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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51화 (51/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51화

암살?

국제정세는 살아 있는 생물처럼 요동치며 각자 자기편을 만들려고 발버둥 치고 있음에도 전체적으로 보자면 유럽은 평화로웠다.

혁명으로 인한 혼란도 가라앉았고 그로 인한 경제위기도 어느 정도 해결되며 다들 평화로운 시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빈과 부다를 잇는 철도연결도 이제 막 기초공사가 끝났고……. 제국 내부의 주요 거점도시들도 다시금 활기를 되찾았군.”

“전부 폐하의 혜안 덕분이지요.”

“혜안은 무슨…….”

말은 이리했지만, 헨리의 칭찬에 내심 어깨가 으쓱거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것을 자랑하고자 영감님을 불렀다.

‘영감님, 제가 이 정도입니다.’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지난 연회에서 웬 꼬마애 앞에서 펑펑 우시던 영감님은 요 며칠간 두문불출하셨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으셨기에 슬슬 걱정되기는 했지만,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기에 갑갑했다.

“쯧…….”

“폐하, 어디 불편하신 것이라도……?”

“아닐세, 오늘 날이 조금 칙칙해서 그렇다네.”

“그럼 이만 들어가시겠습니까?”

“그래도 끝까지 자리는 지켜야지.”

괜히 빨리 들어갔다가 나중에라도 영감님이 돌아오시면 잔소리를 하실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심란한 마음으로 케르트너르토어 요새 산책로를 거닐며 근위대의 사열식을 지켜봤다.

이곳은 빈의 시민들도 주로 찾는 곳이어서 그런지 주변에 사람들이 듬성듬성 보였고 개중에 몇몇은 사열식 중인 근위대에게 손을 흔들거나 손수건을 흔들었다.

생각보다 시민들이 가깝다고 생각한 헨리는 안절부절못하며 내게 말했다.

“폐하, 이곳은 너무 개방된 것 같으니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기심이…….”

“시민들이 내게 해코지라도 할 것 같아서 그런가? 그럴 사람이 있었다면 진즉에 그랬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

내가 기억하기로 영감님은 누군가에게 암살당하지 않고 제 수명대로 살다가 침대 위에서 평안하게 돌아가셨다.

‘비명으로 사라졌던 가족들과는 다르게 말이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요새 아래쪽에서 사열식을 벌이는 병사들을 구경하며 나중에 영감님이 돌아오시면 바이에른의 공주들을 불러서 다시 만나게 해줘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으아아악!”

뒤편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뒤를 돌아보니 딱딱하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내 목을 스쳤다.

* * *

야노시 리베니는 지난 수십 일간 자신의 여동생이 당한 모욕과 수치, 그리고 자기 민족이 당한 억압에 대한 복수를 위해 식칼 하나를 품속에 숨기고 황궁을 어슬렁거렸다.

황제만 죽는다면 자신의 형제들인 마자르족의 국가 헝가리가 독립할 것이고 자신의 여동생의 명예 또한 지켜지리라 생각하여 그런 것이었다.

정작 헝가리인들은 독립보다 잔류를 택했으며 여동생은 황제의 은혜 덕분에 여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모르고 말이다.

오랜 백수 생활과 전장에서의 강렬한 경험은 그를 조금 나쁜 쪽으로 바꿔놓았다.

그는 황제를 죽이겠다는 일념하에 쉰부른 궁 앞을 어슬렁거리며 거리에서 쪽잠을 잤고, 다른 이들에게 구걸한 것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제 몸을 돌보지 않은 탓에 그의 육체는 나날이 약해져 갔으나 리베니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황제……. 황제를 죽여야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비참한 삶을 이어가던 리베니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신문에서 황제에 관한 기사를 접했다.

[자애로우신 황제 폐하의 근위대가 금일 오후 케르트너르토어 요새에서 사열식을 가질 예정!]

리베니는 곧장 요새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그토록 증오하는 오스트리아의 황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황제를 보자마자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빠른 걸음으로 황제에게 다가갔고,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식칼을 뽑아 들었다.

“어?!”

주변에서 그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눈치챈 이들이 몇 명 있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는 이미 황제에게 칼을 찌른 뒤였으니 말이다.

“압제자야 죽어라!”

리베니는 전쟁터에서 봤던 대로 가장 확실하게 사람이 죽는 부위인 목을 노렸다.

그리고 정확히 황제의 목을 찔렀다.

하지만 그동안의 거친 거리 생활로 인해 힘이 조금 약해지기도 했고 집에 있는 식칼을 들고나온지라 칼이 무딘 탓에 전쟁터에서 봤던 것처럼 피가 확 튀거나 하진 않았다.

“폐하!”

“이놈이!”

리베니는 황제의 곁에 있던 군인과 시민에게 제압당했지만, 피를 흘리는 황제를 보며 크게 웃었다.

이제 황제는 쓰러질 것이고 헝가리는 자유를 쟁취할 것…….

