 몸을 움직였다.
“당장 우리도 영국놈들의 뒤를 따라서 치료제를 구해야 한다. 그놈들이 원한다면 무엇을 내어줘도 좋으니 짐의 백성들을 위해 치료제를 구해오거라!”
당연하게도 자신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을 파리의 모든 신문 1면에 실을 것을 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그렇게 지금.
몸이 조금 낫자마자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이 나를 찾아와 내게 이 소식을 전했다.
“폐하, 몸은 좀 괜찮으신지요?”
“그럭저럭 살 만합니다. 그런데 공작께서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신가?”
“지금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의 외교관이 콜레라 치료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자기들과 거래를 트자고 하더군요.”
“흠……. 나름 숨긴다고 숨겼는데, 역시 정보 하나는 빠른 녀석들이란 말이야.”
공작은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폐하, 저들이 말하는 치료제라는 것이 정말 실존하는 물건입니까?”
“있긴 하지.”
“그럼 되었습니다. 우선 영국 측 외교관부터 차례대로 만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는 공작의 말에 반문했다.
“하나씩 만나자고? 뭐하러 귀찮게 그러는가.”
“……?”
“전부 불러오게, 몸도 안 좋은데 한 명씩 만날 필요는 없잖은가.”
공작은 이번엔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라는 눈빛으로 불안한 시선을 보냈지만, 워낙 사안이 급했던지라 일단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을 대표하는 세 강대국의 외교관이 내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래도 나이대가 다양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전부 나이 지긋하신 영감님들이 오셨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폐하, 외신은…….”
나이 지긋한 영감님들이 공손하게 내게 인사를 올리려는 자리에서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피차 사정이 급하니 인사는 생략하고 각자 들고 온 패나 까봅시다.”
“……?”
“???”
[자네는 도대체가……. 어휴.]
영감님의 한숨 소리에도 나는 웃으며 그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서는 제국을 위해 뭘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