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45화
사재기?
헝가리에서 재단사로 일하는 헝가리인 야노시 리베니는 다 함께 불타올랐던 혁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반겨주는 곳은 아무 곳도 없었다.
본래 일하던 공장도 그가 혁명군에 복무했다는 사실을 들먹이며 그를 다시 채용하길 거부했고 이는 다른 공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왜 저를 안 쓰시겠다는 겁니까?”
“지금 거리에 넘쳐나는 게 사람이야! 너 같은 반란군을 고용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네가 책임지기라도 할 거야?!”
그렇게 예정에도 없던 백수 생활을 이어가던 차에 부다에서 국민의회 지도부가 반란혐의로 처벌을 받았다는 소식은 그에게 큰 충격을 줬다.
“그 훌륭하신 분들이 모두 죽은 건가……?”
신문에서는 반란죄로 처벌당했다는 것과 함께 날카로운 칼을 들고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이들을 향해 걸어가는 이의 삽화가 그려져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죽은 것임이 분명해 보이는 이 기사를 본 리베니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나는 무엇을 위해 혁명에 뛰어들었는가?’
‘그분들은 왜 죽어야 했는가!’
‘나는 옳은 일을 했는데, 왜 사람들은 이를 몰라주고 매번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
그렇게 골방에 틀어박혀 일주일간 고민하던 리베니는 결국 한 가지 답을 도출했다.
‘이 모든 것은 황제의 잘못이다. 황제가 다시금 헝가리인들을 탄압하려 하는 것이야.’
남들이 들었다면 개소리 말고 발 닦고 잠이나 자라고 했겠지만, 전쟁과 취직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이미 한계까지 몰린 리베니에는 그럴듯한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황제를 향한 그의 증오심에 방점을 찍는 사건이 있었으니…….
“오빠! 오빠! 나와봐!”
“무슨 일인데?”
“짜잔~ 이게 뭔지 알아?”
“……단추잖아.”
“그냥 단추가 아니라 황제 폐하께서 내가 마음에 든다고 주신 선물이라고!”
“황제……?”
그가 증오하는 황제가 사랑스러운 여동생인 마르가레타에게 관심을 표한 것이었다.
그게 어떤 종류의 관심인지는 상관없다.
리베니는 그저 황제가 자신의 동생에게 말을 건 것이 여동생에게 흑심을 품어서 그런 것이라고 확신했으니 말이다.
처음엔 자기 민족, 그리고 동지들과 직장에 이어 이제는 자신의 하나뿐인 가족마저 뺏어가려는 황제의 모습에 크게 분노한 리베니는 방구석에 틀어박혀 홀로 복수의 칼을 갈았다.
“압제자는 죽어야 한다……. 황제는 죽어야 해…….”
* * *
러시아와의 거래는 얼추 성공적으로 끝났다.
제국은 러시아로부터 상당 한양의 천연자원과 고품질의 목재를 공급받게 되었고 러시아 곳곳에 숨어 있는 천연자원의 탐사권 또한 얻었으니 당분간은 자원문제로 골치 아플 일은 없었다.
뭐 러시아 쪽은 우리가 알려준 치료법을 전해 듣고는 의심 어린 눈길을 보내오긴 했지만 그건 한 달 정도만 지나면 확신으로 바뀔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러시아 쪽은 경구수액을 우리가 직접 공급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고 반대로 영국과 프랑스는 우리의 특허권을 인정해 주는 조건으로 제조법을 알려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놈들을 벗겨 먹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세계를 주름잡는 강대국들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피 보기 십상이었기에 한 수 물려준 것이다.
‘내전만 아니었어도 홀라당 벗겨 먹는 건데…….’
[내전이 아니었어도 그러진 못했을걸세.]
‘왜요? 영국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봤자 제국도 어느 정도 체급이 있으니까 맞상대할 수 있잖아요.’
[상대 가능한 것과 이길 수 있는 것은 차이가 있네, 우리가 영국에 맞서 싸운다면 당장 누가 우리 편을 들어줄 것 같은가?]
‘그야…….’
딱히 생각하는 이들은 없었다.
기껏해야 러시아 정도?
아마 러시아의 차르는 우리가 영국놈들과 싸운다면 신나서 지원해 줄 것이 분명했다.
그래봤자 무기 좀 보내고, 끝이겠지만.
아무튼.
다 죽어가는 경제를 살려놓고 농업사회에서 단숨에 산업사회로 뛰어들 준비는 얼추 끝났다.
산업화에 꼭 필요한 노동력과 자원까지는 해결했고 이제 필요한 것이 기술력이었다.
