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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44화 (44/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44화

처세술?

전에는 경험해 본 적 없는 외교적 결례에 세 외교관은 물론 공작과 영감님마저 기함하셨다.

“폐하, 이 무슨……?!”

[자네 미쳤나!!!]

물론 나는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내 할 말만 했지만 말이다.

“다들 뭐 숨길 게 있나? 자네들은 콜레라 치료제가 필요하고 나는 제국의 발전을 위한 자금이나 자원이 필요하니……. 서로 교환할 수 있지 않겠나?”

“갑자기 그런 말을 하셔도…….”

“저희는…….”

영국과 프랑스의 외교관은 서로 눈치를 보며 살짝 뒤로 빠졌으나 러시아 측 외교관은 껄껄 웃었다.

“하하하, 역시 오스트리아의 황제 폐하께서는 어렸을 적부터 표트르대제를 존경하셨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 모양이로군요!”

“?”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감님에게 물었다.

‘그러셨어요?’

[헛소리 말게.]

러시아 외교관은 여전히 웃으며 말하길.

“아주 시원시원하시니 좋군요. 우리 러시아에서는 귀국과의 동맹 관계와 더불어 당장 제국에 필요한 노동력을 무상으로 제공함은 물론 필요한 자원은 무제한으로 공급할 의사도 있습니다.”

“무제한? 정말 필요한 자원을 무제한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인가?”

앞엣것들은 하등 쓸모없었지만, 자원은 이야기가 달랐다.

아무리 러시아가 자원이 많다지만 그걸 채굴하여 옮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뭐……. 당장은 힘들지만……. 차르께서는 귀국이 우리 러시아의 방대한 토지에서 자원을 조사하여 채굴할 권리를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오……. 자원채굴권이라…….”

러시아가 초장부터 세게 나왔다.

유럽국가 간의 자원채굴권이라니!

그것도 어디 프로이센이나 발칸의 소국들이 아니라 자원 부국 러시아의 제안이었다.

‘역시 러시아는 높은 산과 같은 나라로군요.’

[그건 또 무슨 말인가.]

‘그런 게 있습니다.’

그야말로 군침이 좍 흐르는 제안이었다.

앞에 있던 동맹 제의나 노동력제공 역시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닌 것이 앞으로 있을 프로이센의 도발에서 러시아가 개입한다면 저들은 원 역사처럼 깨갱 하며 물러날 것이었다.

그리고 산업화에 필수적인 노동력을 들여온다면 비어 있는 토지에 농노나 소작농들을 대신하여 밀어 넣고 남는 잉여인력을 도시로 끌어올려 노동자로 쓸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제국의 산업화는 한층 속도를 더할 것이고 빠르게 산업국가의 대열에 끼어들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러시아 외교관에게 어디에 서명하면 되냐고 묻고 싶었지만, 아직 두 곳이 남아 있었으니 웃으며 영국과 프랑스의 외교관을 돌아봤다.

“그래, 자네들은 무얼 준비했는고?”

“크흠…….”

“우리 프랑스에서는!”

러시아에서 초반부터 빅딜을 하는 것을 본 영국 쪽은 아직도 망설였으나 프랑스 측 외교관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다급히 나섰다.

“미, 미니에탄과 스템 라이플을 비롯한 프랑스의 최신 군사기술을 공유하고 오스트리아와의 군사적인 교류를 통해 이탈리아에서의 귀국의 주도권을 어느 정도 인정해 줄 수도 있습니다!”

“오……!!”

러시아 쪽의 제안도 놀라웠는데, 프랑스에서는 더 놀라운 제안을 해왔다.

오죽했으면 옆에 있던 공작이 마시던 차를 그대로 뿜었을 정도였으니 말은 다한 셈이었다.

이제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미니에탄을 비롯한 프랑스의 최신 군사기술을 공유해 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창 사르데냐와 갈등을 빚고 있는 이탈리아의 문제에서 편을 들어주겠다니!

조금 전에 러시아가 했던 제안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고작 미니에탄으로 생색은…….]

‘예? 그거 좋은 거 아닙니까? 예전에 사관학교 다니던 친구 놈한테 듣기로는 머스킷 총알 중에서는 그게 최고라던데요.’

[누가 그러던가! 머스킷 탄환 중에 제일은 프랑스 놈들이 만든 미니에 가 아니라 오스트리아에서 만든 로렌츠일세!]

‘아, 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우리 편을 들어준다고? 자네는 저 말을 믿는가?]

‘아니 뭐……. 그래도 외교관이 하는 말인데…….’

[프랑스 놈들은 항상 이탈리아를 자신들의 텃밭이라고 생각해 왔네, 그리고 기회가 있으면 이탈리아 녀석들과 손을 잡거나 자기 밑으로 끌어들이려 했어.]

‘으음…….’

