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50화 (50/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50화

적의 적은 친구?

오스트리아가 총대를 메고 유럽에 소금무역을 정상화해놓긴 했지만, 시장에 내놓는 족족 다들 사가는 통에 도통 가격이 내려가질 않았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서방과 러시아는 이 문제를 서로의 탓이라면 연일 강도 높은 비난을 이어가면서 나폴레옹 전쟁 이후 오랫동안 평화가 이어지던 유럽에 전운이 감돌았다.

“폐하, 프랑스군의 이탈리아 진군을 막으시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일세, 프랑스 놈들이 우리 혁명가 친구들을 건드는 것을 막아서는 것이지.”

“흠……. 폐하께서는 이탈리아 내 주도권을 우리 쪽으로 가져오기 위해 그러시는 겁니까?”

“일단은 그렇다고 해두지.”

그냥 러시아와 서방국가들의 전쟁 기간에 사르데냐를 붙들어놓을 세력이 필요해서 그런 것이었지만 그렇게 말하면 공작이 기를 쓰고 반대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프랑스 측의 반발이 상당할 텐데……. 그건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후후후……. 그것 역시 생각해 둔 것이 있네.”

* * *

“오스트리아 측에서 비밀동맹을 제안했다고?”

“그렇습니다. 각하, 지난 연회 당시에 오스트리아는 러시아 측의 위협이 이미 한계점을 넘었다며 은밀하게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나폴레옹 3세는 생각했다.

이제 한창 러시아와의 전운이 감도는 상황에서 그들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강대국 오스트리아가 편을 갈아탄다면 어떤 이득이 있을지 말이다.

만약 전쟁이 벌어진다면 프랑스군과 영국군은 머나먼 러시아까지 원정을 나가야 할 터.

그렇게 되면 가장 문제인 것이 보급이었다.

본토인 프랑스에서 전장인 러시아까지는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그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국가가 존재하고 있으니 그들과 이해관계를 맞추지 않는다면 육로를 통한 보급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수운을 써야 했는데…….

‘아무리 영국이 제해권을 꽉 잡는다고 해도 러시아 해군의 방해를 무시할 수는 없지.’

아무리 영국해군이 강력하고 그에 못지않은 프랑스 해군이 가세한다지만 러시아 해군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저들은 전면전을 포기하고 드넓은 바다를 돌아다니며 아군의 수송선을 공격할 것이었다.

그렇게 피해가 점점 누적되다 보면 보급에 부담이 생길 것이었고 머나먼 이국땅에서 싸워야 하는 원정군의 전투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었다.

전쟁터에 나갔다만 하면 적을 깨부수고 승리를 가져오며 전 유럽을 발아래에 두시던 큰아버지 나폴레옹 또한 러시아에서 보급문제로 발목 잡혀 패하지 않으셨던가?

보급은 중대 사항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오스트리아가 이쪽 편에 가담한다면?

보급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되는 것이다.

불세출의 천재였던 큰아버지 나폴레옹의 패배로 인해 러시아 공포증에 빠져 있던 프랑스로서는 이게 웬 떡이냐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다만……. 로마침공을 조금만 뒤로 보류해 달라는 조건도 덧붙였습니다.”

“로마침공을 미뤄달라?”

“예, 로마공화국을 조금만 더 내버려 달라더군요.”

“왜? 왜지? 이탈리아 내의 패권을 위함인가?”

로마공화국이 살아 있음으로써 오스트리아가 얻는 이득이 무엇인가.

언뜻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침공을 몇 달 미루는 것으로 그의 가장 골치 아픈 고민이 사라졌는데!

“오스트리아에 비밀동맹을 받아들이겠다고 전하게, 그리고 이 사실을 영국에게도 알리고 말이야.”

“예, 각하!”

* * *

프랑스로부터 날아온 답서를 손에 들고는 공작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프랑스 녀석들도 신사는 못 된단 말이야.”

“이렇게나 빠르게 답이 올 줄이야…….”

“이제 이탈리아 쪽은 한시름 덜었군.”

“……이젠 프로이센에 집중할 때군요.”

역시 공작은 눈치가 빨랐다.

