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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47화 (47/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47화

중재?

콜레라와 그 치료제로 취급받는 경구수액에 대한 것 때문에 벌어진 유럽 사회의 지각변동에 프로이센은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그들은 프랑스와 영국에서 전염병이 유행한다는 것만 알았지 그게 정확히 무슨 병인지 알려 하지도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전염병이 돌아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안됐군.”

이게 그들의 반응이었다.

사람들이 죽건 말건 어차피 자기들은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으나 러시아에서 소금과 설탕을 사재기하는 것에는 조금 민감한 태도를 보였다.

“러시아에서 소금과 설탕을 무제한으로 매입한다고? 당장 러시아 대사를 불러 이를 정식으로 항의하게나!”

지금 프로이센에 있어 중요한 것은 자국 내에서 시들해진 혁명세력을 진압하는 것이 첫째였고 둘째는 작센과 하노버, 프로이센의 동맹을 성사시키는 것이었다.

프로이센의 국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자신의 계획을 천천히 물밑으로 진행하며 결국 혁명세력의 뒤통수를 치고 혁명을 완전히 뒤엎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에 콜레라가 유입된 뒤였다.

“으음……. 사망자는 얼마나 된다던가?”

“아직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으나 조만간 폭증할 것 같습니다.”

“쯧……. 한창 일이 잘 풀리려던 차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말이야…….”

프로이센의 국왕은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전염병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지는 않았으니 다행으로 여길 따름이었다.

“그래, 작센과 하노버는 좀 괜찮다고 하던가?”

“영국과 교류를 이어가던 하노버에서는 조금 골치를 썩이는 모양이지만 작센은 아직 안전한 듯합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말로는 다행이라고는 했지만 이쯤 되니 그도 이상함을 느꼈다.

‘왜 러시아에서는 소금과 설탕을 사들인 거지?’

조금 폐쇄적인 프로이센에서도 병이 퍼졌을 정도니 영국과 프랑스와 활발히 거래를 주고받던 러시아에서는 자신들보다 더할 것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사재기라고?

정치인 특유의 감이 뭔가 있다고 속삭였으나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그의 궁정 신하가 말하길.

“전하, 그러고 보니 오스트리아에서도 콜레라가 창궐했는데, 사망자 하나 없이 무사히 넘어갔다더군요.”

“한 명도 없었다고?”

“예, 그 뒤로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 외교관이 빈을 찾아갔다던데…….”

“아!”

그제야 러시아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대강 알 것 같았다.

“소금과 설탕이 치료제의 원료 같은 건가?”

“예?!”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선대의 프로이센 국왕들이 그러했듯이 한번 생각한 것은 빠르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었다.

“일단 오스트리아에 사람을 보내 치료제에 대한 것을 문의하고 시장에 돌고 있는 소금과 설탕의 반출을 금지하게!”

“아, 알겠습니다!”

* * *

러시아가 요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니 유럽 전역에서 콜레라로 고통받던 국가들 역시 자연스레 소금과 설탕이 콜레라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재빨리 외국인 판매를 금하거나 거래 자체를 막았다.

누가 시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유럽 대부분 국가가 하나 되어 움직이니 생필품인 소금과 설탕의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설탕 한 줌에 10파운드라고?! 10파운드면 빵 네 덩이 값이잖나!”

“이것도 없어서 못 팝니다. 안 사실 거면 가시오.”

“아니, 그러지 말고……. 내 아내가 쓰러져서 설탕을 좀 먹고 싶다는데…….”

“그렇게 애원하셔도 안 됩니다.”

터무니없이 비싼 소금과 설탕값은 서민경제에 직격탄을 안겼고 귀족이나 자본가처럼 부유층에게도 큰 타격을 안겼다.

거기에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바이에른 왕국에 보낸 편지가 영국과 프랑스에도 전해지며 소금과 설탕의 중요성을 인지한 두 국가에서도 부랴부랴 소금과 설탕의 거래제한을 걸었으나 사람들의 광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끄응……. 우리가 너무 안일했습니다.”