영감님의 말을 듣고 나니 프랑스의 제안이 생각처럼 썩 좋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하나하나 따져보니 오히려 러시아 측의 제안보다도 구리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마터면 저놈들의 상술에 넘어갈 뻔했어요.’

[조심하게, 저자들의 혓바닥은 뱀과 같아서 언제나 자네를 벗겨 먹으려는 이들이네.]

‘주, 주의하지요.’

프랑스 측 외교관의 말에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곧장 영국 측 외교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쪽은 어떤 것을 준비해 왔나.”

“크흠……. 우선 영국의 시민들을 대신하여 황제 폐하께 감사 인사부터…….”

“그건 되었고 뭘 준비했냐니까?”

“……지난번에 빌려 가신 차관을 대폭 삭감해드리겠습니다.”

“…….”

“……?”

“끝인가?”

“예, 폐하.”

이건 뭐 들을 가치도 없었다.

차관 그까짓 거 얼마나 한다고 깎아주느니 마느니 생색을 내는 것인지 기가 막혔다.

[원래 있는 것들이 더한 법이야.]

‘그러게나 말입니다.’

영국 측의 제안은 들을 가치도 없었다.

그래도 세계패권을 조물조물하는 이들인지라 좀 거창한 것을 가져오진 않을까 기대했는데, 기대한 내가 멍청이였다.

그래도 영국 측에 대놓고 무안을 줄 수는 없었으니 정중하게 엿을 먹였다.

“정말 관대한 제안이시군요……. 그래서 러시아 측 제안이 뭐라고 하셨지요?”

대놓고 무시하는 내 태도에 영국 측 외교관의 표정이 제법 봐줄 만했으나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듯했다.

“……동맹과 노동력, 그리고 자원채굴권에 이어 러시아의 방대한 대수림 지대의 벌목권까지 넘길 의향이 있습니다.”

“벌목권!”

물론 러시아의 방대한 대수림 지대 전체의 벌목권을 준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넓은 러시아 땅에 자라는 튼튼한 참나무를 가져올 수 있다면 나중에 대양해군을 건설할 때도 도움이 될 것이었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것만 쏙쏙 골라서 건네주겠다는 러시아 측 대표의 말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무래도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가 국제적 왕따에서 벗어나고자 대출혈 서비스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러시아 내의 콜레라가 그만큼 심각하다거나……. 어느 쪽이건 내게는 그리 나쁠 것 없는 제안이었다.

“점점 마음이 러시아 측으로 기우는 것 같은데……. 다른 분들은 더 없습니까?”

현명한 토끼는 굴을 세 개씩 파놓는다고 했다.

유럽의 살벌한 외교 판을 뛰어다니던 외교관들이라면 자신들의 요구조건이 들어먹지 않을 때 쓰는 최후의 수단 같은 것이 있을 터였다.

“크흠……. 제가 깜빡 잊고 폐하께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역시 선수는 프랑스였다.

“아국에서는 귀국의 어려움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바……. 우리도 그 어려움을 함께하고자 대규모 차관을 빌려드릴 수도…….”

저쪽은 이제 되지도 않는 블러핑을 쳐댔다.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였으면 옆에 있던 영국 신사분께서 코웃음을 칠 정도였으니 말이다.

[프랑스가 차관을? 웃기는군.]

오죽했으면 영감님도 콧방귀를 뀔 정도였으니 굳이 더 말하지는 않겠다.

“폐하께서 차관을 깎는 것은 괜찮다고 하시니, 우리나라에서 쓸모가 다한 함선 몇 척을 귀국에 양도하는 것은 어떠신지요?”

“함선이라…….”

군함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물론 이제 막 조선소에서 만들어진 새것보다는 전장에서 닳고 닳은 폐품을 넘겨줄 가능성이 컸지만, 저들이 군함을 건네줌으로써 아드리아해, 나아가 지중해에서 목에 힘을 주고 다닐 수 있지 않겠는가?

“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러시아의 제안이 영국과 프랑스의 제안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그만큼 본국의 사정이 급한 모양이지.

“우선은 러시아 측과 거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잠깐만 시간을 내어주십시오. 폐하!”

“나머지는 저기 있는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이나 러시아 대사에게 문의하시면 됩니다.”

다급하게 되는대로 주절거리는 영국과 프랑스 외교관을 내쫓다시피 밖으로 내보내고 러시아 외교관만을 남겼다.

“그래, 콜레라 치료제가 필요한 모양이지?”

“그렇습니다. 차르께서는 부족한 의료시설로 인해 백성들이 전염병에 고통받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뭐 그렇다면야…….”

차르가 그쪽 백성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나와 아무 상관도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저쪽에서 이 ‘치료제’와 ‘치료법’이 생각보다 간단하다는 것을 알기 전에 최대한 당겨 받아야 했다.

