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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52화 (52/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52화

폭.풍.전.야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황제가 암살당할 뻔했다는 소식은 금세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매일같이 특종기사에 목말라 있던 세계 각국의 신문사로 점점 퍼져 나갈수록 살이 붙으며 어느덧 오스트리아는 존망의 갈림길에 선 것처럼 포장되었다.

[오스트리아의 황제 피습당하다!]

[오스트리아 황제 생명의 위기?!]

[합스부르크 가문의 끝이 다가온다!]

[제국의 붕괴!]

신문사에서 이렇게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내니 사람들 또한 정말로 오스트리아가 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는 각국의 높으신 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스트리아 황제가 칼에 맞았다고?!”

“오스트리아 황제가 칼을 맞았다고?!”

특히 서로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던 러시아와 영국에서는 이 소식에 누구보다 발 빠르게 대응했다.

두 국가는 재빠르게 현지 대사관에 연락해서 현지의 분위기나 황실의 분위기를 수집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대사는 그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

“으음……. 빈의 분위기는 초상집에 황궁에서는 조피 대공비와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이 각자 황제의 동생들을 끌어들여 권력 싸움에 들어갔다는군요.”

“허허……. 오스트리아가 우리 편을 들어준다고 했을 때 조금 기대했건만…….”

“뭐 그래도 상대편에 붙는 것은 아니니 다행이긴 합니다만…….”

영국 측에서는 조금 아쉬움을 표하는 정도에서 끝났지만, 러시아는 아주 완벽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오스트리아 내부가 아주 개판이라고?!”

“폐, 폐하 우선 진정하심이…….”

“지금 진정하게 생겼나! 오스트리아 녀석들을 끌어들이려고 프로이센에 최후통첩을 보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일이 벌어지느냔 말이야!”

적어도 그 자리에 모인 이들 중에서는 그 이유를 설명해 줄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에 다들 입을 꾹 닫으며 황제의 분노가 사그라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으그극……. 이대로 가만있을 수는 없어……. 키셀료프! 당장 군대를 준비시키게!”

“폐하, 군대는 왜 찾으시는지요.”

“동맹국이 내부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으니 우리가 그 문제를 해결해 줘야지 않겠나? 가서 쓸 만한 놈만 남겨두고 싹 쓸어버리면 될 것이야.”

“폐하…….”

“키셀료프, 당장 군대를 준비하게!”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폐하,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오스트리아는 내버려 두고 발칸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심이 어떻겠는지요?”

“발칸에서의 영향력?”

“예, 이미 왈라키아와 몰다비아는 우리의 손에 들어왔으니 세르비아와 불가르를 해방해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세르비아와 불가르라……. 발칸의 슬라브인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자는 말이로군.”

키셀료프의 말에 황제는 분노를 가라앉히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오스만은 러시아가 강제로 점령한 왈라키아와 몰다비아를 내놓으라고 항의하는 중이었지만 그들은 러시아의 상대가 아니었다.

내부가 썩어 문드러진 오스만은 이미 유럽의 환자라고 정평이 나 있는 상태였고 지난 여러 번의 전쟁에서 러시아에 번번이 참패하면서 이를 증명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세르비아와 불가르를 점령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서방이 가만 지켜볼지 걱정이로군.”

러시아가 하는 일마다 딴지를 걸어대는 영국과 프랑스가 이를 가만히 지켜볼지가 의문이었다.

이미 왈라키아와 몰다비아의 건만 하더라도 당장 오스만에 반납하라고 외교적 압박을 걸어오는 중인데, 여기서 세르비아와 불가르까지 침공한다면…….

“그땐 정말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잖나.”

“그렇기에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먼저 움직이자는 것은……. 선수를 치자는 건가?”

“예, 폐하.”

키셀료프의 제안에 황제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차피 서방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선수를 쳐서 전쟁을 유리하게 가져오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그의 머릿속에는 아직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으음……. 그건 너무 급진적인 방법이잖나 아직 저들과 협상할 수도 있을 텐데…….”

“폐하, 저들이 협상을 바랐다면 진즉에 사람을 보내어 우리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겠지요. 하지만 지난번 빈에서 열린 연회에서 저들이 어찌 나왔는지 잘 아시잖습니까.”

