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54화
전쟁의 시대?
아직 헝가리 내에 남아 있는 불온세력들을 억죄려고 군정을 펼치는 것이긴 했기에 헝가리 내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상관없었다.
하지만 헝가리 왕국 바깥에 거주하는 헝가리인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흠…….”
“폐하께서 그들을 진정시켜주십시오…….”
“내가 진정시킨다고 들을 것 같진 않은데.”
“예? 그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잠깐 생각해 보겠네.”
지금 시민들이 헝가리인을 공격하는 것은 그들의 충성심의 대상인 내가 습격당했다는 것도 있지만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뒤섞였을 것이었다.
뭐 이를테면 내가 쓰러짐으로써 그동안 경기부양책이라고 벌여놓은 공적 사업이 전부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같은 것 말이다.
[그렇다면 저들에게 사업이 철회되는 일은 없다고 하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럼 제가 직접 나서야 하잖습니까.’
[공작을 시키면 될 일이네, 그게 아니라도 브루크 경도 있잖나.]
‘그들이 말하는 것과 제가 말하는 것은 무게감이 다르니까 그런 것이지요.’
[무게감?]
영감님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원래 높으신 분들은 말 몇 마디 하면 사람들이 진정된다고 생각하시는데……. 그렇게 관둘 사람들이면 애초에 행동하지도 않았을 거란 말이지요.’
[으음……. 그렇군.]
‘제가 보기엔 시민들이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가 쌓였다?]
‘예, 일은 고되고 힘든데 그렇다고 급료를 받으면 그게 전부 식비로 빠져나가니 삶이 얼마나 팍팍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자네 말은 지금 시민들에게는 유희 거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인가?]
‘정확히는 다들 스트레스를 적절히 풀어줄 곳이 마땅치 않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지금 자네는 이번 일이 그들의 스트레스가 폭발하여 벌어진 일이라고 하는 것인가?]
‘주요한 요인 중에 하나라고 보는 거죠.’
영감님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혀를 차셨다.
[가끔 보면 자네는 정말 사소한 것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는군.]
‘어허,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도 둘러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녔다고 칭찬해 주셔야죠.’
[참으로 잘났네그려.]
영감님의 비아냥에도 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거참 제 말이 맞다니까요?’
[내가 언제 뭐라 했는가?]
‘아니, 생각해 보세요. 지금 사람들은 굶주리던 때를 벗어나서 더 나은 생활을 누리길 바라고 있는 거라니까요?’
[그래서?]
‘전에는 저들에게 빵을 던져줬으니 이제는 서커스로 저들의 눈을 현혹해야지요.’
[빵과 서커스라……. 참으로 고전적이군.]
‘그만큼 확실한 방법이지요.’
모름지기 산업화가 점차 진행될수록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 것이고 그러다 보면 개중에는 저마다 능력을 발휘하여 중산층으로 도약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점점 굶는 일이나 어려운 일이 줄어들며 그럭저럭 먹고살게 된 중산층은 자연스레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었다.
그들이 한번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그 밑에 있는 하층민들 역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려 할 것이었고 그렇게 되면 제국 내부에 만연해 있는 민족문제가 또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제국 내에서 문제가 되는 헝가리인에 대한 테러 역시 이러한 문제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저들의 관심이 팍팍한 현실이나 정치에서 떨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했다.
‘모름지기 사람들은 즐길 거리가 늘어나면 그것들을 즐기느라 정작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고들 하지요.’
[그래서 도시마다 전차 경주장을 만들어서 사시사철 전차경기라도 할 셈인가? 그건 그것 나름대로 흥미롭겠군.]
‘필요하다면 그렇게 할 겁니다. 하지만 그건 실효성이 조금 부족하니……. 다른 방법을 써야겠지요.’
[다른 방법?]
‘전차경기는 조금 위험하잖습니까.’
이내 영감님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이미 경구 수액 제조법이 알음알음 퍼진 탓에 콜레라는 진정되는 기미였고, 거기에 한술 더 떠 동원령을 내린 러시아제국이 보유 중이던 소금과 설탕 재고를 한 번에 풀면서 가격이 폭삭 내려앉았다.