“어?”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황제의 목을 정확히 찔렀음에도 황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멍청한 녀석 같으니……. 나를 찌르려면 이런 무딘 식칼 같은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단검을 준비해서 등을 찔렀어야지.”

“…….”

“끌고 가.”

리베니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그냥 실패도 아니고 대실패로 말이다…….

근위대의 손에 끌려가며 리베니는 연신 황제를 돌아봤지만, 황제는 멀쩡했다.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어…….”

리베니는 끌려가면서 같은 말을 반복했으나 그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압제자를 물리쳤다는 찬사보다는 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황제에게 해를 끼친 것에 대한 모욕뿐이었다.

“이런 쓰레기 같은 녀석!”

“폐하의 은혜도 모르는 악독한 무뢰배 같으니!”

“아……. 아아……. 어째서…….”

리베니는 사람들이 왜 자신을 욕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그는 압제자를 몰아내고자 움직인 것이었고 그의 밑에서 고통받던 인민들은 자신을 찬양해야 했다.

“그런데 왜…….”

리베니는 절망에 빠졌으나 이내 시민들 틈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는 얼굴에 화색을 되찾았다.

“괴르게이 장군님!”

그가 존경해 마지않는 혁명가이자 위대한 장군이며 동시에 자랑스러운 헝가리인의 대표인 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저분이라면 자신의 행동을 칭찬해 주실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리베니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심한 녀석 같으니.”

하지만 괴르게이는 그를 찬양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사소한 칭찬 같은 것도 없었다.

들려오는 것은 멸시 어린 차가운 시선과 그의 냉담한 말뿐이었다.

“어째서……?”

분명 자신은 헝가리인을 위해 압제자를 몰아내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혁명의 지도자였던 괴르게이 장군은 자기 뜻을 알아줘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리베니는 당장에라도 괴르게이를 붙잡고 왜 그런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자신을 붙들고 있는 병사들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리베니는 연신 괴르게이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의 목소리를 사람들의 조롱과 모욕에 뒤섞여 사그라들었다.

* * *

“폐하!”

“폐하, 괜찮으십니까?!”

“의사를 불러! 당장!”

황궁으로 돌아오니 다들 공황에 빠져서 내 주위를 감싸고 돌았다.

그중 몇몇은 피를 보더니 그대로 혼절하여 쓰러지기까지 할 정도였다.

“다들 시끄럽게 굴지 말고 업무에 집중하게, 그리고 헨리 자네는 가서 슈바르첸베르크 공작과 궁전 의사를 불러오게, 평소에 그 친구 말고 지난번에 봤던 입이 무겁던 친구로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폐하!”

“끄응……. 일단 방으로 좀 가지.”

다행히도 두꺼운 옷깃이 예리한 칼날을 막아주긴 했지만 그래도 상처는 제법 깊었다.

항생제도 없는 판국에 자칫 잘못하여 파상풍이라도 걸리면 그대로 사바세계와는 안녕이었기에 소독부터 해야 했다.

“끄응…….”

[……자네는 어쩌다가 또 다쳤는가?]

“영감님?”

하얀 천으로 상처를 압박하고 있으니 영감님이 조금 침울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동안 뭐하셨…… 아야…….”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지.]

“끄응…….”

[아무래도 지금은 대화할 만한 상황이 아닌 듯하니 본인은 이만 가보겠네, 몸조심하게.]

“예, 살펴 가십시오.”

목의 상처는 생각보다 심각했던 것인지 슬슬 목에 댄 하얀 천이 내 피로 흠뻑 젖을 때쯤.

“폐, 폐하!”

그토록 기다리던 의사가 왔다.

“왔군.”

“폐하, 소인은 누차 말했지만, 산부인과 의사일 뿐이지 내상이나 외상에 관해서는 정말 기초적인 것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대신 입이 무겁잖은가.”

“그건…… 그렇지만……. 지금 폐하를 돕기엔…….”

“자네는 닥치고 내 말대로만 하게, 어차피 이런 상처 같은 건 그냥 무릎 조금 까진 정도일 뿐이잖나.”

“…….”

제멜바이스는 금세 입을 다물었다.

역시 눈치가 빠른 자였다.

“자네는 일단 내 목에 덧댈……. 끄응……. 깨끗한 붕대나 거즈와 순도 높은 알코올, 그리고 수술용 실과 바늘을 준비해 오게.”

“봉합수술을 준비하라는 뜻입니까?”

“그래, 산부인과 의사면 그 정도는 능숙하겠지?”

“마, 맡겨만 주십시오!”

제멜바이스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불끈 쥐더니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공작이 심각한 얼굴로 뒤이어 들어왔다.

“폐하, 소식은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빠르겠군.”

“제게 시키실 것이 있으신 겁니까?”

“그래, 이제부터 나는 사경을 헤매고 있는 중환자가 되어야 하네.”

내 말에 공작은 잠시 눈썹이 요동쳤다.

“이건 저와 폐하만 알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 내 동생들과 어머니에게는 알려야 하네.”

“……폐하께서는 이번 일을 전쟁에 참전 못 할 이유로 이용하실 생각이 시로군요.”