“이제 어쩌면 좋겠소. 총리?”

“일단 자메이카에서 설탕 생산분을 전부 가지고 오라 했으니 그게 도착한다면 한숨 돌릴 수 있을 겁니다. 전하.”

“각하,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으그극……. 그 불곰 녀석들이 또 사고를 치는군……. 일단 아이티에 이번 연도 치 독립배상금은 설탕으로 대체 받는 것으로 하고 실어오게.”

“알겠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은 설탕의 주요산지인 카리브해의 여러 식민지에서 이를 수급함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카리브해에서 유럽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한 달은 걸릴 정도로 먼 거리였다.

거기에 설탕을 가득 실어와야 했으니 무역선을 보내고 설탕을 실어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거기에 기상이 좋지 않다면 올해 안에 배가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동안에는 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설탕은 그렇다 치더라도 소금은 자국 내에 있는 소금광산이나 천일염으로는 도저히 수요를 따라갈 수 없었기에 다들 자연스레 소금이 많이 나는 베네치아에 눈독을 들였다.

“소금을 좀 팔아달라는 요청이 쇄도한다고?”

“예, 각국이 보호무역을 들먹이며 설탕과 소금 거래를 틀어막으니 아직 거래를 막지 않은 우리에게 애원하는 것이겠지요.”

“흠……. 여유분은 충분한가?”

“제국 내 소금광산에서 나오는 것으로 국내수요는 충족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베네치아에서 나오는 천일염도 있으니 충분합니다.”

역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받는다는 옛말이 틀린 것이 하나 없었다.

러시아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유럽을 돌고 돌아 우리에게 이득을 줬으니 페테르부르크가 있는 북쪽으로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폐하, 지금은 그냥 돈만 벌 수 있다고 기뻐할 때가 아닙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지금 우리가 소금을 풀면……. 자연스레 러시아 쪽에서 반발하지 않겠습니까?”

공작의 지적은 날카로웠지만 한 가지를 빼먹었다.

“허허허……. 이보게 공작, 내가 어디 서방 놈들에게만 판다고 말했던가? 당연히 러시아 놈들에게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똑같이 팔아야지.”

“아니, 그렇게 되면 영국과 프랑스가…….”

“우리가 안 판다고 했던가? 그냥 러시아와 서방국에 동등하게 팔겠다고 했잖나.”

“아하……. 그렇군요.”

공작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그럼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유럽 전역의 상단과 기업들에 구매 의사를 타전해 보심은 어떻겠습니까?”

“그거 좋…… 아니, 잠깐.”

그럼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지난번에 어머니께 말했던 연회까지 함께하여 각국 간의 긴장을 조금 완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은 어떤가?

“그러지 말고……. 러시아와 서방세계를 화해시킬 수 있는 연회를 준비해 보는 것은 어떻겠나?”

“연회라……. 그것도 괜찮겠군요.”

* * *

오스트리아에서 소금을 풀겠다고 나서니 당연히 사재기에 한창이던 러시아 제국의 황제 니콜라이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오스트리아가 동맹국인 우리를 배제하고 소금을 팔겠다는 건가!”

“폐하, 오스트리아에서는 동방과 서방 양측에 동등하게 소금을 판매하겠다는 의사를 타전했나이다.”

“동등하게……?”

그 말은 러시아에 유리하게 판을 짜겠다는 건가?

아니면 그냥 러시아를 쳐낼 수는 없으니 명목상으로 부르기만 한 것인가?

어느 쪽이건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오스트리아가 서방국가들과 함께 러시아를 초대했다는 것이니 말이다.

“현재 동원 가능한 자금은 어느 정도인가?”

“다른 국가들에서 거래를 제한시킨 덕분에 자금을 크게 아끼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저들의 자본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가격을 높이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

황제의 질문에 페롭스키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쪽에서 들려온 소식들에 의하면 이제 막 카리브해 식민지들에 무역선을 보냈다고 하니, 그들이 돌아오려면 못해도 석 달은 걸릴 겁니다.”