“……자네 말이 맞아.”

지난 연회에서 자신이 보낸 전권대사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떠올린 황제는 다시금 이를 갈았다.

나름대로 황제의 자존심을 살짝 굽히며 저들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려 했으나 저들은 이쪽의 말은 들어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뭉개고 들었지 않은가?

저들은 러시아에 자비를 베풀기는커녕 계속해서 숨통을 조이려 하고 있었다.

옛말에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는 말이 있었다.

물론 저들은 고양이라고 치부할 정도의 체급은 아니었지만 그건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러시아는 한 마리의 곰이다.

곰이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지르면 유럽을 떨게 만들 정도로 흉포하고 무시무시한 불곰이었다.

“좋다. 저들이 싸움을 피하지 않겠다면 우리 쪽에서 먼저 쓴맛을 보여줘야겠지.”

“폐하! 그럼 사재기로 끌어모은 것들은……?”

“전부 팔아치워서 군자금을 마련하게, 그리고 각 도시의 공방들에 은밀하게 동원령을 내리고 무기를 만들 설비를 확충하고 인민을 무장시키게!”

니콜라이 1세는 결심을 굳혔다.

저들이 언제까지고 러시아를 무시하며 저들끼리만 놀겠다면 러시아는 그 판 자체를 때려 부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모든 일은 은밀하게 진행되어야 하나 적들이 알아챈다고 해도 상관없네, 선전포고는 동원이 끝나는 즉시 이루어질 것이며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니 다들 두려움 없이 전쟁에 임하게!”

“황제 폐하 만세!”

“어머니 조국 만세!”

* * *

러시아에서 은밀한 동원령이 떨어지며 제국 전역이 들썩거리자 영국과 프랑스 역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각하, 러시아에서 동원령이…….”

“나도 들었네.”

“우리도 동원령을 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지금은 헌법 수정에 집중해야 하네.”

나폴레옹 3세는 3년 뒤에 있을 1852년의 선거를 위해 노동자들과 농민을 비롯한 하층민들에게 투표권을 확대하고 연임할 수 없는 대통령직의 연임제한을 풀려고 헌법을 뜯어고칠 생각이었다.

러시아와의 전쟁 준비는 지금 당장은 그에게 있어 전쟁은 자신의 지지율에 악영향을 주는 소식이었다.

그렇기에 나폴레옹은 이를 철저히 숨겼다.

“일단 군부에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대비하라고 일러두되……. 이것이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되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

“예, 각하.”

영국 정부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그들은 겉으로는 러시아와 일전을 불사하겠다면서 떠들어댔지만, 속으로는 아일랜드에 불어닥친 대기근을 수습하고 그간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특히 올해 말쯤에 빅토리아 여왕의 아일랜드 방문일정이 잡혀 있었기에 최대한 대기근의 여파가 덜한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 아주 정신이 없었다.

“사람이 굶어 죽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원…….”

“정부에서 또 쓸데없는 일을 벌이는 것이지…….”

“망할 놈의 정부 같으니…….”

오죽했으면 아일랜드에 거주 중인 영국인들마저 당장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당장 여왕이 방문하는 도시를 꾸미는 데 정신없는 정부를 욕할 지경이었다.

“먹을 것을 좀 나눠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곳은 정부의 공공창고다. 다들 허락 없이 다가오면 호된 꼴을 당할 테니 물러나게!”

“어르신……. 부탁드립니다. 사흘 내내 아무것도 먹질 못했습니다…….”

“저는 괜찮으니 아이들만이라도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도시의 밀 창고에는 굶주린 아일랜드인들이 몰려들어 군인들에게 자비를 애원할 정도였다.

다들 오랫동안 굶주린 탓인지 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이들이 대다수였다.

“끄응……. 안 되는데…….”

“중위님, 그냥 저희 몫을 조금 떼준다고 생각하시면 되잖습니까?”

“맞습니다. 저 사람들을 이대로 돌려보내면 내일은 시체를 치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신께서는 남을 도우라고 하셨잖습니까.”

“쓰읍……. 조금 나눠주는 건 괜찮겠지.”

