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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55화 (55/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55화

선전포고

1849년 10월 6일.

원 역사에서는 러시아군의 개입으로 헝가리 혁명이 진압되고 주모자들이 사형을 선고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날이다.

하지만 지금은 유럽의 역사를 뒤흔들 대사건이 벌어지는 날이기도 했다.

“……따라서 금일 오후 두 시를 기하여 우리 러시아제국은 그레이트 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과 프랑스 공화국, 그리고 오스만국과 전쟁에 돌입할 것임을 알리는 바이다. 적들은 우리의 분노 앞에 참담히 쓰러질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이 아일랜드 순방을 끝내고 버킹엄궁으로 돌아오자마자 러시아대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본국에서 보낸 선전포고문을 여왕의 앞에서 읽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한 여왕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총리를 돌아봤고, 영국의 총리인 존 러셀 경 역시 갑작스러운 선전포고에 심히 당황했다.

“……그러니까 지금 그대들이 우리에게 선전포고했다는 뜻입니까?”

“예, 맞습니다.”

“알겠습니다.”

전쟁까지는 아직 조금 여유가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러셀 경은 금세 원래의 여유를 되찾으며 러시아대사의 신병을 구속했다.

“현 시간부로 그대는 대사관에 감금될 것이고 대사관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 역시 감금되거나 러시아로 추방될 것입니다.”

“그러시지요.”

“후우…….”

러시아대사는 모두 예상했다는 듯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여왕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는 근위병들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

“총리, 갑작스레 전쟁이라니 이게 무슨 말이지요?”

“으음……. 아무래도 러시아에서 단단히 칼을 갈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전쟁은 내년쯤에야 벌어진다고 했잖소!”

“신도 프랑스의 사정을 고려하여 그쯤으로 전쟁일시를 잡으려 했으나……. 아무래도 러시아에서 이를 눈치채고 선수를 친 것 같습니다.”

“하아……. 그럼 우리도 대응을 해야 할 것이겠지요.”

여왕의 한숨에 러셀은 기운차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지금 당장 왕립해군에게 말만 한다면 저 오만한 러시아인들의 수도에 불벼락을 안겨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요? 그럼 행운을 빌겠소이다 총리.”

“예, 전하!”

러셀은 그리 말하며 당당하게 어전을 나섰으나 문이 닫히자마자 조금 전의 자신감은 바람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젠장…… 젠장…… 젠장!”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개전이었다.

거기에 선수를 러시아에 빼앗겨버렸다.

“놈들이 동원령을 내렸다고 했을 때, 우리도 이에 맞서 동원령을 내려야 했어……!”

그때는 러시아가 정말로 전쟁을 하려는지 의문이기도 했고 당장 사정이 좋지 않아 잠시 뒤로 미뤘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금은 러시아가 앞장서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전황이 확 뒤집힌 것은 아니었고 그들의 패권 역시 건재했다.

아직은 말이다.

이 패권을 유지하려면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적어도 프랑스보다는 빨리 말이다.

그리 생각하며 기운을 차린 러셀은 곧장 자신의 집무실인 다우닝가로 향하여 긴급관료 회의를 소집했다.

주제는 당연하게도 러시아와의 전쟁이었다.

“금일 오후 두 시경……. 러시아 제국 측에서 우리 연합왕국과 프랑스 공화국에 선전포고했다네.”

“으음…….”

“결국, 일이 터졌군요…….”

러셀의 말에 장내에는 탄식이 터졌다.

다들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막상 일이 닥치자 걱정이 앞섰다.

“노스브룩 남작, 그레이 백작.”

“예, 각하.”

“지금 동원 가능한 함대와 부대는 어느 정도인가? 급히 러시아로 출발할 수 있겠는가?”

러셀의 질문에 그의 내각에서 해군 장관을 맡고 있던 노스브룩 남작이 먼저 답했다.

“런던에서 러시아까지 함대를 보내는 것을 고려해 봤을 때, 증기선과 전열함을 포함하여 총 13척~16척에 수송선 150척~200척을 동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흠……. 그 정도면 얼마나 많은 병력과 물자를 실어나를 수 있지?”

“대략 4만에서 5만 정도의 병력과 그들이 야전에서 50일 정도 활동할 수 있는 분량을 옮길 수 있습니다.”

“50일 치라…….”

적지 않은 양이었으나 전쟁에 문외한인 그가 보기에도 애매하다는 감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정도라면 러시아에서 작전을 펼치기엔 턱없이 적은 양이 아닌가?”

“수송선은 주기적으로 본국과 러시아를 오갈 것이니 크게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으음……. 그렇다니 다행이로군……. 그럼 그레이 백작, 지금 동원 가능한 부대는 몇이나 되겠는가?”