일단 이탈리아의 일을 가라앉혀뒀으니 이제는 동서방의 대결 이전에 빠르게 프로이센의 문제를 처리해야 했다.

이미 저들은 지난 연회 이후로 대대적인 내부정리와 함께 주변 독일국가들에 독일연방의회를 거부하라며 압박을 넣는 중이었다.

“이럴 때는 러시아를 끌어들이지.”

“러시아…… 말입니까?”

공작은 내게 물었다.

“폐하, 외람된 말씀이오나……. 지금 폐하께서는 서방 측에 붙으려 하시는 게 아닙니까?”

“그렇지.”

“그런데 왜 러시아를…….”

“그래야 저들이 우릴 믿을 테니까.”

“……?”

공작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설명이 부족했던 모양이로군. 한번 생각해 보게 지금 러시아는 우릴 믿고 있겠나?”

“아니겠지요. 우리가 저쪽 편에 가담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하고 있겠지요.”

“그렇지, 그럼 이때 우리 쪽에서 러시아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면 어떻게 나오겠나?”

“그야……. 우리에게 빚을 지워두려고…… 아!”

공작은 무언가 알아챘다는 듯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나를 돌아봤다.

“폐하께서는 러시아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로군요.”

“우리가 저들에게 빚을 지웠으니 저들은 그게 우리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면서 안심하겠지.”

“그 족쇄가 얼마나 헐거운지는 상관하지도 않고 말이지요.”

전운이 감도는 유럽에서 러시아 편을 들어줄 만한 국가는 그들의 도움으로 이제 막 독립한 그리스를 제외하면 우리뿐이었다.

그러니 러시아로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자신의 편으로 굳히려고 만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프로이센의 일을 러시아의 도움으로 해결한다면?

저쪽에서는 옳다구나 하며 전력을 다해 프로이센을 쥐고 흔들어놓을 것이 분명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프로이센을 향한 러시아의 압박을 우리가 서방 쪽에 보내는 신호로 판단하고 프로이센을 싸고돌 것이었다.

그럼 러시아는 어쩌겠는가?

더더욱 우리 편을 들면서 우리에게 잘 보이려고 온갖 방법으로 프로이센을 조지려고 들것이었다.

“아무리 서방국가들이 밀어줘도 프로이센의 국력으로 러시아를 이길 수는 없지.”

“그렇지요. 거기에 우리까지 저들을 압박하고 나선다면……. 프로이센은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의 뜻을 꺾어야만 할 겁니다.”

“그렇겠지, 이번엔 저들도 뜻을 굽힐 수밖에 없을 거야.”

여기까지만 들으면 오스트리아는 아무런 부담 없이 여기저기 도움만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들렸지만 실상은 삐끗하면 지옥 불구덩이로 빠질 수 있는 외줄 타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비밀엄수가 중요하네.”

“예, 믿을 수 있는 수하들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 이번 일을 알고 있는 것은 폐하와 저뿐입니다.”

“좋아, 그렇다니 다행이로군.”

대략 20평 남짓한 내 집무실에서 향후 중부유럽의 운명이 결정되었다면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그게 실제로 벌어졌다.

이제 사르데냐는 로마공화국과 이탈리아 통일의 주도권을 두고 다퉈야 했고 프로이센의 독일통일 꿈은 산산이 조각날 것이었다.

“후우……. 그럼 국제정세에 관한 것은 이쯤하고……. 헨리, 오늘 짐의 일정은 어떤가?”

“예, 폐하! 금일 오후에 근위대 사열식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사열식이라……. 귀찮은데, 그냥 집무실에서 보면 안 되겠나?”

“안 됩니다!”

“씁……. 그럼 어쩔 수 없지.”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이 정도면 공작에게 모두 넘겨도 상관없을 것이었다.

“그럼 뒤를 부탁하지 공작.”

“조심해서 다녀오시지요.”

“알겠네.”

* * *

오스트리아의 연회에 참석한 모든 유럽국가는 영국과 프랑스가 대놓고 러시아를 모욕하는 것을 보고는 각자 편을 골라잡았다.