“역시 자네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

공작의 말대로 나는 이번 사건을 앞으로 있을 서방과 러시아의 전쟁에 참전 못 할 이유로 만들 생각이었다.

당장 제국의 최고책임자인 황제가 뚜렷한 후사 없이 오늘내일하는데, 전쟁을 어찌하겠는가?

물론 전쟁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참여할 수야 있었다.

내 동생들은 둘이나 되었고 아버지의 형제분들과 사촌들까지 있으니 적당한 황족을 황제로 옹립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머리를 조금 더 쓰려 했다.

“막시밀리안과 카를에게는 살짝 언질을 주어 서로 황위 계승권을 두고 다툼을 벌이는 척 보이게 만들 생각이네.”

“으음……. 내부가 혼란스러우니 타국에서는 차마 전쟁에 참전하라고 압박하진 못하겠지만……. 프로이센이 걱정입니다.”

“끄응……. 나 역시 그것을 고민해 봤으나 일단 프로이센이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기 전에는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네, 우선은 저들이 독일연방을 나가려는 것만 틀어막는 게 중요하네.”

“알겠습니다. 명대로 하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동생들을 불러와 주겠나……?”

말을 많이 해서 그런지, 아니면 피가 좀 빠져나가서 그런지는 몰라도 슬슬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지며 두 눈이 감겨왔다.

아마 몸을 한계까지 움직인 탓에 기계 전원이 꺼지듯이 잠시 쓰러지려는 모양이었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네, 그나마 정신이 붙들어져 있을 때 동생들에게 내 명령을 전하고 싶네.”

“……제가 알기로는 막시밀리안 공께서는 연회에 참석하신다며 빈을 떠나계시고 카를 공은 조리대공비 전하의 명령으로 잘츠부르크로…….”

“끄응……. 그럼 그 둘에게는 자네가 적당히 잘 전해주게나 녀석들이 쓸데없이 내 제위를 노리려고 하면……. 자네에게 판단을 맡기지.”

내 말에 공작은 흠칫 놀라며 내게 물었다.

“제게 판단을 맡기신다는 것은…….”

“……태양을 동경하던 이카루스는 밀랍이 녹는 것도 몰랐다지.”

“알겠습니다.”

공작을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도 내 동생들이 내 뒤를 이어서 황제가 되면 자신의 앞길을 막으리라 생각할 것이었기에 일을 맡겼다.

내가 없는 사이에 공작이 폭주하는 것도 살짝 걱정되긴 했지만 그럴 땐 황실의 최고 어른이신 숙부님이나 어머님께서 나설 것이었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폐, 폐하!”

“끄응……. 왔군.”

“소신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부디 쾌차하시길…….”

“허, 공작이 날 걱정할 때도 있군?”

“저는 언제나 폐하께 충성을 다할 뿐입니다.”

“그래, 자네 충성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그리 말하며 공작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후우…….”

“폐하, 정신을 놓으셔서는 아니 되옵니다. 지금 피를 많이 쏟으셔서 조금 어지러울…….”

“알코올은 구해왔는가?”

“예, 폐하.”

“그럼 일단 소독부터 하고 봉합하게.”

“소, 소독이 뭡니까?”

“……?”

제멜바이스의 물음에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의사라는 사람이 소독도 모르는가?”

“송구스럽사오나……. 처음 듣사옵니다.”

“으음……. 일단 환부 주변을 알코올 묻은 솜으로 닦고 수술기구를 알코올로 소독하게, 자네 손은 씻었나?”

“예? 아, 물론입니다!”

“그래……. 그 정도는 아니 다행이로군.”

하마터면 파상풍이 아니라 패혈증으로 먼저 골로 갈 뻔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철렁했다.

“마취제는……. 당연히 없겠고.”

“아편은 있습니다.”

“치우게, 누굴 아편 중독자로 만들고 싶은가?”

“그…… 적정량만 사용하면…….”

“자네가 적정량을 어찌 알고 쓴단 말인가?”

“……그럼 그냥 하겠습니다.”

“쓰읍……. 어쩔 수 없지.”

잠시 마음의 준비를 하며 신호를 주려 했는데 의사는 말도 없이 바늘부터 꽂아 넣었다.

“끄윽……!”

“조금만 참으십시오. 이래 봬도 바느질은 여럿 해봤으니 금방 끝내겠습니다.”

“뜨악!”

생살을 꿰뚫는 고통에 그대로 기절하고 싶었지만 신경 다발을 타고 뇌를 찌르는 통증은 내가 기절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제멜바이스는 내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움찔거리면서 멈칫거리는 탓에 고통은 빠르게 끝나질 않았다.

“우, 움찔거리지 말고 빨리 끝내게!”

“알겠습니다!”

상처를 꿰매는 것인지 후벼 파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우악스러운 제멜바이스의 손길에 이대로 기절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럼 잠시 쉬게.]

“예?!”

“폐, 폐하?”

영감님의 말을 마지막으로 내 몸은 전원이 꺼지듯이 눈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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