“아직 명확하게 파악된 것은 아니 오나……. 당장 동원 가능한 것은 35,000명에서 40,000명 정도이고 추후에 부대를 증원하면 10만 명까지도 가능하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10만 명씩이나……!”

러셀 경은 10만 명이라는 인원을 직접 본 적이 없었기에 그 규모를 가늠하지 못했으나 그게 어마어마한 숫자임은 잘 알고 있었다.

“대, 대단하군.”

“이것이 대영제국의 저력이지요.”

막강한 영국군의 전력을 보고받은 러셀은 조금 전의 불안이 조금 가셨는지 편안한 얼굴로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안심되는군……. 그렇다면 노스브룩 남작과 그레이 백작은 원정군 편성에 힘써주고 프랑스와 긴밀히 협력하여 원정군 파병 일자를 의논토록 하시게.”

“예, 각하!”

“나머지 분들도 내부의 소요가 없도록 각자 맡은 바에 힘써주시게나.”

“물론이지요.”

“이번에야말로 러시아놈들의 콧대를 꺾어놔야 합니다!”

흥분한 각료들의 모습에 러셀 경이 그들을 진정시키며 말하길.

“자자……. 전쟁은 어차피 우리의 승리로 끝날 것이니 너무 흥분들 하지 말고 지금은 당장 전쟁에 집중해 주었으면 좋겠네.”

“예, 각하.”

“좋아……. 그럼 오늘 회의는 이만하는 것으로 하고 신문사에 보도지침을 내려 내일 아침까지는 이 소식을 비밀에 부치게.”

회의실에 모인 사람 중 누구도 자신들이 승리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전쟁이 시작되고 한 달쯤 후에 발칸 쪽에서 들려온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 * *

러시아제국의 발칸 원정군을 이끄는 것은 나폴레옹 전쟁과 이어진 오스만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인물이며 러시아군의 야전 원수이며 바르샤바 대공이자 예르반스키 백작인 이반 표도로비치 파스케비치예리반스키, 스베틀레이시 크냐지 바르샵스키…….

줄여서 이반 파스케비치 대공이었다.

그는 러시아 군인답게 수보로프로부터 이어진 총검을 위시로 한 돌격 전술을 선호하여 러시아군이 발칸에 발을 들이밀자마자 사방으로 흩어져 오스만군을 분쇄했다.

갑작스러운 선전포고와 함께 이루어진 침공에 오스만군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발칸을 내어줘야 했다.

거기에 러시아군의 진공에 맞춰 발칸의 오스만의 봉신국도 같은 슬라브족을 돕는다는 대의명분으로 들고일어나니 오스만군이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반 파스케비치는 작전 개시 3주 만에 발칸 전역을 해방하고 오스만군을 이스탄불과 그 인근 트라키아 지역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모든 작전이 끝난 뒤에 러시아군의 피해는 사망자와 부상자를 합쳐도 채 삼천 명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정말 대단한 용병술이십니다.”

“자네 칭찬은 이제 질렸네.”

“아, 그렇습니까? 그래도 전하께서 대단하시다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사람아 칭찬은 그쯤하고 병사들을 잘 수습하여 현지인들에게 쓸데없는 짓 벌이지 않게 하게나.”

“예, 전하!”

파스케비치 대공은 이스탄불이 내려다보이는 트라키아 지방의 어느 이름 모를 야산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봤다.

저기 오스만에게 빼앗긴 로마인들의 도시이자 러시아의 갈망의 땅이 있었다.

저 조그마한 도시 때문에 그의 조국은 능히 세계로 뻗어 나갈 만한 힘이 있었음에도 지중해로 치고 나가지 못했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러시아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지중해로 나아가는 길이 열릴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조국 러시아는 그토록 바라왔던 완전한 부동항을 얻게 됨은 물론 지중해로 나아가는 길이 열리는 것이었다.

물론 지중해 역시 지브롤터를 뚫지 못하면 호수나 다름없는 곳이긴 했지만……. 흑해에 갇혀 있던 함대가 지중해로 진출하는 것이 어디인가?

“이제 모든 것이 바뀔 것이야.”

러시아는 조금 더 위대해질 것이고 그동안 조국을 무시해 왔던 서방세계는 러시아의 포효에 두려워하며 무릎 꿇게 될 것이다.

“전하, 본국에 보낼 승전보에는 뭐라고 적어 보내시겠습니까?”

“흠…….”

잠시 고민하던 이반 파스케비치 대공은 피식 웃으며 장난기 어린 말투로 말했다.

“문이 열렸다.”

* * *

러시아는 자신들이 전쟁 상태에 돌입했다는 것을 전 유럽에 널리 알렸다.

초반의 전황을 휘어잡은 만큼 다른 국가들이 그 기류에 흔들려 자신들의 편으로 넘어오기를 원한 것이겠지.