대부분은 영국과 프랑스에 붙었으나 개중에는 러시아 측에 붙은 국가도 있었는데, 그들은 이제 막 독립한 그리스나 오스만 휘하의 봉신 국가인 세르비아, 왈라키아 몰다비아 같은 국가였다.

이 중에서 왈라키아와 몰다비아는 지난 혁명기에 러시아가 강제로 군대를 주둔시킨 곳이니 제외하고 세르비아는 오스만이 개입하면 떨어져 나갈 것이니 남는 것은 그리스왕국뿐이었다.

“참으로 암담한 상황이로군.”

“폐하, 그래도 오스트리아 측에서 우릴 공개적으로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잖습니까.”

“지지 선언은 누구라도 할 수 있네, 당장 프로이센과 스웨덴도 우리에게 지지성명을 냈잖나.”

“아…….”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들끼리는 원래 사이가 좋지 않듯이 스웨덴과 프로이센 역시 러시아와는 그리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특히 스웨덴은 러시아와 여러 번 전쟁을 벌이다가 자국의 왕이 죽은 경험이 있었기에 조금 더 험악한 관계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는 다 같이 힘을 합쳐 프랑스에 맞섰지만 수백 년의 원한이 수십 년의 동맹으로 전부 씻어질 수는 없는 법.

그렇기에 러시아 제국의 차르 니콜라이 1세는 그들을 믿지 않았다.

현재 그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전쟁 전에 오스트리아를 확실한 우방국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오스트리아 측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는가?”

“예, 아무래도 우리와 서방국가들의 사이를 잘 중재해 보려다가 일이 풀리지 않자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으음……. 오스트리아의 젊은 황제는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어찌 모른다는 말인가.”

니콜라이는 짜증이 났지만, 일단은 참았다.

아쉬운 것은 러시아지 오스트리아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빈에 있는 대사에게 수시로 황제를 방문하여 우리 쪽으로 마음을 굳히게 만들라고 전하게.”

“예, 폐하.”

그때, 황제의 시종장이 다급히 집무실 문을 두드리며 니콜라이를 찾았다.

“폐하, 오스트리아의 부올 백작께서 접견을 청하고 있습니다. 돌려보내시겠습니까?”

“부올?”

니콜라이는 잠시 머릿속에서 부올이라는 이름을 찾아내어 이내 그가 오스트리아의 차기 외무장관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손짓으로 궁정 신하들에게 잠시 나가 있으라는 신호를 보낸 뒤에 말했다.

“안으로 모시게.”

잠시 뒤 문이 열리며 애써 근엄한 태도를 고수하는 오스트리아의 외교관이 들어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폐하.”

“정말 오랜만이로군. 그동안 어디 처박혀 있었기에 아무 소식도 없었나?”

“이런저런 일로 바빴지요……. 하하…….”

“그래? 무슨 일로 그리 바빴는가.”

오스트리아의 외교관이 바쁠 일이라면 한 가지뿐.

제국 외부에서 골칫거리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 외부의 문제는 러시아가 개입하여 적절히 처리해 줄 수 있었고 말이다.

“아……. 그것이 말이지요. 요즘 프로이센 왕국이 주변의 다른 왕국들을 끌어들여서 독일연방을 탈퇴하고 자기네들만의 새로운 연방을 만들려 하지 뭡니까? 그래서 그걸 막는다고 저만 죽어 나갔지요……. 하하.”

“저런……. 자네가 고생이 많겠군.”

“이를 말입니까?!”

부올은 참으로 억울하다는 듯이 니콜라이에게 하소연했다.

“우리 폐하께서는 어떻게 해서든 독일의 공국과 왕국들이 연방을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라면서 을러대시기만 하고……. 프로이센에서는 공격적으로 치고 나오는데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흠……. 그렇다는 말은 자네가 이걸 어느 정도 수습했다는 것으로 들리네만.”

“어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저 잠시 일을 뒤로 미뤄뒀을 뿐입니다.”

“미뤄두었다?”

부올의 말에 니콜라이는 흥미를 느꼈다.

“그럼 그 중요한 일들을 미뤄두고 날 찾아왔다는 것은 내게 부탁할 것이 있다는 것이로군.”

“아, 그것이…….”

핵심을 지르는 황제의 말에 부올 백작은 남몰래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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