사재기 덕분에 러시아는 상당한 양의 군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급하게 소금과 설탕을 확보하려 했던 영국과 프랑스는 큰 손해를 봐야 했다.
특히 프랑스는 아이티의 독립배상금의 상당 부분을 덜어내고 설탕을 받아오기로 했던지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재선을 앞두고 있던 루이 나폴레옹은 러시아의 이런 행동 때문에 정치 활동을 줄여야 할 정도로 재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덕분에 그를 열렬히 지지하는 빈농이나 노동자들에게 투표권을 확대하려던 그의 계획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힘든 와중에도 루이 나폴레옹은 어떻게든 법안을 밀어붙이려 했지만 결국 법안은 의회에서 부결되어 버렸다.
“……따라서 공화국의 통령, 루이 나폴레옹이 입안했던 통령 연임을 위한 헌법개정안은 부결되었음을 알리는 바입니다.”
“으그그극……. 망할 러시아 놈들…….”
“각하, 우선은 진정하시지요.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습니다.”
“비웃고 싶으면 비웃으라고 해! 내가 그놈들을 한 명 한 명 전부 기억해 주지.”
덕분에 재선성공이 불투명해진 루이 나폴레옹은 자신을 비웃는 정적들의 웃음소리를 뒤로하며 의회를 나섰다.
그리고 의회 앞에서 간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노동자들 앞에 섰다.
“친애하는 프랑스의 아들딸들이여!”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수백 명의 군중 앞에서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그대들이 간절히 바라던 투표권은 이제 의회 쓰레기통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아아…….”
“이럴 수가…….”
그의 말에 사방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개중에는 눈물을 보이며 울먹이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으니 사람들이 받은 충격이 어떨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나폴레옹은 주변을 쓱 둘러보고는 대뜸 소리쳤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인가 묻는다면 나는 당당히 아니라고 할 것이다!”
“!!!”
“오늘의 우리는 의회 앞에서 좌절해야 했지만, 내일의 우리는 산에서 들녘에서 그리고 공장과 밭에서 프랑스인의 긍지를 품고 다시금 국가를 좀먹는 기생충들에게 도전할 것이다!”
거기서 끝났어도 자신의 이미지는 챙길 수 있는 괜찮은 연설이었겠지만 루이 나폴레옹은 그러지 않았다.
이 연설은 자신의 앞에 있는 수백 명은 인민들을 현혹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갑작스러운 러시아의 행동으로 패배한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의식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절대 포기하지 마라! 기회는 다시 올 것이다. 때가 온다면 모두 나를 잊지 말고 기억해다오! 그리고 때가 오면 모두 손에 프랑스의 삼색기를 들고 내 뒤를 따라오시게! 저 드높은 벽 너머에 우리가 바라던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네!”
“나폴레옹! 나폴레옹! 나폴레옹!”
“프랑스 만세! 혁명 만세!”
의회 앞 광장에 모인 이들은 그의 연설에 열광하며 환호를 보냈다.
그러고는 마치 경호원처럼 루이 나폴레옹을 둘러싸고는 라 마르세예즈를 열창했다.
“일어나라 조국의 아들딸들아~”
“영광의 날이 왔도다~”
그들 사이에 둘러싸인 루이 나폴레옹 역시 웃으며 그들과 함께 라 마르세예즈를 열창했다.
의회를 나서던 의원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는 다들 나폴레옹을 비웃었다.
“쯧쯧쯧……. 역시 제 숙부의 휘광을 등에 업고 정치에 입문한 천박한 종자가 어디 가진 않는군.”
“저런 우매한 이들의 지지를 어디에 쓰겠다고 저러는 것인지 쯧쯧…….”
하지만 그중에 빅토르 위고만이 루이 나폴레옹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자는 저리도 쉽게 권력을 포기할 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러니 다들 주의하셔야 합니다.”
“주의? 이제 저자는 다음 선거까지 이빨 빠진 사자일 텐데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서야 날개를 편다고 했습니다. 조심하여 나쁠 것이 없습니다.”
“미, 미네르바가 뭐?”
“……무슨 일이든지 그것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모든 것이 끝난 뒤에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하하, 자네는 걱정도 많군.”
“걱정이 아니라……. 후우…….”
위고는 무사태평인 의원들의 모습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갑갑함을 느꼈다.