오죽했으면 공용창고를 지키던 군인들마저 아일랜드인들을 동정하며 식량을 나눠줄 정도였다.

이런 일이 아일랜드 전역에서 벌어졌다.

건물주는 농사를 망친 세입자들을 내쫓았고 농가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는 일도 있었다.

도시의 빵집은 굶주린 아일랜드인들에게 습격당하기도 하는 등 혼란이 지속하였다.

이런 곳에 여왕이 온다고 하니 영국 정부도 러시아의 전쟁에만 온전히 신경을 쏟을 수가 없었다.

러시아가 조금 불온한 움직임을 벌였지만, 어차피 영국은 섬이었고 그들을 지켜줄 든든한 함대 역시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니 영국은 안심하고 아일랜드의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러시아의 침공을 알리는 시계는 째깍째깍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 * *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일이 아직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쯤 눈을 떴다.

“으음…….”

“폐하, 정신이 좀 드십니까?”

눈을 뜨니 내 옆에서 밤을 새운 것처럼 보이는 제멜바이스가 앉아 있었다.

“내가 얼마나 잔 것인가…….”

“이틀을 내리 주무셨습니다.”

“아직 살아 있는 걸 보아하니 수술은 무사히 끝난 모양이로군…….”

“예, 폐하.”

몸을 좀 일으키려 하니 너무 오랫동안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그런지 머리가 핑 돌면서 그대로 픽 쓰러졌다.

“폐, 폐하!”

“으음……. 소란 부리지 말게, 아직 안 죽었네.”

침대에 가만 누워 있으니 배가 고팠다.

이틀 동안 쓰러져서 아무것도 먹질 못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으음……. 이보게 제멜바이스.”

“예, 폐하.”

“가서 간단하게 먹을 것하고 영어신문을 좀 가져와 주겠나?”

다른 누구도 아니고 황제가 칼을 맞아서 쓰러졌다는데 신문사가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성질 급한 러시아는 벌써 무슨 행동을 취했을 터였다.

그렇게 시종들이 가져다준 먹기 편한 음식들을 입에 집어넣으며 영어신문을 들여다봤지만 내가 쓰러졌다는 이야기 외엔 이렇다 할 소식이 없었다.

“흠……. 아직 반응이 오기엔 너무 늦었나?”

신문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러시아에 관한 소식은 털끝만큼도 나오질 않았다.

오히려 신문에는 이제 회복세에 접어든 아일랜드에 여왕이 방문한다는 소식과 충성스러운 아일랜드인들이 자신들을 구해준 여왕을 크게 환영한다는 내용뿐이었다.

“아일랜드…….”

[이맘때쯤에는 대기근으로 고통받던 이들이지.]

“아잇! 깜짝이야…….”

내가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영감님은 벽에서 머리를 빼꼼 내미셨다.

“그동안 뭐하시다가 이제야 오십니까?”

[……여러 가지 정리할 것들이 남아 있어서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네.]

“혼자만의 시간이요?”

혹시 그때 봤던 소녀와 관련이 있는 건가 싶었지만 굳이 묻진 않았다.

원래 사람들은 저마다 남들에게 말 못 할 사정이란 것이 있지 않은가?

“끄응……. 제가 칼 맞고 쓰러졌는데도 세계는 평화롭기만 하군요.”

[겉으로는 그렇지.]

“속내는 다르다는 겁니까?”

[그럼 다른 이들이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신문에 그런 속사정들이 드러나리라 생각했는가?]

“하긴…….”

내가 조금 안일했다.

이런 일은 신문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공작을 불러서 물어보는 것이 더 빠를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공작을 부르면……. 궁정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제가 깨어났다는 것을 알아챌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깨어났다는 소문이 퍼질 것이고 내 상태를 예의주시하고 있을 러시아나 서방 측 외교관들의 귀에도 흘러 들어갈 터.

[뭘 그렇게 깊이 고민하는가? 그냥 저기 있는 헝가리 의사에게 잠시 공작을 따로 불러서 나중에 자네 상태를 지켜본다는 명분으로 슬쩍 와달라고 전하면 될 일이 아닌가?]

“아.”

역시 제국을 수십 년간 통치했던 영감님의 짬은 어디 간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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