다른 것은 어찌어찌 손을 벌리며 구해 올 수 있다지만 기술력만큼은 제국의 능력만으로 헤쳐나가야 했기에 조금 골치가 아팠다.
[오스트리아의 기술력이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서 밀리는 것은 아닐 텐데?]
‘그건 그렇지요. 그런데 우리는 후발주자잖습니까? 이미 영국이나 프랑스는 저 멀리 달려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이제 막 출발선에 섰다고요.’
[그게 왜 문제인가.]
‘저 망할 놈들이 시장을 선점하고는 뒤에 올라오는 녀석들의 사다리를 걷어차잖습니까.’
인도나 중국 시장만 해도 그랬다.
원래 그곳을 선점했던 것은 스페인이나 네덜란드였으나 영국과 프랑스는 힘으로 그들을 굴복시키거나 반쯤 병신으로 만들어놓고 그들의 시장을 홀랑 집어삼켰다.
그렇게 시장을 잠식한 영국은 중국에서 이득을 보겠다고 아편을 밀어 넣다가 전쟁까지 했다.
그렇게 부를 쌓아 올린 대영제국이 지금 아일랜드에 불어닥친 대기근과 유럽대륙의 혁명으로 인한 경제위기, 그리고 콜레라 창궐로 휘청거렸다.
지금이 기회였다.
‘지금 딱 산업화를 성공시켜서 산업사회로 도약하고 몇 년 뒤에 크림전쟁이나 이탈리아 독립전쟁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숨 돌릴 겁니다.’
그때까지는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격동하는 근대의 조류에 휘말려서 순식간에 시민들에 손에 끌려나가 단두대에 목이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말이다.
“폐하?”
“무슨 일인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브루크 경이 긴장된 얼굴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보고가 끝났는데 아무 말씀도 없으시기에…….”
“아, 그랬나? 잠시 피곤하여 정신이 다른 곳에 있었던 모양이로군.”
“그러실 수도 있지요. 그래서 기초 안은 만족스러우신지요? 혹시 궁금하신 점이라도……?”
“음…….”
브루크 경이 가져온 수십 페이지짜리 오스트리아 경제 개선안을 보니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지며 책상 한편으로 치워놓았다.
그런 내 행동에 브루크 경이 화들짝 놀라며 내게 물었다.
“호,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겁니까?”
“나중에 읽어보려고 한쪽에 치워둔 것일세.”
“그렇다니 다행이군요…….”
그렇게 말하고서는 연신 내 눈치를 살폈다.
“할 말 없으면 이만 나가게.”
“예, 폐하!”
브루크 경은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지 나가는 그 순간까지도 내 눈치를 살폈다.
혹시 남작이 가져온 보고서에 문제가 있나 싶어서 한번 훑어봤지만 아무 문제도 없었다.
“왜 저런대?”
[제출 일자를 한참 넘기지 않았나.]
“아, 그래요?”
제출 일자가 있었던가?
영감님이 말해주기 전엔 까맣게 몰랐다.
“별걸로 다 눈치를 보네.”
[자네는 눈치를 좀 봤으면 좋겠군.]
“네.”
영감님의 잔소리를 가볍게 무시하며 다시금 서류 더미 속에 머리를 파묻었다.
* * *
러시아로 팔려나간 경구수액 제조법은 결과적으로 수백만의 인명을 구했다.
원래대로라면 콜레라 대유행으로 백만 명 정도가 사망해야 했지만 경구수액 덕분에 그 피해가 크게 줄어 4~5만 선에서 끝났다.
다른 나라였다면 4~5만 명 사이의 피해에도 난리가 났겠지만 인명 경시 풍조가 만연해 있는 러시아에서는 이를 황제의 업적이라며 칭송했다.
“폐하의 혜안 덕분에 인민들이 살아남았습니다!”
“허허, 뭘 그렇게까지…….”
“폐하께서는 얼어붙은 북쪽의 동토부터 동쪽의 툰드라지대까지 비추시는 러시아의 태양이십니다!”
사람은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했던 것처럼 콜레라 대유행이라는 위기를 빠져나온 러시아제국의 차르 니콜라이는 오스트리아에 넘긴 채굴권과 벌목권이 무척이나 아까웠다.
“그런데 말이야……. 오스트리아인들에게 넘겼던 벌목권이나 채굴권을 다시 회수할 수는 없겠나?”
“……?”
계약서의 잉크가 마르지도 않았음에도 단숨에 태도를 바꾸는 황제의 모습에 궁정 신하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막 협정에 서명했는데, 그걸 엎어버리자는 건……. 오스트리아와 우리나라 간의 관계에 해를 끼칠까 걱정됩니다.”