실제로 러시아가 발칸지역을 성공적으로 확보하고 오스만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을 압박하자 그동안 러시아와 불편한 말을 주고받던 스웨덴은 순한 양이 되었고 프로이센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하하! 그 자존심 높은 프로이센 국왕이 늘그막에 동네 똥개처럼 배를 까뒤집었으니 자존심 좀 상했겠구나.”

“도, 동네 똥개라니요……. 그런 말은 어디서 들으신 것입니까?”

“그런가? 그럼 취소하지.”

“폐하…….”

요새 영감님이 좀 울적하신 것 같아 헨리를 놀려먹고는 했는데, 무슨 말을 해도 목석처럼 말투가 조금 달라지는 영감님보다는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울고 웃는 헨리 쪽을 놀려먹는 것이 더 재밌었다.

“그래……. 러시아에서는 우리에게 열심히 참전을 요구하고 있겠지?”

“예, 불과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러시아대사께서 폐하의 동향을 물어보며 공작과 우리나라의 참전문제를 의논했습니다.”

“거 참……. 끈질긴 녀석들이로군.”

한 국가의 지도자가 오늘내일하며 사경을 헤맨다는데도 전쟁에 참전해 달라고 얼굴을 들이미는 것을 보아하니 저들의 외교 방향이 그리 온순한 쪽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이야 지난번의 경구 수액 거래로 맺어진 종잇장보다도 얄팍한 동맹 관계로 묶여 있으니 저들이 제 나름대로 정중하게 나오는 것이었다.

만약에 우리가 저들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동맹을 깨버린다면 저들은 분노하여 제국을 침범해 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동부방어계획은 잘 준비되어 간다더냐?”

“예, 공작이 전한 바로는 이미 헝가리 지역 내에 여러 곳의 군사기지가 만들어졌고 지난 8만 명가량의 병력을 배치했다고 들었습니다.”

“8만……. 8만 명이라…….”

러시아대사가 공작에게 말한 바로는 지금 발칸을 침공한 러시아군은 대략 20만이 조금 안 되는 병력이었다.

20만 대군이 발칸반도를 돌아다니고 본토에는 그것의 두 배가 넘는 병력이 대기 중이라고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8만은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니었다.

“쓰읍……. 하지만 여기서 군대를 더 동원하면 국가 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니…….”

모름지기 군대는 그 무엇도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집단이었다.

그리고 전쟁은 그 소비를 극대화한 작업이었고 말이다.

이제 막 알껍데기를 깨고 나오려는 제국경제가 전쟁으로 인해 알째로 박살 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경제개발의 초기 단계가 끝나는 것은 아무리 빨라봤자 내년 여름쯤일 것이니 그전까지는 이 짓거리를 유지해야겠군.’

원래는 2~3년 뒤에 있을 이탈리아 독립전쟁에 대비하여 그리 계획을 맞춘 것이지만 세상일은 내 계획대로 흘러가질 않았다.

“끄응……. 막시밀리안이나 카를은 무얼 하는가.”

“두 전하께옵서는 평소처럼 여러 지식인과 문인들과 교류하시며…….”

“그 두 녀석이?”

아무리 내가 일부러 그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권력을 탐내는 것처럼 보이라는 명령을 내렸다지만 동생들이 그럴 리가 없었다.

그 둘은 어린 나이부터 여자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던 골칫덩이들이 아니던가?

“……정정하겠습니다. 두 전하께옵서는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주로 들르는 살롱과 연회장을 전전하시며 인맥을 쌓고…….”

“어허.”

“……여러 영애를 만나고 계십니다.”

“이 망할 녀석들이 큰형님께서는 나라를 살려보겠다고 동분서주하는데, 제 놈들은 여자를 만나러 다닌다고 바빠서는……!”

내 화난 모습에 헨리가 당황하며 나를 말렸다.

“폐하 고정하시옵…….”

“너무 부럽다!”

“……?”

헨리는 황당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농담일세, 어차피 그 녀석들이 그렇게 돌아다니는 것 역시 제 나름대로 활동하는 것이니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네.”

역시 헨리를 놀리는 것이 제일 재밌었다.

“그래서 지난번에 본인이 명했던 경마장과 종합운동경기장의 건립 건은 어찌 되었나?”

“아……. 그건 이제 막 시공에 들어가긴 했습니다.”

“그래, 되도록 오래 쓸 수 있게 아주 튼튼히 만들라고 당부해 주게나.”

“예, 폐하.”

모름지기 노동자들은 역동적이고 폭력적인 스포츠에 열광하고는 했다.

나는 이점을 이용하여 그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자연스레 민족 내에서도 지역별로 서로 갈라지게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뭐 이게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해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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