그는 의원들을 설득하고 싶었지만, 그 역시 나폴레옹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는 알 수 없었기에 그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루이 나폴레옹이라는 사람은 이대로 주저앉아 모든 것을 포기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그의 생각은 옳았다.
사람들 틈에 둘러싸인 나폴레옹은 라 마르세예즈를 열창하면서 권력을 손에 쥘 방법을 고민했으니 말이다.
‘의원들이 승리를 확신하고 있을 때를 노려야 한다……. 합법적으로 권력을 이양받는 것은 실패했으니 이번엔 숙부님의 방법을 써야겠군.’
그의 시선은 의회 입구에서 이쪽을 힐끔거리는 병사들을 향하고 있었다.
* * *
러시아의 사재기로 큰 피해를 본 영국 정부는 그 손해를 메우기 위해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인해 폐지되었던 곡물 세를 부활시키고, 아일랜드로 들어가는 부자들의 구호 물품과 기부금에도 세금을 매기는 만행을 저질렀다.
당연하게도 정부 내에서 이러한 행동을 비난하는 자도 있었지만, 러시아와의 전쟁이 코앞이었기에 그들의 말은 무시됐다.
그렇게 가뜩이나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내던 아일랜드인들의 삶은 나락에 빠져버렸고 거기에 영국 본토에서 콜레라까지 전파되어 더는 살 수 없을 지경까지 와버렸다.
그러던 차에 빅토리아 여왕이 아일랜드를 방문한다는 소식에 수많은 아일랜드인은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여왕에게 알리고자 했다.
그래야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이런 아일랜드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그들이 여왕을 만나러 상경하는 길목에 병력을 배치하여 그들의 이동을 막았다.
“우리는 전하를 만나야 합니다!”
“돌아가라고 했소.”
“지금 여기서 돌아가봤자 우리에게 무엇이 남아 있단 말입니까? 밭에 심었던 감자는 전부 썩고 병들어 먹을 수도 없고 그나마 남아 있던 귀리마저 모두 사라졌단 말이오!”
“정부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논의 중이니 그렇게들 알고 물러나시오.”
“우리가 그걸 믿을 것 같습니까?!”
“믿건 말건 그건 내 소관이 아니오.”
“그게 무슨…….”
장교는 검을 뽑아 들며 일갈했다.
“물러나지 않으면 무력을 사용할 것이오.”
“…….”
“81연대 전방의 폭도들을 조준하라!”
“포, 폭도?!”
“여기서 물러나면 모두 끝이오!”
더는 물러날 곳이 없는 아일랜드인들은 어떻게든 이를 뚫고자 나가려 했지만, 군인들은 이를 어떻게든 저지하려 했다.
“쏴라!”
빅토리아 여왕이 영국 정부에서 심혈을 기울인 코스를 따라 아일랜드를 순방하는 동안 아일랜드에서는 오백 명에서 천 명에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굶주림에 지쳐 쓰러지거나 영양실조로 약해진 몸이 전염병을 이기지 못해 죽은 이들은 물론 여왕에게 이 비참한 소식을 알리고 가족과 친지들을 구하려다가 총에 맞은 이들이었다.
물론 런던의 신문사들은 이를 아일랜드인의 내면에 내재한 폭력적인 성향이 밖으로 튀어나온 소요사태로 언급할 뿐이었다.
누구도 아일랜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굶주림과 외면을 견디다 못해 굶주리는 자식들의 손을 붙잡고 배에 올랐다.
“차라리 배 안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저주받을 땅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정든 고향을 떠나 미지의 신대륙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그렇지 않은 아일랜드인들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는 이 슬픈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아일랜드 내의 반발은 점차 줄어들었고 영국 정부는 이것이 본인들의 통치가 빛을 발하는 것이라 사람들에게 홍보했다.
하지만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 치욕과 모멸감을 잊지 않았다.
그저 살기 위해서 잠시 뒤로 미뤘을 뿐이었다.
아무튼……. 내부의 마지막 불안요소를 처리한 영국 정부는 그제야 본격적인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며 천천히 군대를 끌어모았다.
이제 유럽 사람들은 짧았던 평화가 끝나고 본격적인 전쟁이 다가왔음을 피부로 체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