“그럼 언제까지 매입할 생각인가?”

“가격은 이미 오를 대로 올랐으니 슬슬 물량을 풀어서 저들의 무역선이 도착하기 전에 값을 내려놓을 생각입니다.”

“그러면서 저들의 무역선이 도착한다는 소문도 슬쩍 풀어놓고,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황제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훌륭하군.”

“감사합니다.”

니콜라이는 자신들의 행동으로 인해 고통받을 성인 방 국가들과 그들의 부를 빼앗아 부유해질 러시아의 미래를 상상하며 미소 지었으나 현실은 그들의 생각처럼 흘러가진 않았다.

오랫동안 유럽의 질서에 관여하던 영국 정부는 러시아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했음에도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분노하며 어려운 경제 상황임에도 대러시아 포위망을 더욱 강화하려 했다.

그들은 북유럽의 스웨덴과 중부유럽의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그리고 중동의 오스만에 영향력을 투사하며 대러시아 포위망을 닫으려 했다.

“……고로 의회에서 신규 예산안을 통과시켜줬으면 하는 바입니다.”

존 러셀 총리의 대러시아 제재를 위한 신규예산은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었고, 시민들 역시 언론에서 매일같이 러시아의 패권을 언급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니 불만의 화살을 정부가 아닌 러시아로 돌려놓았다.

프랑스 역시 큰아버지를 팔아먹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나폴레옹 3세는 프랑스의 최전성기였던 프랑스 제국 시절 당시 러시아침공을 언급하며 국론을 끌어모았다.

“제 큰아버지 되시는 위대한 황제 나폴레옹은 프랑스인들과 혁명의 삼색기 아래 이베리아반도에서 모스크바까지 모든 땅을 발아래에 두셨습니다! 그 모든 것이 비단 우리 프랑스를 위해서였습니까?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바라셨기에 그런 것입니다. 제 큰아버지께서는 그것을 이루시기 직전에 저 간악한 러시아인들의 술수에 속아 모든 것을 빼앗기셔야 했지요!”

프랑스 공화국의 통령 나폴레옹이 자신의 큰아버지이자 프랑스제국의 황제 나폴레옹을 팔아먹으면 팔아먹을수록 사람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과거의 영광을 떠올렸다.

물론 그에게 반발하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나폴레옹의 이름을 언급하며 과거 프랑스제국의 위엄을 상기시켜주자 그들은 불만을 느끼면서도 입을 다물었다.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이 가지는 위상은 그러했다.

그리고 그 나폴레옹의 후계자(라고 주장하는) 나폴레옹 3세가 유럽을 뒤흔드는 러시아를 악의 세력으로 규정했다.

“……저들은 악의 제국입니다! 온 세상의 악의를 똘똘 뭉쳐 탄생한 악마들의 국가입니다. 저는 프랑스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를 위해서라면 악의 제국에 맞서 이 한 목숨 바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폴레옹 3세는 언제나 러시아를 비난하면서도 정작 그의 큰아버지가 몰락하는 데 큰 공을 세웠던 영국까지 비난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큰아버지를 몰락시킨 영국의 강함을 잘 알고 있었고 가능하면 그들과 척을 지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예전처럼 홀로 거대한 악과 맞서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는 연합왕국이 우리와 함께 거대한 악에 맞서 유럽을 수호할 것입니다!”

“와 아아-!”

“나폴레옹 만세!”

그의 연설이 끝나자 전염병과 경제위기, 그리고 생필품 부족으로 고통받던 시민들은 그동안의 힘든 일상과 삶의 고통을 잊고 나폴레옹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들은 그가 자신들의 힘든 삶을 끝내줄 것이며 프랑스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지금이야 좀 힘들지만, 자신들의 자식들이 장성하여 살게 될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울 것이며 강대한 프랑스에서 살아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나폴레옹은 신앙이었다.

그리고 신의 대리자인 나폴레옹 3세의 명령이라면 기꺼이 전쟁터에 나설 준비도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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