“그래도 고작 그런 것에 채굴권과 벌목권을 넘긴 것은 너무 과한 투자라는 생각이 드는군.”
콜레라 치료제라고 해서 기대했건만 막상 그 치료제라는 것이 물에 설탕이나 소금을 조금 섞은 것인지라 니콜라이는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황제의 생각을 꿰뚫어 본 러시아제국의 내무부장관 레프 알렉세예비치 페롭스키는 조심스레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폐하, 영국과 프랑스도 오스트리아로부터 그 치료제를 사 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화가 난다는 것일세! 그들에게는 푼돈에 팔았으면서 우리에게는 되지도 않는 제조법까지해서 비싸게 팔았느냔 말이야!”
황제가 살짝 흥분하자 내무장관 페롭스키는 다급히 그에게 말했다.
“폐하, 반대로 생각해 보십시오.”
“반대로?”
“예, 우리는 제조법을 받아서 경구수액에 들어가야 할 설탕과 소금의 양을 정확히 알고 있잖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조만간에 영국이나 프랑스 놈들도 그 비율을 알아낼 텐데!”
“하지만 당장은 아니지요……. 그러니 지금은 우리가 유리한 고지에 있습니다.”
페롭스키의 말에 니콜라이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그에게 물었다.
“자세히 설명해 주겠나?”
“영국과 프랑스는 이 경구수액이란 물건에 설탕과 소금이 필요하다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챌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는 어느 정도가 필요한지는 모른다는 것이지요.”
페롭스키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유럽 내의 설탕과 소금의 수요는 급상승할 것입니다.”
“아!”
“저들이 소금과 설탕을 사들일 때……. 우리 쪽에서 가용 가능한 자금을 전부 투입해서 유럽대륙 내의 소금과 설탕을 사재기하는 겁니다. 최소한 한 달……. 아니, 두 달만 버틴다면 유럽 내 설탕과 소금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겠지요.”
“그럼 그때, 전부 팔아치우면 되겠군.”
“예, 프랑스나 영국이 신대륙에서 부랴부랴 설탕을 실어오기 전에 가격을 한껏 올린 뒤에……. 한꺼번에 팔아치우는 겁니다.”
황제는 그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크게 소리 내 웃었다.
“하하하! 놈들의 방식대로 저놈들에게 한 방 먹이자는 이야기로군!”
황제는 신이 난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집무실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는 둥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우릴 무시하던 서방세계가 아주 깜짝 놀라겠군.”
“그럴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폐하의 혜안이시지요!”
황제의 기분이 좋아지자 다른 궁정 신하들도 그의 비위를 맞춰주며 그대로 결정되려던 그때.
“폐하, 그것은 옳지 못한 행동입니다.”
“뭐?”
나폴레옹이 유럽연합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침공했던 지난 조국 전쟁에서 어머니 조국을 수호했던 전쟁영웅이자 러시아 국유재산부의 국무위원으로서 러시아 농노문제개혁에 앞장서던 파벨 드미트리예비치 키셀료프가 이에 반대했다.
덕분에 한껏 흥에 겨웠던 분위기는 일순간에 찬물을 뿌린 듯이 싹 가라앉았다.
“키셀료프, 어째서 그리 말하는가?”
“폐하, 페롭스키의 조언대로면 단기적으로는 큰 이익을 얻을지 모르겠으나 장기적으로 본다면 러시아에 큰 손해를 불러올 것입니다.”
“우리가 강해지고 저들이 약해지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러시아에 손해라고?”
“예, 우선 현재 우리와 저 바다 너머의 섬나라 영국은 대립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들은 물론 프랑스와도 척을 져버리면 유사시에 우리는 유럽의 두 강대국을 적으로 돌리게 될 겁니다.”
키셀료프의 말에 황제는 코웃음을 쳤다.
“영국 놈들과 프랑스 놈들이 손을 잡는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나폴레옹조차 우리를 넘어서지 못했고 어머니 조국 러시아의 넓은 품 안에서 쓰러져 버린 것을 잊은 건가?”
“압니다. 그건 아주 잘 알고 있지요. 하지만 그때 나폴레옹이 쳐들어올 때는 공격 루트가 한정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잖습니까?”
“그건 또 무슨 말인가.”
키셀료프는 급히 회의실 한쪽을 장식하던 거대한 러시아전도를 뜯어와 테이블에 펼쳐놓았다.
“지금부터 지도를 보며 설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