“동맹이나 노동력은 제쳐두더라도……. 벌목권과 자원채굴권에 대해서는 조금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 같네만.”

“아,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우리 쪽 실무진은 협상 준비를 끝내놓았으니 물건이 넘어온다면 곧바로 협상에 임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것 봐라?

러시아 측 외교관은 역시 외교관답게 혓바닥이 무척이나 길었다.

물론 진짜로 혀가 길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관용사적인 표현으로 한 말이었다.

[누가 뭐라 했나?]

‘영감님이 또 오해하고 이상한 말 하실까 봐 선수 친 겁니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시지요.’

[고얀 놈.]

아무튼……. 놈들이 경구수액의 원리를 안다면 생명의 중요성 같은 개나발을 불어대며 특허는 개나 줘버리고 제멋대로 만들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채굴권이나 벌목권도 없던 일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를 일이지.

“아니, 우리는 채굴권과 벌목권에 대한 권한을 확실히 정하기 전까지는 치료제를 넘길 수 없네.”

“폐하……. 지금 제 조국에서 수많은 인민이 치료제가 없어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지금도 빈의 어느 외진 골목에서는 굶주림에 지친 아이가 굶어 죽어간다네, 그뿐인가? 지금 헝가리에서는 사상의 문제로 사람들끼리 서로 칼과 몽둥이를 들고 싸운다더군……. 이 얼마나 슬픈가?”

저쪽이 감성팔이로 나온다면 이쪽 역시 감성을 팔아줘야 수지가 맞았다.

물론 빈의 시민들은 조금 힘들게 살긴 했어도 굶어 죽는 이는 없었고 헝가리도 술 먹고 싸우는 이들을 제외하면 아주 평화로웠다.

그리고 솔직히 러시아인들이 죽건 말건 내 관심사가 아니기도 했고 말이다.

“으음……. 우선은 제게 주어진 권한 내에서는…….”

“아, 그런 실무적이면서 복잡한 이야기는 저기서 뚱한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보는 슈바르첸베르크 공작과 하게나.”

“예? 아, 예…….”

공작에게 모든 일을 떠넘기니 공작은 아주 좋아서 죽으려고 했다.

아니, 죽이려고 한다는 게 더 맞을지도.

공작은 평소보다 더욱 살벌한 표정을 지은 채로 공손하게 인사를 하더니 그대로 나가버렸다.

그 모습에 러시아 외교관이 살짝 움찔하며 따라갈 타이밍을 놓쳤기에 내가 친절히 그에게 말했다.

“뭐하나? 따라가야지.”

* * *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교수의 조수로서 잔업만 하던 헝가리 출신 산부인과 의사 이그나츠 제멜바이스는 졸지에 콜레라의 권위자가 되어 있었다.

그가 콜레라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황제에게 전해 듣고 만든 경구수액인지 뭔지 하는 치료제 조제법과 이 전염병이 물로 전염된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서 어떻게든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고 했고 한 번이라도 진료를 봐달라고 줄을 설 정도였다.

물론 산부인과 의사인 그가 내 과진료를 제대로 볼 수는 없었기에 번번이 돌려보냈지만, 사람들은 끝없이 몰려들었다.

나중 가서는 그를 대놓고 무시하던 산부인과 의사들도 그를 찾아와서는 어떻게든 인연을 이어보려고 발버둥 치기까지 했다.

“아니, 이게 누구인가?!”

“이그나츠!”

“내 절친한 벗 이그나츠!”

“…….”

그가 산욕열을 퇴치하기 위해 손을 씻자고 했을 때, 헝가리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를 멸시하던 이들이 아는 척을 해오니 제멜바이스는 그 어떤 오물에서도 맡아보지 못한 역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에게 받은 만큼 되돌려줬다.

“선생님들 저는 폐하의 진료 때문에 바쁘니 나중에 정식으로 약속을 잡고 찾아와주시지요.”

“아니, 우리 사이에 이러긴가?”

“허허허, 이 사람……. 농담도 참…….”

“경비!”

제멜바이스는 근위병들의 억센 손에 붙들려 도살장에 끌려가는 들개처럼 질질 끌려나가는 동료 의사들을 보며 권력의 참맛을 느꼈다.

그동안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눈길도 주지 않던 이들을 말 한마디로 개처럼 부릴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란 말인가!

“큭큭큭……. 오만한 독일 새끼들……. 꼴좋다.”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진 제멜바이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논문을 써 내려갔다.

물론 주제는 그동안 학계에서 완전히 무시당했던 산욕열과 청결에 관한 주제였다.

예전에 썼던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옮겨적고는 편지로 부칠 때 황실의 인장을 받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래도 무시하나 보자……!”

만약 이랬는데도 자신의 논문을 완전히 무시하며 조롱한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가만있지 않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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